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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이맘 때, 미국 시카고 인근에서 한방병원을 하던 큰 형님이 눈 길과 시야를 가린 안개 자욱한 길을 운전하다가 대형트럭과 충돌,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 그 얼마 전에는 오랜 지인이 독일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간암으로 초진을 받은 지 겨우 한 달도 넘지 못하고 수술 도중 잠자는 듯 세상을 떠났다.

며칠 전에 만나서 '의사도 수술하면 완치 될 거라고 했으니 수술 끝나고 많은 이야기 나누자'고 웃으면서 가볍게 헤어진 친구였다. 그 친구의 독일인 동료들과 지인들이 모인 영결식 자리에서 나그네가 읽은 추도사는 이렇게 끝맺음을 한다.

'...이곳, 땅 나라에서 소풍 끝나는 날, 나, 들풀하나도 바람결 타고 주희 형 곁으로 날아가리다. 기다리시오. 주희 형!'

큰 형님과 친구의 예기치 않은 급작스런 죽음의 여진은 아직도 나그네를 종종 슬프게 한다.

문단의 원로작가 박완서 선생이 역시 암으로 타계 했다는 소식이 보이지 않은 인터넷 선을 타고 벌써 대양과 대륙을 건너왔다. 독일 유학생 출신 지인으로부터 겨우 한 잔 술값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유명한 동백림 사건에 정말 '억울하지도 않게' 엮이어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의 갖은 고초를 받고 행려병자로 길 위를 방랑하다가 쓸쓸히 하늘나라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 그리고 걸레스님 중광과 함께 어울리며 한 때 대한민국 3대 괴짜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박완서 선생의 타계에 부쳐 한 마디 했다. 젊은 날, 나이를 넘나드는 친구이자 동지였던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 <귀천>의 한 구절을 인용한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나라로 가서 평안하시라고'

나그네는 지난 주에 박완서 선생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페러디한 '그 많던 쥐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제목으로 글을 한 꼭지 올렸었다. 제목이 '뜬금없이' 바뀌어 버렸지만 말이다. 편집진들의 고충과 의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좀 '거시기'하기는 하다.

어쨌거나 박완서 선생의 위중함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선생의 작품 제목을 표절(?)한 것인데 불과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타계 소식을 접하니 한마디로 '대략난감'이고 인생무상이라는 느낌이다. 선생의 편한 영면을 빌면서 이 세상 소풍, 즐거웠기를 역시 이번 주에 찰나의 생사를 두 번씩이나 넘나들었던 나그네는 믿어 의심치 않으며 고안을 추모한다.

백주 대낮에 대형트럭의 횡포는 독일도 마찬가지

지난 수요일 오후 퇴근길에서다. 독일은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에서도 시속 백Km로  달려도 무방한 구간들이 많다. 나그네가 현재 다니고 있는 일터에 가는 길도 거의 전 구간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가파른 경사 길도 있고 대관령의 '아흔아홉고개길' 정도는 아니지만 구비길도 몇 군데 있다. 얼마 전에 소속 회사의 지시로 외곽지대의 새 일터로 자리를 옮겼기에 매일 두 번씩 이곳을 지난다. 새 일터는 시속 백Km로 운전해서 약 반 시간이 걸린다. 수요일 오후, 눈도 오지 않았고 약간 찌푸린 날씨이기는 했지만 도로 사정도 괜찮았다.

이 삼거리에서 나그네는 첫 번째 염라대왕 앞에 섰다.
▲ 대형트럭의 횡포 이 삼거리에서 나그네는 첫 번째 염라대왕 앞에 섰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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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평상시 습관대로 교통표지판의 지시에 한치의 어김도 없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시속 백Km 운전구간에서다. 대략 백 미터 전방에 삼거리가 보이고 그 왼 쪽에 화물차 두 칸을 연결한 대형트럭 한 대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대기하고 있었다. 나그네는 대형트럭이 계속 대기할 거라 여겼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웬걸, 약 칠십 미터 쯤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형트럭이 전혀 예기하지 않게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정말 간발의 차로 대형트럭의 두 번째로 연결 된 화물칸 이십 센티 앞에서 차가 멈췄다. 다행히 나그네의 애마는 ABS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 어쨌거나 천우신조다. 대형차 운전자는 이 위기일발의 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유히 왼쪽으로 난 도로로 굉음도 요란스럽게 부르릉거리며 빠져나가 제 갈 길을 가 버렸다. 현장을 목격한 오가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대형트럭을 향해 무언가 고함을 지르며 손짓을 하고 있음에도... 나그네는 한 동안 멍 하니 운전대를 잡고 쓴 웃음만 짓고 말았다.

