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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 외곽, 노점상. 간단한 튀김거리를 파는 가족들.
▲ 구이양 가는 길 싱이 외곽, 노점상. 간단한 튀김거리를 파는 가족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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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낯설음에 대하여

타의에 의해 묵게 된 호텔이지만, 새로 옮긴 하이위 빈관은 고급답게 깨끗하고 호화로웠다. 그래서일까? 싱이에서의 둘째 날 밤은 꿈도 없이 잠이 들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호텔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미적거리며 여행지의 아침을 즐긴다.

"역시 여행에서 아침은 현지식이어야 해."

아침 식사였던 호텔 뷔페가 영 성에 차지 않아 한 마디 하자 아내도 동감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서양식에 중국식이 뒤섞인 퓨전의 호텔 뷔페보다는 길거리에 나가 사먹는 쌀국수가 더 좋은 걸 보니 아내도 이제 배낭 여행자가 다 된 것 같다. 호텔비에 포함되어 있는 아침식사라 먹긴 먹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하다.

"안순 가는 길이 9시에 막혔다는데요."

후배가 걱정어린 투로 나를 찾아와 말한다. 어제 싱이에는 비가 내렸는데, 안순 넘어가는 길에는 눈이 와 아침 아홉시에 차랑 통행이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첫차도 겨우겨우 갔다며,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할 수 없지, 뭐. 여행이라는 게 계획한 대로 다 되면 재미없잖아. 그냥 싱이에서 하루 더 묵을까?"

안순(安順)은 황과수폭포(黃果樹瀑布)를 보기 위해 계획했던 여행지다. 그런데 길이 끊겨 갈 수 없다니 포기해야 하나? 아쉽다는 생각을 하는데, 후배가 곰곰 생각하더니 입을 연다.

"그냥 구이양으로 해서 카이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안순에 들르지요."

그렇게 해서 다음 목적지는 구이양으로 자연스레 결정된다. 안순을 거쳐 들르기로 한 곳이었는데, 먼저 가는 셈이다.

짐을 챙겨 호텔 로비로 내려가니, 프런트에서 구이양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던 후배가 빙그레 웃는다.

"여기서 기다리래요. 버스를 잡아온다는데요."

버스를 잡아온다고? 아니 구이양 가는 버스면 시외버스인데, 그걸 호텔로 잡아올 수가 있다고? 내가 황당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후배가 다시 웃으며 말한다.

"여긴 중국이잖아요. 되는 일도 없지만, 안 되는 일도 없어요."

정말 그 말대로 얼마 후에 제복을 입은 호텔 직원이 출입구에서 우리를 부른다. 나가보니, 짙은 초록색 버스 한 대가 호텔 정문을 들어서고 있다. 일행 모두들 황당하지만 즐거운 표정이다. 차에 오르니 승객이 몇 되지 않는다.

호텔을 나선 버스는 한 십 여 분 달리더니 갑자기 멈춰 선다. 차에서 기름이 샌다는 것이다. 이런, 차를 고쳐서 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하고 걱정을 하는데, 세운 우리 차 앞에 다른 버스가 와 선다.

"모두들 앞 차를 타라. 이 차는 기름이 새서 못 간다."

차장이 우리에게 소리친다. 구이양 행 다른 버스로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옮겨 탄 버스는 아까 버스보다 더 새 차다. 새 차라고 해도 꽤 낡아 의자가 흔들거리기도 하고, 뒤로 젖혀진 상태로 고정돼 버린 것도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갈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괜히 잘못됐으면 차 수리하느라 한정없이 기다려야 할 판이었으니 말이다.  

싱이 시내를 벗어나던 버스가 이번에는 외곽 버스 터미널에 서더니 한 시간 남짓 움직이지 않는다. 그동안 사람들이 하나 둘 차에 올라 좌석이 꽉 찬다. 갓 결혼한 신부인 듯, 짙은 화장을 하고 부케를 든 신부가 노인네들을 모시고 차에 오르더니, 자리를 잡아주고 내려간다. 차창으로 바라보니, 신부는 차 안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차 안에 탄 노인데들도 눈물을 찍어낸다. 아마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친정 부모인가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이별의 슬픔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나는 국외자처럼 바라본다.

