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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고장에서 옹기를 만났다. 강진 칠량은 옹기와 청자를 만드는 흙이 있는 고장이다. 강진만 오른편에 자리한 칠량면과 대구면 일대는 고령토가 많다. 내가 근무하는 칠량중학교 운동장도 고령토를 캐내던 곳이라고 한다.

옹기와 청자는 깨지기 쉽다. 교통망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는 옹기와 청자를 굽더라도 대처 소비지로 옮기는 일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강진만은 옹기와 청자를 전국 각지로 운송하는 좋은 뱃길이었다. 옹기와 청자를 빚는 데 필요한 흙과 옹기와 청자를 운송할 수 있는 뱃길이 있는 곳, 거기에 솜씨 좋은 옹기 장인과 청자 장인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강진읍에서 칠량 방향으로 10여 분을 달리다 국도를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꺾어 바닷가를 잠시 달리면 봉황리가 나온다. 해안을 따라 500여m를 가면 작은 배들이 한가롭게 묶여있는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 봉황리다. 마을 끝자락에 작은 안내판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칠량봉황옹기"

무형문화제 제37호로 지정받은 정윤석 옹의 공방이다. 옹기가마와 무형문화재 정윤석 옹의 작업실이 있고, 옹기를 전시 판매하는 판매장이 있다. 19일, 옹기 전시 판매장에 다녀왔다.

무형문화재 제37호 정윤석 옹(74)이 옹기를 빚고 있다.
▲ 중요무형문화재 96호 칠량봉황옹기 무형문화재 제37호 정윤석 옹(74)이 옹기를 빚고 있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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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소리 사이로 가끔 둔탁한 소리가 들릴 뿐 인기척이 없다. 마당을 서성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작업장은 꽤 넓었다. 날씨가 흐렸지만 햇볕 드는 창문 가까이에 물래가 있는데 그곳에서 옹기 장인이 혼자서 옹기를 빚고 있다.

창문 아래 설치된 물래가 돌고 잘 다저진 흙판을 물래에 올리고 성형하고 있다. 갑자기 들어선 이방인을 잠깐 돌아보시더니 하던 작업에 집중하신다. "옆 학교에 이번에 온 선생입니다. 잠깐 시간이 나서 칠량 옹기를 견학하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드렸다. 사람들 방문이 자주 있는 듯했다. 옆 학교에 새로 온 선생이라는 말에 자못 싫지 않으신 표정으로 반겨주신다.

밑판을 놓고 옆 판을 감아올려 모양을 내는 손길이 참으로 자연스럽다. 그냥 일상의 모습 그대로다. 두 장을 올려 늘리고 다듬은 다음 반장짜리 흙판을 더 올렸다. 물래가 돌고 장인의 부드러운 손길이 옹기를 어루만진다. 손가락을 오므려 잡고 무래가 돌면 옹기 주둥이가 되고, 작은 나뭇가지가 장인의 손에 들리고 옹기가 돌면 멋진 태두리가 그려진다. 작은 나무판 조각을 들고 물래가 도니 옹기 옆구리에 빗살무니처럼 생긴다.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물래가 도는 동안 떼고 닿기를 반복하셨다. 물래를 천천히 돌리면서 위아래로 막대기를 흔들었는데 유려한 곡선이 옹기를 감싼다. 입도 다물지 못하고 잠깐 지났는데 예쁜 옹기가 완성된다. 먼저 빚어놓은 옹기 옆으로 옮겼다. 크기와 모양이 한결같다. 빚어놓은 옹기 옆에는 '중요무형문화제 96호, 칠량옹기'라고 찍혀있다.

"손으로 만들었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아요?"
"보기는 그래도 조금씩 틀려, 크기도 그렇고."

이렇게 가마에 가득 채울 만큼 빚어진 옹기는 완전하게 말리고 잿물을 먹여 1250도의 가마에서 굽는다.

옆에 무형문화재 칠량옹기가 선명하다.
▲ 갓 빚은 칠량봉황 옹기 옆에 무형문화재 칠량옹기가 선명하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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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를 굽는 가마다. 지금 작업 속도를 보면 4월 말쯤에나 불을 넣을 수 있을 듯하다고 하신다.
▲ 옹기가마 옹기를 굽는 가마다. 지금 작업 속도를 보면 4월 말쯤에나 불을 넣을 수 있을 듯하다고 하신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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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연대 이전에는 이곳 봉황에만 20여 곳에서 옹기를 구웠다. 프라스틱 그릇이 대량 보급되면서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지금까지 정윤석 장인만이 남아남도 옹기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매월 지원금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들이 칠량봉황옹기 전수자로 지정받아 옹기의 맥을 잇고 있는 중이다.

요즘 봉황리에 옹기 만드는 곳이 두 곳 더 생겼다고 한다. 그곳은 기계로 작업해서 크기나 모양이 일정하다. 하지만 친환경 농산물이 좋은 것처럼 장인이 직접 만드는 전통방식의 옹기가 더 좋은 평판을 받는다고 하신다. 아무래도 수 작업이다보니 대량생산할 수 없기에 현재는 주문한 물량을 소화하는데 만족한다.

얼마 전부터는 해마다 서울 종로 등지에서 옹기 작품 전시회를 가진다. 옹기를 빚는 방법과 자기를 빚는 방법이 다른데 사실 옹기 빚기가 더 어렵다. 사람들은 옹기를 너무 하찮게 여긴다. 그래서 옹기 작품 전시회에는 옹기와 더불어 대형 도자기를 빚어 함께 전시하여 옹기와 도자기 빚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알리고 있다. 

장인의 설명에 의하면 옹기는 작은 모래가 섞인 흙을 그대로 사용하여 빚기 때문에 숨을 쉰다. 도자기는 모래를 제거한 흙을 사용하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다. 그래서 옹기는 다양한 식품을 오래 저장할 수 있고, 발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도자기는 음식을 장기간 보관하기 어렵다고 한다.

공방 마당에 가득한 옹기들, 일부 색갈이 다른 것은 서울에서 전시할 목적으로 제작한 도자기 항아리다.
▲ 공방 마당에 가득한 옹기 공방 마당에 가득한 옹기들, 일부 색갈이 다른 것은 서울에서 전시할 목적으로 제작한 도자기 항아리다.
ⓒ 김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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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때 옹기 굽는 일을 시작하신 장인은 올해 74세가 되었으니 58년 째 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 아직도 여전하신 모습으로 옹기를 빚고 계시는 할아버지께 여쭸다.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는 않는 데 허리가 안 좋아요. 요즘 사람들은 이런 기술을 잘 배우려 하지 않는데 아들 놈이 배우고 있어서 다행이지요."

판매장에 들렀다. 아주 장식없이 반짝이는 옹기들이 가득하다. 그냥 옹기만으로 멋지다. 사실 딱히 판매장이라고 할 것이 없다. 안에는 작은 소품 옹기가 마당에는 커다란 항아리들이 가득 있다.

마당 한켠에는 옹기로 거듭날 흙이 비닐에 덮여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요즘은 바닷길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가마 앞 바다에 묶여있는 작은 배들이 옹기를 가득 싣고 떠나는 돛단배로 보인다. 지나친 상상일까?

실내에 옹기 전시 판매장이 있다. 하지만 공방 전체가 전시장이다.
▲ 옹기 전시 판매장 실내에 옹기 전시 판매장이 있다. 하지만 공방 전체가 전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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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http://moduok.net)



태그:#칠량봉황옹기,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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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면서 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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