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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국회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을 입법 추진하고 있다. 건강생활습관으로 인한 질병 발생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어 질병에 걸리기 전에 해로운 건강생활습관을 교정하도록 도와주는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은 이러한 건강관리의 중요성과 효과를 오히려 약화시킬 우려가 높아 입법 추진이 중지되거나 혹은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관리는 질병이 없거나 질병이 있더라도 자각증상이 없는 사람들이 질병의 발생 혹은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 요인(생활습관, 환경 등)을 개선하고 관리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이미 병이 생긴 다음의 치료가 아닌 병이 생기기 전 건강관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뿐 아니라 인권적인 측면에서도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질병발생 원인에 대한 보건통계를 활용한 예측능력이 발달하여 건강관리서비스의 과학적 근거가 강화되고 있어 더욱 체계적 건강관리가 가능해지고 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건강관리

헬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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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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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처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건강관리서비스는 기존 보건의료 제공체계에서 원활하게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건강관리 보다는 질병치료에 급급한 실정이어서 운동실천, 흡연, 식사조절 등 충분한 건강관리 상담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예방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보건소는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시설과 인력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어서 지역마다 짜임새 있는 지역주민 건강관리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이미 법도 만들어져 있다. 지역보건법, 건강증진법, 보건의료기본법,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법들의 취지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평생건강관리를 수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초라하다. 일반 시민들은 보건소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인프라 기반이 취약하고 농촌에는 보건기관이 많지만 대부분 진료업무에 급급하고 있어 이러한 건강관리 기능에는 충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법안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며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건강관리서비스 법안에서는 "인구고령화에 따른 질병구조의 변화와 국민의 건강증진 욕구 증가로 인해 질병의 사전예방 및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으나,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서비스 공급자나 서비스 시장은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제안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서비스가 활성화 되도록 산업으로서 건강관리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법률적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과 무분별한 건강관리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통제장치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법안에서 문제는 건강관리서비스를 산업으로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가지는 부작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 건강관리서비스가 산업화하게 되면 나타날 문제점을 종합해서 기술하는 한편, 건강관리의 특성을 분석하면서 산업화를 하게 될 경우 발생할 문제점을 분석하는 식으로 글을 전개하겠다.

건강관리서비스 상업화, 얼마나 알고 있나

건강관리서비스를 상업화 한다는 것의 의미는 금연상담, 운동지도, 영양지도 등의 내용을 시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즉, 고혈압이 있어 집 앞 의원에서 혈압약을 투약 받고 있는 A씨가 잘 조절되지 않는 혈압 때문에 의사의 처방에 의해 근처 영양사에게 어떻게 짜게 먹지 않아야 하는지 상담받고 구체적인 조리 및 섭식 방법에 대한 지도를 받으면 의사와 영양사에게 돈을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어떤 서비스를 받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문제는 이 서비스가 건강관리서비스라고 하는 것이다.

건강관리서비스가 상업화 되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현재 한국의 전체 의료비 가운데 환자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분율을 살펴봐야 한다. 2009년에 발표된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2007년 현재 전체 의료비 가운데 약 35.7%를 본인 직접 경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전체 OECD 국가들 평균인 18.7%에 비해 약 2배 가량 높은 수치이다. 또한 이들 국가들 가운데 멕시코와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3위에 올라 있는 실정이다(Health at a Glance, OECD, 2009).

또한 전체 소득대비 개인직접 의료비 지출 비율도 스위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4위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높다(Health at a Glance, OECD, 2005). 이는 이미 한국의 보건의료가 상업화 경향을 띠고 있어서 시장에서 개인이 직접 지출해야 하는 비중이 높아졌음을 시사하는 것인데 따라서 건강관리 서비스마저 상업화하게 되면 여기에 더해 환자의 본인직접 본인 부담비용이 훨씬 높아지게 된다.

건강이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고 따라서 이를 매매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교과서적인 주장은 뒤로 하더라도 건강관리서비스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순간부터 보건의료의 상업화 경향 즉,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모여 사는 곳에 공급이 집중되고 더욱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한편 그렇지 못한 지역과 사람에게는 공급도 희소해지고 낙후하게 되는 경향 즉, 의료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또한 건강관리서비스의 상업화가 가지는 큰 문제점은 이를 이용하는 비용의 증감 혹은 소비자의 소득 증감에 따라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이 예민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는 응급의료서비스와 대비되는 것으로 환자나 주민 스스로 당장 증상이 없기 때문에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에 대해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않고 소득이 줄거나 비용이 늘어나게 되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바로 이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이 된다. 사실 운동을 한다거나 담배를 끊는다거나 살을 빼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을 때가 편하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헬스클럽에 등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중간에 그만 두는지만 파악해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특히 건강관리서비스는 응급의료이용처럼 일회 이용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지속적인 관리와 사후 모니터링이 중요한데 현재 제안된 건강관리서비스법안에는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에 따른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보조하지 않고 순전히 본인 부담으로만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건강관리서비스의 지속적 이용에도 당연히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제안된 건강관리서비스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건강취약계층 및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건강관리서비스 이용을 지원하는 바우처를 발급할 수 있고 이 부분은 정부의 예산투자로 해결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바우처 제도가 가진 사각지대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소득이 없음에도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등 문제 포함) 건강취약계층 및 저소득계층의 건강생활습관 문제는 사회복지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심리적으로 자기 효능감이 낮아 해결하기가 더 복잡하다.