기다리기 지루해 차에서 내려 길가로 가 본다. 튀긴 음식을 파는 곳에 가 군것질 거리를 좀 산다. 식구들인지, 여럿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신기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나를 쳐다본다. 외국인이 길거리 음식을 사 먹으니 이상한가보다. 그 시선을 두로 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

드디어 오전 10시 30분, 버스가 터미널을 벗어난다. 빈자리 하나 없이 손님을 모두 채우고 출발하는 것이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얼었대요. 원래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12시간 쯤 걸릴 것 같다네요."

후배가 운전기사의 말을 전한다. 12시간이라니, 이 좁은 버스 안에서, 게다가 내 의자는 뒤로 젖혀져 허리 지지조차 힘든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 내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고속도로로 진입을 하면서 보니, 구이양까지 거리가 317㎞다. 12시간 걸리면 한 시간에 약 24㎞ 정도 간다는 것인데, 거의 달리지 않고 기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버스는 시속 60㎞는 넘는 속도로 달린다. 워낙 변수가 많은 중국의 도로 교통 사정을 알기에,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겨 한없이 멈춰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정말 얼마 달리지 않아 고속도로 차선 하나가 막혀있고, 무슨 이유에선지 막힌 차선에는 흙무더기를 군데군데 쌓아놓았다. 정말 열두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간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지, 안개 가득한 산기슭으로 눈이 제법 쌓여 있다.

도로에도 군데군데 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날씨가 그리 춥지는 않은지, 눈은 녹는 중이다.
산비탈에 일구어놓은 작은 밭에는 푸른 보리가 싱그럽다. 그 보리 위에 살짝 눈이 놓여 있다. 배추도 머리에 눈을 인 채로 안개를 견뎌내고 있다. 상고대가 눈부신 고개를 넘기도 한다. 터널을 하나 지나고 나자, 그쪽은 다른 세상이다. 눈은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차는 씽씽 달린다. 이렇게 달리면 다섯 시간도 안 걸려 구이양에 도착할 것 같다.

눈이 조금 온 것을 가지고 그리 호들갑이었나 보다. 하긴 워낙 눈이 오지 않는 구이저우이고 보면, 이 정도 눈에도 길이 끊길 만하다. 더구나 몇 년 만에 내린 눈이라니, 아무런 대비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같으면 그저 조심운전을 홍보할 정도이지만, 여기서는 도로까지 차단해야 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우리는 늘 익숙한 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곤 한다. 그러나 익숙함이란 실은 자신에게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익숙하다고 남도 익숙한 것은 아니다. 나의 익숙함이 남에게는 낯설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나의 익숙함으로 '겨우 요정도 눈 가지고'라고 판단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구이저우 사람들에게는 이런 눈이야말로 폭설일 수도 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낯설음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아, 사람은 얼마나 자기 안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인가!

구이양(貴陽) 가는 길

열두 시 반, 버스 안 룸미러를 보니, 기사가 꾸벅꾸벅 존다. 길은 구불구불하게 산을 휘감아 도는데, 기사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앞을 주시하다가 깜빡 졸곤 한다. 그걸 바라보는 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괜히 기사 옆에 앉아있는 차장에게 말을 붙인다.

"화장실 가고 싶다."
"조금 더 가면 휴게소 있어."
"얼마나 가야 되는데?"
"한 삼십 분 쯤."
"이거 먹어봐. 한국 껌이다."

내가 가져간 껌을 꺼내 차장에게 내밀자, 차장이 받아 기사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도 씹는다.

"고마워."

기사가 껌을 입에 넣고 씹으며 말한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도 안심이 되어 내 자리로 돌아온다.

바위산 아래 작은 집, 그 앞에는 손바닥만한 밭. 삶이란 저렇게도 살아지는 법이다.
▲ 구이양 가는 길 바위산 아래 작은 집, 그 앞에는 손바닥만한 밭. 삶이란 저렇게도 살아지는 법이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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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으로 낯설고 신기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바위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 같은 산들이 삐쭉삐쭉 솟아있다. 그 바위산은 도로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휘감겨 있고, 바위산 사이로 아찔한 협곡이다. 협곡에는 거센 물줄기가 흐른다.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산들은 조밀하고 강건하다.

바위벼랑 앞으로 집이 한 채 있다. 집 뒤로는 아득하게 하늘로 치솟은 바위산이다. 집은 바위산 아래 붙은 벌레처럼 조그맣고 낮다. 집 색깔과 바위 색깔이 똑같아서, 집은 바위처럼 보인다. 옥상에는 물이 흥건하다. 아마도 빗물을 받아놓았다가 쓰는 모양이다. 집 앞으로는 손바닥 만한 밭이 있다.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한 달 먹을 곡식조차 추수할 수 없을 것 같은 넓이다. 말 그대로 다랑논이다. '세 평 땅이 없다'는 구이저우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풍경이다.

