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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사진 그리고 삶

- 글·엮음 : 최건수

- 펴낸곳 : 시공아트 (1999.3.20.)

- 책값 : 15000원

 

 

 (1) 사진을 언제까지 만들고 있는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납니다. 사진이라는 문화나 예술은 '찍는' 일만으로 모두 담아내어 보여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로서는, '찍는' 틀을 벗어던지며 '만드는' 쪽으로 접어들기도 하겠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요즈음 만화쟁이와 그림쟁이들은 종이에 대고 펜이나 붓으로 그림을 안 그리곤 합니다. 셈틀을 켜 놓고 셈틀에서 펜마우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만화책이나 그림책에서 '종이 그림'을 만나기란 퍽 힘듭니다. 또한, 종이 그림을 그렸다 할지라도 다시 스캔을 뜨느니 뭐를 하느니 하면서 훨씬 번거로울 뿐 아니라, 종이에 그렸던 그림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까지 퍽 많은 손길과 손품과 돈까지 들여야 합니다.

 

만화쟁이와 그림쟁이가 셈틀로 그림을 그린다면, 사진쟁이는 필름사진 아닌 디지털사진을 찍는다 할 만합니다. 요즈음은 필름 원판이 아닌 디지털 파일로 일을 하거나 사진을 마련하거나 책을 꾸미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디지털 파일로 사진을 찍어 놓으면 나중 일이 수월합니다. 필름으로 찍은 사진은 따로 현상을 하고 스캐너를 돌리고 빛느낌을 살피고 하면서 손이 많이 가고 오랫동안 눈 빠지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디지털사진은 처음 사진을 찍을 때에 빛느낌을 다 맞추어 놓고 찍으면 됩니다. 셈틀을 켜고 사진 풀그림을 돌려 이래저래 손질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빨리빨리 온누리'에 걸맞는 문화나 예술이 디지털사진이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사진쟁이들이 필름값 걱정을 덜며 어느 만큼 홀가분하게 즐기는 디지털사진이라 여길 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디지털사진이라고 반드시 홀가분하지는 않습니다. 필름사진은 필름값이 들지만, 디지털사진은 '셈틀 저장장치'가 있어야 하거든요. 필름값도 필름값이지만, 디지털사진 파일은 부피가 작지 않기 때문에 이 파일을 건사할 저장장치가 꽤 커야 할 뿐더러, 한 번 모셔 놓은 저장장치가 언제까지나 알뜰히 지켜질 일은 없으니, 더 큰 부피인 저장장치를 틈틈이 따로 마련하여 겹으로 건사해 놓아야 합니다. 어찌 되었든 돈이 많이 깨질 수밖에 없는 사진입니다.

 

.. 주입식 교육에 의해서 형성된, 사진에 대한 고정된 틀이 몸에 밴 경우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잃는 경우가 많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교육과정의 경직성이 개개인의 개성을 묻혀 버리게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 우리가 외국어를 해독할 때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시각 언어의 해독도 역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학문의 영역과는 달리 예술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열린 마음이지요 ..  (14, 18쪽/구본창)

 

우리 집식구는 열흘쯤 앞서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을 떠나 충주 산골마을 살림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누구들처럼 돈이 있어 집 사고 땅 사고 하며 들어온 시골집은 아닙니다. 돈이며 집이며 땅이며 하나 없는 주제에 비어 있는 집자리 하나 얻어 살림살이를 옮겼습니다. 여러 날에 걸쳐 손바닥만 한 땅뙈기 돌을 고르고 비닐을 걷어내어 밭으로 일구었고, 이 밭에 처음으로 씨앗을 심어 기릅니다.

 

이러는 동안 제 사진찍기는 거의 멈추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담아 온 사진은 '헌책방'과 '인천골목길'인데, 이 두 가지하고 아주 동떨어진 곳에서 시골살림을 꾸리고 있으니까요.

