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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폭풍은 대자연의 인간에 대한 경고인가!

눈 풍년을 맞아 눈 꽃과 더불어 까치밥이 빠알간 보석처럼 영롱하다.
▲ 뒷산 숲 속에서 눈 풍년을 맞아 눈 꽃과 더불어 까치밥이 빠알간 보석처럼 영롱하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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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백설백천지백', 이역의 자그마한 동산 위에 불쑥 솟아 올라 휘영청 대지를 비춰주는 달도 하얗고, 눈도 하얗고, 온 세상이 모두 하얗다. 동장군이 만년 동토의 제국, 저 멀리 북극의 전령사를 동반하여 유럽대륙으로 남하한 이후 거의 한 달 이상을 인간세상의 온갖 추악한 모습들의 다른 행태인 알록달록하고 얼룩진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의 색깔들을 영원히 덮어버릴 요량인 듯  온 대지와 산하를 하얗고 하얀 청량의 자연으로 돌려놓고 있다.

나그네가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이래, 한 달 이상 지속되는 눈 풍년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럴싸하게 미사여구를 섞긴 했지만 생각건대 이건 대자연이 속물근성의 인간들에게 주는 경고요 대반란의 전조라고 한다면 좀 과문한가. 물론 속물근성의 인간군상 속엔 나그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스스로 그러한 대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역량(?)에 맞추어 조금씩 거슬러 오다 질풍노도의 20세기를 거치고 첨단(?)의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간의 끝 간 데 없는 욕망과 욕심으로 인해 피폐하고 황량해진 지구, 종국에는 지구 최후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대자연의 경고인 것이다.

나그네가 방랑천리를 주유하던 이십 대의 젊은 시절에 보았던 영화 한 토막이 어제 본 것처럼  아직도 생생하다.

'우주선 고장으로 불시착한 어느 혹성에는 원숭이가 지배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라 '동물원의 인간'들이었고 말 그대로 짐승처럼 원숭이들의 노리개감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주인공은 원숭이들의 핍박과 살해 위협을 뚫고 두고 온 그리운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구에로의 탈출을 시도하다 어느 바닷가 모래 속에 파묻혀 있는 흉칙한 몰골의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한다.

주인공 찰톤헤스톤은 처절한 절규를 한다. "아! 인간들이여, 어쩌자고 이런 짓을..."
찰톤헤스톤이 그렇게 그리워하고 돌아가고자 했던 푸른색의 지구는 인간들 욕망의 부산물인 온갖 폐기물들과 핵의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아주 오래 전에 멸망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원숭이가 지배하는 이름 모를 우주의 한 혹성이 아니라 오래 전에 멸망해 버린 지구에 또 다른 문명체인 원숭이가 생성되어 그들만의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을 주인공은 알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찰톤헤스톤의 대책 없고 메아리 없는 짐승같은 절규와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짓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상 기후 현상과 증후군들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예측도 못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남미의 엘리뇨 현상과 라니냐 현상, 온대지방의 아열대화, 동남아시아의 쓰나미, 그리고 전래 없는 폭설, 물론 이 또한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자연섭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자연 그 자체인 지구 내부의 자연스런 요동의 한 조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지구 내부의 요동에 인간의 가공할 핵실험과 환경파괴 정책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고 고민해 볼 일이다.

게르만나라의 크리스마스 풍속도

경기침체는 풍요로운 독일도 비켜가지 못했다. 깨진 부분을 테이프로 붙인 입풍금을 불며 한 푼 적선을 길가는 행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독일판 노숙자(옵다크로제)
▲ 크리스마스 시기의 독일 거리 풍경 경기침체는 풍요로운 독일도 비켜가지 못했다. 깨진 부분을 테이프로 붙인 입풍금을 불며 한 푼 적선을 길가는 행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독일판 노숙자(옵다크로제)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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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조금 삼천포로 빠졌다. 현재 이 시각, 게르만나라는 크리스마스 날 오후 열두 시가 조금 넘었다. 창 밖은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고 언제 그칠지 짐작조차 못하겠다. 세상은 소담스런 눈송이들이 대지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 소리만 들릴 뿐 고요 그 자체다. 이곳 독일은 이렇게 눈풍년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오후부터는 조국의 그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나그네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소를 금치 못한다. 나그네는 떠들썩한 조국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생각하고 혼자라는 외로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인파 속에 묻혀서 하얗게 밤을 지새보자는 생각으로 이브 날 늦은 오후 거리에 나가 보았다.

