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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있다면 그걸로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초등생 아이들까지 개인용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세태이다 보니 공중(公衆) 아닌 공중(空衆)시설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가로수와 나란히 인도 가장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공중전화(公衆電話)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군요.

공중전화기에 100원을 넣으면 3분짜리 시내통화 한 통화 하고도 30원이 남지요. 물론 낙전이 되어 거슬러 받지는 못하지만 말이죠. 아, 할인점 같은 데 가서 쇼핑카트를 이용할 때도 백 원짜리 동전이 필요하겠군요. 그리고 또 뭘 할 수 있을까.

얼른 뾰족하게 떠오르는 게 없는 걸 보니 아마 1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100원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해 봅니다. 1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없다면, 혹은 필요한 돈에서 100원이 모자란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생각하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없어서 하기 어려운 일은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가게에서 물건 값을 치를 때나, 은행에서 공과금을 낼 때, 자판기에서 커피나 음료수를 뽑아 먹을 때 등등. 하필 100원이 모자라서 곤란한 경우가 적잖이 있겠지요. 그래도 1000원, 만 원이 모자라는 때보다야 고깟 100원이 모자란 게 대체로 덜 곤란하려니 싶어요.

껌 한 통, 사탕 하나 살 수도 없는 매우 적은 가치를 지닌 100원. 그 동전 하나 모자란 것쯤, 그래도 내미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애교로 봐주고 넘어가는 게, 아무리 세상인심이 박하다고는 하나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길을 가다가 땅바닥에 100원짜리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줍긴커녕 발로 차버리거나 피해 가는 지경이니 더 일러 무엇 하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요, 오산이었음을 깨달았어요. 무게 5그램이 겨우 넘는 매우 가볍고 있으나 마나한, 대수롭지도 않은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천근, 만근의 심리학적 무게를 담아 단단한 바위덩이로 둔갑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떡하니 가로놓인다는 걸 알았습니다.

출근해야 하는데, 100원이 모자라네?

친구가 출근해야 하는데, 지갑을 두고와 딱 100원이 모자랐다.
 친구가 출근해야 하는데, 지갑을 두고와 딱 100원이 모자랐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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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인 지리산 자락 어느 면에 살고 있는 친구가 볼일이 있어 우리 고장에 왔습니다. 그 친구가 돌아가는 길에 배웅을 해려고 버스터미널까지 동행했다가 겪은 일입니다.

친구와 난 여름 휴가 동안 지리산초록배움터라는 곳에서 대안학교인 마리학교와 백일학교로 유명한 사회적기업 '밝은마을'이 주관한 5박6일의 명상수련캠프에 참여했습니다. 캠프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부터 친구는 귀가 겸 출근 준비를 하는 등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할 채비를 했습니다.

명상을 지도하신 선생님이 마음이 바쁜 친구를 위해 터미널까지 자동차로 태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친구 배웅도 할 겸 저도 덩달아 자동차에 동승해서 터미널까지 따라갔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마침 친구가 타야 할 버스가 출발시간 약 5분 가량을 남겨두고 승강장에 대기하고 있었어요. 6일간, 도반(道伴)이 되어 열심히 마음공부에 임했던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빈 손으로 급히 나간 터라 가진 돈이 없어서 차표 한 장 못 끊어주고는, 친구에게 어서 표를 끊으라고 재촉했습니다. 승강장의 버스가 시동을 거는 기색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가방을 열어 지갑을 찾던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서 있는 주머니, 없는 주머니 전부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안색이 급격히 굳은 친구는 당황스러워하며 "지갑을 흘리고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방이며 주머니를 여전히 이리저리 헤집더군요. 

나도 따라서 반사적으로 입은 옷의 주머니를 다 뒤져보았지만 천 원짜리 지폐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쪽 바지주머니에서 달랑거리던 동전 몇 개만 겨우 나왔습니다. 대합실 바깥 도로가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던 선생님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얼른 뛰어가 말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어요. 선생님도 지갑을 갖고 오지 않았다며 역시 자동차에 굴러다니던 동전 몇 개를 긁어모아 건네주실 뿐이었어요.

내가 갖고 있던 동전과 합해 다시 대합실에 와보니 승강장의 버스는 이미 출입문을 닫고 막 출발하려 하고 있었어요. 친구는 부지런히 손을 놀린 끝에 용케도 어느 구석에서 찾아냈는지 동전을 한 줌 움켜쥐고는 버스와 자기 손을 번갈아 쳐다보며 울 듯한 얼굴로 서 있더군요.

세 사람이 긁어 모은 동전을 모두 합해 보니 요금에서 딱 100원이 모자랐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낯선 이들뿐이라서 낮춘 눈길로 허둥지둥 바닥을 쓸어보았지만 어디에도 100원짜리 동전은 떨어져 있질 않았어요. 

"요금을 깎아달라는 게 아니고, 그냥 달라고요"

이사 온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평소 터미널 안의 매점 주인이나 빵집 점원, 청소하는 아주머니 한 분 친하게 사귀어놓지 못한 사실이 후회스럽기조차 했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두운 낯빛으로 갑자기 다가와 돈을 빌려 달란다고 가정해 보세요. 슬금슬금 멀찌감치 떨어져 나갈 게 틀림없는데다, 정신이 제대로 박혔느냐고 험한 욕이나 안 먹으면 본전인 셈이죠.

