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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긴장되는 날이었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기말시험이 시작된 날인데 제가 바로 시험감독을 나가기로 약속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아이들 학교등교 준비시키느라 집안에서만 바빴지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었지만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준비를 했습니다.

학기 중 행사가 많은 초등학교와는 달리 중학교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올 기회가 입학식과 졸업식 정도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아이들도 너무 많은 부모의 간섭이 싫어질 사춘기가 되어서인지 엄마의 학교 출입조차 꺼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녀가 중학생이 되면 학교와 더 멀어지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갓 벗어나 교복은 의젓하게 입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턱없이 어리고 몸은 부쩍 성장해져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기 시작하는 아이들이기에 초등학교 저학년때만큼이나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시기가 어쩌면 중학교 입학 무렵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은 아이에게 더 쏟고 싶지만 요즘 학교 분위기가 '불법 촌지 근절'을 특히 강조하기에 학부모로서 학교에 불쑥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부모 시험 감독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자연스럽게' 둘러 볼 기회도 되고 학교에 대한 떳떳한 봉사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학부모 총회 때 선뜻 담임 선생님께 시험감독 봉사하겠다고 말씀을 전해드렸는데, 다음 달 후 아들이 전해 준 1학기 첫 중간고사 일정과 학부모 시험감독 명단에 아들 이름과 제 이름이 선명히 인쇄된 가정 통신문을 보니 뭔가 가슴이 뿌듯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 때 제가 시험 감독을 맡기로 한 시험날 아들의 등굣길을 따라 나서는데 왠지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좀 긴장되기도 했지만 "학부모님들이 많이 참여해 주셔야 학교가 발전한다"면서 학부모 시험감독 대기실에 오신 교장 선생님의 격려말씀을 들으니  힘이 나서 발걸음도 씩씩하게 시험을 치르는 교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학부모 시험 감독은 자녀가 다니는 반에는 배치되지 않고 다른 반으로 배치됩니다. 학부모의 핸드폰은 시험 중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아예 소지하지 않거나 반드시 꺼 놓고 입실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험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굽이 있는 높은 구두는 자제해 달라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녀를 위해 학부모 시험 감독을 신청한 대부분의 어머님들을 보니 이미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모두 검소하고 단정한 차림에, 운동화나 단화를 신고 오신 분들이어서 자녀를 위한 부모님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 시험감독이 필요한 이유는 보통 선생님들이 시험을 주관하시기는 하지만 한 선생님이 한 교실에 입실하셔서 아이들에게 시험지, 객관식 답안지와 서술형 답안지를 순차적으로 나누어 주시고 일일이 아이들 답안지에 확인 도장까지 찍어주시게 되면서 여러 일을 하시는 동안 아이들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부정행위를 할 위험이 있어 '보조 감독'의 역할이 꼭 필요합니다.

학부모 시험감독이 투입되면 감독 선생님들도 한결 마음놓고 시험을 진행시키실 수 있고 학부모 시험 감독의 '철통같은 감시'가 있으니 아이들이 부정행위는 거의 일어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처럼 교실에 시험감독이 두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부정행위가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고 하니 일단 학부모 시험감독을 맡게 되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처럼 긴장하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평소에 없던 복통까지 생깁니다.그래도 두 눈 부릅뜨고 시험 감독을 잘 해야 진짜 학부모 시험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책임감에 또한번 힘이 솟습니다.

요즘 중학생들 정말 바쁘고 어떻게 보면 불쌍하기도 합니다.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은 하교하는 시간이 거의 다섯 시 가까운데 또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쉴 틈 없이 사춘기를 꾹꾹 누르고 보내고 있습니다. 1학년 학기 초부터 일제고사 후 성적이 다 공개되어 영어, 수학 우열반으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공부할 양도 많아집니다.

그래도 길에서 보면 아직은 초등학교 6학년티를 갓 졸업한 어리기만 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말고사 시험 시작종이 울리자 교실 전체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다들 진지하게 시험에 응시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이 참 대견해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예 처음부터 시험지를 볼 생각도 않고 책상에 드러누워 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잘 모르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시험문제를 풀었으면 하는 마음뿐인데 감독 선생님이 다가가서 조용히 지적을 해 주자 몇 번 연필로 끄적거리고 다시 책상에 엎드려 눕습니다. 대부분은 시험 종료 시간까지 열중해서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제가 맡기로 한 시험 감독 시간은 총 두 과목 시험으로 시험시간은 각 45분입니다.

집에서 아이들 등교 준비 시킬 때는 아침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더니,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험시간은 10여분 동안도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교실 안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사실 학부모 시험감독은 그야말로 '보조감독'이므로 대부분 모든 일은 감독 선생님께서 처리하시지만 행여나 아이들이 답안지를 틀리게 작성해서 추가로 답안지를 요구하게 될 경우, 시험을 치르는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오른손을 드는데, 선생님이 바로 못 보시는 경우도 있어 '소리 않나게' 그런 사항을 알려 드리는 일도 학부모 시험감독의 몫입니다.

아이들이 꼼짝없이 45분간을 치열하게 문제와 싸우고 있는 동안 저 역시도 45분 동안 혹시라도 부정행위하는 학생은 없는지 추가로 답안지를 요구하는 학생은 없는지 교실 맨 뒤 중앙에 서서 열심히 '감독'을 합니다.

1,2교시 중간의 15분간의 휴식을 빼고 총 90분간의 시험을 치르고 무사히 1학년의 기말고사 첫 시험날을 마쳤습니다. 시험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함성, 괴성, 웃음소리, 재잘거리는 수다에 경직되었던 제 마음도 풀리는 것 같습니다.

연예인들처럼 '하의 실종패션'을 따라한 듯 짧은 교복 치마에, 가끔 다시 쳐다보게 되는 덥수룩한 장발에 교복 속에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까만 티셔츠를 받쳐 입은 남자 중학생이 앞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가끔 위협적으로 침까지 찍찍 내뱉으며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철렁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열심히 시험을 치르는 우리 아이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그들의 모습이 '소녀시대'보다 예쁘고 '샤이니'처럼 멋지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도 알까요? 사실은 최선을 다하는 지금의 모습이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태그:#중학교 기말고사, #학부모 시험감독, #소녀시대, #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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