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범한 선생님을 투사로 만들더니 이제는 교육행정 감시자의 길을 걷게 하네요."

 

사학재단의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20년간 몸담았던 학교에서 쫓겨난 해직교사가 교육의원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을 내쫓은 학교가 있는 지역을 대표해서 말이다. 서울시 제5선거구(강서·양천·영등포) 교육의원에 당선된 김형태(44)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서울시교육청 때문에 출마 결정했다"

 

지난해 3월 해직 후 1년 넘게 복직투쟁을 해온 김 당선자는 교육의원에 출마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의 태도'를 꼽았다. "교육청만 똑바로 하면 학교의 위법, 탈법 행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당선자가 국어교사로 일했던 사학은 불법 건축, 급식비리, 각종 횡령 의혹 등으로 인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곳이다.

 

"44년 산 것보다 지난 1년이 힘들었고 지난 1년보다 이번 한 달이 더 힘들었다"는 김 당선자는 지난 한 달간 3개의 선거구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슈퍼맨처럼" 날아다녔다. 덕분에 그는 전국 81개 교육의원 선거구 가운데 무려 53곳에서 '1번 후보'가 당선될 정도로 '1번 효과'가 컸던 교육의원 선거에서 '7번'을 달고도 당선될 수 있었다. 그가 진보진영 단일후보라는 점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번 교육의원 선거에서 진보진영은 6명의 단일후보를 냈고 그중 3명이 당선됐다. 

 

김 당선자는 인터뷰 내내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기뻐하면서도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8명의 서울시 교육의원 중 한 명이 된 그는 "서울교육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김 당선자 인터뷰는 4일 낮 12시경 목동에 위치한 그의 선거사무실에서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다음은 김 당선자와 나눈 일문일답.

 

"7번 받고 당선됐다는 게 기적이다"

 

- 선거결과가 0.6%포인트 차이로 박빙이었는데.

"선거운동 기간에 반응이 좋아서 낙관했다가 '1번 효과'가 있었던지 엎치락뒤치락해서 아침 8시까지 지켜봤다. 사실 유력후보가 1, 2번이 아니라 조금은 걱정을 덜했다. 보수단체에서 미는 후보이자 현 교육위원인 정채동씨도 1, 2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개표하니까 1, 2번 효과가 크더라. 다른 지역도 그렇고. 지금 생각하면 7번 받고 당선됐다는 게 기적이다."

 

- 소감이 어떤가.

"어제(3일) 하루 동안 문자메시지를 지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받고 전화를 (귀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받았다. 주로 하는 이야기가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진심과 진정이 통했다는 것이다. 강서, 양천, 영등포는 강남 다음으로 보수화된 지역이다. 번호도 그렇고 유리한 게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7명 후보 중에서 제가 나이도 젊고 화려한 경력이나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없다. 교장 출신이나 장학사 출신도 아니고.

 

저의 장점이라면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위한 좋은 선생님이 될까를 고민하다가 해직됐고 해직 후에도 여전히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작년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거대한 사학재단, 교육청, 검찰... 괜히 부질없는 짓 하지 말고 포기하고 다른 길 가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끝까지 목숨을 걸고 학교 앞에서, 교육청 앞에서, 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던 이유 중엔 물론 저의 억울함도 있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가장 염두에 뒀던 건, 제가 만약 이걸 포기해버리면 앞으로 저를 아는 학생들이 잘못된 일을 봤을 때 앞장서기보다는 괜히 바른 소리 했다가 김형태 선생님처럼 어려움만 겪으니까(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끝내는 정의와 양심이 이긴다는 교육적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해직당해서 어려운데 또 무슨 사고를 치냐고?"

 

- 출마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 출마할 때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해직당해서 어려움이 큰데 또 무슨 사고를 치냐고 하더라. 그래도 나는 모든 걸 걸고 했다. 교육의원은 후원도 받을 수 없어서 대출받아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 선거 운동할 때 어떤 점이 힘들었나.

"이렇게 말하겠다. 44년 산 것보다 지난 1년이 더 힘들었고 지난 1년보다 이번 한 달이 더 힘들었다.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공보물을 가리키며) 이런 것,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교육감은 그나마 나은데 교육의원은 우선 이름을 알리는 게 어려웠다. 유권자들은 누가 누군지 헷갈리고. 선거구는 좀 많나. 3개 선거구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슈퍼맨처럼 날아다녔다. 그래도 못 찾아뵌 분들이 많다. 그래도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줬다. 제자들, 학부모들, 시민단체 분들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전화 홍보하고, 아는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주고. 지방에서 대학 다니는 제자들은 일부러 그날 올라와서 투표하기도 했다."

 

"'찬밥' 대우하던 교육청 고위층까지 축하전화"

 

- 앞으로 사학비리 척결에 주력할 생각인가.

"교육의원 출마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서울시교육청의 태도였다. 교육청만 똑바로 하면 학교가 위법·탈법 행위를 할 수 없다. 웃긴 게... 제가 교육청에서 얼마나 찬밥 대우 받은 줄 알죠? 제가 하는 신고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제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며) 교육청 고위층까지 전화를 해서 축하한다고 하더라.

 

그들도 놀랐겠죠. 해직교사가 교육의원이 돼서 나타날 줄은. 진작 양천고 문제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특히 남부교육청장은 기자회견도 못하게 해서, 난 길거리에서 해야 했다. 그렇게 탄압을 했는데 이제는... 그래도 이번에 최홍이 교육위원이 같이 당선돼서 다행이다. 교육위원 가운데 양천고 문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 유일한 분이다."

 

"3년 동안 의정활동 열심히 하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 이번에 진보 교육감, 교육의원이 많이 당선됐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다들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교육 때문에 행복해야 하는데. 거기에 교육비리까지.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뜻에서(뽑아준 것 같다).

 

선거운동 다녀보면 심지어 한나라당 지지자들조차도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같은 경우도 어떻게 김상곤을 찍으면서 김문수를 찍을까 싶지만, 다시 생각하면 김문수 지지자조차도 경제는 몰라도 그래도 교육은 김문수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 경기를 포함해 전남, 전북, 광주, 강원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이번에 당선된 서울시교육의원 8명 중 3명이 진보성향이다. 한꺼번에는 안 되겠지만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교육을 바꾸고 싶다."

 

-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나.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했다. 4년 동안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뭐 욕심이 있어서 (교육의원) 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 교육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이들이 덜 힘들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실을 만들 수 있도록, 아이들 중심에서 4년 동안 열심히 하겠다. 화려한 경력은 없더라도 저의 진정성을 보고 선택해줬으니까 저도 진정성 있게 일하는 게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태그:#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