깎아지르고 모아 세운 바위틈으로 군데군데 나무들이 서있다. 그런 풍경조차 막막하다. 거대한 바위산을 등지고, 작은 돌집에 살며, 좁디좁은 텃밭에 기대 일생을 보내야 하는 구이저우 사람들의 삶이 바라보는 나에게조차 먹먹하게 전해온다. 삶은 거대한 것이 아니고, 그저 자기가 등대고 살고 있는 환경에서 하루하루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풍경이다.

금방 굴러 떨어지고 넘어질 것 같은 굽이 길을 차는 쉴 새 없이 달려가는데, 명색이 고속도로라는 길을 짐을 잔뜩 지고 인 사람들이 걸어간다. 고속도로 바깥으로는 바위 산, 산 군데군데 덩그마니 떨어져 집들이 있다. 아래에서 산 중턱에 있는 집까지 가는 길이 바위 벼랑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그 옛 길보다는 고속도로를 걸어가는 것이 훨씬 빠르겠구나,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길 가로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차를 위해 만든 길이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유용한 통행로가 되어버린 고속도로가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싱이에서 구이양 가는 길은 깎아지른 바위산의 숲과 그 속에 깃들어 사는 구이저우 사람들의 삶터를 구경하는 사이, 차가 구이양에 도착한다. 오후 5시다. 여덟 시간 가까이 걸린 길이다. 그러나 그 긴 길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풍경과 삶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 그 길에 있기 때문이다.

카이리(凱里)로 가는 기차표를 구하다

아침을 먹고 구이양 역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이곳에서 카이리 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줄을 서서 표 살 차례를 기다리며, 나는 어젯밤 꼬치구이집의 기억을 떠올린다.

구이양은 구이저우의 성도다. 이름답게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북적거린다. 저녁을 먹고 찾아간 꼬치구이 집은 한적했다.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실내로만 모인 탓일까? 문도 없이 앞면이 훤하게 트인 집이라 바람이 제법 찼다. 양꼬치와 돼지고기 꼬치를 시켜놓고, 꼬치 맛보다 일하는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더 좋았다.

우리가 서로 떠들며 대화를 나누자, 꼬치구이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아가씨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 속에,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이 배어 있다.

잠시 후 도저히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는 지, 아가씨가 말을 걸어왔다.

구이양 꼬치구이집 아가씨. 한국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갑다며 환하게 웃었다.
▲ 구이양 구이양 꼬치구이집 아가씨. 한국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갑다며 환하게 웃었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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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어느 나라에서 왔니? 일본?"
"아니, 우리는 한국 사람이야."

내 대답에 아가씨가 반색을 했다.

"한국? 정말 한국?"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가씨는 환하게 웃었다.

"한국 드라마 많이 봤다. 한국사람 처음 보는데, 반갑다."

그런 말을 하는 아가씨 표정에 신기함이 어렸다.

아내가 아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카메라로 아가씨를 담았다.  날씨는 추웠고, 그래서 꼬치와 함께 시킨 맥주는 몇 잔 마시지도 않고 질려버렸지만, 구이양에서의 그 밤이 행복하게 기억되는 것은, 우리는 마치 친구처럼 반가워해주던 꼬치구이집 아가씨 때문이었다.

사실 구이양은 그냥 지나쳐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안순으로 가는 길이 끊기는 바람에 하룻밤을 묵게 된 것이다. 계획에 없던 여행지도 여행자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젯밤의 구이양이 그런 곳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줄 밖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다가와 툭 친다.

없는 표를 안내센터에서 구할 수 있었다.
▲ 구이양 역 없는 표를 안내센터에서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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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이 가냐?"

어제 온 싱이에 가자는 바람에 피식 웃으니, 아주머니가 소매를 잡아끈다.

"우리 차로 싱이 가자."

삐끼 아주머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개인이 차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경우가 많다.

"아냐, 우리는 카이리 간다."

내 말에 아주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를 친다.

"야, 카이리 가는데 왜 버스를 기다려. 저기 가서 기차표 끊어라."

아주머니가 기차역을 손가락질한다. 이미 쿤밍에서 기차표 산다고 헛고생을 한 기억이 있어 버스를 탈 생각이었는데, 아주머니는 기차표가 많으니 기차로 가라는 것이다.

