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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광읍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들어가면 코스모스가 가지런히 피어난 길이 이어진다. 코스모스 너머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황금 들녘이 바둑판처럼 펼쳐진다. 산자락 아래로 지붕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간간이 지나치는 도로변 농부들의 바쁜 손길이 다소 위태롭지만 느긋한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손색이 없다. 10여 Km를 달리면 눈앞을 가리는 나지막한 고개가 나타난다. 돌팍재다.

돌팍재에서 보이는 서해바다는 장관이다. 꽉 막힌 도회지의 답답함은 넓게 펼쳐진 황금들녘과 서해바다를 보는 순간 사라진다. 간척지 제방 끝 한 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교회가 보인다. 이곳이 설도(雪島)다. 원래 섬이었던 설도는 갯벌을 간척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섬의 남쪽은 여전히 바다로 이어져 작은 고깃배가 드나들고 있다. 설도는 항구다.

설도항 풍경
 설도항 풍경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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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 오후가 펼쳐진 지난 9월 30일 염산면 설도를 찾았다. 길목마다 '제9회 염산 젓갈·소금·농수산물 대축제'를 알리는 펼침막이 가득하다. 10월1일부터 5일 동안 진행되는 축제다. 설도 주민들이 바삐 움직인다. 한 판 떡 벌어지게 놀아볼 요량인지 부두에는 제법 큰 공연무대가 이미 설치되었고, 뾰족한 지붕 모양을 한 천막이 즐비하게 섰다. 가게에는 젓갈이 가득한 대형 드럼통이 즐비하고, 천막 아래에서 젓갈, 소금, 농수산물 판매 부스와 체험장을 준비하는 손길이 부산하다. 부두에선 오늘 잡아온 새우와 각종 잡어를 염장하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설도항 부두에서 젓갈 담을 생선을 선별하는 주민들
 설도항 부두에서 젓갈 담을 생선을 선별하는 주민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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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과 소금이 가득한 항구, 설도

설도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100여 가구가 언덕을 빙둘러 옹기종기 모였다. 부두를 중심으로 장터마냥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설도에서는 오직 서해바다에서 나는 각종 수산물과 소금만을 취급한다.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젓갈은 해수를 유입하여 결정시킨 미네랄이 풍부한 염산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간질을 한 조개젓, 엽삭젓(송어젓), 황석어젓, 멸치젓, 갯물토화젓, 오젓, 육젓, 잡젓, 북새우젓, 짜랭이젓(병치새끼), 갈치속젓, 줄무늬젓, 명란젓, 창란젓, 꼴뚜기젓, 오징어젓, 숭어젓, 까나리액젓 등으로 그 수를 헤아리기도 벅차다.

부둣가에는 작은 가게들이 나란히 자리잡았는데 모두 '00호'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이 가게들은 설도항을 기점으로 고기잡이하는 선주들이 운영한다. 자기 배로 갓 잡아온 생선과 꽃게 등을 직접 판매하기 위해서 조성한 것이다. 그래서 설도에서 만나는 어류는 모두 자연산이다.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고 직접 구할 수 있는 곳이다. 여름철엔 보리새우(오도리), 추석 무렵엔 서대, 봄철엔 꽃게 등 연중 싱싱하고 풍성한 회를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날씨와 어황에 따라 다르다. 그날 조업 결과가 좋으면 저렴하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조업을 하지 못하거나 생선을 많이 잡지 못한 날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부두에는 싱싱한 꽃게와 생선이 넘쳐난다.
 부두에는 싱싱한 꽃게와 생선이 넘쳐난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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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이름 뺏기고 신앙 위해 죽음을 택한 섬

한국전쟁 때 순교한 142명의 순교자 묘지, 설도 교회 입구에 있다.
 한국전쟁 때 순교한 142명의 순교자 묘지, 설도 교회 입구에 있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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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도는 1934년경 갯벌을 간척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마치 '누워있는 섬'같다고 하여 '누운섬(臥島)'으로 불렸는데 일제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누운섬'을 '눈섬'으로 짧게 발음함으로써 눈섬, 설도(雪島)로 바꿔 표기했는데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간척하면서 만들어진 마을 앞 배수갑문에는 지금도 와도(臥島)로 표기 된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섬의 모양을 따라 붙여진 누운섬이라는 이름이 도둑맞은 셈이다.

부두 입구에는 순교탑이 있다. 한국전쟁의 아픈 상흔이다. 이 지역에는 당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들어오고 기독교 신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인민군과 교회 탄압에 항거하였다. 결국 142명이라는 많은 신자들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설도항에 순교탑이 건립되었으며 설도 마루에 커다란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 앞에는 커다란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은 순교자들의 것이다.

스스로 일어서는 '설 섬'으로 거듭나기

설도항은 그저 한가한 어촌 마을이었다. 어부들은 열심히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간질(염장)하여 젓갈을 만들었다. 바로 옆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간질한 설도의 젓갈은 맛이 좋아 다른 지역 상인들이 자주 찾았다. 염산 앞바다에서 잡고 설도에서 염장한 젓갈인데 다른 이름을 달고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작은 포구의 설도 사람들은 힘들게 일했지만 농어촌의 쇠락과 함께 형편이 좋아지지 않았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2001년 설도항에서 젓갈을 취급하던 가게 주인들은 젓갈 협의회를 만들고 어선 선주들은 어민 협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지역 청년회와 이장단이 합류하면서 마침내 '염산 젓갈 축제'를 열기로 했다.