그런데 웬걸, 나그네의 기대와는 달리 거리에는 스산한 '적막강산' 그 자체였다. 인파의 물결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구경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브의 본고장인 이곳 사람들은 이브 날 오후부터는 거리에 몰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들과 오붓히 크리스마스 특별식을 먹으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조용히 보내는 것임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 이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불과 1년 전의 허허롭고 쓸쓸했던 기억을 망각하고 또 거리에 나가 인파 속에 묻혀서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했으니 이거 원, 나그네가 아둔하기는 한가보다.

어제 오후 나그네는 고질적인 망각병 환자처럼 또 거리에 나가 인파 속에 휩쓸려 보자는 생각을 언뜻 하고는 '픽'하고 서글픈 웃음을 지었었다. 이브 날 오후 게르만나라의 거리 풍속도는 마치 스산한 유령의 거리를 연상케 한다는 것을 또 망각해 버린 자신이 어지간히도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나그네는 발 길을 똥가리와 함께 가을엔 연날리기를 하고 요즘처럼 눈이 쌓인 겨울엔 눈사람을 만들며 뒹굴었던 뒷 산 숲으로 돌렸다. 뭐, 산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정처 없이 걷다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는 포도밭 한복판 길 가에 처연히 세워져 있는 모자상 앞에서 한 자나 빠지는 눈 밭에 발을 담근 채  모자상을 응시하고 있는 나그네의 멍한 시선 저 너머에  똥가리와의 지난 추억 한 조각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누가 언제 옮겨다 놓았나. 높은 산길가에 까지, 어림잡아 수 톤은 됨 직한 돌 조각상, 엄마, 아빠와 아이. 나그네는 이브 날, 이곳에서 나의 똥가리를 보았다. 그리고 먼저 걸어간 선각자들도...
▲ 숲 속의 작은 길 옆에서 누가 언제 옮겨다 놓았나. 높은 산길가에 까지, 어림잡아 수 톤은 됨 직한 돌 조각상, 엄마, 아빠와 아이. 나그네는 이브 날, 이곳에서 나의 똥가리를 보았다. 그리고 먼저 걸어간 선각자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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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눈이 내렸던 어느 해 겨울, 나그네와 똥가리, 그리고 엄지엄마가 함께 산책을 했었다. 똥가리 녀석은 아주 가끔, 여느 아이들과는 쬐금 다른 구석이 있는 놈이다. 엄마나 아빠랑 함께 길을 가거나 산책을 할 때 여느 아이들처럼 아이들 특유의 종종걸음으로 앞장 서거나 부리나케 엄마 아빠를 쫓아 오는 법이 없다. 물론 손 잡고 걸을 때는 예외지만.

아주 가끔 애늙은이가 되는 똥가리

엄마 아빠와 한참 거리를 두고 뒤처져서 볼 것 다 보고 할 것 다 하고 그야말로 유유자적 하니 팔자 걸음을 하면서 엉기적 거리며 엄마나 아빠의 애간장을 태운다. 녀석은 어쩔 때의 행동거지를 보면 나그네완 무늬만 붕어빵인 것처럼 보인다. 나그네는 걸음이 상당히 빠른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그네는 가끔 애늙은이처럼 느긋하게 엉그적 거리는 똥가리에게 농담을 하곤 한다.

"욘석아, 니는 무늬만 아빠하고 붕어빵이냐? 다리 밑의 진짜 엄마랑 아빠에게 데려다 줄까?"

아빠의 협박(?)에 "헤헤헤, 알았어 아빠, 나 지금 쉬넬러(빨리) 갈게. 기다려!" 하고서도 조금 지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못 말리는 녀석이다.

