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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름 선풍기 4대가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교실에서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조달해 온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빨며 대학만 가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대학만 가면 방학마다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가고 미팅을 하고 누가 봐도 예쁘고 멋있는 사람과 연애를 할 거라고 우리는 늘 말했다. 그건 어쩌면 일종의 최면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 그런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 돌아가야 할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음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것이고 배낭여행은커녕 방학에는 보다 시급이 높은 알바자리를 찾아 공장이나 마트를 전전해야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연애도 쉽게 할 수 없음을 우리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건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보충수업 기간 교실에 남은 빈자리 한두 개는 우리 앞에 놓인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을 상징하고 있었으니까……. 빈자리는 보충 수업비를 내지 못하거나 형편상 결코 대학을 갈 수 없는 아이들의 것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삶은 이미 생존이었고 그로부터 4개월 뒤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첫 알바를 시작한 나에게도 삶은 생존이었다.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 펴냄)은 바로 이런 10대와 20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이 죄악이 되어 버린 사회에서 가난하여 스스로 '불가촉 루저'라고 칭해야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굶주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20대는 가난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죽을 둥 살 둥 아르바이트를 할지언정 대학을 갔고 라면에 삼각 김밥으로 배를 채울지언정 밥은 먹으니까. 하지만 오늘날의 청춘에게 가난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가난은 먹고 살기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것, 그로 인해 꿈이 없음이 오히려 다행인 상황이다.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돈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낮은 시급, 높은 대학 등록금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을 주저앉히고 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비싼 학원비는 대학 문턱에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 대학을 나오면 다를까? 어떻게 해서 대학을 나오면 다시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하고 그래도 해결을 못해 학자금 대출을 받고 그리고 그걸 갚기 위해 다시 하고 싶은 게 무언지도 모른 채 그저 취업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럼에도 20대는 누구에게 항변할 줄 모른다. 그걸 본 기성세대들은 그들이 답답하다고 말한다. 책 속에 은수는 그런 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근데 이게 울 일은 맞나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은수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은 울기에는 애매하기만 한 상황이다. 게다가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낼 수가 없다. 누구에게? 가난한 내 부모에게 아니면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난 내 팔자에?

 

누군가는 세상에다 항변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의 청춘들은 모든 것을 자기 탓을 하는 데 익숙해졌다. 부족해서, 능력이 없어서, 내가 못나서, 세상이 그른 거고 세상이 문제면 세상 사람 전부가 힘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못난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책하며 상황을 웃어넘긴다. 자조와 자학의 웃음, 괜찮다. 내가 나보다 더 루저라고 소리치며 그들은 그냥 웃어넘긴다.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에는 이런 자학개그가 넘쳐난다. 은수와 원빈이 나누는 대화는 자학의 절정이고 원장과 입시학원 강사의 대화도 자학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에서 청춘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읽어낸다. 돈, 꿈, 힘. 한 글자로 된 이 단순한 것들이 청춘을 어떻게 옥죄이고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 읽어볼 수 있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집회가 한창이다. 몇 번 하다 말겠지 했던 집회가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사학을 먼저 개혁해야 한다, 절대로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시 잘 들여다보자. 지금 그들이 왜 광장으로 나와 있는지 그들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오늘날 이 땅의 청춘에서 등록금은 단지 등록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 일이며 더 이상 낮은 시급과 부당한 대우를 참아가며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데이트 비용 앞에서 계산기 꾹꾹 누르지 않아도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등록금을 내려주세요" 라는 말은 "우리도 살고 싶다"는 그들의 항변이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중복게재됩니다.


울기엔 좀 애매한

최규석 글.그림, 사계절(2010)


태그:#울기엔 애매한, #서평, #리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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