 

새 삶터에서는 새 사진감을 찾아 새 사진을 찍어야 할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내 사진감을 놓거나 잊지 않은 채 틈틈이 찾아다니며 내 사진감을 함께 일굴 노릇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시골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좋으며 반가운 사진감을 하나 느껴 붙잡고, 지난날부터 꾸준히 이어온 사진감은 틈나는 대로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여태껏 나 스스로 걸어온 사진길이 얼마나 고왔거나 좋았거나 올바랐는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그동안 걸어온 사진길은 나 스스로 바라지 않았어도 '이 나라 이 땅에서는 자꾸 스러지거나 잊혀지거나 없어지는' 모습을 담는 길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제 사진감을 저 스스로 즐기고 있으면서도 '오늘 찍은 사진을 앞으로 두 번 다시 나를 비롯해 어느 누구도 찍을 수 없겠지' 하고 느꼈습니다. 따로 조바심을 내려 하지 않았으나, 찍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살펴보며 제대로 못 담은 사진이라고 느낄 때에는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과 '이렇게 찍으면 어떡하니'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사진감을 왜 자꾸 엉터리로 찍느냐고 스스로 다그치고 나무라면서 지냈습니다.

 

시골집 한 구석에서 밭일을 하다가 아이를 보다가 밥을 하다가 파리를 잡다가 빨래를 하다가 등허리를 두들기며 한동안 드러누웠다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나날이 길면서도 짧아, 사진찍기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그나마 시골집으로 온 뒤부터는 아이 사진조차 얼마 못 찍어 주고 있다고.

 

.. 그러나 몇 달 동안은 거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밤거리에서 방황하고 술집 종업원들과 사귀면서 이태원 분위기를 몸으로 익혔죠. 그러다가 한 업체와 연결되었고, 그곳을 중심으로 비로소 촬영이 시작됐습니다. 한 3년 찍었어요 … 처음 이태원에 들어갔을 때는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예를 든다면 서양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짬뽕 문화의 현장, 속 빈 여대생들이 영어라도 한 마디 배워 볼까 배회하는 곳 등. 그러나 몇 년을 이태원에 출입하고, 유흥가 종업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요. 그들도 평범한 인간들이었고, 도리어 기구한 삶들이 많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면서 고발성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우리들의 삶과 동격으로 놓고 담담히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스트레이트냐 메이킹이냐 하는 문제보다도 사진가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담기 위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요 ..  (28, 34쪽/김남진)

 

한숨을 돌리고 가만히 돌아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사진찍기를 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저부터 얼마 앞서까지 도시에서 도시사람으로서만 지냈습니다. 시골살림을 꾸리면서도 도시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 돌아보면, 사진쟁이뿐 아니라 그림쟁이도 매한가지요, 만화쟁이나 여느 글쟁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인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교사나 교수들 모두 도시사람일 뿐입니다. 전문직이라는 의사나 변호사나 정치꾼 모두 도시사람입니다. 사는 곳은 시골일지라도 도시사람다운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습니다.

 

새소리를 듣고 벌레소리와 바람소리를 느끼는 시골에서 조용히 곱씹습니다. 사진이라는 문화나 예술을 하자면 아무래도 도시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진이라는 문화나 예술을 즐길 사람은 모조리 도시에만 있으니, 사진쟁이 스스로 도시사람이어야 하고 도시 터전에 발맞추며 지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진잔치를 해도 도시에서 하고, 사진책이 나와도 도시에서 나오며, 사진을 누군가 사들인다 하여도 도시사람이 사들입니다.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사진잔치는 구경할 수 없습니다. 시골사람한테 팔려고 내놓는 사진책을 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시골사람이 사진 작품을 장만해서 당신 집이나 논가나 밭가에 세우거나 걸어 놓는 모습 또한 아직 못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 삶이란, 아니 오늘 우리 사진쟁이 삶이란 도시에 뿌리내리고 도시에 머물며 도시만 헤아리는 삶이로구나 싶습니다. 도시에서만 주고받을 사진이요 도시에서 태어나는 사진인 가운데 도시에서 자리매기는 사진이로구나 싶습니다. 삶과 넋과 열매 모두 온통 도시에 쏠려 있는 사진문화이고 사진예술입니다.