그 날도 포도밭과 숲 사이에 난 길을 산책하고 우리 세 식구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머지않아 땅거미가 깔릴 것임에도 불구하고 똥가리 녀석이 또 뒤에 처져서 유유자적이었다. 엄지 엄마는 눈보라에 얼굴이 춥고 발이 시려 빨리 집에 가야겠다고 저 만치 앞서가고 있고, 녀석은 아빠가 빨리 오라고 재촉해도 알았다고만 할 뿐 뒤에서 엉기적거리고 있는 상황. 근데 똥가리 녀석은 가끔 애늙은이처럼 행동하면서도 겁이 많다. 나그네는 최종 수단으로 녀석의 약점을 찔러 보기로 했다. 쬐끔 야비하기는 하지만.

"똥가라. 니 옆 길가를 자세히 봐봐. 잘 보면 눈 속에 뭔가 꿈틀 거릴 거야. 그게 뭔지 아냐?  지금 시네몬스타(눈 괴물)가 눈에서 불쑥 나와 니를 잡아가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우와! 눈 괴물이다아. 아그그그 무서버라. 아빠는 모른다아."

"으아아. 시네몬스타아아! 아빠, 같이 가. 으다다다다." 녀석은 아빠의 공갈에 그제서야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이면서 허겁지겁 아빠에게 달려온다. 숨을 할딱거리면서 드디어 아빠 품에 안긴 녀석, 시키지 않아도 이젠 아빠 손을 꼭 잡고 겁 먹은 듯 뒤를 힐끗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따라오면서 그래도 한마디 한다.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시네몬스타는 없잖아. 세상에 귀신도 없고 몬스타도 없다구. 다 지어낸 이야기야." 녀석의 또 아이답지 않은 말에 은근히 충격을 받은 나그네가 질문을 했다.
"누가 그러든! 세상에 귀신이 없다고."
"아빠는 그것도 몰라? 누가 말한 게 아니고 내가 그냥 생각해 낸거야. 몬스타는 진짜 없다구."

어제 나그네는 똥가리와 걸었던 눈 길 속의 지난 추억 한 조각을 떠올리면서 오랜만에 흐믓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짜아식, 요럴 땐 아빠를 쏘옥 빼닮았단 말이야' 하는 팔불출의 자화자찬을 하면서 말이다. 나그네는 걷고 또 걸었다. 광풍 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집고 살을 에는 삭풍을 고스란히 받아가면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발자국은 후대가 따라 올 길이니 똑바로 걸어라.
▲ 숲 속의 눈 밭에서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발자국은 후대가 따라 올 길이니 똑바로 걸어라.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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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우리 민족의 영원한 선각자 김구 선생과 얼마 전에 영면하신 리영희 선생을 그리워했다.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후대들이 따라올 길이니 똑바로 걸어야 한다'는 두 분의 음성이 이녁의 방랑자에게 준엄한 일갈을 하는 듯했다. 몰아치는 눈보라 속 저 너머에서, 그리고 그 한 켠에 나의 분신 똥가리가 겹쳐졌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 12월 25일. 유럽은 지금 눈폭풍으로 거의 '카오스'의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오는 크리스마스는 우리들의 삭막한 마음들을 잠시나마 풍요롭게 만든다. 그리고 종교나 모든 것을 떠나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계의 명절로 오늘을 맞이하고 즐긴다.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이긴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다.

나그네도 역동의 청춘시절엔 왜 성탄절을 우리가 즐거워해야 하나 하고 시답잖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니 솔직히 많이 기다려지는 그런 이중성을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온갖 풍상에 찌들고 난 후의 달관(?)의 경지인가. 이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며 조용히 성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주변 사람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한다.

"프로에 바이나흐텐!(성탄절 잘 보내세요!)"

참,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내 나라 내 땅'에서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나의 분신 똥가리에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는 전화를 했다. 아빠 왈,
"똥가라.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았냐?"
"응. 받았어 아빠. 근데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야. 그리고 진짜로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에 없어. 다 공갈이야. 그치만 선물 받으니 기분은 참 좋아."
"뭐? 누가 그러든. 산타할아버지가 다 공갈이라고."
"아니 누가 그런 게 아니고 내가 그냥 생각해 낸 거야."

녀석의 생뚱 맞고 아이 같지 않은 말에 나그네는 또 은근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욘석아. 그런 것은 아빠를 닮지 말아라.' 아이는 아이다운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좋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의 꿈동이들에게 꿈을 실어 나르는 좋은 할아버지임에는 분명한 것 같으니까.


태그:#눈폭풍의 독일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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