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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타르사막 지금도 내게 그날은 한 순간의 황홀한 꿈일 뿐,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 해질녘, 타르사막 지금도 내게 그날은 한 순간의 황홀한 꿈일 뿐,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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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사파리 1박 2일 간 낙타사파리를 함께 했던 일행,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 낙타사파리 1박 2일 간 낙타사파리를 함께 했던 일행,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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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사막, 낙타
 타르사막,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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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어 던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린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모래 언덕에 올랐을 때 나는 어릴 적, 구름 위를 걷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며 느꼈던 울렁거림을 뚜렷이 기억해낸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이 시리도록 시퍼런 하늘과 빛나는 모래 뿐. 일행과 멀찌감치 떨어진다. 해지기 전까지 주어진 짧은 시간, 온 정신을 집중해서 사막의 황량함과 고독감을 만끽한다. 

단번에 잡아 삼킬 것만 같은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며 문득,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다. 도시의 웅장한 건축물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은 있지만 일말의 도전정신쯤은 남겨두지 않았던가. 거대한 모래언덕 앞에서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아무나 올 수 없었던 곳, 그리고 다시는 못 올지도 모르는 곳. 나는 정말 행운아다, 라는 내 자신을 향한 최고의 찬사를 이제껏 해본 적이 있던가? '꿈만 같다'는 표현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리라.

타르사막에서의 낙타 사파리 후에 끼적여 놓았던 메모다. 여행 직후에는 으레 지나치게 감상적인 생각에 잠기거나, 감정과다의 문장을 쏟아놓곤 한다. 그런 탓에 인도에서 돌아오고도 6개월이 지나서야 그 때의 기억을 쥐어짜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후에, 내가 남겨 놓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게 뻔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사막에서의 하루를 떠올렸지만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릴없이 그 때의 메모를 그대로 옮긴다. 지금도 내게 그날은 한 순간의 황홀한 꿈일 뿐,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결혼식 당일, 두 번째로 보는 신랑 얼굴

아샤의 결혼식 아직 신랑의 얼굴을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아샤의 담담한 표정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 아샤의 결혼식 아직 신랑의 얼굴을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아샤의 담담한 표정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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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의 집에 들어가기 전, 손님에게 인도의 전통 과자를 주고 있다.
 신부의 집에 들어가기 전, 손님에게 인도의 전통 과자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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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과 같이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풍경만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은 아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이야말로 그곳을 찾는 주된 이유다. 물론 지금의 인도는 세계화의 물결에 빠른 속도로 유입되면서 지역에 따라 전통과 풍습이 판이하게 다른 거대한 땅덩이가 됐다. 영국의 오랜 지배를 받았던 만큼 식민치하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인도의 전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라자스탄 주의 산간지역, 마운트아부에서 만난 아샤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일은 인도 여행 최고의 행운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있나. 결혼식 당일을 포함해 초대받은 사흘 간 집요하게도 쫓아다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 의식에 참여하며 내 마음까지 경건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문화적 차이는 인정하고 볼 일이지만 시간에 쫓겨 해치우는 우리네 결혼식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그 지방 풍습대로, 아직 신랑의 얼굴을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아샤의 담담한 표정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담담함을 넘어서 흥분과 설렘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 했다. 고작해야 갓 스무 살을 넘긴 듯 보이는 앳된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쩜 저리도 태평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이방인의 걱정 따위는 그들의 성스러운 전통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리라.

그들의 신성한 잔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나를 비롯한 여러 외국인들의 방문을 흔쾌히 반겨주었던 아샤 가족의 넉넉함에 감사한다.

"우리는 점점 변하고 있고, 언젠가는 당신들처럼 되겠죠"

꼴리지스트릿 우리의 대학로와 비슷하다는 '꼴리지스트릿(College street)'.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꼴리지스트릿 우리의 대학로와 비슷하다는 '꼴리지스트릿(College street)'.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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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반부에 도착한 콜카타. 상공업이 번성하여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전통을 고이 간직한 마운트아부와 전혀 다른 세계. 매번 새로운 도시를 만나면 여행지의 극히 일부분만을 볼 뿐인 한낱 여행자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 것인지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나라의 전체를 아는 양 얼마나 떠들어 댔던가.

