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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안내견이 된 것입니다. 오늘은 공식 안내견 첫날. 뭉치는 '안내견'이라고 쓰인 노란 옷을 입고 하네스(강아지 가슴줄)를 착용한 뒤 점잖고 의젓하게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까지는 그동안 몇 차례 연습을 한 터라 길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네스의 손잡이를 잡은 민재의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휘파람까지 불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뭉치. 계단 찾아!"

 

지하철역 입구에 가까이 다다르자 민재가 뭉치에게 말했습니다.

 

'민재형. 이 길은 내가 잘 안다니까! 그렇게 일일이 말 안 해줘도 이미 알고 있다고요!'

 

뭉치는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다다르자 첫 계단에 앞다리를 걸치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그래야 민재형이 계단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뭉치. 가자."

 

계단을 확인한 민재가 말했습니다. 민재의 명령에 뭉치가 비로소 움직였습니다.

 

"뭉치. 개찰구 찾아!"

"뭉치 왼쪽에 계단 찾아."

"뭉치 서."

 

이렇게 뭉치와 민재는 서로 한 사람이 된 듯이 호흡을 맞추며 첫 날의 안내를 시작했습니다. 민재와 뭉치가 역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이. 그놈 참 잘 생겼다."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뭉치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플랫폼에 있던 모든 사람이 뭉치를 쳐다보았습니다 . 뭉치는 어깨를 으쓱하며 버티고 서서 앞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습니다.

 

"어머! 귀엽다. 나도 저런 강아지 애완견으로 키우면 좋겠다."

 

예쁜 누나들도 뭉치를 보며 한마디 했습니다. 뭉치는 꼬리를 부챗살처럼 펴며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습니다.

 

'흠흠. 내가 생각해도 잘생겼지. 역시 잘 생기고 봐야 한다니까….'

 

뭉치는 더욱 의젓하게 폼을 잡았습니다.

 

"안내견? 학생. 그럼 이 개가 길을 다 안내해 주는 거야? 무지하게 똑똑한가 보네."

 

뭉치에게 잘 생겼다고 칭찬을 한 아저씨가 민재에게 물었습니다.

 

"아니요. 길을 다 안내해주는 것은 아니고요. 저와 같이 길을 가면서 제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장애물 등을 알려 주는 일을 해요. 물론 익숙한 길은 우리 뭉치가 알아서 안내해 주기도 하고요."

"음. 그렇군. 그래도 똑똑해야 그런 일도 하겠지."

 

아저씨는 아주 신기하다는 듯이 뭉치를 바라보았습니다. 뭉치는 똑똑하다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더욱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역으로 지하철이 들어왔습니다. 뭉치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 재빠르게 민재를 안내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민재는 문 옆의 손잡이를 찾아 잡았습니다. 뭉치는 민재의 다리 사이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엎드렸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재와 뭉치를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습니다. 뭉치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살짝 윙크했습니다. 잠시 후 몇 정거장을 지나 민재가 내릴 역에 도착했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지하철에서 내렸습니다. 민재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버튼을 누르자 '지금 시각은 8시 22분입니다'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음성 손목시계입니다.

 

"앗. 늦겠다. 뭉치야 뛰어."

 

민재의 그 말과 동시에 뭉치와 민재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역 계단을 순식간에 둘이 뛰어올랐습니다. 그 바람에 플랫폼으로 내려오던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둘은 지하철역을 벗어나 학교를 향해 달음질을 쳤습니다. 민재처럼 학교를 향해 달리는 학생들이 두세 명 있었습니다.

 

"어이. 김민재. 너 오늘도 늦었구나!"

 

달리던 한 학생이 민재를 향해 말했습니다.

 

"이동욱? 그러게 오늘도 늦으면 화장실 청소 3일인데."

 

민재는 대답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교문을 지나 교실을 향해 힘차게 달린 둘이 교실에 막 들어섰을 때 아침 조회 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후유- 살았다. 화장실 청소 면했다."

 

민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민재가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을 보자 뭉치도 민재형을 위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김민재. 오늘은 지각 대장이 지각을 안 했네."

 

바로 그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며 아직 자리에 앉지 않고 있던 민재를 향해 말했습니다.

 

"헤헤헤. 오늘은 뭉치 덕분에 역부터 학교까지 달릴 수 있었거든요. 벨과 동시에 골인. 성공!!"

