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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하고 집회했는데도 소환조사

저는 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활동가입니다. 오늘(5/25) 남대문 경찰서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 6일 서울광장에서 6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 집회를 열었는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경찰이 소환장을 발부했고 담당자인 제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당일 집회에 400명에서 500명 정도 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최 측보다 경찰 추산 숫자가 더 많은 집회는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집회 측 추산이 경찰 추산보다 4~5배 많은 게 일반적이지요.

신고 내용보다 사람이 많이 왔으니 불법?

경찰이 문제 삼고 있는 5월 6일 집회는 절차에 따라 집회신고가 되어 있었고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집회 신고시간도 초과하지 않았습니다. 집회가 진행된 시간도 야간이 아닌 평일 낮시간이었습니다. 도로를 밟기만 하면 일반교통방해로 몰아 처벌하려 했겠지만, 집회는 서울광장의 잔디 부분도 아닌 인도부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경찰도 집시법 위반이라며 해산경고를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해산을 하거나 연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집시법 위반이라며 저를 비롯해 7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경찰이 위법이라고 본 것은 두 가지입니다. '사람이 많이 온 것'과 '정해준 장소를 벗어나' 집회신고와 다르게 집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집회의 주최 측인 참여연대는 애초 '서울광장 분수대 옆'에서 '50명 규모'로 '표현의 자유' 관련 집회를 열겠다고 집회신고를 했습니다. 사실 집회신고 등을 담당한 실무자는 참석인원 50명 정도를 예상했습니다. 평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였기에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솔직하게는 경찰이 집회신고를 안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이명박 정부의 '광장공포증'과 경찰의 행태를 볼 때 집회신고를 받지 않고 어떠한 핑계로든 불허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에 여러 단체가 집회신고를 낸 후 어떤 핑계로 안 받아주는지 보고, 만약 받아준다면 '표현의 자유' 탄압사례를 보고하는 보고대회 형식의 집회를 열 생각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광화문광장과 청계광장의 집회신고는 불허돠었으나 참여연대의 서울광장 집회신고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경찰이 집회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핑계도 없었거니와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공식 방한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집회 이틀 전에 '사람 많이 오면 소환하겠다'고 으름장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집회를 준비하고 평소처럼 홈페이지에 웹자보도 올렸습니다. 당시 행사가 많아 홍보를 별로 못했는데 '서울광장이 오랜만에 열렸다'는 소식에 많은 분들이 트위터로 또는 메신저로 소식을 알린 모양입니다. 그러자 경찰은 집회 이틀 전에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통보해 왔습니다. 집회 장소를 분수대 옆에서 '시청역 5번 출구에서 중앙무대 사이의 인도'로 옮길 것과 집회와 상관없는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사람이 많이 오거나 집회신고 내용(또는 질서유지를 위한 조건)과 다른 경우 소환해서 조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결국, 집회신고자와 집회를 주최한 참여연대의 대표를 비롯해서 사회자와 참석자 등 7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심지어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주최단체의 대표에게도 소환장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의 직접 방해 없이 평화롭게 집회 진행

경찰이 제시한 5번 출구 앞에서 중앙무대 사이의 인도는 너무 좁아 그곳에서 집회를 한다면 다른 금지사항인 '집회와 상관없는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예상보다 참석인원이 많아 집회장소를 조금 옮기려고 했으나 경찰은 협의에 응하지 않고 '교통질서유지를 위한 조건'을 통지했다는 것만을 고수했습니다.

'경찰의 역할이 집회에 참석한 시민과 통행하는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냐'고 항의하며 현장에서 조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회공간을 옮기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조건을 통보하고 소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찰의 요구도 최대한 수용했습니다. 불법집회 운운하는 경찰의 해산명령이 몇 차례 있었지만 실제로 해산시키거나 연행하지는 않았고 저희는 평화롭게 집회를 마쳤습니다. 사실 5월 6일 집회는 경찰의 직접 방해만 없다면 서울광장에서 얼마든지 평화롭게 집회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불러모은 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 사람들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제가 소환조사를 받지 않기 위해 집회사실을 숨기고 50명 이내의 참석자만 오도록 했어야 했던 걸까요? 아니면 50명 넘는 참여자를 한 명 한 명 돌려보냈어야 했을까요? 참석인원이 예상보다 많더라도 집회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진행하도록 돕는 일이 주최자와 경찰의 역할 아닌가요?

오늘 소환조사를 받은 것 자체가 사실 억울합니다. 저를 조사하던 경찰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 여기에서라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제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모은 건 서울광장에서 집회 시위를 툭하면 불허해온 서울시와 경찰 아닌가요? 또, 당시 5월 6일 집회에는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MBC노동조합원의 참여가 많았습니다. 그날 예정보다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은 낙하산 사장을 임명해 조합원들이 파업할 수밖에 없이 만든 사람이 아닐까요?

집회에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해서, 또 신고를 받을 때와 달리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경찰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거기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불법일 수는 없습니다. 또, 남대문서 경비과장이 불법집회라 외치고 해산하라 했을 때 따르지 않았다고 불법일 수는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참여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서울광장, #표현의자유, #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언론노조,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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