새해 들어 이것저것 액땜할 일들이 생겨온 터라 이 번에 조금 더 큰 액땜을 했다 여기고 다시 평상시 처럼 도로를 달려 아무도 없는 나만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그 동안 나그네의 조련에 잘 호응해준 철마에 내장 된 CD 한 켠에서 김광석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의 목소리는 나를 슬프게..."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그 다음 날 목요일 새벽에 나그네에게 또 들이 닥쳤다. 나그네는 자기 전에 뉴스의 일기예보를 듣는다.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깜깜한 어둠 속을 달리려면 그날의 도로사정을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요즘처럼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엔 가파르고 굴곡이 심한 도심 외곽지역 도로의 운전은 만전을 기해야 한다. 여섯 시부터 시작하는 일에 늦지 않으려면 네시 반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고 이것저것 준비해서 다섯 시에 집을 나서야만 한다.

일기예보는 늦은 밤에 눈과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란다. 이럴 때는 좀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미끄러운 도로를 달리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새벽, 예상했던 대로다. 도로가 얼어붙었다. 겨울타이어를 장착했다고는 하지만 속도를 내야 하는 외곽지역에서의 커브 길은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 평소보다 속도를 줄여 일 터 가는 길에 또 김광석의 노래를 틀어 놓았다.

김광석의 노래는 환한 대낮에 들을 때와 깜깜한 새벽 길에 들을 때는 같은 가사요 목소리지만 어쩔 땐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광석의 짧은 생애가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오십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즈음'에 나는 '서른 즈음'에 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를 들으면서 출 퇴근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찰나요 백지 한 장 차이다

악천후의 날씨 때문인지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들이 거의 없다. 물론 이른 새벽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근을 접거나 미룬 사람들이 상당히 생겼다는 거다. 집과 일 터의 중간 쯤에 있는 커브 길을 돈 순간 시야에 두 개의 자동차 불빛이 들어왔다. 한 불빛은 대각선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있었고, 다른 한 불빛은 비상등 불빛이었다. 빙판 길을 마주보고 오던 두 차량이 충돌을 한 후 한 차량은 길 가 움푹 파인 밭두렁에 처박힌 채 대각선으로 하늘을 보고 있었고 상대편 차량은 도로 한 복판에 선 채 비상 깜박이를 켜고 위기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에 일어난 사고인 듯 하다.

어두운 새벽, 생사의 찰나를 넘나들었던 2차선 도로. 이번에는 대형트럭의 잘못은 아니었다.
▲ 사건 현장 어두운 새벽, 생사의 찰나를 넘나들었던 2차선 도로. 이번에는 대형트럭의 잘못은 아니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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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어제 오후에 잘 조련된 말처럼 정확히 명령을 시행하던 브레이크가 제대로 듣지 않았다. 길은 얼어서 빙판에 가까웠고 게다가 약간 경사진 구간이었다. 이럴 땐 ABS브레이크도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비상등을 켠 사고차량과 그대로 충돌하기 일보직전 좌측으로 핸들을 틀어 2차선도로의 다른 차선으로 들어서는데 성공했다. 중앙선을 침범해서 일촉즉발의 순간에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재앙이 바로 코 앞에서 돌진해 오고 있었다. 대형트럭이 불과 삼사십 미터 전방에서 빙판 길임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열 두시간만에 다시 염라대왕 앞에 섰던 도로. 나그네는 이곳에서 순간이나마 득도(?)의 경지를 느꼈다.
▲ 두 번째 사건 현장 열 두시간만에 다시 염라대왕 앞에 섰던 도로. 나그네는 이곳에서 순간이나마 득도(?)의 경지를 느꼈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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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판단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했던가. 아니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다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서 본래 차선으로 들어섰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그네는 무아의 경지를 맛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생각도 없는 무(無)의 경지, 그리고 평상심으로 돌아왔을 때는 거대한 악마처럼 돌진해 왔던 대형트럭은 이미 시야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나의 철마는 일 터를 향해 가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1~2초 사이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ㄷ자를 넘어 요철 모양으로 나의 철마는 그야말로 무인지경의 묘기(?)를 보여준 것이다. 어느 아동용 영화였던가.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위기상황을 극복해 가며 도로를 질주하는 무인 승용차처럼 나그네는 지금도 직접 운전을 했다는 생각보다 나의 철마가 스스로 찰나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터에 도착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인사를 하고 휴게실에 들어서니 방향이 같아서 종종 도로상에서 마주치는 동료 한 사람이 걱정 반 궁금증 반인 얼굴 표정으로 물어왔다.