"아. 오늘부터 안내견과 함께 등교로구나. 자. 여러분 여러분도 보다시피 오늘부터 민재가 안내견과 함께 등교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학교 개교 100년 이래 처음 있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 협조하기를 바랍니다. 민재의 안내견을…. 참 민재 그 안내견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뭉치요. 사고뭉치의 뭉치!"

 

민재가 뭉치의 이름을 말하자 교실 안의 학생들이 모두 와-하고 웃었습니다.

 

"자. 조용. 조용. 오늘부터 민재의 안내견 뭉치를 담임 선생님의 직권으로 우리 반 명예 학생으로 임명한다."

 

선생님은 말을 맺으며 탁자를 손주먹으로 탕탕탕! 하고 내리치셨습니다. 선생님이 전달 사항을 알리고 교실을 나서자 학생들이 우르르 민재와 뭉치를 향해 모여들었습니다.

 

"녀석. 잘 생겼네."

"멋진걸."

"이름처럼 무지하게 사고 치게 생겼다."

"뭉치? 우리 반에 민재 말고 또 사고뭉치가 생긴 거네."

 

학생들은 모두 제각기 떠들며 뭉치를 반겨주었습니다. 뭉치는 민재형의 책상 밑에서 그런 학생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교과서며 노트를 책상에 펼쳐 놓았습니다. 그러나 민재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이상하게 생긴 기계만을 책상에 올려놓았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민재의 가방엔 이 기계와 노트북 밖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단말기'란 기계입니다. 민재의 교과서 전부가 파일로 모두 이 기계 안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민재는 교과서가 필요 없습니다. 이 기계를 통해 교과서 내용이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로도 나오고, 음성으로 읽어 주기도 합니다.

 

또 선생님이 설명하신 내용도 이 기계를 통해 메모하거나 녹음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 기계에 음악파일도 저장해 두면 MP3 플레이어처럼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인터넷 접속도 가능합니다. 또, 영어 공부를 위한 사전 기능도 들어있고 심심하면 라디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일정관리나 전화번호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일종의 시각장애인용 PDA 기계인 셈입니다. 이 기계 덕분에 민재도 보통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뭉치 때문에 책상이 와르르... "가만히 있어야 돼, 알았지?"

 

수업이 한참 진행 중이었습니다. 뭉치는 민재형의 책상 밑에서 가만히 있노라니 심심해졌습니다. 또 한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자니 몸도 찌뿌드드한 것 같았습니다. 뭉치는 앞다리를 쭉 뻗고 다리에 힘을 주었습니다. 민재의 책상이 위로 쑤욱하고 올라갔습니다. 민재 주위의 학생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마치 뭉치가 책상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학생들 중 몇 명은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다급해진 민재가 "뭉치 앉아!" 하고 뭉치에게 말했습니다. 뭉치는 재빨리 앉았습니다. 그 바람에 책상이 '쾅'하고 넘어졌습니다. 교실의 학생들이 모두 와아! 하고 웃었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셨지만 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민재가 책상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민재의 짝궁도 도와주려고 함께 책상을 잡았습니다. 뭉치도 형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민재가 뭉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뭉치에게 걸려 민재마저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학생들은 전보다 더욱 크게 웃었습니다. 책상을 두드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이런 소란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뭉치. 아까처럼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안 돼. 책상 밑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알았지?"

'…..'

"너 때문에 모두 놀랐잖아. 얌전히 있으라고."

'…..'

 

뭉치는 그냥 가만히 머리를 몸에 파묻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도 나처럼 이렇게 책상 밑에서 한 시간 동안 있어 보라고요. 얼마나 심심한데….'

 

뭉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민재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자기를 못 알아주고 야단을 치는 민재형이 조금 미워졌습니다. 민재도 그런 뭉치에게 미안했는지 가만히 뭉치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화가 풀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근데 뭉치야. 아까 책상 넘어졌을 때 선생님 무지 놀란 것 같더라."

 

민재가 뭉치에게 말하자 옆의 짝꿍이 거들었습니다.

 

"민재 너가 고릴라 선생 얼굴 봤어야 하는데. 정말 고릴라 같았다니까."

"그래? 그렇게 화난 것 같았어?"

"아마 뭉치가 아니고 나나 너가 그랬다면 우린 벌써 죽었을 거다.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코에서 김만 씩씩 나왔다니까."

