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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안내견 슬기의 시각에서 쓰여진 기사입니다.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슬기와 아빠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슬기와 아빠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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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법 싸늘해진 10월 말의 가을 바람을 맞으며, 새벽에만 마주할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 아파트 주변길을 돕니다. 여기저기서 노래하는 가을 풀벌레들의 정겨운 소리가 지나온 추억의 그리운 모습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견공 친구들의 아침 인사로 마을 주변이 떠들썩하던 필리핀 수빅의 아침 산책길. '지지배배, 지지배배' 이름도 모르는 많은 새들의 노래 소리로 가득하던 그 숲속 마을 마호가니스트리트(Mahogany street)와 망고드라이브(Mango Drive). 독일이며 일본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산책하며 나누던 그 다정한 미소와 인사들. 모두가 그립습니다. 모두가 간절히도 보고 싶어집니다.

샌안토니오 폰타킷(San antonio Pontakit)이라는 섬은 정겨우면서도 황량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뜨거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다보면, 화끈거리는 발바닥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팔딱팔딱 뛰는 제 당황한 몸짓이 통제를 벗어난 광견처럼 아빠의 근심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온 힘을 다해 견줄을 잡아당기는 아빠의 황망한 얼굴에 구슬땀이 흐릅니다. 재빨리 그늘집으로 뛰어드는 제 완력에 중심 잃은 아빠의 몸이 헐레벌떡 딸려옵니다.

사람 하나 없는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해변에 우리 가족만 나란히 앉아 먼 수평선을 바라보노라니 뭔지 모를 아련한 그리움에 가슴이 짠해집니다. 시원하면서도 쾌적한 바닷바람이 뜨거운 태양에 지친 몸과 맘을 식혀줍니다.

2006년 8월, 우리 가족이 필리핀 수빅에 간 이유

중복장애를 가진 오빠를 위해, 우리 가족들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청각 및 언어장애, 그리고 지적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진 오빠를 도저히 잘 보살필 수 없다고 판단하신 엄마 아빠는 선진국으로의 이민을 과감히 결정하셨던 것이지요.

사회복지 법인에서 다년간 이사로 근무하셨던 아빠는 선진국의 장애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견학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장애인계와 캐나다 밴쿠버, 그리고 미국 하와이의 장애인 시설 및 장애인 사회를 몇 번이고 견학했지요. 그곳에서 얻은 결론은 한국에서 발버둥을 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하루 속히 선진국으로 탈출하여 더욱 밝은 희망의 미래를 우리 오빠에게 안겨주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이민공사에 수속을 의뢰하여 인터뷰 과정까지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고, 이젠 다 되었다고 생각한 아빠는 필리핀으로 들어가 영어공부를 좀 하다 최종적으로 캐나다로 들어가자는 묘안을 짜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2006년 8월 초, 필리핀 수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수빅 주재 미국인 국제학교인 '브렌트스쿨(Brent school)'에 입학하여 고등학교 정규 과정을 3년간 이수했고 아빠는 수빅의 어학원(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인을 위한 영어학원)을 안내견인 저와 함께 다니시며 영어공부를 하는 동시에 양호 담당으로서의 직분을 다하셨습니다. 오전 4시간 중 2시간은 현지인 교사와 1:1 수업을 하고, 나머지 2시간은 학원생이나 직원들의 건강 상태를 살피며 치료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침술원을 열어, 한국인을 위한 의료시설이 전무하던 현지에서 치료실을 직접 운영했습니다. 언어 문제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낙후된 현지의 의료시설을 불신한 교포들이 아빠의 주 고객층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던 가난한 현지인들도 우리집을 찾아 어려운 방문을 감행했지요. 우리 아빠는 가난한 현지인들은 무료로 치료를 해주었기에, 현지인들은 쭈뼛쭈뼛 미안한 마음으로 망설이며 우리 집을 찾아들었었습니다.

결국 캐나다 이민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호텔 베란다에서 커피 마시는 슬기와 엄마 아빠
 호텔 베란다에서 커피 마시는 슬기와 엄마 아빠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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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캐나다 이민이 최종 불허 처리되면서 우리 식구들은 공중에 붕 뜬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허사유는 오빠의 중복장애가 캐나다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비용을 증가시켜 막대한 부담을 지우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민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캐나다 정부의 결정에 불복하여 재심을 요구하기도했었으나, 공연히 1년이란 시간만 더 낭비했을 뿐 더 이상의 성과는 없었습니다.

그간 바쁜 일정으로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우리 가족들은, 귀국을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행선지는 집에서 약 50km 가량 떨어진 샌안토니오 폰타킷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영복과 각종 물놀이 기구들을 챙겨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현지인 헬퍼 언니의 안내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우리는 모두 제대로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들이 백사장으로 부서져내릴 때면, 무지갯빛의 보석가루가 흩어져내리는 듯했고,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저편으로 흘러가는 새털구름은 마치 여기가 유토피아의 한 곳인 양 착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일순, 할 말을 잃고 그저 장엄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먼먼 수평선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호텔(거의 방갈로 수준의 숙박시설)을 잡고 우리는 해변의 모래밭에 마련된 식탁에 모두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언니, 언니의 친구 헬퍼 언니까지 가족들은 식당에서 배달해온 필리핀 음식으로 맛있게들 점심 식사를 하는데,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제 가슴엔 울컥 설움이 솟구칩니다. 식탁 밑에 엎드려 있노라니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삐쭉 나온 주둥이를 모래 속에 파묻고 솟구치는 울화를 억누를 뿐입니다.

