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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진 작가의 웹툰 <이너다이어리>중 일부. http://preview.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innerdiary
▲ 웹툰 <이너다이어리> 최호진 작가의 웹툰 <이너다이어리>중 일부. http://preview.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innerdiary
ⓒ 최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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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기획회의 시간. 웹툰 <이너 다이어리>에서 출발한 '브래지어 착용 선택권' 기획기사 논의를 이어가다가 브래지어 착용의 불편함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브래지어를 사용하지 않는 남자들에게까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가 '남자가 직접 체험기를 써보자!'였다.

"근데… 누가 하죠?"

이 말을 꺼낸 것이 화근이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무 개나 되는 눈동자(그날 회의에 함께한 사람이 열 명이었다)가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응? 설마…?

"김정현 기자님이 직접 체험기를 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박수!"

대폭소와 함께 쏟아지는 박수 앞에서 나는 '브래지어 체험기'의 필자로 선정되었다.

'브라남'이 되다...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함께 간 다른 대학생 기자의 조언을 들으며 속옷을 고르고 있다.
▲ 속옷 고르기 함께 간 다른 대학생 기자의 조언을 들으며 속옷을 고르고 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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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

오마이프리덤 소속 대학생 기자들과 속옷을 사기로 한 날. 서울 신림동에 있는 속옷가게에서 브래지어가 든 종이 가방을 들고 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뒤늦게 도착한 박아무개 기자가 나를 보며 외쳤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침착하게 미소를 날렸다.

"뭐 어때서요? 훗."

하지만 이렇게 웃는 나도 속이 편치만은 않았다. 도대체 이걸 한 채로 돌아다닐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역사에 남을 쇼핑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순대골목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여성 기자들에게 착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상반신에 브래지어를 두른 다음 후크를 먼저 끼운다. 그 다음 컵을 앞으로 오도록 돌리고 팔을 돌려서 끼운 다음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컵 아래쪽에는 와이어가 들어 있는데 이 부분이 눌리면 불편할 수 있으니까 알맞게 조절한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라 브래지어를 직접 꺼낼 수가 없어서 말로만 설명하다보니 나는 한 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알아들을 때까지 재차 설명해줄 것을 요구했고, 그럴 때마다 설명을 해주던 여기자들은 소리 죽여 킥킥거렸다.

이날 신림동 속옷가게에서 구입한 브래지어. 가격은 6800원, 사이즈는 85A.
▲ 브래지어 구입 인증샷 이날 신림동 속옷가게에서 구입한 브래지어. 가격은 6800원, 사이즈는 85A.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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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울경기 지방에 집중적인 호우가 내려(우면산에 산사태가 난 그날이다) 원래 잡혀 있던 모든 약속이 취소되는 바람에 집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마감은 다가오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로 밖으로 나가야 되는 난감한 상황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하철 브라남' 같은 이름으로 포털사이트와 SNS를 장식하게 될 우려 따위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만세!

나는 자취방 구석에 있던 쇼핑백에서 어제 사두었던 브래지어를 꺼내 전날 배운 대로 입고 티셔츠 하나를 걸쳤다. 배운 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끈 하나가 떨어졌다. 궁리를 했지만 착용에는 문제가 없어서 그냥 이대로 입고 있기로 했다.

체한 것도 같고 머리도 아프고...이게 '그것' 때문인가

브래지어의 첫 느낌은, 갑갑했다. 착용 후 두 시간 정도 지나자 체했을 때처럼 가슴께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도 들고, 머리도 아픈 것 같았다. 겨드랑이 아래쪽을 강하게 압박하는 컵 와이어와 등 쪽 후크 부분이 피부를 자극해서 따끔거렸다.

