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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요츠바 같은 아이가 늘어나길 바란다
▲ <요츠바랑> 8권 표지 (요츠바와 요츠바 아버지) 한국사회에서 요츠바 같은 아이가 늘어나길 바란다
ⓒ 아즈마 키요히코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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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화 <요츠바랑>에 빠져 있다. <요츠바랑>은 다섯 살 요츠바와 주변 인물들의 일상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느 동네에 요츠바 가족이 이사를 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코미디나 드라마 정도라 할 수 있다. <요츠바랑>은 한국에서도 꽤 사랑 받았던 <아즈망가 대왕>의 아즈마 키요히코(Azuma Kiyohico)의 작품이다. <아즈망가 대왕>을 재미있게 봤던 독자라면 <요츠바랑> 역시 입맛에 맞을 것이다. 요츠바 가족의 구성원은 번역가인 아버지와 요츠바 단 둘이다. 요츠바는 한부모 슬하의 아이다. 또 일본인 아버지가 외국에서 데려온 아이라는 점도 재미있는 설정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생김새가 주변사람과는 다르지만 요츠바는 항상 즐겁다. 마을사람들에게 꽃을 나누어주고, 제 집인 것마냥 옆집에 들락날락한다. 또 마을 축제에 참여하거나 목장에 놀러가 우유 짜기 체험도 해본다.

<요츠바랑>을 보며 웃음을 짓다가도 일상으로 시선을 돌리면 금세 씁쓸해진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다름에 자애롭지 못하다. 피부색, 가정구성원, 교육방법 등이 다르면 불쌍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요츠바랑>의 배경인 일본에서도 요츠바는 특별한 케이스일 것이다. 일본은 한국 못지않게 학구열이 높은 국가다. 그리고 입신양명을 꿈꾸며 입시에 목매는 사회다. 일반적으로 픽션에 등장하는 아이는 어른이 바라는 상(狀)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역들이 대부분 어른스럽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츠바 역시 작가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는 요츠바(四葉)란 이름이 네잎클로버(四葉のクローバー)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데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웃과 함께 요츠바는 행복하다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아이답게' 매일 유쾌하다. 작가가 설정해 놓은 공간엔 행복을 위한 몇 가지 장치들이 설정되어 있다. 첫 번째, 부모가 자녀의 육아를 직접 담당할 수 있는 전문직 종사자다. 요츠바의 아버지 직업은 번역가다. 이 때문에 다른 직업군과 달리 자택근무가 가능하다. 또 아이가 질문을 던졌을 때 눈높이를 맞추어 대답할 수 있는 소향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 요츠바 마을의 공동체 시스템이 무척 훌륭하다는 점이다. 마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마을축제나 이웃과 교류를 통한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다. 요츠바의 아버지가 작업을 하거나 외출할 때는 이웃이 요츠바와 함께한다.

첫 번째는 개인이 담당해야 할 부문이라면 두 번째는 사회가 담당해야 할 부문이다. 출산정책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육아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자녀와 매시간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직업군은 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육아문제가 부담되어 자녀계획을 갖지 못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일수록 이러한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요츠바랑>의 두 가지 전제조건 중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조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근 SNS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SNS의 발달은 동시에 오프라인의 공동체가 와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실의 공동체 생활이 쇠퇴하자 가상공간의 공동체 생활이 대체품으로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지역공동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마지막 남은 답안지는 시장뿐이다. 하지만 과연 대기업이 만든 상품 속에서 요츠바가 행복할 수 있을지 고려해 보길 바란다.


태그:#요츠바랑, #아동교육, #육아, #요츠바, #지역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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