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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은 깊은 산속이나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을 타고 다니거나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않았더라도,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재주로 우리를 웃게 하는 생활 속의 달인들은 얼마든지 있죠.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생활의 달인'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은 헤아릴 수 없는 각종 쇠붙이로 가득 차 있었다. 거실과 베란다 구석구석에 쌓아놓은 각종 쇠붙이들. 신기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녹슨 쇠붙이뿐이다. 선사시대의 유물을 본 듯하기도 하고… 아파트는 그야말로 작은 '역사박물관'처럼 보였다.

윤여익씨가 50년간 모아놓은 각종 공구들이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 진열돼 있다. 옛날 숯다리미를 비롯해서 저울추, 인두, 대패, 빗살무늬 자 등 각종 공구 수만여 점이 아파트 거실에 진열돼 있다.
 윤여익씨가 50년간 모아놓은 각종 공구들이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 진열돼 있다. 옛날 숯다리미를 비롯해서 저울추, 인두, 대패, 빗살무늬 자 등 각종 공구 수만여 점이 아파트 거실에 진열돼 있다.
ⓒ 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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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가정집이야, 박물관이야

지난 25일 윤여익(57·수협중앙회 군산어업정보통신국장)씨를 만나러 군산시 금광동 삼성 아파트를 찾았다. 그는 7살 때부터 50년 동안 모아온 300여 종류의 공구(연장), 약 7만여 점을 소유해 장안의 화제가 된 인물.

가위류·계측기류·갈쿠리류·끌류·기어풀러류·나사볼트내기·다리미류·대패류·도끼자귀류·망치류·저울추류·인두류·옛날 가위류·농기기류·각종 베틀기구·톱류·등잔과 호롱·자물쇠류·시계류·베틀 바디·동종(銅鐘 고려시대)·빗살무늬 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 뿐만 아니라 조명기구류·안경류·옛날 옷·관모·신발류·퉁소류도 있다. 여기에 유리제품과 도자기류, 심지어 각종 단추류까지 우리 농경문화를 이루어 온 공구며 도구, 생활용품이 총 망라돼 있다.

쇠갈쿠리, 옛날 줄톱, 망치, 찍개, 옛날 문짝 등이 베란다 벽에 걸려있다.
▲ 옛날 우리 조상들이 썼던 각종 연장과 도구들 쇠갈쿠리, 옛날 줄톱, 망치, 찍개, 옛날 문짝 등이 베란다 벽에 걸려있다.
ⓒ 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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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는 아파트 거실에 진열된 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고향인 충남 장항에도 있다. 대형 컨테이너박스 3개에 수만 개의 공구가 가득 차있다고 한다. 참 별난 취미를 가진 별난 사람이다. 그 많은 취미 중 하필 쇠붙이를 모으는 취미를 가졌을까.

각종 쇠망치와 빠루, 짹개 등이 절구통 안에 진열돼 있다.
▲ 각종 망치들 각종 쇠망치와 빠루, 짹개 등이 절구통 안에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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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경문화를 이뤄온 원동력이 바로 공구(연장)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이어온 공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였죠. 평소 '공구 박물관'을 짓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옛날 낫과 각종 찍개들... 우리 근대사에서 조상들이 썼던 생활 연장들
▲ 낫과 각종 찍개 옛날 낫과 각종 찍개들... 우리 근대사에서 조상들이 썼던 생활 연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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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하는 아버지 가게 들락거리다 공구에 푹 빠져

윤씨가 공구에 미친 것은 7살 때부터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일본 학교에 다녔고, 귀국 후 군산의 배 엔진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다가 후에 철물점을 했다. 소년 윤씨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을 자주 들락거렸고, 이 같은 쇠붙이를 보아온 것을 계기로 오늘날 공구 수집가가 됐다. 윤씨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공부는 뒷전이고 빨리 집에 가서 공구를 가지고 놀고 싶었다.

"공구를 수집하다 보면 꿈에서도 선조가 나타나서 도와준다고 해요. 공구를 닦다 보면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자주 나타납니다."

얼마나 공구에 미쳤으면 꿈까지 꿀까.

각종 저울추와 옛날 대패틀. 모양도 크기도 각각 다르다.
▲ 저울 추와 대패 각종 저울추와 옛날 대패틀. 모양도 크기도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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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가 공구를 구입한 곳은 주로 고물상이다. 틈만 나면 군산 시내 고물상에 찾아가 공구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다 구입한다. 또 길거리에 내다 버린 쇠붙이도 모조리 주워온다.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이걸 왜 모으느냐"고 따지는 아내와의 다툼도 잦았다.

