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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서 사온 짠지를 채썰어 차가운 생수에 채웠다.
▲ 짠지채 시장에서 사온 짠지를 채썰어 차가운 생수에 채웠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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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는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려요.
어제가 19일이라 장날이었지요.
아는 분과 점심으로 순대국을 먹으려고 공설시장엘 갔더니
오일장이 열려서 시장 안이 북적북적 했어요.

좁은 통로의 가운데로 오일장의 상징인 할머니 좌판이 나래비 줄을 이어 있었는데,
쭈그렁 할머니들이 한 결 같이 등을 굽히고 쭈그려 앉은 채로 자기 앞에 놓인 고구마 줄기를 까거나 호박잎 줄기를 까고 있었어요.
가끔 쪽파를 까거나 마늘을 까는 할머니들도 있었지요.

할머니들의 한결같은 동작은 다소 코믹했지만 한편으론 엄숙함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가장 낮은 자세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등 구부린 자는 성자의 모습과 닮은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다만 팔기 좋게, 혹은 사기 좋게 하려고 하는 행위 이상의 어떤 영성을 느꼈단 거죠.
순대국밥에 곁들여 대낮부터 걸친 막걸리 몇 잔에 약간 알딸딸해진 기분이 정서 과잉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지만 말예요.

그 성스러운 좁은 구역을 통과해 나오며 구경만 하던 내 발목을 단번에 잡아 세운 게 있었어요. 바로 '짠지'였어요.

김장 때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동치미 말고도 짠지를 담곤 하잖아요. 짧고 통통한 조선무를 항아리에 가득 담고 굵은 왕소금을 잔뜩 뿌려 몇 달간 숙성시키면 특유의 무맛과 무의 향에 소금 간이 배면서 어우러진 절묘한 짠맛과 향을 잔뜩 품은 아주 훌륭한 먹을거리로 완성되지요.

겨우내 항아리를 꽁꽁 싸매놓았다가 이듬 해 정월 지나고 봄에 김장김치가 군둥내가 나고 질릴 때가 되면 드디어 짠지 독 열 때가 되는 거예요.

나박나박 썰어서 찬물에 채워 파 송송 고춧가루 슬쩍 뿌려 물김치처럼 먹기도 하고 채 썰어 꼭 짜서 들기름이랑 고춧가루랑 마늘이랑 갖은 양념해서 무쳐 먹기도 하지요.

학교 다닐 때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이 짠지무침이 대표적 도시락 반찬이었어요. '짠지 무친 거'싸서 오는 애들이 한 반에 절반 이상이면 그게 봄 학기의 시작이었던 거예요.

어떤 애네 거는 아주 그냥 소태처럼 짜고 어떤 애네 거는 시크무레하고 어떤 애네 거는 밝은 주홍빛에 깨소금이 알알이 섞여 있어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같은 짠지무침인데도 백인백색으로 다 달랐어요.

어머니는 전문요리사이셨기 때문에 모든 요리를 다 잘 하셨지만 봄에 도시락 찬으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짠지무침은 더욱 맛이 좋았어요. 양념을 아끼느라 들기름이며 깨소금 같은 귀한 양념이 별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맛만 좋기만 했어요. 짠지무침을 싸갖고 간 날은 점심시간이 더 기다려질 만큼 맛이 있었어요.

그렇게나 좋아하는 짠지를 겨울철 '김장때면 짠지도 한 항아리 꼭 담는' 살림을 주체적으로 해오고 있지 못 한 터라 요 근래에 좀체 먹을 기회가 없어서 아쉽던 차에 남원 오일장에서 우연히 쭈그렁 시골할머니가 갖고 나온 짠지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어요. 돌아가신 엄마를 만난 듯 반가웠어요.

할머니의 찌그러진 양푼 속에 할머니처럼 까맣고 쪼글쪼글한 짠지가 달랑 두 개 남아 있었어요. 사실 윗녘 지방은 김장 때 담은 짠지가 벌써 다 먹고 없어졌을 시기인데 이 지역은 이렇게 더운 여름까지 두고 먹는가 봐요.

짠지가 맛의 절정일 때 색깔은 치자 물들인 것처럼 노란빛에 가까운 데 담은 지도 오래 된 데다 반나절 이상 공기에 노출돼 있던 터라 색이 시커멓게 죽고 군내도 많이 날 것 같이 보였지만 천오백 원을 드리고 떨이로 두 개를 다 샀어요.

별 기대는 접은 채로 샀어요.
맛이 없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샀어요.
유기농 무인지 아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어요.
짠지니까 무조건 샀어요.
아마 하나에 천오백 원씩이라고 했어도 군말하지 않고 샀을 거예요.

사무실에 돌아와 짠지 산 얘기를 하니 동료 하나가 자기도 짠지 아주 좋아 한다기에 그이에게 하나를 선뜻 나누어 주었어요.

아침에 냉동고에 넣어둔 마지막 닭죽을 꺼내 데우는 동안 냉장실에 넣었던 짠지도 함께 꺼내 채를 썰 때 기분이 좋았어요.

물에 헹궈 짠맛을 덜어내고 꼭 짜, 다시 차가운 생수를 채우고는 잔파도 송송 썰어 넣고 고춧가루도 설렁 뿌려 넣었어요.

닭죽과 함께 먹는 짠지 채는 환상이었어요.
고향에서 먹던 짠지맛과는 많이 달랐지만 분명 가득한 어떤 강한 기운이 느껴졌어요.

그건 아마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소금기 가득 절여져 결코 썩지 않으며 방부 처리되어 온, 우리나라 우리겨레 질긴 삶의 정신 같은, 삶의 원형 같은, 그런 맛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요.
떨이로 천오백 원을 드리고 짠지를 받아온 시장의 쭈그렁 할머니도 생각나고,
하루 종일 손톱 끝이 까맣게 물들도록 고구마줄기와 호박잎 줄기를 까는 다른 할머니들도 생각나고, 도시락 반찬으로 짠지를 맛있게 무쳐주시던 우리 어머니도 생각나고,

그래서
밥을 먹다가 그만 울고 말았어요.

짠지의 맛이 더욱 짰어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과 네이버의 카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짠지,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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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미디어 컨텐츠의 창작에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 몇 군데 사회단체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태며 어울리며 나누며 살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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