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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88만원세대>는 사회과학서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출판시장의 주류 고객층이라고 할 수 있는 20~30대 여성이나 40~50대 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20대 대학생에 의해서 이루어진 쾌거라는 사실이 감미되면 <88만원세대>는 신화가 된다.

 

책이 출간된 2007년 당시 25살에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었다. 알바인생, 지잡대, 졸업 불안 등으로 설명되던 25살의 나에게 책은 촉촉한 위안이 돼 주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미설명물체로 인지되어버린 내 자신에 대해서 88만원세대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준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참 결국은 꼰대스러웠다. 짱돌과 바리게이트로 상징되는 우석훈의 후반 메시지가 참 386스럽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종종 몇몇의 꼰대들은 실제로 이 책을 인용해 신이 난 듯 20대를 깠다. "니들이 바리게이트도 안치고 짱돌도 안 던지니까 아무 변화가 안생기자나." 가 요지였고 결국 다시 20대 책임론, 20대 개새끼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우석훈은 이 책을 쓰고 많은 20대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 깨달음의 결과가 이 책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한 학기동안 우석훈은 20대와 마주하고 그들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이 책에서 그는 가장 생생한 20대 관찰지를 내놓는다. 그 중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단어는 단연코 미학이다.

 

20대의 무정치성에 대해서 익히 들은 사람이라면 20대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을 피할 길이 없다. 최근 20대 커뮤니티들은 종류를 불문하고 정치에 대한 이야기와 MB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20대는 정치성이 없어." 라고 생각하고 갔다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20대는 탈정치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허나 그들이 정치적으로 변한 이유는 이전 세대와 다르다. 이전 세대가 당위성으로 움직였다면 지금 20대는 미학으로 움직인다. 즉, 지금의 20대에게 MB정부는 무능하다거나 혹은 정당하지 않다가 아니라 추하고 쪽팔린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은 커뮤니티 안에서 정부를 조롱하고 풍자하고 왜곡하며 나름의 반정부적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우석훈은 여기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정한다. 20대는 전혀 새로운 세대임을 말이다. 당위적이고 사명에 둘러싸여 움직이던 세대보다 가볍고 미학적이며 자극적이고 보다 호모 루덴스적인 인간임을 말이다. 그래서 우석훈은 더 이상 짱돌을 들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20대답게 호모 루덴스적으로 짱돌을 들라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이 지역정치에 참여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연대하기 등등 여전히 약간 낡은 냄새가 풀풀~풍긴다는 것이다.

 

20대는 조직하지 않는다. 그들의 조직은 유연하다. 반값등록금을 위한 집회에서 그들은 한 깃발 아래 모이지만 집회가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돌아간다. 깃발이 조직이 곧 그들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그들에게 조직은 유연하고 일시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러니 연대라는 이름 역시 낯설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에게 기성세대들이 무슨 답을 주려는 것인지 사실 모르겠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놀면서 집회하는 법 즐기면서 주장하는 법을 말이다.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새로운 인간형이 나타났음을 말이다. 답을 주려하지 말고 그저 응원하시라. 답은 그들이 스스로 낼 것이다. 20대는 분명 새로운 진화형인간이니 말이다. 이들에겐 더 이상 짱돌이 필요 없다. 짱돌은 예쁘지 않으니까…….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중복게재됩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저  레디앙)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레디앙(2009)


태그:#서평, #우석훈, #혁명,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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