참으로 어려웠다. 고기 잡고, 염장하여 젓갈을 만드는 것이야 매양 하는 일이니 몸이야 고달프지만 차라리 쉬웠다. 그냥 한 상 차려놓고 떡 벌어지게 놀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암담했다.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어떻게 알려야 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통 짐작할 수가 없었다.

특히 일을 하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한데 우선 들어가는 비용을 십시일반 부담해야하니 제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걸 누가 반기겠는가? 축제에 소극적인 사람들이 늘어갔다.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축제를 한 번 치르고 나니 뭔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거듭할수록 염산 젓갈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찾는 발걸음도 늘었다. 주민이 3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에서 치르는 축제는 이렇게 시작되어 2010년 올해로 9회째를 맞는다.

이제 축제는 제법 모양이 난다. 올해 축제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기획했다. TV에서 보았던 화려한 인공조명도 설치했다. 5일 동안 진행될 축제는 염산 우동 농악 공연을 시작으로 난타, 그 때 그 시절 쇼, 축하공연 등이 매일 진행된다. 특히 축제 참여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축제 둘째 날(10월 2일)에는 가족과 함께 젓갈 담그기, 젓갈 이름 알아맞히기, 축제 어울마당, 셋째 날(10월 3일)에는 농협에서 주관하는 김치 담그기, 장어잡기, 젓갈 가요제, 넷째 날(10월 4일)은 관광객 장기자랑, 젓갈 알기 OX퀴즈, 즉석 노래자랑, 마지막 날(10월 5일)에는 관광객 장기자랑, 젓갈 알기 OX퀴즈 등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참여도를 높일 예정이다.

축제 기간 중 특별행사로 점심시간대에 젓갈, 굴비 무료시식회가 있고, 축제장에 마련된 판매부스에서는 젓갈, 소금, 농수산물 등을 할인판매 한다. 각종 체험행사를 통하여 염산 특산물인 장어, 젓갈, 농수산물 등을 무료 증정하여 작은 농어촌 마을의 정겨운 인심을 베풀 예정이다.

축제 추진위원장(양덕렬)은 '수산자원의 보고인 염산에서 특산물인 젓갈과 소금, 그리고 각종 농산물을 자신있게 소개해드리기 위해 축제를 열었습니다"며 "주민들의 넉넉한 인심과 관광객들의 맛과 멋이 함께 어우러진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설도항 축제위원장 양덕열(왼), 재무국장 성강석(오)
 설도항 축제위원장 양덕열(왼), 재무국장 성강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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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관을 움직이다

해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축제는 계속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동네 잔치처럼 시작했지만 거듭할수록 제법 축제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찾은 사람들이 늘면서 마을 주민만의 힘으로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관청에 지원을 요청했다. 2005년 영광군청(영광군수 : 정기호)과 한수원(주)영광원자력본부에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영광군, 영광군의회, 영광원자력본부, 영광농협, 염산 지역 사회 단체 등의 후원을 받고 있다.

"염산 소금이 천년의 영광굴비를 만들고, 이 소금이 젓갈을 만들었습니다. 염산의 젓갈은 남도의 자랑스러운 음식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바로 남도 음식문화의 핵심인 젓갈의 선도 고장이 염산 설도입니다."

축제 준비를 격려하고 지원하기 위해 찾은 정기호 영광군수의 말이다. 우리의 농어촌은 대한민국의 뿌리임에 틀림없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다 했다. 작은 마을 사람들이 10년째 일구고 있는 꿈을 관청에서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은 주민이 주인인 지방자치의 시대에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의 노력이 꿈을 꾸게 했지만 앞으로가 걱정

재무당당 성강석씨는 축제를 진행하면서 달라진 점으로 지역을 많이 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축제기간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찾는 사람이 늘어나 주민의 소득이 높아진 것을 꼽았다. 더불어 젓갈 타운 조성 계획이 확정되어 현재 부지 선정 작업을 하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한다. 젓갈 타운에는 젓갈 전시관, 홍보관, 판매점, 각종 편의시설 및 숙박 시설 등이 들어설 것이어서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설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며 성씨는 웃었다.

10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어선 40여 척으로 고기를 잡고, 농사지으며 생활하는 설도항, 벌써 축제를 시작했던 추진위원들은 50~60대가 되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그들의 노고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지만 걱정이 없지는 않다. 다른 농어촌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제 살기에 바쁜 이들이라 어렵고 힘든 마을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은 나이든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이 조금씩 변하고 발전하는 것이 좋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민들이 주도하는 축제이지만 관청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왜놈들은 누운 섬을 눈 섬으로 바꿨다. 자신들이 살던 땅의 이름조차 빼앗겼던 조상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누운 섬을 일으켜 세워 스스로 일어서는 '서있는 섬' 설도를 만들어야 한다.

소매를 위해 손님이 원하는 만큼 이렇게 직접 포장하여 판매한다.
 소매를 위해 손님이 원하는 만큼 이렇게 직접 포장하여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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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가득한 각종 젓갈 들
 가게에 가득한 각종 젓갈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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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서울(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영광읍- 염산, 전주-고창- 영광-염산, 광주-영광-염산,목포(서해안고속도로)-함평IC-손불-염산



태그:#설도항, #젓갈축제, #염산면, #누운섬, #젓갈, 소금, 농수산물 대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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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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