"아니, 자기네들만 한 가족이고? 나는 가족도 아니란 말이야? 흥!"

솟구치는 울분과 서러움에 눈물 방울들이 방울방울 모래 위로 떨어집니다. 바로 그때, 부시럭부시럭 익숙한 비닐봉지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말로 표현 못할 황홀한 냄새, 세상의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 바로 제 밥입니다. 원망스레 모래 장난만 하고 있는 제가 안돼 보였는지 아빠가 저 몰래 가져오신 사료를 꺼내 놓으신 것입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어찌나 기쁘던지요. 이루 형언 못할 감격에 이번엔 울분이 아닌 반가움으로 제 눈가가 촉촉히 젖어옵니다.

질긴 껌을 씹으며, 눈물의 현실을 곱씹었죠

수빅 바닷가에서 물총 싸움을하는 아빠와 아들(학웅)
 수빅 바닷가에서 물총 싸움을하는 아빠와 아들(학웅)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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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그늘집 이곳저곳에 누워 낮잠을 즐깁니다. 아빠는 대나무 의자에, 엄마는 대나무 식탁에, 그리고 헬퍼 언니는 그냥 모래밭에. 그리고 우리 언니는 함께 온 친구와 낮잠으로 날려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시간들을 호텔 앞 수영장에서 수영하며 보냅니다.

드디어 한낮의 태양이 피로에 지쳐 쓰러져가는 오후, 우리는 조그마한 배를 빌려 탔습니다. 이곳의 작은 배는 특이합니다. 배의 크기는 아주 좁아 혼자만 간신히 바닥에 앉을 수 있고 그 양쪽에는 날개 같은 긴 대롱을 이어붙여 나란히 너덧 명이 앞 뒤로 앉아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높은 파도에 배가 기우뚱할 때면 그 방향의 날개가 수면에 부딛혀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오른쪽으로 기울면 오른쪽 날개가 수면을 박차고 일어나고, 다시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같은 방식으로 왼쪽 날개 대롱이 수면에 부딛혀 균형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저는 어찌나 무서운지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다만 아빠 무릎에 머리를 묻을 뿐이었습니다.

30여 분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너무도 아름다워 말로 표현 못할 무인도입니다. 섬 주변은 각가지 괴석과 나무 등으로 가득 차 있고 바닷가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축복의 해수욕장입니다. 가족들은 저마다 수영복만 입은 물개가 되어 깊지 않은 해변을 헤엄쳐 다닙니다.

여러 번 경험했지만, 역시 바다는 너무도 무섭고 낯섭니다. 그저 해변의 바위 밑에 쭈그리고 누워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들을 보냅니다. 바닷물 속에서 불러대는 가족들의 재촉은 다만 저를 전율케하는 공포일 뿐입니다. 그 맛있는 사료로 유혹해도,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콩을 들어보여도, 저는 다만 붙박힌 바위가 되어 섬의 일부분으로 말 없이 누워 있을 뿐입니다.

서너 시간을 그렇게 해변에 누워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은 황홀경에 젖어 무릉도원을 거닙니다. 눈가는 또 그렇게 뜨거운 희열로 충만해져 옵니다. 황혼의 불길이 검은 어둠의 장막에 드리워 사그라져갈 무렵 우리는 배를 타고 다시 폰타킷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해변 호텔 방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지요. 물론 저는 그 만찬에서 제외된 채 호텔 방에 홀로 남아 질긴 껌을 씹으며 눈물의 현실을 곱씹어야했지만.

10월의 아침, 그때 그 필리핀이 떠오릅니다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부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부부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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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후, 우리는 차가워진 해변 모래에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제 자리는 곱디 고운 모래사장이었지만 별빛을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황홀경은
아마 그 누구도 짐작 못할 기쁨일 것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각자 거적을 들고 나와 모두 모래사장에 눕습니다. 좁디 좁은 집안에서 에어컨은 물론 고물 선풍기 하나도 귀한 서민들이기에 이렇게 자연 바람을 쐬며 밤잠을 청하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큰 축복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노라니 으스스 온몸이 추워옵니다. 아빠의 품속으로 주둥이를 조심스레 밀어넣자니 잠이 깨신 아빠는 곤히 주무시는 엄마를 깨워 호텔 방으로 저를 데려가십니다.

그렇게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어김없는 아침 산책을 바닷가 마을로 다녀왔습니다. 물론 엄마 아빠와 셋이서 말이지요. 언니와 언니 친구는 밤 새워 수영을 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느라 새벽에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기에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셋만 다녀온 것입니다. 아침 산책길에서 마주친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현지인들은 우리 모두를 바라보시며 부러움의 눈길로 인사를 해오셨습니다. 엄마 아빠도 일일이 "굿 모닝(good morning)" 인사로 그 미소에 답하셨지요.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너무도 뜨거운 태양볕에 더 이상은 물놀이를 즐길 수 없었기에.

오늘 이 차가운 가을 아침 산책길에서 몇 년 전의 그 광경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www.noulpoet.kr 제 홈피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필리핀, #여행, #슬기, #SAN ANTONIO PONTA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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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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