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왜구의 침탈에 맞서 스님들이 일어난 이후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역사적인 일이다."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 촉구를 위한 생명평화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만난 한 불교환경단체 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5000명에 가까운 스님들의 '생명평화선언'을 임진왜란 때 '이판(理判)은 가부좌를 풀고 사판(事判)은 붓과 호미를 던지고 총궐기하라'는 서산대사의 말과 비교하며 "소신공양하신 문수스님의 뜻이 결국 '이판사판'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판사판'은 현대에서는 '궁지에 몰려 뾰족한 수가 없을 때'를 비유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본뜻은 조선시대 수행만을 하는 '이판승'과 일을 하는 '사판승', 두 부류의 스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발표된 '생명평화선언'에는 현대판 '이판승'과 '사판승' 4812명의 스님들이 동참했다. 조계종 승려 13000명 중 3/1 이상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한국 불교 현대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시국선언이다.

선언에는 조계종의 입법기구인 중앙종회의원 81명이 전원 동참했고 직할교구 소속의 928명을 비롯해 제12교구(본사 해인사) 437명, 제15교구(본사 통도사) 405명 등 전국 23개 교구 소속의 스님들이 참여했다.

이번 선언은 지난 5월 중앙종회와 참선수행만을 하는 '전국선원수좌회'가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불교계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과 지방선거 패배에도 4대강 사업 강행 의지를 보인 정부의 태도가 불교계의 4대강 사업 반대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언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조계종 총무원의 입장을 정하기 위해 구성된 '화쟁위원회'의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조계종 승려 4,812인 "4대강 사업 중단하라!"
ⓒ 박정호

관련영상보기


"이명박 정부, 재보선에서 또 혼난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자회견은 문수스님의 영정이 내려 보고 있는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진행됐다. 불교계 대표자들은 문수스님의 추모분향소를 등지고 자리에 앉았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전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과 조계종 현 교육원장 현응 스님, 직지사 주지 성웅 스님,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 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 퇴휴 스님을 비롯해 중앙종회의원 등 불교계를 사실상 대표하는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청화 스님은 기자회견을 여는 말에서 "지난달 23일 이 자리에서 조계종 승려 3300명이 선언을 하겠다고 했는데, 5000에 가까운 스님들이 함께 했다"라며 "이번 선언이 이명박 정부에 큰 반항을 일으켜 4대강 사업이 폐기되고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친 재벌 정책이 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전환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법타 스님은 "이명박 정부가 지방선거의 민심을 천심으로 알고 따랐다면 조계종 승려(전체 약 1만3천 명) 절반에 달하는 스님들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번 재보선 선거에서도 또 한 번 혼이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어 발표한 '생명평화선언문'을 통해 "지금이라도 생명파괴를 염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4대강 중 특정 구간 한 곳을 시범적으로 지정해 사업을 집행하고 영향을 면밀히 평가한 후 확산 여부를 결정하자는 국민 다수의 요구를, 최소한의 합리적 대안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문수스님 소신공양의 보살행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생명평화의 전기가 마련될 때까지 쉼 없이 정진해 갈 것"이라며 "현재의 4대강 개발을 비롯한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정책을 근절하기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해 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대통령 자문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장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인도지원위원회가 주최한 4대강 사업 찬성 기자회견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종교인도지원위원회는 이 자리에서 "정부의 4대 강 공사는 돌이킬 수 없는 공정을 보이고 있어 계획대로 진행하면서 환경을 잘 보호할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4대강 사업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는 '문수스님소신공양추모위원회' 공동위원장이며 총무원 총무부장인 영담 스님과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생명평화선언'에 참여한 서울 한강선원장 지관 스님은 "일부 스님이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단연코 조계종에 대다수의 스님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들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열린 문수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를 위한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기자회견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 선언문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불과 바람은 나의 본체이다" -법망경-

-강은 생명입니다. 무분별한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명살림의 근본으로 귀명하도록 부처님 전에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살라 모든 강의 생명들을 구하고자 했던, 한 젊은 수행자의 처연한 희생 앞에 섰습니다.