 

산이나 들이나 바다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 산사람이나 들사람이나 바다사람 눈높이와 삶결로 사진을 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안승일 님이 이룬 <굴피집>(1997) 하나쯤 있다고 할까요. 시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지내는 분들이 찍는 시골살림 사진조차 시골사람이나 시골마을을 '풍경'으로 바라보고 풍경으로 담습니다. 시골사람이나 시골마을을 '삶'으로 껴안으며 '사진'으로 빚어내는 모습은 아직 못 보고 있습니다. 산일이든 들일이든 바다일이든, 산과 들과 바다에서 하는 일을 담을 때에도 '풍경'에서 헤매거나, 뭔가 다르다면 그나마 '기록'이라는 테두리에 머물 뿐, '삶'이라는 자리를 찾아나서지 못합니다. 산사람은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헤아리거나, 들사람과 바다사람은 무엇을 어느 곳에서 어떠한 눈썰미로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오늘날 한국땅 사진쟁이들 사진이란 '만듦사진'뿐입니다. 일하는 골방에서 만드는 사진이든, 셈틀을 주무르면서 만드는 사진이든, 인화액과 인화지를 만지작거리며 만드는 사진이든 만듦사진입니다. 더욱이, 사진기 단추를 찰칵찰칵 누르며 담는 사진 또한 있는 그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만드는' 사진에 머물고 맙니다.

 

삶을 느끼지 못하고 풍경만 잡아채니까, 이 또한 '스냅'이나 '스트레이트'가 아닌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진쟁이 눈높이로 얼개와 이야기를 억지로 만드는' 사진이 되어 버립니다. 만듦 삶이고 만듦 넋이며 만듦 사진입니다.

 

 

 (2) '한국 사진작가'는 누구인가

 

사진찍기와 사진비평과 사진전시와 대학교수 일을 다 함께 한다는 최건수 님이 쓰고 엮은 책 <사진 그리고 삶>을 읽습니다. 이 책 <사진 그리고 삶>에는 한국 사진작가 스물다섯 사람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최건수 님이 사진쟁이 스물다섯 사람을 차례차례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통으로 실어 놓고 있습니다.

 

.. 요사이는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뭐랄까, 학연이나 인맥으로부터 자유가 결국 작업의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들어요 … 새로운 소재를 찾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소재들을 새롭게 접근하여 사진을 풀어 가는 것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새롭게 바라볼 때 사물은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  (57, 59쪽/민병헌)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글쓴이 최건수 님은 틀림없이 '한국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들 스물다섯 사람이 어떻게 '한국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가 궁금합니다. 한국에는 사진작가라 하는 사람이 이들 스물다섯밖에 없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사진작가' 스물다섯 사람을 드는 책을 내놓는다고 할 때에, 이들 스물다섯 사람이 맨 먼저 다루어져야 하는 까닭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건수 님은 2004년에 <사진 속으로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한국 사진작가 스물다섯 사람'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사진 그리고 삶>은 판이 끊어졌고, <사진 속으로의 여행>은 품절되었다고 하는데, 첫 번째 스물다섯 사진쟁이 이야기에서는 "구본창, 김남진, 김장섭, 민병헌, 이상일, 이정진, 이주용, 임양환, 조남붕, 최광호, 최병관, 황경희, 김대수, 김재경, 김석종, 김석중, 박용세, 신경철, 신미혜, 신현숙, 신혜경, 안승환, 정동석, 정주하, 한세준" 님을 다룹니다. 두 번째 스물다섯 사진쟁이 이야기에서는, "강상훈, 강용석, 고명근, 권순평, 김기찬, 김우영, 김정수, 박홍천, 배병우, 성남훈, 양성철, 오상조, 오형근, 우종일, 육명심, 이갑철, 이완교, 임영균, 전흥수, 정창기, 주명덕, 차용부, 한정식, 홍순태, 황규태" 님을 다룹니다.