"너, 괜찮은 거야? 정말 괜찮아?"

"뭘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나그네를 의아하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덧붙여 말을 늘어 놓는다.

"내가 바로 너 바로 뒤에 따라오면서 다 보았어. 너는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거야.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너 사람 맞아? 오늘 일 할 수 있겠니? 오늘 하루 그냥 집에 가서 안정을 취하고 쉬지 그래. 원한다면 내가 관리자에게 말해 줄게."

나그네는 그의 근심과 제의가 고맙기는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고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이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사건일 수도 있기에 고맙다고 하면서 정중히 사양을 했다. 부상을 당하거나 차가 파손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른 이들의 관점에선 전혀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이맘 때 대형트럭과 충돌해서 유명을 달리한 형님 생각이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어쨌거나 생과 사의 경계라는 것이 순간이요, 종이 한 장의 간격보다 더 좁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하루였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겪어온 지난 일들처럼 서서히 감각이 둔해지겠지만,

나그네는 쉰 두 해를 (아니 새해가 밝았으니 우리 식으로는 쉰 셋인가? 국제나그네로 오랜 세월 밖에서 떠돌다 보니 사실 좀 헷갈린다) 살아오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을 숫하게 넘나들었다. 한국 고속도로에서 차가 꺼꾸로 뒤집어지는 등 몇 번의 대형 교통사고는 기본이고 한국의 안양교도소에서 소내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당시 전대협 의장 태재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철우, 사노맹의 백태웅, 민애전 대변인 조덕원 등과 함께 모든 곡기는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십 일을 넘나드는 단식을 할 때(물론 물도 마시지 않은 단식은 나그네 혼자만 했다)는 거의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을 넘으면서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 했던 일, 망명을 전후로 해서 전무후무한 누명을 쓰고 독일 감옥에서 징역살이 할 때 부당한 독일 검찰에 대항해서 또 다시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일, 독일 유수의 신문사 프레스센터에서 할복을 하고 정신을 잃었던 일(깨어나 보니 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강제로 독일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서 울분의 세월을 보냈던 일, 기타 등등.

나그네는 지금 지난 일들을 헤아려 보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참으로 파란만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그 때마다 나그네는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라고. 그리고 마음을 비우며 남은 생을 살아가자고.

그러나 나그네도 보통 사람 중의 하나인지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느냐는 듯 각박한 현실에 매몰되어 바둥거리며 산다. 아래를 보며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위를 보며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혹하리만치 자기 반성을 하기도 한 지난 세월들이었다. 그렇게 현실은 녹록지가 않았던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남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그래도 나는 숨을 쉬고 살고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면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 주에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적 같은 일을 하루 간격으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대략 열 두 시간 이내에 두 번이나 겪었다. 수요일 늦은 오후에 한 번, 다음 날 이른 새벽에 한 번, 정초에 액땜 한 번 제대로 한 셈이다. 나그네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독일 지인에게 전화로 거짓말 같은 경험담을 이야기 하면서 껄껄껄 웃어젖혔다.

"염라대왕 앞에 하루 간격으로 두 번이나 갔다 오니까 자질구레한(?) 근심들? 그까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하하"


태그:#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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