문수스님! "화엄의 주중무진법계의 세계는 만생명이 인드라망 구조의 한 존재로서, 인간 또한 대자연의 일원"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스님의 소신공양은 뭇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몸을 던져 그 생명들을 위로하고 살리고자 했던 대자비심의 발로였음을 우리는 압니다.

향유를 끼얹고 몸을 스스로 태워 온 우주를 비추었던 희견보살의 소신공양이 그러하였을 것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전생에 자기 육신을 던져 다른 생명을 구하였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보살행이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찢어지고 할퀴어져 속살을 드러낸 채 아우성치는 강의 신음에 스님이 그토록 아파하는 동안, 우리는 부끄럽게도 귀머거리와 장님이었습니다. 이토록 참혹하게 생명의 강이 파헤쳐지는지 몰랐고, 이 시대의 환경보살들이 얼마나 외롭게 분투하고 있는지도 외면하였습니다.

문수스님, 고요하고도 자비로운 당신의 항거 앞에서 이제야 참회합니다.

인간의 삶이 얼마나 자연에 깊이 의존하는지를 모르고, 다른 생명을 가벼이 여겼던 우리 안의 무지를 참회합니다. 자연을 오직 수탈의 대상으로만 삼는 무분별한 개발 행위를 방치, 동조해 온 우리 안의 무관심을 참회합니다. 무지한 국가지도자들에게 생명과 평화의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심어주지 못한 우리의 무능력을 머리 숙여 참회합니다.

우리 불교도들은 이제 우리 안의 무지와 무관심, 무능력부터 떨치고 일어서려 합니다. 생명과 평화를 살리는 대장정에 망설임 없이 나서, 우리 어깨에 죽비를 내려친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 화답하고자 합니다. 사람과 사람 아닌 모든 존재들은 평화롭게 공존할 권리가 있음을, 그 권리를 파괴하고 짓밟는 모든 행위에 대해 당당하고 단호하게 맞설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려 합니다. 우리는 금일부터 생명과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4대강을 위해, 가난한 이웃들의 삶을 돌보는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 자비무적의 정신으로 나설 것입니다.

국민들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동안 무지로 인해 저질러졌던 환경 파괴로 인해 인간의 건강에서부터 기후, 경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파괴될 위험에 처한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전 인류가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구태의연한 대규모 환경파괴행위들이 전국토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뀌었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인류와 지구에 대한 보편적 책임은 그만큼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우리 강과 강의 생명들을 이토록 무참히 짓밟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선진화 되고 세계화 될 수 있겠습니까? 편협한 이기심, 개발이익에 대한 욕망으로 우리의 문화유산과 정신을 묻어가면서 어떻게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께 호소합니다.
한 수행자가 포클레인에 신음하는 생명의 목소리를 아파하며 목숨을 던졌습니다. 제 목숨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많은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생명파괴를 염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4대강 중 특정구간 한 곳을 시범적으로 지정하여 사업을 집행하고 그 영향을 면밀히 평가한 후 확산여부를 결정하자는 국민 다수의 요구를, 최소한의 합리적 대안으로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문수스님의 유지를 깊이 새겨, 4대강에서 반생명적 파괴행위가 중단되고,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 평화가 올 때까지, 불퇴전의 자세로 정진해 나갈 것임을 시방세계에 고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육신을 던져 모든 생명을 구하고자 한 문수스님 소신공양의 보살행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생명평화의 전기가 마련될 때까지 쉼 없이 정진해 갈 것이다.

- 우리는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4대강 개발 방식을 즉각 중단하고, 특정구간 1곳을 시범적으로 지정하여 사업의 타당성을 판단해보자는 합리적인 대안을 이명박 정부가 즉각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현재의 4대강 개발을 비롯한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개발정책의 근절을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해 갈 것이다.

불기2554(2010)년 7월 8일
문수 스님 추모와 4대강 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4812인 생명평화선언 동참자 일동


태그:#4대강, #조계종, #이명박, #수경스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