따라서 바우처를 통한 민간건강관리서비스 제공기관의 단순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만으로는 그들의 건강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복지혜택 및 기타 사회적 공공서비스의 입체적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 바우처 제도는 허점이 많은 제도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만약 건강관리서비스의 상업화로 민간차원의 건강관리서비스 기관이 활성화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서비스 제공영역이 비슷한 보건소 등 공공보건의료기관의 건강관리서비스 및 보건사업을 질이 낮은 건강관리서비스로 인식하게 되어 주민의 보건기관 이용률도 낮아지게 되고 보건소 인력과 장비 등을 확충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보건기관 중심으로 지역사회 주민 건강부터 챙겨야

다음은 건강관리가 가지는 특성을 중심으로 이의 상업화가 가지는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두에 밝혔듯이 건강관리는 예방을 위주로 하는 개념이고 따라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의 건강위험요소를 개선 및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전염병 관리를 위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같이 사회적 캠페인과 대중적 보건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일반 대중에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나 믿음으로 과학적 건강관리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이들에 대한 건강관리는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복잡하고 특화된 전문성을 갖기 보다는 이미 대중적으로 그 필요성이 지식으로는 알려져 있으나 생활 문화나 습관으로 일반화 되지 못한 문제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 전문성이 필요하다.

한편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에게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환자나 지역사회의 건강한 사람이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위험요소(즉, 흡연이나 운동부족 등)는 지역사회 공통의 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사회에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고 주민의 친구이자 공복으로 녹아들어가 다양한 건강위험요소의 문제점을 주민의 언어와 눈높이로 알려주고 그들 스스로 이러한 건강위험요소 개선에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이러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여 주민의 건강대변인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으로 상업성을 전제로 하는 사적 이익기관은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도 보건소, 보건지소, 학교보건실, 산업보건센터 등이 부족한 여건에서나마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건강증진사업이 활성화 되면서 보건소는 영양사, 운동처방사, 금연상담사, 정신보건담당자 등 현대인의 건강관리에 필수적인 전문인력을 채용하여 체계적인 주민 건강관리를 지원해오고 있다.

또한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건강관리를 위해 보건기관, 학교, 산업장에서 지역사회 건강관리를 담당할 시설과 인력의 확충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지역사회 보건기관 인프라가 성과적으로 확충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인식 및 예산 부족, 중앙정부의 총액인건비제 확충과 건강관리 지침 개발 및 사업비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 부족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이러한 보건기관 기능 활성화와 인프라 확충을 위해 필요성 홍보, 인력 교육, 관련 예산 확보 등에 대해 국가적인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지역사회 건강관리 조직 외에도 병의원 등 의료기관의 건강관리 활성화도 중요하다. 건강관리는 질병관리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개념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건강을 관리하다 보면 의학적 자문 및 검사가 필요한 사항이 종종 발생하게 되고 이때는 의료기관과 밀접히 연계가 필요하다. 또한 의료기관에서 질병을 관리하다 보면 건강생활습관 등 건강위험요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할 필요가 나타나고 이를 위해 지역사회 보건기관과 긴밀히 연계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의료기관의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에서 만성질환관리료 수가 항목을 두어 의료기관의 건강관리를 권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효과 판정 및 서비스의 질과 수가의 적절성 등에 관한 체계적인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주민에 대한 만성질환관리 참여 홍보와 실제 관리대상 만성질환자들의 관리 성과와 연계된 추가적 인센티브 방안이 개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정설희 등,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09).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보건기관과 의료기관이 서로 협력 연계하면서 주민 건강관리를 위해 나설 수 있도록 보건기관을 통한 시범사업 시행 및 확산과 관련 정책에 대한 예산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상업적 이해관계에 의해 건강관리의 본래 취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은 시장에서의 건강관리서비스산업 활성화에 앞장설 것이 아니라 먼저 보건기관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직접 건강관리 업무에 나서야 한다. 또한 기존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건강관리서비스가 진료서비스의 일부로 정착되도록 진료서비스 표준을 정립하고 이에 따라 적정 진료비 수가를 편성하여 의료기관의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을 활성화 하는 것도 함께 노력해야한다.

심각한 고령화 현상을 앞두고 국민의 질병부담과 향후 의료비로 지불하게 될 비용이 심각하게 증가할 것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이러한 일들이 정부가 진짜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덧붙이는 글 | 나백주 교수는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입니다.



태그:#건강관리서비스, #의료민영화, #지역사회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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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초빙교수입니다. 공공의료 현안 및 정책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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