"정말? 기차표가 있어?"
"그럼, 많이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후배가 얼른 기차역으로 달려가더니, 잠시 후 웃음을 가득 띤 채 돌아온다.

"표 구했어요. 기차 타고 가지요."
"표가 있었어?"

내가 반색을 하며 묻자 후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요. 표는 매진이라는데, 안내 부스에 가서 샀어요."

혹시나 싶어서 안내 부스에 가서 카이리 가는 표 살 수 있냐고 묻자, 안내원이 처음에는 매표구를 가리켰단다. 나 외국인인데, 매진이라고 해서 못 샀다. 좀 구해주라. 그래? 어느 나라 사람인데? 한국사람. 아, 한국사람! 몇 장 필요한데? 열두 장. 열두 장? 조금 기다려라. 그러더니 이내 표를 구해주었단다.

한국 사람인 것 덕을 보는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요즘 우리나라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때는 민주화의 전범이었던 나라, 오랜 독재 정권의 폭압을 견뎌내고 민주적 사회를 만들었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외국 여행에서 여권을 자랑스럽게 내밀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역주행이 하도 흔해서,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남세스러울 때도 있기는 하다. 그냥 나 스스로 느끼는 자격지심 같은 것일까?

카이리로 가는 기차를 탔다.
▲ 카이리행 기차 카이리로 가는 기차를 탔다.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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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런 감정조차 진정한 여행자답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그냥 여행일 뿐이다. 낯선 세계를 만나, 그 새로움에 감동하는 자세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고 누굴 만나든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나는 아직도 일상의 끈을 치렁치렁 매달고, 여행자인 척 하는 것 아닐까? 여행자는 모름지기 아나키스트여야 하는 것 아닐까? 매이지 않고,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제도와 틀을 넘어서서 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여행자 아닐까?

표를 구했다는 말을 듣고, 잠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기차역 대합실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발 디딜 틈조차 없어 보인다. 9시 45분에 출발하는 줄에 대기했다가 기차를 탄다. 잉주어(硬座), 딱딱한 좌석이 자리다. 직각으로 등받이가 세워져 있어 어쩔 수 없이 부동자세를 만들어야 하고, 세 명이 앉아야 해서 비좁기 그지없는 하급의 좌석이지만, 그런 만큼 값이 가장 싸다.

우리가 가는 카이리까지는 16위안, 약 네 시간 거리다. 짧은 거리니 이런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지만, 밤을 새워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는 좌석이다. 주로 중국 서민들이 이용하는 좌석이라, 중국 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여행자들이 때때로 타볼 만한 좌석이기도 하다.

90도로 허리를 세워야 하는 딱딱한 의자. 중국 사람들의 삶의 내음이 가득하다.
▲ 카이리행 기차 안 90도로 허리를 세워야 하는 딱딱한 의자. 중국 사람들의 삶의 내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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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사람들을 헤치고 내 좌석으로 가니, 창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다. 우리가 앉으려고 하자, 할아버지는 빈 자리에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던 해바라기 씨를 얼른 툭툭 털어낸다. 아마도 구이양에서 내린 사람들이 흩어놓고 간 것인 모양인데,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씀씀이가 따스하게 전해온다.  

자리에 앉아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까의 할아버지가 우리를 뻔히 바라본다. 건너편을 보니 한창 트럼프에 열중하던 젊은 친구들도 힐끗힐끗 우리를 바라본다. 외국인이라곤 거의 타지 않는 잉주어에 낯선 말을 하는 사람들이 탔으니, 이상한 생각이 들만도 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한국에서 왔어요."

내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환해진다.

"한국? 만나서 반가워요."

얼굴에 흰 수염이 삐죽삐죽 나와 있고, 주름도 제법 많아 인생의 연륜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 같다.

그 말 건넴을 계기로 카이리까지 가는 내내 행복했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환구어삔(范國斌)이고, 작년까지 총지앙(从江) 현 제2중학교에서 물리선생으로 일했단다. 지금은 카이리에 살고 있는데, 카이리에는 모두 16개의 학교가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여 주신다. 중국은 61세가 퇴직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올해 62살이라는 셈이다. 나이보다는 훨씬 더 늙어 보이지만, 늙는다는 것이 저렇게 넉넉해지기도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편안한 얼굴이다.

카드 놀이를 하는 묘족 대학생들
▲ 묘족 친구들 카드 놀이를 하는 묘족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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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얼굴에 매서운 눈,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묘족 청년
▲ 묘족 친구 사각 얼굴에 매서운 눈, 그러나 전체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묘족 청년
ⓒ 최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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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도 교사예요."

