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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단어만 보면, '어렵다'는 생각에 '경직' 되십니까. 은행에서 적금이나 예금을 들 때, 보험회사 직원과 마주할 때, '도대체 뭘 들어야 하는 거야'란 생각에 머리가 아프십니까. 하지만 이젠 걱정하시 마세요. '똑똑한 생활경제'가 당신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거니까요. 오마이뉴스에선 앞으로 매주 '똑똑한 생활경제'라는 타이틀로 '생활경제' 전반에 대해서 다룹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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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액세서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최명희(가명, 33세, 미혼)씨. 최씨는 자금 부족으로 각종 결제 압박에 시달릴 때마다 급한 대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처리하고 나중에 갚곤 했다. 수수료도 만만치 않은 데다 혹여 돈이 제때 들어오지 않을 때면 리볼빙 서비스로 최소 결제했다. 그 비용 부담은 배가 되었지만 연체는 막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추가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자꾸 현금서비스를 활용하면 신용등급도 낮아질 우려가 있다며 친구는 마이너스 통장을 권했다. 일단 대출 한도를 정해두면 돈이 필요할 때마다 신용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서 그만큼의 돈을 인출하듯 꺼내 쓰면 되고, 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갚아 나가면 되니까 편리하다는 것이다. 현금서비스에 비하면 수수료도 저렴한 편이라니 최씨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나 싶어 곧바로 주거래은행을 찾았다.

"여성이고 미혼이면서 직장인도 아닌 자영업자라는 세 가지 조건의 조합이 사회적 천민 계층임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신용대출도 어렵거니와 마이너스 통장 개설은 꿈도 꿀 수 없더라구요. 괜스레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은행 문을 나서며 전 결심했어요. 꼭 성공해서 나도 남들처럼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아무나 만들어주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 회복도 어렵다

종합통장자동대출, 일명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신용대출과 마찬가지로 상환 능력을 꼼꼼히 따진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연체 기록이 있다면 개설이 어렵다. 늘 그렇듯 진짜 상황이 어려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문턱이 높고 대출 받지 않아도 살아갈 만한 사람들에게는 애써 돈 빌려 가라고 광고한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마이너스 통장이지만 신용대출 조건에 가산금리가 붙어 훨씬 비싼 이자를 물어야 한다. 시중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 금리와 신용대출 금리간 격차는 기본 0.5%에서 4%를 육박한다. 마이너스 통장대출이 신용대출에 비해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가 붙는 것은 미(未)사용 한도에 대해서도 은행의 자금이 묶이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 보자면 꼬박꼬박 이자 수입이 확정되어 발생되는 신용대출과는 달리 마이너스 통장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이자 수입이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래도 고객이 언제 대출을 할지 몰라 해당 한도만큼 돈이 대출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어야 하니 비용만 발생해 손해 보는 장사가 될 수 있어 가산금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에 만기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용자도 많다. 본인이 자동 만기 연장이 되는 대상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 제대로 몰라 신청하지 않으면 괜스레 연체 이자를 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되는 사례가 많다. 은행마다 제각각인 이자결산일도 꼼꼼히 체크해 둘 필요가 있다. 날짜로 정해져 있지 않고 몇째주 무슨 요일 등으로 정해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한도 관리나 상환 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출 이자가 가장 큰 문제다. 현금서비스나 신용대출은 살 떨리게 쭉쭉 빠져나가는 이자가 아까워서라도 빨리 갚아 버려야 한다는 강박을 준다. 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의 이자는 도대체 얼마가 빠져나가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한 번 꺼내 쓸 때마다 사용 기간이 제각각이고 이자도 복리로 불어나니 정확히 계산하기도 어렵다. 이자불감증은 '부채불감증'으로 이어져 결국 마이너스는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회복되지 않는 마이너스의 비밀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지난 8월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압박에 나서 대부분 시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중단한 지난 8월 18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시민이 은행관계자와 상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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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이너스 통장을 주거래 통장으로 쓰고 있고 작년 둘째 출산 이후부터 마이너스 잔고가 300만 원가량에 육박한 한명준(가명, 35세, 기혼)씨. 한씨는 CMA통장에 500만 원 정도가 들어 있음에도 마이너스 통장을 갚으려 하지 않는다.

"현재 주가가 떨어지는 추세잖아요. 지금 있는 돈 다 마이너스 통장 갚아 버리면 어차피 또 마이너스날 게 뻔한데…. 차라리 잘 투자해서 종합주가지수가 다시 2000포인트만 회복되어도 마이너스 통장 이자 이상은 나오지 않겠어요?"

마이너스 통장 이자가 9.5% 정도니까 연 수익률 10% 이상은 나와야 한다는 낙관적인 견해다. '확정된 비용'과 '확정되지 않은 수익'의 싸움에서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수익률의 싸움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마이너스 대출을 갚지 않고 투자해서 원금손실이 일어나게 되면 그 격차는 비교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마이너스 대출을 다 갚으면 계좌 자체를 해지해야 한다. 대출 상환이 모두 이루어지고 나면 신규 대출을 받기 전까지 그 대출 계좌는 없어지는게 당연하지 않나. 그렇지만 마이너스 통장은 '혹시 몰라' 놔두고 싶어한다. 급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다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려다 혹여 조건이 안 되어 개설이 불가능해지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다.

재무상담에서 항상 '3개월치 생활비' 정도를 비상자금으로 자유입출금 통장에 넣어두라고 조언한다. 4인 가족 기준 생활비 200만 원 정도라면 600만 원 정도는 언제건 꺼내 쓸 수 있도록 준비해야 예기치 않은 상황에 '빚' 내지 않고 대비할 수 있단 얘기다.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 서민에게 600만 원은 꽤 큰 목돈이다. 이런 돈을 아무 이자도 안 주는 자유입출금통장에 넣어두라고? 제정신인가? 그 정도 돈이면 예금으로 1년만 묶어도 이자가 얼마고, 욕심 안 부리고 투자해서 7% 수익 정도만 내도 얼만데….

하지만 비상자금은 가급적 '운용'하지 마라. 다시 얘기하지만 어차피 쓸 돈이다. 써야 할 때 모아 둔 돈이 없어 못 쓴다면 애석하게도 비싼 이자까지 내가며 남의 돈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가진 돈이 있는데도 쓸 수 없는 돈이라서 마이너스 통장에 빚까지 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가.

3년 미만의 써야 할 돈이라면 '여윳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곧 쓸 돈이 아닌 '여윳돈'이라며 '펀드', '예금'으로 묶어 운용하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비상금 대신 활용한다는 이상한 계산 나라의 사람들의 통장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빨대'에 꽂혀 조용히 쪽쪽 빨리고 있다. 애석하게도 언제나 당신보다 '은행'이 이긴다.

미리 모아서 쓰면 '이자'가 붙지만 일단 쓰고 갚는 구조는 '이자'를 주게 된다. 진짜 이익과 손해가 무엇인지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습관의 문제다. 지금 당장 마이너스 통장부터 없애라! 아주 적은 돈이라도 일단 모아서 쓰는 구조로 만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한 마이너스의 늪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은 금융생활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당신에게 가장 값비싼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현재 (사)여성의 일과 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이너스 통장, #비상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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