한번은 공구 때문에 아내와 싸우고 가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 윤씨는 아내에게 "먹을 것과 생활비 다 대줄 테니 공구 수집하는 일만은 반대하지 말라"고 타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윤씨의 눈에는 공구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기가 담겨 있다. 모든 공구가 역사의 혼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공구가 시골 창고에 보관돼 있는 게 아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학생들이 빨리 보아야 하고, 보면 교육 가치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조상들이 집 지을 때 사용한 각종 대패들
▲ 옛날 대패들 우리 조상들이 집 지을 때 사용한 각종 대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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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 부모님은 윤씨가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는 것을 원했다. 윤씨는 현재 수협중앙회 소속 군산어업정보통신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준 공무원인 셈이다. 비록 국가 공무원은 못되었지만 직장에서 성공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윤씨의 할머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집안이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대목이었다. 이런 영향 탓에 오늘날 윤씨가 공구 수집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공구를 수집하지 않으면 옛날에 썼던 공구는 다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윤씨. 공구는 돈 있다고, 노력만 한다고 모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정성과 관심으로 수집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윤씨는 공구만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때로는 공구가 사라질까봐 마음을 졸인다.
 
윤여익씨가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 진열돼 있는 공구를 만져보고 있다.
 윤여익씨가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 진열돼 있는 공구를 만져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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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에 손때가 묻어서 좋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혼과 숨결이 묻어 있어 더욱 애착이 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 삶의 아름다움 아닙니까."

윤씨는 한때 자신이 소유한 공구를 일본에서 전시하려고도 마음먹었단다. 일본인은 공구에 관심이 많은데, 자신이 전시한 공구를 보면 한국이 '이런 공구를 썼구나'하고 한국을 얕잡아 본 일본인이 놀랄 것이라고 했다.
 

윤여익씨가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 진열된 공구 앞에 서서 기자에게 공구와 생활 도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여익씨가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 진열된 공구 앞에 서서 기자에게 공구와 생활 도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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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의 아내 정낙순(52)씨는 "처음 남편이 공구 수집하는 일이 못마땅해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말릴 수가 없다"며 "이젠 남편의 공구 수집에 동조하면서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윤씨의 딸 인선(25·유치원 교사)씨도 "아빠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아빠 취미기 때문에 취미를 존중한다"며 아버지의 공구 사랑을 지지했다. 

옛날 우리 조상은 인두로 동정도 다리고 섶도 다렸다.
▲ 각종 인두 옛날 우리 조상은 인두로 동정도 다리고 섶도 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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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 박물관 짓는 게 제 평생 꿈이에요"

윤씨의 꿈은 딱 한 가지. 다름 아닌 '공구 박물관'을 짓는 것. 그런데 '공구 박물관'을 지으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래서 군산시 예산을 지원받는 길을 찾기 위해 시청 공무원에게 알아봤다. 그러나 당시 관계 공무원은 몇 번 아파트로 찾아와 사진도 찍어가고 했지만 지금껏 묵묵부답이란다.

이에 대해 군산시 문화체육과 김인생 과장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윤씨가 소유한 공구는 개인 유물이고, 개인박물관 건립에 군산시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답했다.

핑경, 호롱, 저울추 … 소 목에 달았던 핑경(워낭)들.
 핑경, 호롱, 저울추 … 소 목에 달았던 핑경(워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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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장롱에 달려 있던 각종 자물통과 자물쇠
 옛날 장롱에 달려 있던 각종 자물통과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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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씨는 올 겨울 퇴직을 앞두고 내년 초 자신의 땅에 '공구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공구박물관'을 짓는 게 그의 소원이다. 박물관 규모는 약 300평 정도. 이를 위해 그는 벌써 자신의 땅 1000평을 이미 매립신청 해놓은 상태다.

취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이다. 스포츠, 음악 감상, 영화보기, 등산, 낚시, 독서, 드라이브, 요리… 등등 이러한 것이 전자라면 공구 수집가 윤여익씨는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평생소원인 '공구박물관' 건립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옛날 엿장사들이 엿을 자를 때 사용하던 가위와 조상이 생활의 도구로 사용하던 가위들
▲ 옛날 가위들 옛날 엿장사들이 엿을 자를 때 사용하던 가위와 조상이 생활의 도구로 사용하던 가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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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별난취미 공구수집, #공구수집가 윤여익, #군산 공구박물관, #공구박물관장 윤여익, #세상은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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