우리 건너편에 앉아 트럼프를 하던 젊은이들이 몇 차례 눈치를 보더니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가리키며 말을 건넨다. 아마 할아버지와 우리가 학교 이야기 하는 것을 귀동냥한 모양이다.

아직 선생을 하기에는 어린 나이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의아한 눈빛을 보내자 씨익 웃는다.

"사범대 학생이니까 예비 선생이지요."

그러자 사범대에 다닌다는 친구가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한다. 우리가 교사라니까 동질감 같은 것이 생기나보다.

"저는 구이저우 사범대학 3학년이구요, 이름은 첸지엔뽀(陳劍波)입니다."

전공이 무어냐니까 중국문학이란다. 우리로 치면 예비 국어선생인 셈이다.

"무슨 민족이냐?"

"묘족(苗族)이에요."

"너희들 모두 묘족이냐?"

내 질문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눈매가 날카롭고 사각형의 얼굴을 한 것이 전형적인 묘족 모습이다. 수학, 교통운수, 화학, 기술설계를 전공하고 있다는 그 친구들은 모두 구이양에서 대학에 다니는데, 설을 맞아 집이 있는 카이리로 가는 길이란다. 같은 교직에 있다는 친밀감 때문일까?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퇴직 교사인 환선생. 웃음이 인자하다.
▲ 물리 교사 퇴직 교사인 환선생. 웃음이 인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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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끝에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더니, 가방을 열어 우유를 몇 팩 꺼내더니 우리에게 나누어 준다. 손자 줄 선물 쯤 되는 것 같아 사양을 했지만, 직접 빨대를 뜯어 꽂아주며 먹으라고 한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몇 모금 마셔보니, 제법 맛이 좋다. 옛날 어릴 때 먹던 고소하고 진한 맛이다. 우리도 가져간 과자들을 할아버지께 나누어 드린다. 우유를 우리가 먹었으니, 손자들에게 대신 한국 사탕과 과자를 가져다주시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객실 안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무슨 일인가 둘러보니, 우리 일행 중 한 친구가 기차 여승무원에게 혼이 나고 있다. 여승무원은 연신 친구의 카메라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인다.

"내가 기차 안 모습을 찍는데 갑자기 뭐라고 막 야단을 치는 거야."

친구가 난감한 표정이다.

쿤밍에 사는 후배가 나서서 자초지종을 듣고 설명을 한다.

"기차 안 모습을 찍어서 어디다 쓸려고 하느냐는 말인데요? 아마 그게 무슨 보안 문제라도 되나봐요."

"왜 기차 안을 찍으면 안 되냐?"

내가 나서서 항의를 하자, 승무원이 또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왜 사진 찍으면 안 되냐고?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먼 거리를 여행왔어. 너희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말이야. 왜 이 아름다운 구이양 풍경을 못 찍게 하는 거야?"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떻게 그렇게 긴 말을 중국어로 했는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신기할 정도다. 급하면 아무 말이나 다 되나보다.

내 말에 승무원이 피식 웃는다.

"야, 여기는 구이양이 아니고 카이리야. 아름다운 구이양은 구이양에 가서 찍어."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말투로 소리치듯 하는 내 말이 우스웠나보다. 그런 말만 하고 승무원은 손을 흔들며 가버린다. 할아버지도, 젊은 친구들도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웃으며 승무원이 너무했다고 한 마디씩 한다. 내심으로는 우리가 걱정이 됐나보다.

1시 10분, 기차가 천천히 카이리 역에 도착한다. 모두들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한다. 할아버지도 짐을 챙겨들고 우리와 악수를 나눈다. 좋은 여행이 되길 빈다는 말로 우리의 앞길을 축원해준다. 묘족 학생들도 싱긋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여행 잘 하시고요, 시간 되시면 저희 집에도 한 번 오세요."

의례적인 인사겠지만, 그 말이 더없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구이양에서 카이리까지 세 시간 남짓한 시간, 허리를 90도로 펴야만 하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야 했지만 그 기차여행은 중국에서 내가 타본 어느 기차보다도 행복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건너편의 젊은 친구들과도 말을 섞으며, 중국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엿본 때문일까?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일임을, 낯선 것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재임을, 그리하여 낯선 것들과 익숙해지는 순간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의 참맛임을 나는 구이양에서 카이리 가는 기차 안에서 새삼 깨닫는다.  


태그:#카이리, #구이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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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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