 

사진쟁이 이름을 낱낱이 살펴보면 이들을 두고 '한국 사진쟁이'라 일컫는 일이 엉성하거나 잘못이라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모든 사진쟁이를 다룰 수 없고 모든 사진밭을 두루 살필 수 없으며 모든 사진삶을 펼쳐 보일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몇몇 분을 빼놓고는 사진을 만드는 분들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 하나 엮으려고 하는 분들은 몇 사람 다루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에 사진쟁이 온삶을 실어내는 사람은 쉰 꼭지에 이르는 만나보기 이야기 가운데 몇 되지 않습니다.

 

.. 대학의 사진과에 입학함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이미 예술가가 되어 버리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사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증거지요 … 결국 내가 찍은 사진이 내가 가지고 있는 자양분으로부터 나오지 못할 때, 한 사람의 올곧은 사진가가 아닌 모방꾼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 또 하나의 원인이라면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쉽게 예술가라는 탈을 뒤집어쓰기 위해서라도 메이킹으로 선회하죠 ..  (73쪽/이상일)

 

 

한국에서 사진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한국 사진작가'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말이나 '사진작가'라는 말은 더없이 부질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쟁이들 발자국을 더듬어 보면,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분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강단에 섰다 할지라도 사진쟁이는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을 찍은 손품에 따라 강사도 되고 교수도 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이룬 사진은 다른 이들보다 한결 돋보이거나 빼어나다 여길 수 있습니다. 주류라 하건 비주류라 하건 이들 '가르침이 + 찍새'인 분들이 숱한 '아마추어' 사진쟁이들한테 피와 살이 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면 이 책은 값있고 뜻있고 멋있다 할 만합니다.

 

..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미국에서 손꼽히는 사진쟁이)의 사진 속에 그들의 삶이 스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사진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깊이 있는 사진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삶의 즐거움입니다 ..  (106쪽/이주용)

 

만듦사진이라고 해서 사진을 모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을 한다고 해서 사진하고 동떨어진 길을 걷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만듦사진이든 삶사진이든 사진을 할 수 있으면 되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눌 수 있으면 됩니다.

 

최건수 님이 만나본 최광호 님 말씀마따나 '사진으로 재미있게 살' 수 있으면 되는 한편,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최건수 님 사진책에 실린 쉰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나마 두 갈래 가운데 하나에 드는 분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이 돈이나 이름을 바라며 사진을 찍지는 않을 터이나, 거의 모두 만듦사진을 하는 사람만 만나면서 사진하고 삶이 이어지는 고리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는지 잘 모겠습니다.

 

 

만듦사진 또한 똑같이 사진이요, 만듦사진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한테나 삶이 있으니 <사진 그리고 삶>이란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듦사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몇몇 '찍는 사진'을 하는 사람을 끼워넣는 일은 달가워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스물다섯 사람 + 스물다섯 사람을 몽땅 만듦사진을 하는 사람으로 채워서 '만듦사진에도 어김없이 삶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이야기가 있다'고 나아가면서 더욱 깊은 사진말을 들려줄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거나 나라밖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왔거나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하거나 사진을 가르치는 이들만 '사진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식구들 사진을 찍는 사람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입니다. <윤미네 집>을 일군 전몽각 님 또한 '사진을 하는' 사람입니다. <골목 안 풍경>을 이룬 김기찬 님은 돌아가시는 날까지 사진밭에서는 '당신은 아마추어요'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 여느 사람들이 복닥거리며 어우러지는 삶을 찍는 사진을 즐기는 사진쟁이가 얼마 없기는 합니다만, 다른 누구도 아닌 사진작가이면서 사진비평가이고 사진전시자인 가운데 대학교수이기까지 한 최건수 님이라 한다면, 당신만 한 자리에서 써 내려갈 <사진 그리고 삶>이란 이러한 높낮이에서 그칠 책이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참말로 사진은 무엇이며 삶은 또 무엇인가를 파헤치면서 건드리는 책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사진쟁이들한테서 당신들한테 사진과 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뿐 아니라 최건수 님 스스로 생각하는 사진과 삶을 또렷이 밝히며 더욱 깊고 너른 이야기를 나누어 <사진 그리고 삶>에 담아야 할 노릇이 아니냐 싶습니다.