나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로 TV를 보다가 점심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끄윽 하고 트림이 올라왔다. 속이 좀 이상하다. 기분 탓이라고 믿기로 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동안 끈과 와이어 부분이 계속 배기면서 따끔거리는 느낌도 계속되었다. 이걸 계속 하고 있어야 하나,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재조립(?)에 실패한 나는 이 끈이 떨어진 채로 브라를 착용했다
▲ 정체불명의 끈 재조립(?)에 실패한 나는 이 끈이 떨어진 채로 브라를 착용했다
ⓒ 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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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나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로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하다가 지지난해 연말 SBS에서 방영한 <브래지어, 하고 계세요?>라는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궁금해진 나는 따끔거리는 등을 긁적이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제정한 '남녀평등상' 방송프로그램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드레시드 투 킬(Dressed to kill)>이라는 책을 공동집필한 한 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마흔둘이라는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된 소마 그리스마이어는 임신 초기에 유방에 종양이 생겼으나 아기 때문에 수술도 약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스마이어 박사는 이후 두 달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았고 유방에 있던 종양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Dressed to kill'은 대개 '죽여주게 잘 차려입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직역하면 '죽이려고 차려입다' 혹은 '죽이려고 차려입은 (복장)'이 된다. 브래지어의 숨은 위험성에 대한 은유가 담긴 제목이다.
▲ <드레시드 투 킬> 'Dressed to kill'은 대개 '죽여주게 잘 차려입다'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직역하면 '죽이려고 차려입다' 혹은 '죽이려고 차려입은 (복장)'이 된다. 브래지어의 숨은 위험성에 대한 은유가 담긴 제목이다.
ⓒ ISCD Press,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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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였던 그녀는 브래지어로부터 해방된 뒤 병까지 낫게 된 자신의 체험에 영감을 얻어 역시 인류학자인 남편 시드니 로스 싱어와 함께 여성 2천7백여 명을 대상으로 브래지어 착용과 유방암 발병의 상관관계를 조사했고 그 결과를 담은 것이 바로 위의 책 <드레시드 투 킬>이다.
이들 부부의 조사 결과, 24시간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은 미착용 여성보다 유방암 발병률은 125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말 그대로 가슴이 뜨끔했다. 몇 배, 몇십 배도 아니고 백 배가 넘는 차이라니!

<브래지어, 하고 계세요?>에 출연한 의사들은, 임상의학에서는 아직까지 브래지어의 착용이 유방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확정하지는 않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브래지어 컵 아래쪽에 든 와이어가 겨드랑이 쪽의 림프절을 압박하면서 혈액과 호르몬의 흐름을 방해하고, 체내 해독작용을 하는 림프절의 기능저하를 유도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드레시드 투 킬>에서 적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나 이러다가 무슨 병이라도 걸리는 거 아냐?'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이지만, 겨우 몇 시간 써보고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기엔 뭔가 부족했다. 낮 시간 동안 브래지어를 계속 착용하며 지내는 여성들도 힘들어 하는, '브래지어 한 채로 잠자기'에 도전했다.

다음 날 아침 터져나온 비명, "못 살겠다, 벗어보자!"

'잘 때는 가능한 한 적게 입는다'라는 생활신조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채로 잠을 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름엔 러닝셔츠 한 장 달랑 걸치는 데 익숙해져 있던 탓에, 브래지어에 티셔츠까지 입고 자자니 그 갑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잠을 설치겠다 싶어 '딴지 라디오' <나는 꼼수다>를 틀었다. "저얼대 나쁜 짓은 하실 리가 없는 가카만을 위한 헌정방송"을 들으며 낄낄거리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브래지어 착용 이틀째 아침. 평소보다 훨씬, 훠얼씬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머리가 띵했다. 특히나 와이어 쪽의 겨드랑이와 가슴은 뭐랄까, 벽에 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상반신 전체가 돌팔이 마사지사한테 마사지를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지끈거렸다. 끄응,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게 일어나 때를 놓친 것도 원인이었지만,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식욕이 없어서 아침을 걸렀다. 세 끼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허전한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내 삶의 활엽수' 아침 화장실 방문 일정 역시, 오늘은 소식이 없다. 이 모든 증상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상반신을 압박하는 브래지어는 모세혈관으로 흐르는 피의 양을 감소시키고 이는 여러가지 병증의 원인이 된다.
▲ 브래지어 착용 전후 체열 비교 상반신을 압박하는 브래지어는 모세혈관으로 흐르는 피의 양을 감소시키고 이는 여러가지 병증의 원인이 된다.
ⓒ SBS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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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는 가슴에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브래지어로 인한 상반신 압박은 소화기능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모세혈관의 혈류를 30% 감소시킨다고 한다. 이는 수족냉증이나 두통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된단다. 그럼 내게 나타난 두통과 식욕 부진, 일시적인 변비 증상도 정말 브래지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브래지어가 여성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여성들에게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도 문제이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가슴 모양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쉽게 착용을 포기할 수도 없다. 참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하루 썼을 뿐인데, 브래지어를 벗자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과 상쾌함이 밀려온다. 이걸 몇 십 년이나 쓰는 여성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래지어 착용 선택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할 필요 없는 남성으로 태어난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수없이 많은 여성들은 그것에 대해 자의와 무관하게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근데… 쓰고 남은 이 브래지어를 어떻게 하지? 혹시 필요하신 분 없어요?

덧붙이는 글 | 김정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브래지어, #체험기, #브라남, #속옷, #유방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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