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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국사회와 여성문제>라는 강의를 하면서 '남성학'을 아주 짧은 꼭지로 다룬 적이 있다. 사회과학적 상상력의 기본은 이성의 논리력에 감탄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 남성학이 필요한지'를 따지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사실 의미가 없다. 아무리 남성중심사회가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남성을 '페미니즘과 마찬가지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상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 혹은 행정가라면 이런 논의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들은 '모든'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밥줄이다. 하지만 이론가는 그렇지 않다. 이론가에게 '모든' 목소리를 언급하라는 것은 연구자에게 '교주'가 되라는 꼴이다. 현실의 여성이 어쨌든 남성학 자체는 '어떤' 학문분과로서 의미가 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칼빈교의 예정설이 '뼈 빠지게 일하고 모으자!'라는 절약정신으로 이어졌고 이로부터 자본의 '축적'이 놀랄 정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하여 종교와 자본주의의 상관성을 분석한다.

하지만 베버의 주장은 사실 타당성이 없다. 이른바 자본의 '소비'라는 측면을 함께 언급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성장'을 논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그러나 베버는 위대한 이론가다. 중요한 것은 진실(truth)이 아니라, 상상력(imagination)이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는 지금도 논술시험을 위한 필독서다(물론 이 상상력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제대로 된 진실을 보는 것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여상(여자 상업계 고등학교) 졸업생 5인방의 우정을 그리면서 한국사회의 저학력여성계층차별이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고 동년배 또래사이에서 어떻게 노골적으로 나타나는지를 잘 묘사하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 대해 누군가가 "왜 여상 출신만 언급하냐? 공고 출신 남자들이 어떠한 차별을 당하는지를 언급하지 않은 젠더불평등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러니까 '다' 다루지 않았으니, '덜' 다룬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 마술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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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모든' 설명이 아니라, '어떤' 주장

<온라인이프>에서 최근 남성학자 한지환씨의 댓글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전혜영씨가 작성한 <발칙한 여대생의 호시탐탐 페미질 이야기 4회- 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놓고 벌어진 그와 저자의 댓글논쟁은 독자에게 '본문보다 재미있는 댓글놀이'를 선사해주었다. (기사 바로가기)

페미니즘을 전면으로 내세운 온라인매체에 단지 남자가 아닌, '남성학자'의 질책이 소통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지환씨의 주장은 거북하다. 그가 문제 삼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여전히 남은 고민은 그 이상을 바라는 남친이란다. 이 친구는 계속해서 'No'라고 이야기하지만 남친은 계속해서 설득하고 자신의 욕구를 이렇게 표현한단다.
"니가 3일을 굶었어. 그런데 갑자기 먹을 게 딱 나타난 거야. 그럼 어떡해? 막 달려들잖아, 배고프니까. 내가 딱 그런 상태야."

전혜영씨는 이러한 그의 '언어습관'을 문제삼는다. 한국에서 여자를 '먹는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일상의 폭력이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있다는 배경적 설명도 곁들이면서.

그런데 한지환씨는 여기에 논리적인 딴지를 건다. 앞에서도 주장했지만 이런 '어떤' 글의 은유적 표현에 불과한 것을 '모든' 설명이 가능한 논리성으로 추궁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이 땅에서 여성문제가 '문장으로' 언급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그의 주장을 보자.

"일부 극단적인 해석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윗글에서 후배 분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성적(性的) 욕구를 식욕에 빗대어 말한 것을, 과연 '여자=먹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의 발로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후배 분의 남자친구가 말하려 했던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이 느끼는 성욕이 굶주린 이의 식욕만큼이나 간절하다'는 것일 뿐, 자신이 '남성'이기 때문에 그처럼 강렬한 성욕을 느낀다고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윗글에 소개된 후배 분의 남자친구가 그러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혜영님께서 그 남자친구를 섣불리 비난하셨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상대의 발언을 확대해석하며 이를 섣불리 비난한 전혜영님의 태도는, '된장녀 논란' 당시 훌리건들의 그것만큼이나 경솔하고 위험한 태도라는 것이 제가 지적하려는 바입니다."

