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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보스턴의 경찰들이 파업을 했다. 형편없는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이 원인이었다. 당시 경찰들은 주당 73시간을 근무했으며, 6년차 경찰의 연봉은 기껏해야 1천 달러에 불과했다.

 

초과근무 수당은 없었고 제복과 배지, 곤봉과 총기 등도 자신의 돈으로 구입해야 했다. 경찰서의 위생상태도 엉망이어서 숙직실의 침대에는 벼룩과 이가 들끓었다.

 

경찰들의 임금은 1905년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1차 대전 중에는 봉급을 동결하고 전쟁이 끝나면 200퍼센트 인상하겠다는 약속도 있었지만 그것이 언제 지켜질지도 모른다.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밤이면 경찰들은 술집에 모여서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우리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번다"며 투덜거렸다. 경찰 고위직들과의 협상은 매번 거절당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홈런을 펑펑 쳐내던 베이브 루스는 1919년 시즌에 연봉을 7천 달러에서 1만 달러로 올리기 위해 구단주와 협상을 벌이고 결국 승리했다. 홈런왕의 연봉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경찰들의 급여가 너무 적은 것 아닐까.

 

적은 임금과 근무조건에 항의하는 경찰들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로 유명한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운명의 날>은 바로 이 보스턴 경찰 파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동안 범죄와 스릴러 소설에 집중해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서 대형역사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운명의 날>의 시작은 1918년 여름이다. 주인공 대니 커글린은 보스턴 경찰청의 귀족이다. 대니는 사우스 보스턴 12지구 경찰서장인 토머스 커글린을 아버지로 두고 있고, 경찰 특공대 에디 멕케나 경위의 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제 경력 5년이지만 보스턴 경찰은 누구나 대니의 형사 진급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대니도 경찰들의 근무조건에는 불만이 있다. 대니 주변의 경찰들은 '보스턴 경우회'라는 친목단체를 노동조합으로 변신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 노동총연맹에 가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찰청장이나 보스턴 시장과의 협상에서 좀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토머스 커글린과 에디 멕케나도 이런 움직임을 알고 있다. 경찰의 명예를 존중하는 그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다.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빈번했다. 노동자연합과 사회주의자들의 집회가 수시로 열렸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폭탄테러로 공공기관을 파괴했다. 경찰들은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서 국외로 추방하려고 한다.

 

에디 멕케나는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분수를 잊고 있다"라고 말한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카고 컵스가 경기장에서 파업을 하자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서 에디와 토머스는 대니를 첩자로 이용하려고 한다. 무정부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단체에 위장 침입하라는 것이다.

 

대니도 갈등하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제 대니는 무정부주의자들과 보스턴 경우회를 오가는 신세가 된다. 리더로서의 자질을 타고난 대니는 보스턴 경우회에서도 주도적인 위치에 선다. 경찰청장과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경찰들도 갈등한다. 공무원의 임무가 우선일까,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가 먼저일까. 아니 파업을 벌이면 과연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까?

 

노사 갈등이 폭발하던 1919년의 미국

 

경찰들의 파업이 아니더라도, 당시는 미국 역사의 격동기였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전쟁산업이 문을 닫으면서 호황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700만의 인구가 길에 나앉았고 400만이 해외에서 돌아오는 중이다. 1100만의 노동자가 씨가 마른 노동시장에 모여든다는 얘기다.

 

거기다가 스페인 독감이 미국을 덮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조만간 시행될 금주법 때문에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여성참정권을 옹호하는 여성들이 모여서 속옷을 불태우며 시위한다. 600킬로미터 떨어진 몬트리올에서도 경찰과 소방수들의 파업이 임박했다고 한다. 베이브 루스의 표현에 의하면 '온 세상이 데모를 하는 것' 같다.

 

<운명의 날>은 당시의 이런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는 베이브 루스를 포함해서 많은 실존 인물들이 나온다. 후에 FBI국장이 되는 존 에드거 후버, 제너럴 모터스의 3대 회장인 제임스 잭슨 스토로, 미국 공산당 창당 멤버인 루이스 프라이나 등.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경찰파업이다. 협상은 성공할듯 하면서도 조금씩 어긋나면서 경찰들의 반감은 커져만 간다. 거기에 시대적인 상황과 몇 가지 우연이 겹쳐지면서 경찰이 파업을 하는 '운명의 날'을 향해서 달려간다. 이제 부자들이 책임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운명의 날> 상, 하. 데니스 루헤인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운명의 날 - 상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10)


태그:#운명의 날, #경찰 파업, #데니스 루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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