 

민재와 짝궁은 뭐가 그리 좋은지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뭉치에게 우르르 몰려와서 수업시간에 있던 일로 떠들썩했습니다. 다음 수업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났습니다. 학생들은 우르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민재는 뭉치에게 주의를 주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화장실도 못 갔습니다. 뭉치는 민재가 일러준 대로 책상 밑에 들어가 앞다리에 얼굴을 묻고 엎드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민재의 배가 갑자기 살살 아파왔습니다. 아직 쉬는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민재는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뭉치가 민재를 안내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은 매우 좁았습니다. 민재 혼자로도 좁은 화장실에 뭉치가 함께 들어가니 그야말로 꽉 찼습니다. 민재는 변기에 앉고 뭉치는 바로 옆에 몸을 거의 구기다시피 하며 민재의 허벅지에 얼굴을 올려놓았습니다.

 

언젠가 민재가 갔던 공원에서의 장애인용 화장실이 넓었던 것은 휠체어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고 민재는 생각했습니다. 뭉치는 더욱 죽을 맛이었습니다. 겨우 몸을 구기고 민재형 다리에 얼굴을 얹고 있자니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쾅 쾅'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배에 힘을 주고 있던 민재와 겨우겨우 불편한 자세로 있던 뭉치 모두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그 바람에 뭉치가 '컹컹'하고 큰소리로 짖었습니다. 다음 순간 밖에서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쿵'하는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곤 다시 "귀. 귀신이다"하면서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민재는 순간 얼떨떨 했습니다. 뭉치도 놀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둘이 겨우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화장실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화장실에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김 선생. 화장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요."

 

목소리는 체육을 담당하는 김성일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 같았습니다. 그런데 두 선생님 뒤로 많은 학생들이 웅성웅성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민재는 조금 전의 상황을 알아차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평소에도 겁이 많기로 유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뭐야? 김민재. 너였어. 화장실 안에서 귀신 장난 한 사람이?"

 

김성일 선생님이 웃음을 꾹 참으며 일부러 엄한 목소리로 민재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아니고 이 녀석. 뭉치가…."

 

민재는 뭉치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뭉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교장 선생님을 향해 살랑살랑 꼬리를 부챗살처럼 펴며 흔들었습니다. 뭉치의 특기는 바로 이런 부챗살 모양의 꼬리 흔들기입니다. 무안해진 교장 선생님은 괜스레 흠흠 하며 헛기침만 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 뭉치는 학교 전체에서 유명해졌습니다. 뭉치의 공식 안내견 첫날은 이렇게 화려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뭉치가 들려주는 안내견 이야기] 안내견은 네비게이션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뭉치예요.

 

오늘은 저의 공식 안내견 첫날인데 사고를 좀 쳤어요. 가뜩이나 겁이 많은 교장 선생님 간이 더욱 콩알만해졌겠죠? 민재형의 설명대로 우리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 길을 알아서 척척 안내하는게 아니예요. 길은 안내견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이 머리 속에 알고 있어야 해요. 우린 다만 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으면서 장애물등에 부딪히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물론 매일 다니거나 자주 다니는 길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므로 별 문제 없이 안내를 하지만요.

 

오션이라는 안내견이 있었어요. 지금은 은퇴를 했겠네요. 오션이는 누나하고 다니는데 이 누나가 전에 대구에 살았어요. 그 때 서울에서 교육을 받느라고 매일 아침 일찍 서울에 올 일이 있었데요. 어느날 지하철 삼각지역의 환승통로에서 떡을 팔길래 누나가 하나 샀는데 그 뒤론 삼각지 역을 지날 때마다 제 친구 오션이가 떡 장사 아줌마한테 안내를 하더래요. 이렇게 우리는 머리가 좋아요.

 

한 번 간 길은 척척 알죠. 그러나 역시 초행길은 우리 안내견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 줘야 해요. 우리는 "오른쪽으로", "계단 찾아", "문 찾아", "멈춰", "신호등 찾아" 등의 명령을 받으면 그 목적물로 시각장애인을 안내하고 또 갑자기 닥치는 위험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죠.

 

그러니 안내견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안내견이 모든 길을 알아서 안내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고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가르쳐주세요. 그럼 저도 스트레스 조금 덜 받을 수 있거든요. 다음 주에 또 올께요.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 안녕.


태그:#안내견, #뭉치, #장애인도우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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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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