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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 책표지 다산 정약용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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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산 정약용인가?!

군사독재(1979)의 한가운데서 국민들이 참담하게 살아가던 무렵,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네 번이나 옥고를 치른 적이 있었던 역자는 칠흑 같은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같은 한줄기의 민중의지로 75년 동안 치열하게 살다간 역사적인 인물 정약용에게 끌렸다.

난에 찌들어 굶어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을 고쳐보려 하였고 부정부패와 착취를 일삼는 관리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목민심서를 저술하고 백성들을 일깨워보려고 했던 다산. 하지만 부패관료들의 시기와 반발에 의해 벼슬을 박탈당하고 18년간을 중죄인으로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의 절망과 참혹한 고통을 공감하였다. 민중 시대이면서도 민중이 주인노릇을 못하는 이 시대에 현대이전의 사회에서 가장 값진 민중적 삶의 한 자료를 다산 정약용에서 찾았고, 어려운 번역에 선뜻 손대게 해주었다고 역자는 말한다.

다산의 편지글 모음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그해 1월 20일 첫 출간했다. 다시 증보하여 발간하는 등 몇 번을 거쳐 네 번째 증보판으로 나온 책은 200년이 다 되어서 발견된 하피첩이 여기에 함께 실렸다. 이 책이 태어 난지도 서른 살이 되었다.

온 국민이 유배당했던 그 시대에 다산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번역한 박석무, 그도 이제 예순을 훌쩍 넘었다. 그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모두 유배당하고 독재자와 그에게 아부하고 굴종하던 몇몇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인양 권력을 농단하던 시대를 거쳐 왔다. 다산 정약용은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 어떻게 견뎠으며 자신의 지인들과 형과 아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그의 정신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다산을 연구하게 된 것이라 한다.

사랑담은 편지

편지글로 묶은 책들이 가끔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오드리 햅번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간혹 자녀들을 위한 격려와 훈계로 인용되기도 하고, 스승이 제자들에게 전하는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공지영의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역시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다. ]

할머니가 손녀한테 보내는 편지로 소설을 엮은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대로>는 또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2백 년 전 아들들에게 쓴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박석무편역/창비)는 다산선생이 18년간 유배지에서 그의 두 아들과 형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번역해 실은 것으로 다산 정신의 정수가 담겨 있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아들들에게 가훈으로 내려준 편지, 둘째 형님에게 보낸 편지, 제자들에게 교훈삼아 내려준 편지글 등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두 아들에게 쓴 편지글 가운데는 긴 세월동안 떨어져 유배지에서 보내야 했던 다산의 부정이 절절이 드러난다. 어렵더라도 아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이 보인다.

"우리는 폐족이다" "폐족이 글을 읽지 않고 몸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구실을 하랴" "폐족이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되지 못하겠느냐?" 등 폐족이기에 더 글을 읽고 학문을 연구하기를 바라며  참된 독서에 관해서, 쓰는 법, 사는 법, 행실을 더 바르게 하는 법 등 세밀하게 마음 담아 적고 있는 다산 정약용의 메시지는 폐부 깊숙이 와서 박힌다.

처자식들과 떨어져 살면서 살아나갈 수 있을는지 기약조차 할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실망과 낙담에 빠지기 쉬운 법이건만, 천신만고의 괴로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정금같이 단련한 그의 면면이 편지글 속에서 드러난다. 이밖에도 호연지기를 지니고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와 생활철학 등 구체적으로 쓰고 있어 삶에 밀착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 형님한테 보낸 편지글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가 학문을 논하고 인생을 토로한 것을 담고 있다. 또한 그 안에 두 형제간의 혈육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스승의 부재, 제자의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에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진정한 스승이 없고 제자가 없어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더욱 귀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교훈 글이 깃든 1, 2부가 와 닿는다. 다산은 독서방법, 초서하는 방법, 저술 방법 등을 언급하면서 "너야말로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가문이 망해버린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처지가 되었다는 게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p39)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여 들고 넉넉해진다."(39P)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만 바야흐로 참된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p42)고 그는 말한다.

이 얼마나 통쾌한 역설인가. 흔히 집안이 망하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하던 공부도 져버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통사람의 생각을 뒤엎는 이 역설, 다산의 아비의 정과 비범함이 이에서 드러난다.

그의 사랑이 절정을 이루는 것은 '하피첩'에 써 보낸 편지가 아닐까 싶다. 아내가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치마가 세월만큼 빛이 바랬고 몸져누운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빛바래어 헤진 치마 다섯 폭(?)을 보내자 그가 '노을처럼 붉은 치마로 만든 첩'인 하피첩에 두 아들에게 훈계의 글을 적어 보낸 것이 하피첩이다.

두 아들에게 유배지에서 보냈다는 이 하피첩은 2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묻혀있던 중 지난 2006년 3월 28일자 <중앙일보>에서 세 첩의 하피첩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실렸고 거의 2백년 가까운 세월 만에 다산이 유배지에서의 글이 세상에 나타났다. 또한 '매조도'는 그의 외동딸에게 남은 치마폭에 매조도를 그리고 화제를 달고 보낸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물씬 드러난다.

역경의 시간에

그는 창살 없는 감옥인 유배지에서 18년 동안 경집 232권과 문집 260여 권을 모두 정리하였다. 유배생활 긴 세월을 주저앉지 않고 학문연구에 몰두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 학술사에 경이로운 금자탑을 세웠다. 다산은 경계하고 공경하여 부지런히 노력하는 동안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어떤 정신으로 그 긴 세월을 살았는지 드러난다.

"나는 바닷가 강진 땅에 귀양을 왔다. 그래서 혼자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배움에 뜻을 두었지만 스무 해 동안 세상길에 잠겨 선왕의 큰 도리를 다시 알지 못했더니 이제야 여가를 얻었구나. 그러고는 마침내 흔연히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리고 육경과 사서를 가져다가 골똘히 연구하였다. 무릇 한위 이래로 명청에 이르기까지 유가의 학설 중에서 경전에 보탬이 될만한 것을 널리 수집하여 꼼꼼히 살펴..."

다산은 역경의 시간을 오로지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불행을 불행으로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못다 한 학문연구에 바칠 기회로 삼았다. 작업에 몰두하느라 방바닥에서 떼지 않았던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고 이와 머리카락도 빠졌던 학문연구에의 열정, 학문연구에 올인했던 18년은 2백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도 회자된다.

역경을 역경으로만 보지 않고 고난에 찬 삶 속에서 굴하지 않고 학문연구에 주력했던 그가 자식들을 향한 염려와 사랑으로, 또한 형과 제자들에게 쓴 애틋한 글은 학자연한 모습 그 뒷면에 인간적인 사랑이 오롯이 드러난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정신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아버지들과 젊은이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금전만능주의와 권력만능주의 사회적 풍조에 젖은 오늘 이 시대에 타성에 젖은 구태의연한 정신을 갈아엎어 그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창비(2009)


태그:#다산정약용, #하피첩, #편지, #유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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