 

.. 미국에서는 사진으로 재미있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진이 다양한 것은 사진을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 사진은 무엇을 주장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진을 가지고 즐기지도 못합니다. 어정쩡하게 서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곁눈질하면서 사진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 사진의 특성은 이미지 전달이지요. 기계적 특성에 너무 매달리면 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 사진은 보편적 아름다움이나 결정적 순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느낀 것을 토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일상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장비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진가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죠 ..  (157, 164쪽/최광호)

 

 

아쉬우나마, 숱한 사진쟁이들은 사진하는 마음과 살아가는 마음을 이 도톰한 책에 알뜰히 펼쳐 보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쉽게도 최건수 님은 이 대목에서 더 깊고 그윽한 대목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자기가 느낀 것을 토해 내는" 사진이라 한다면, "무엇을 느끼셔서 무엇을 담았습니까?" 하고 물을 줄 알아야 하고, "느낀 그 무엇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하고 다시금 물을 줄 알아야 하며, "사진으로서 그 무엇을 느끼는 일이란 또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고 거듭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일상 속에 있는 자기가 느낀 것을 보려면 어떻게 살며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같은 물음을 잇는다든지, 이 물음을 사진쟁이들이 하기 앞서 최건수 님 스스로 "아, 그래요. 사진이란 이러구저러구이며 삶이란 이바구저바구로군요." 하는 사진말을 길어내야지 싶습니다.

 

..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되겠습니다만, 일본의 어린 유치원생들은 해를 그릴 때도 모두 빨간색으로 그리도록 교육받지 않습니다. 파란 해를 그린 아이도 있고, 검정 해를 그린 아이들도 있죠. 선생님들은 그 부분을 인정하고 북돋아 주지요. 이렇게 열린 사고로 훈련받은 아이들은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요 ..  (122쪽/임영환)

 

어제 집에서 아이랑 애 엄마랑 영화 〈로빙화〉를 또 한 번 보았습니다. 어제는 "아명, 왜 해를 파랗게 칠하지?" "해가 너무 뜨거우면 아빠가 일하시기 힘드니까요."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목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마침 요 며칠 동안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텃밭에서 돌 고르기를 한 탓인지 모릅니다. 해를 발갛게 그릴 수 있으나 노랗게 그릴 수 있고, 또 파랗게 그리거나 까맣게 그릴 수 있습니다. 하얗게 그린다거나 잇빛으로 그릴 수 있겠지요. 푸르게 그리거나 하늘빛에 녹아들도록 그릴 수 있습니다. 어느 때이든 해를 그리는 사람 마음이 깃들어 있다면 제 마음 가는 대로 그릴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오늘 우리 누리에서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새삼스레 곱씹습니다. '찍는' 사진이 되든 '만드는' 사진이 되든, 오늘 이 땅 이 나라 사진쟁이라 하는 분들은 참으로 당신들 나름대로 당신 삶으로 받아들이는 무엇인가를 느끼면서 사진기를 쥐고 사진작가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사진작품을 선보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이나 잘 팔리는 사진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에 얽매인 채, 정작 '내 사진 즐기기'하고는 그예 멀어지거나 등을 돌리고 있지 않느냐 걱정스럽습니다. 사진을 말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분들을 바라보면서도 이러한 걱정은 이어집니다. 참말 '좋은 사진을 좋게 즐기는 마음을 담는 사진읽기'를 펼치고 있으신지, 강단에 선 지식인으로서 '말 만들기'를 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사진찍기도 즐기는 일이요, 사진읽기도 즐기는 일입니다. 즐길 수 없다면 사진찍기가 아니고 사진읽기가 아닙니다. 아니, 즐기지 못한다면 삶이 아닙니다. 즐기지 못하면서 사진삶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사진 그리고 삶

최건수, 시공사(1999)


태그:#사진책, #사진읽기, #사진찍기, #삶읽기,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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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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