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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 캐나다에 온 지도 벌써 1년 반이 되어갑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캐나다에는 오직 두 개의 계절만 존재한다. 하나는 겨울철이고, 하나는 공사철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 겨울철의 눈에 대한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습니다. 캐나다의 겨울철에는 유달리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학교가 쉬게 되는데, 그런 일이 캐나다에서는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교회까지도 눈 때문에 주일 예배를 취소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빨리 눈을 치우지 않으면 사람 키보다 높이 쌓여서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내가 캐나다에 오기 전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교회 청년들이 삽을 들고 교인 집에 가서 도로에서부터 집의 현관까지 굴을 뚫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 겨울에는 눈 치우는 아르바이트도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일반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눈만 치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 기온 현상인지, 작년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토론토에 그다지 많은 눈이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이 가끔 폭설로 고생하고 있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하곤 했습니다.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은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 4살, 2살이 된 저의 딸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눈이 많이 와야 눈사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 캐나다에 내리는 눈은 거의 대부분이 잘 뭉쳐지지 않는 눈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10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딸들이 창밖을 보면서 환호성을 질렀고, 설렘으로 눈이 더 많이 쌓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날 내리는 눈도 잘 뭉쳐지지 않는 눈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피곤하고 밖에 나가서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귀찮았던 차에 좋은 구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자는 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내리는 눈은 뭉쳐지지 않는 눈이라서 눈사람을 만들 수 없다."

"저기 밖에 눈사람 만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 눈이 잘 뭉쳐지지 않아서 그래."

"나중에 잘 뭉쳐지는 눈이 내리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자."

 

여러 가지 감언이설을 동원해도 딸들은 쉽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나가서 눈이 잘 안뭉쳐진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했습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미닫이 문만 열면 나갈 수 있는 베란다에 눈이 제법 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충 옷을 챙겨 입히고 베란다로 나가서 눈을 뭉쳐보도록 했습니다. 그제서야 딸들은 지금 내리는 눈이 눈사람을 만들기에는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이 실망한 딸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베란다에 있는 눈을 억지로 뭉쳐서 조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손의 체온과 입김으로 눈을 녹이면 어느 정도 눈을 뭉칠 수 있었기 때문에 몇 개의 조그마한 눈덩이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섯 개의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딸들이 백설공주(Snow white)를 좋아하기 때문에 애초에 작은 눈사람 일곱 개를 만들려고 했는데, 만들다 보니 손이 너무 시려워서 다섯 개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베란다에 있는 눈사람을 보면서 자기들이 만든 눈사람이라고 좋아했습니다(물론 그 눈사람은 거의 100% 저 혼자 만들었고 딸들은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눈사람들이 다 녹아버렸습니다. 눈사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엄마 말 잘 안 듣고 밥도 잘 안 먹어서 도망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거짓말이 한 번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나름대로 밥을 잘 먹었습니다.

 

일반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눈이 많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잘 뭉쳐지는 눈이 많이 내려서, 자기들이 커다란 눈사람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개인블로그,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캐나다, #겨울,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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