우리의 대학로와 비슷하다는 '꼴리지스트릿(College street)'. 대학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한낮의 공원에서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나눈다. 그 곳에서 오르차에서 만난 스무 살의 인도인 청년을 떠올렸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그는 마침 휴일이라 시골집에 왔다가 나를 만난 거였다. 나와 같은 대학생,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물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난 연애를 하지 않을 거예요."
"왜요? 좋아하는 사람은 있겠죠?"
"…."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
"…."
"결혼도 하지 않을 건가요?"
"언젠가는 하겠죠. 부모님이 맺어주시는 사람과."

잠시 정적. 결국 참았던 한 마디를 하고 만다.

"당신들의 전통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나요?"
"없어요, 하지만…."

질문이 무례했던 것 같아 화제를 돌리려고 했으나, 청년은 계속해서 얘기했다.

"나도 알고 있어요. 당신들은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고요. 우리도 점점 변하고 있고, 언젠가는 당신들처럼 되겠죠."

이렇게 말하는 그의 쓸쓸한 눈빛을 보며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러면서도 고집스럽게 확인사살까지 하고야 말았다.

"당신도 우리처럼 되기를 원하나요?"
"…언젠가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수줍게 털어놓는 스무 살의 고백에 가슴이 저릿해져 왔다. 그러면서도 낯선 이방인에게 자신들의 전통을 떳떳하게 보이고자 하는 청년의 우직함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여행자의 감상은 지독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아샤의 담담한 표정과 청년의 수줍은 고백을 다시 떠올리며, 제 나라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 속에 포함된 낭만적인 의미- 이를 테면 '소중한 것'이라거나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같은 -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곳이 상상 속의 그림과 부합하기를 바라는 관찰자의 시선일 뿐,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주체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국내외로 여행을 다니며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숭고함과 마주할 때마다 변치 않기를 바라곤 했다. 옛 풍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때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곤 했다. 물론,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의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박아놓고 위선을 떠는 고약한 취향 따위는 잠시 잊어버리고서 말이다.

소위 경제 발전이란 명목으로 기를 쓰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다가 문득 속죄의 의식처럼 전혀 발전이 안 된 시골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스럽고도 도시 중심적인 사고인가.
박완서, 『잃어버린 여행가방』中

바라나시에서 우연히 찾아 읽게 된 수필의 한 구절이다. 그의 말대로, 보여 지는 것 밖에는 볼 수 없는 여행자의 감상은 지독한 이기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기차에서 만난 소년
 기차에서 만난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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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천천히 내 인생의 고삐를 늦추고 있다

짧은 여행의 조각난 기억을 다듬는 일로 여행의 환상을 심어주는 수작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는 역시 기우가 아니었던 것 같다. 쏟아 놓은 내용은 그간 강렬했던 사건만 모두 모은 것이다. 두 시간 걷고 세 시간을 자던 게으른 모습이나 더위에 지쳐 반나절을 비싼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웠던 일, 커리는 꼴도 보기 싫어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해치웠던 기억 따위는 쏙 빼놨으니 말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인도 여행을 통해 내 자신의 바닥을 낱낱이 들여다보겠다던 다짐을 떠올려본다. 피 튀기는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나에 대한 오기라고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보니, 내 바닥은 '낱낱이' 볼 것도 없었다. 더위나 추위에는 허무하게 무너졌고, 보기 싫은 어두운 모습에 어김없이 눈을 감았고, 고작 1루피가 아까워 벌벌 떨었다. 설사병이 나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며칠을 보낸 적도 있었다. 꼭 가보리라 했던 곳의 절반도 채 둘러보지 못했다. 지금도 인도를 방랑하고 있을지 모를 시인 류시화씨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천천히 그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군인 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볼 게 없는 마을이었다. 비루먹은 개 두세 마리만 모래바람 속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았다. 여행은 꼭 무얼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낯선 세계로의 떠남을 동경하는 것은 외부에 이는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까.

인도여행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사막의 모래 한 알만큼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시인의 말처럼 내 자신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천천히, 나는 내 인생의 고삐를 늦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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