누가 인심 좋게 생겼는지 관상을 보듯 대합실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동안, 태워야 할 승객을 싣지 않은 사실도 모르는 멍청한 버스는 무심히 떠나고 말았지요. 허나 다음 차편까지 배차간격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약간 지각이야 하겠지만 다음 차라도 태워 보내야겠기에 버스요금에서 100원이 모자라는 돈을 뺏어들고는 무조건 매표소로 돌진했지요.

커다란 유리벽에 어른 주먹 하나 드나들 만큼만 구멍을 뚫어놓은 2개의 매표구를 젊은 여직원 둘이 꿰차고 앉아있었어요. 한 끝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사무적이며 무표정하며 비정해보이기까지 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에요.

그 중 한 앞에 동전더미를 쏟아놓고는 창구의 높이에 나의 눈높이를 맞추느라 머리를 조아리고서 젊은 여직원이 사태를 빨리 이해하도록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고 믿었는데, 유리벽 너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약간 각도가 어긋난 것이었어요.

"이 돈은 우리 개인 돈이 아니라서 빼 줄 수도 없고 모자라서도 안 돼요."
"글쎄, 아는데 요금을 깎아달라는 게 아니고 100원만 달라고요."
"네엣?"
"그러니깐 언니 돈 있잖아요? 언니 돈에서 100원만 도와달라고요."
"허 참, 뭐라구요?"
"이렇게 곤란하고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어려운 사람 사정 좀 봐 달라고요."

1000원이었으면 나도 이렇게 뻔뻔스럽게 창구 직원에게 막무가내로 네 돈이라도 보태 달라 말하기 망설였을지도 몰라요. 까짓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보태달라는 건데요, 뭐. 잘 넘어갈 줄 알았죠. 인상이 험악하게 변한 직원이 그제서야 마지못해 엉거주춤 일어서더니 뒤쪽 옷걸이에 걸린 자기 가방을 열고는 건성으로 두어 번 손을 헤집더니 돌아와 한다는 말이,

"저 제가 지금 오십 원 밖에 없어서요."
"그럼요, 아무렴요. 그렇고 말고요. 50원 밖에 없을 수도 있지요."

잘 알겠다고 말하고는 얼른 동전더미를 쓸어 모아서 다른 한 쪽 창구 직원에게 다가가 건네고 똑같은 설명을 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순간 유리벽 안쪽 두 여직원 사이의 허공에서 그녀들이 쏜 송곳 같은 눈초리가 서로 부딪치더니 쨍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이 '비상식적이고도 비현실적이며 성가신 일'에 연루된 것이 마치 상대의 잘못인양, 잠시 동안이나마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직원들을 보니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쁘신 시간에 정말 미안합니다. 내가 이 근처 살아요. 100원을 빌려주시면 다음에 꼭 갖다 드릴게요. 부탁입니다."

그제서야 그 중 경력이 오래인 것 같은 직원이 허락의 뜻을 보이더군요. 그냥 자기가 표를 끊어주면 될 것을 옆 창구로 가서 표를 끊으라고 하면서요.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아무튼 100원이 모자란 요금을 내고도 매표소 직원 분들의 배려로 마침내 차표 한 장을 건네받아 친구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100원이 없어서(모자라서) 집에도 못 가고, 출근도 못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거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100원의 무게

이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직원분들이 그깟 100원이 아까워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나와 타인을 엄격히 가르는 분별심, 타인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무관심, 남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도록 길들여진 현대인의 폐쇄성, 극도의 개인주의, 단자화.

모르는 사람에게 100원을 보태주는 일이란, 사회의 병리현상에 따라 언제부터인지 잘못 길들여진 그러저러한 속성에 반하여 무척 낯설고도 불편하여 내키지 않는 일이어서였을 거예요.

얼마되진 않았지만 마음공부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 현재의 자아와는 다른 참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걸 본성(本性), 진아(眞我)라고도 하지요.참나를 만나기 전에는 현재의 자신이 진짜 자기라고 믿지만 그건 거짓 자아, 에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요.

삶을 지배하는 고약한 에고에서 놓여나 넓은 마음으로 자유롭기 위해 마음공부도 하고 명상도 하고 수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지만 오랜 시간 피부처럼 들러붙은 에고를 벗어버리기란 그리 쉽진 않아요.

5박 6일간의 집중수련에서도 수련생들은 몇 시간씩 좌선을 하며 자신의 본성에 이르는 길을 찾아나가는데 무진 애를 써야만 했어요. 선생님들께선 에고와 참나의 접점에서 죽을 힘을 다해 본성에 이르는 길, 그 지난한 여정의 절정을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고도 하셨어요.

100원을 내주기 싫은 그 마음은 절대 권좌에서 물러나기 싫어 심술을 부리는 에고의 모습과 닮은 것 같아요. 오늘 낮에 터미널 근처를 지나다 100원 생각이 떠올라 매표소를 찾았더니 그날의 직원분들이 여전히 분주하게 창구 업무에 임하고 있더군요.

나는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 유리벽에 뚫린 구멍 사이로 밀어넣고는 웃으며 인사하며 지난 번에 빌린 100원을 갚는 것이라 말했어요. 내 얼굴을 보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더니 돈을 받아들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더군요.

지난 번의 표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에요. 그 모습이 예뻐 보였어요. 봄 눈 녹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미소가 그의 본성이라 믿어요. 끊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 너와 나 사이를 이어주는 희망의 씨줄이라 믿어요.


태그:#마음공부, #명상, #본성, #밝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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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미디어 컨텐츠의 창작에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 몇 군데 사회단체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태며 어울리며 나누며 살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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