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일보가 구제역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34년이었다. 당시 농가에 배포된 가축질병 예방 포스터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질병에 걸린 가축은 즉시 신고할 것' '예방주사는 자진해서 할 일' '사체(死體)는 불에 태워 깊게 묻을 것' '매몰지 부근에서 잡초를 베지 말 것' '축사는 항상 청결하게 유지할 일'….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한 77년 전의 이 포스터 매뉴얼대로만 했더라면 이번 구제역 사태는 지금처럼 '재앙'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첨단 IT, 유비쿼터스 시대라는 2011년 한국의 구제역 대응은 농가에 전화기와 TV조차 없었던 1930년대보다 후퇴했는지 모른다."
- [태평로] 1930년대 구제역 매뉴얼만 지켰어도, 2011년 2월 22일 -

77년 전의 구제역 포스터를 찾아낸 기자의 열정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열정으로 발굴한(?) 포스터의 문구는 오늘날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청결 유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것을 놓고 '구제역 매뉴얼'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기자의 단순함일까?

힘들게 발견한 '구제역 매뉴얼'을 통해 기자는 날카롭게 오늘날 구제역 사태의 원인을 규명한다. 기자의 눈에는 구제역 책임이 지방정부의 무능함에 있다. 중앙정부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지방정부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이번 구제역 사태의 처음과 끝엔 모두 지방정부가 있었다... 살처분한 가축을 한강 상류 같은 식수원 주변에 묻는 것도, 비탈에 대충 묻어서 침출수가 줄줄 새나오게 한 것도, 돼지를 수천 마리씩 생매장해 부패한 사체가 땅 위로 튀어오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도 지자체들의 잘못이 크다."

이러한 가슴 아픈 현실은 현재 중앙정부가 국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계속 발목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고 있다. 중앙정부에 대한 비판은 하나도 없다. 오로지 지방정부가 일을 그르친 것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중앙정부는 '4대강 사업'으로 열심히 우리나라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지방정부가 못 따라 주고 있다는 푸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자체가 주도해서 만든 매몰지 곳곳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주민들은 먹는 물 걱정에 빠져 있는데 지자체를 감시하는 지방의회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글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에 대한 방비와 대비책이 1930년대밖에 없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노무현 정부에서 2003년 발행한 <구제역 백서>라는 것이 있다. 2003년 농림수산식품부와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가 발간한 <구제역 백서>는 지난 2000년과 2002년 발생한 구제역을 토대로 총 343쪽에 걸쳐 구제역의 유입 경위, 방역 평가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담고 있다.

1930년대 조잡한 포스터 몇 장을 토대로 구제역을 막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조선일보는 가까운 과거에서 구제역의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힘들게 일제시대로 소급한 것일까?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구제역 백서>를 왜 이명박 정부는 외면했을까?

노무현 정권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이명박 정부의 노력은 노무현 정부가 만들어 놓은 대다수를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랬으니 노무현 정부가 발행한 <구제역 백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도 <구제역 백서>는 거들떠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보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1930년대의 조잡하고 상식적인 '구제역 매뉴얼'을 대단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뷰,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구제역, #구제역 백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