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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서점을 습격하지 않을래?"

 

새 아파트로 이사온 첫 날, 생전 처음 보는 옆집 남자에게 이런 제안을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십중팔구는 상대방이 아마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면 약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보던가.

 

하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사람은 너무도 진지하다. 서점을 습격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 있는 대사전을 한 권 강탈하려는 것이다. 대사전이 필요하면 돈 주고 사면 되지 않냐는 질문에 상대방은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묻는다.

 

"서점을 습격하면 왜 안 되는데?"

 

워낙 황당한 질문이라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점을 습격하면 안 되는 이유는 많다. 실정법을 위반하는 짓이기 때문에, 굳이 습격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에 등.

 

서점 털기에 휘말려든 대학생

 

이사카 코타로의 2003년 작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 이런 서점 습격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 시나는 대학생활을 위해서 얻은 아파트로 이사온 첫 날, 옆집 남자 가와사키에게 위와 같은 제안을 받는다. 시나는 당황해서 거절하지만, 가와사키가 워낙 강력하게 권하고 있다. 시나의 역할은 서점 뒷문을 30분 동안만 지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혹시 경찰에 잡히더라도 시나의 죄는 상대적으로 작아지게 된다. 한밤 중 서점이 문을 닫기 바로 전에 들어가서 책을 가져오는 거니까 경찰에 잡힐 가능성도 줄어든다. 가와사키는 열심히 설득하고 약간 어리버리한 시나는 자기도 모르게 그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사실 시나는 약간 흥분하고 있다. 무의미하고 바보스럽고 법에도 위배되는 짓이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시나를 자극한다. 어린아이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약간의 일탈이 가져다주는 흥분이 시나를 들뜨게 만든 것이다.

 

가와사키가 대사전을 훔치려는 이유도 단순하다. 같은 아파트에 외국인이 한 명 살고 있는데 그 외국인에게 선물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와사키와 시나는 한밤 중에 서점으로 향한다. 시나는 이 경험을 누군가에게 자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책 한 권 정도라면 문제없는 것 아닐까?

 

2년 전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

 

가와사키의 이상한 제안만큼이나 이 작품은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와 2년 전의 과거가 계속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단순한 교차편집이라면 특별히 독특할 것도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현재의 화자와 2년 전의 화자가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현재의 '나'는 갓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 시나다. 2년 전의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펫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2세의 여성 고토미다. 작가가 이 사실을 애초에 알려주고 작품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이 두 명의 '나'가 교대로 등장하는 것 때문에 약간 당황하게 된다.

 

대사전을 선물 받게 될 외국인과 가와사키도 2년 전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대사전에 관한 이야기도 2년 전에 언급된다. 2년 전에 시작된 사연이 어찌어찌 흘러서 현재까지 오게 되었다. 시나는 서점을 습격하면서 그 이야기의 끄트머리 또는 결말에 우연히 끼어들게 된 것이다.

 

쉽지 않은 구성이지만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과 단서의 정체가 후반부에 하나씩 드러난다. 2년 전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후반부에 모습을 나타내며 현재와 과거가 완벽하게 맞물리게 된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가 무슨 의미인지도 마지막에 밝혀진다. 독특한 구성 때문에 도입부에서 약간 당황하게 되지만, 그것만 파악하고 나면 푹 빠져서 읽게 되는 작품이다.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간다.

덧붙이는 글 |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코타로 지음 / 인단비 옮김. 황매 펴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황매(푸른바람)(2007)


태그:#이사카 코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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