전혜영씨의 글에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한 놈이 누구냐!'가 아니다. 이름도 등장하지 않은 '익명의 누군가'는 애초에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런 그로부터 '그녀가 무슨 기분을 느꼈냐!'가 처음이고 끝이다.

하지만 한지환씨는 '남자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였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 추측인데 전혜영씨의 사례에 등장한 '그'는 상상의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문제일 수 없다. 왜냐면 그런 사람 주변에 널려있거든.

말 그대로 논의전개를 위해서 주변의 콘텐츠를 활용한 상상력이다. 하지만 한지환씨는 이러한 상상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그 상상력이 왜 SF인지를 다그친다. 이를 어쩌나. 상상력은 원래 픽션이다.

"한 개인의 행동이 성별 이데올로기에 따른 것인지 개인의 개성에 따른 것인지 엄격히 따져보지 않은 채 섣불리 이를 비난하는 것은..."

"담론의 심층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완전히 잘못된 사례를 인용하며 무고한 사람을 섣불리 비난하신 것은 분명 옳지 못한 행동이 아닙니까?"

누구를? 그 대상자가 지금 소송이라도 걸고 있단 말인가? 이처럼 여성문제를 언급한다는 것은 지나친 '대칭성'의 명제에 시달리게 된다. '아바타'만 등장해도 난리다.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 도무지 어떤 사례를 언급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것이 직접 물어본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그래서 '내 본심은 이런 것이오!'라는 답변을 듣게 되면, 전혜영씨의 구조적 의심은 기각되어야 할까?

한 개인의 행동은 지극히 개인의 개성에 따른 것이다. 맞다. 그런데 사회학, 그리고 이와 비슷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여성학은 그 개성조차도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 졌는가'를 따지는 학문이다. 사회학은 처음부터 '개인과 사회'라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어떤' 변수에 집착할 뿐이다.

틀리지 않았다고 나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는 단골 떡볶이 가게가 있다. 블로그에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떡볶이 중 최고의 맛'이라면서 사진도 올리고 했다. 그런데 그 주변 떡볶이 집 사장님들이 날 찾아왔다. '왜 자기 떡볶이 맛도 안 보고 그런 일방적인 글을 쓰느냐!'고 따지신다.

나는 정말로 맛이 좋아서 그 떡볶이를 먹는 것일 수도 있고 빚더미에 있는 가게사장님이 그저 불쌍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이유로 그 떡볶이를 좋아하든 다른 가게는 말 그대로 떡볶이로 승부를 걸면 된다. 1+1 행사를 기획하든, 경품이벤트를 하든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기존의 떡볶이를 고수한다면? 그럼 나를 진정한 '맛'도 모르는 미친놈으로 취급하고 다른 손님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어디 손님이 나 하나뿐이겠는가.

이론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성학을 언급하지 않고 젠더불평등을 전개하는 것은 어쩌다보니 그 집 단골이 된 소비자와 같은 거다. 그리고 단골들끼리 동호회 하나 만들어서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할 뿐이다. 그 동호회를 배신하게 할 놀랄 만한 떡볶이를 무상제공하는 것은 다른 가게의 자유다.

하지만 그 동호회는 '그럼에도 배신은 이르다!'고 판단할 권리를 전적으로 가지고 있다. 남성학도 페미니스트에게 그런 존재다. 시기상조라고 받아들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은 도와주어야 할 사장님이 따로 있다는 것.

남성학은 놀랄 만한 상상력 그 자체이다. 그런데 미안. 놀라운 것과 '그래서 의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바쁘다. 재차 말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전혜영씨는 그저 '어떤' 주장을 했을 뿐이다. 한지환씨도 그저 '어떤' 주장을 하면 된다. '가장 객관적인 연구는 픽션'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온라인 이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링크로 가시면 한지환씨의 반론글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onlineif.com/main/bbs/view.php?wuser_id=new_femlet_contribute&category_no=43&no=16020&u_no=15&pg=



태그:#여성문제, #남성학, #페미니즘, #고양이를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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