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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삼매경에 빠진 지훈 군
▲ 독서광 독서 삼매경에 빠진 지훈 군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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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일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9월 10일까지 모두 100권의 책을 독파한 독서광이 있다. 22년 국어 선생 노릇하며 이런 독서광을 만난 경우는 처음이다. 그 주인공은 대전 대신고등학교(대전광역시 복수동 소재, 교장 이석주)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지훈(17)군.   

나는 김지훈군의 담임교사로서 지난 한 학기 동안 지훈군이 책 읽는 모습만 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가끔씩 묻곤 했다.

"지훈아, 현재 몇 권째?
"삼십 권요, 오십 권요, 칠십 권요, 팔십오 권요..."
"지훈아, 멋지다! 그 기록은 잘 하고 있니?"
"아, 예에. 그때그때 달력에 기록하고 있어요."

4월 독서 목록
▲ 독서광 4월 독서 목록
ⓒ 박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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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훈군에게 별도 독후감을 마련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학사정관제를 겨냥해서 도구화하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통해 교훈과 감동을 얻고,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여기라는 말 정도만 전했다.

날이 갈수록 독서량이 늘어만 가는 지훈군에게 내가 한 일이라곤 격려와 응원 뿐이었는데, 물 흐르듯 책읽기에 몰두하더니 어느새 100권을 독파했다. 지훈군이 100권의 책을 읽는 날, 100권 독파 기념으로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했다. 바로 9월 10일이 100권 독파 기념일이다.

그렇게 독서광이 된 데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누나의 도움이 컸다. 지훈군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누나와 책읽기 시합을 하고 있다. 지난 3월과 4월은 누나보다 앞서 나갔지만 현재는 약 스무 권 정도 뒤진 상태다. 지훈군은 누나를 따라잡고 싶어한다. 책 읽는 남매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즐겁다.

부럽고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느낌으로 방송실에서 지훈군과 마주 앉았다. 포동포동한 얼굴에 생기 넘치는 눈빛, 독서로 얻은 배경지식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축하한다, 지훈아! 애썼어!"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인 걸요."

'독서광' 뒤에는 누나와의 독서 시합이 있었다

6개월 남짓하여 100권을 읽었으니 한 달에 15권을 읽은 셈이다. 더 세분하면 이틀에 1권을 읽은 것이다. 지훈군은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자신의 달력에 표시했다.

오전 7시 30분에 등교하여 오후 6시까지 정규수업과 방과후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후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100권의 서적을 독파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기쁜 마음으로 지훈군을 만났다. 다음은 지훈군과 나눈 일문일답.

- 평소 책 읽는 시간은?
"3~4시간 정도다.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나 잠들기 전에 읽는다."

- 독서광이 된 배경은?
"누나의 도움이 크다. 올해 3월부터 누나랑 독서 시합을 시작했다. 누나랑 각각 책을 읽고 나서 달력에 기록하기로 약속했다. 누나는 현재 초등학교 교사인데 누나 또한 독서량이 대단하다. 3월과 4월은 누나보다 많이 읽었는데 지금은 내가 지고 있다. 현재 누나는 120권 정도 읽고 있다. 어떻게든 누나를 앞지르고 싶다."

- 지금까지 읽은 100권의 책 내용, 전부 기억하나?
"책 제목을 알면 내용이 떠오른다. 전부 기억한다."

-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 한 권만 꼽는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은 <파라다이스>다. 베르베르가 말한 '있을 법한 미래와 있음직한 과거'라는 내용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을 통해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세상을 좀 다르게 보려는 시각을 갖게 됐다."

- 독서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
"어휘력은 물론 아는 것이 많아지고 언어 생활하는 데 표현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

- 앞으로 계획은?
"3년 안에 500권을 읽는 것이다."

"지훈아! 소망 잘 이루길 바란다!"
▲ 독서광 "지훈아! 소망 잘 이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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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영역 성적도 많이 올랐는데.
"그렇다. 처음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언어영역 성적이 9등급 가운데 6등급이었다. 지금은 3~4등급까지 올랐다. 지문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내용 파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따로 언어영역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신감이 생긴다."

- 교과 공부하면서 책 읽기 힘들지 않나?
"솔직히 조금 힘들다. 그러나 책 읽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읽는 것에 만족한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책을 안 읽은 적은 없다. 다만 계획한 만큼 많이 읽지 않았을 때 불안하기만 하다."

- 100권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소개하면?
"오드리 니페네거의 <시간 여행자의 아내> 속에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주고 배려하고 이해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도 살면서 그런 여자 주인공을 만나고 싶다."

- 혹시 책만 읽는다고 부모님께서 걱정하지 않나?
"오히려 좋아하신다. 지금보다 더 읽기를 바라신다.(웃음)"

- 책은 주로 사 보는가, 빌려 보는가?
"절반 정도는 누나가 읽는 책을 빌려 읽었다. 나머지 절반은 사서 읽었다."

6월의 독서 기록
▲ 독서광 6월의 독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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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랑 같은 책을 읽었을 때 내용을 토의하는가?
"그렇다. 누나랑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관점이 다르다고 느낀다. 누나는 주인공의 성격 변화 같은 것에 관심이 많고, 나는 전체적인 배경을 중시하는 편이다."

- 본인이 책을 구입할 때 정보는 어디서 구하나?
"주로 누나의 추천으로 구한다."

- 장래 희망은?
"평범한 직업을 가지고 싶다. 회사원을 하더라도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기회가 되면 꼭 글을 써보고 싶다."

- 독서 인증제 등 독서 활동을 계랑화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나?
"내 입장에서는 유리한 편이라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독서의 참뜻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독서라는 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가꾸는 순수한 작업이었으면 좋겠다."

- 혹시 작가의 꿈이 있나?
"기회가 된다면 소설가가 되고 싶다. 꼭 도전해 볼 것이다."

- 읽은 책을 달력에 기록하지 말고 별도 독후감을 마련하는 건?
"이대로가 좋다. 그러나 대학입시제도 때문에 독후감을 써야 할 것도 같다.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청출어람! 지훈아, 네가 나보다 낫다!"
▲ 독서광 "청출어람! 지훈아, 네가 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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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를 게을리 하는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책이 주는 즐거움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책을 구입하지 않더라고 빌려서라도 꼭 읽었으면 한다. 한 권만 제대로 읽으면 그 쾌감 때문에 계속 읽게 된다. 독서는 자신을 가꾸는 소중한 작업이다."

아직도 좀 덥긴 하지만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은 수정돼야 한다. 사시사철 하루하루 책읽기에 빠져 사는 지훈군이 있는 한 사시사철이 독서의 계절이다.

지훈군과 인터뷰를 마치며 국어교사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청출어람이 따로 있을까? '지훈아! 네가 나보다 낫다!' 쌓아놓은 책들을 어서 읽어야겠다.


태그:#김지훈, #독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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