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한번 안 다녀본 우리 아들이 또 1등을 했어? 어이구, 예쁜 우리 아들…. 쪼~옥!"밥만 잘 먹어줘도 그저 기분이 좋아지는 게 바로 엄마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등 떠밀려 학원을 다니며 이룩한 1등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 감격스러운 1등의 기쁨을 누가 알리요. 아들의 6학년 1학기 기말고사 1등 소식에 아내는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것보다 더 우쭐해지며 그것으로 한동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다, 그건 다름 아닌 '엄마의 힘'이었다. 아들은 지금까지 학원 한번 안 다니고 6년간 오로지 '엄마표'로 공부를 해왔었다. 직장 일과 집안일, 아이 선생님으로 1인 3역을 하느라 몸은 고됐지만 집에서 공부하는 것도 사교육을 능가할 수 있다는 아내의 야심찬 프로젝트(?)의 위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하지만, 2학기가 되니 서서히 그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급기야 2학기말 고사를 앞두고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 엄마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며 점점 공부에 싫증을 내더니 엄마와 사이가 나빠지며 싸움이 잦아진다. 영원히 착하고 말 잘 들을 것 같던 아들은 어느새 신경질을 부리더니 욕설까지 내뱉으며 사사건건 반항한다. 윽박지르기라도 했다간 반항의 강도만 더 높이게 될까 무섭다. 아, 이럴 땐 엄마가 과연 어떻게 대해야 현명한 걸까.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결코 없었으리라. '엄마표'의 최대 장애요소라는 '화'를 삭이며 차근차근 지도했음에도 쉬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 아내는 또 벌컥 화를 내고 만다. 아들은 휴대폰 압수, TV 시청 중지, 컴퓨터 사용금지, 외출금지, 용돈금지 등의 가혹한 형벌(?)을 이해 못할 엄마의 복수라 여길 뿐이다. 이미 엄마는 아들을 못 잡아 안달 난, 약간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비쳐지는 것이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한쪽 귀로 흘려버려 마치 엄마 말을 못 알아듣는 척 행동하기도 한다. 내면에 화가 많이 축척되다 보니 별것 아닌 것으로도 형제와 다툼이 많아지고, 심지어 아빠에게도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등 적대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다.
엄마의 정답 부르는 속도, 틀린 문제 수와 비례? 얼마 전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아들은 엄마와 밤늦게 씨름을 했다. 하지만 아들은 예상문제집 푸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오는데도 "아~우, 풀기 싫은데~"부터 시작하더니 온통 짜증 섞인 말투로 중얼거린다. 좋은 말로 타이르던 엄마가 급기야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드니, 아들은 책상을 '탕탕' 쳐가며 왜 해야 하느냐고 맞선다.
우여곡절 끝에 수학 예상문제를 모두 풀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정답지를 보며 답만 맞추면 되는 것이었다. 엄마는 답안지를 보며 열심히 답을 불렀고, 아들은 초스피드로 빨간 펜으로 채점을 해댄다.
그런데 몇 문제를 지나니 동그라미만 있는 게 아니라, 사선이 한두 개씩 늘기 시작한다. 곁눈질로 틀린 문제 개수를 하나하나 흘겨보던 아내는 점점 답 부르는 속도가 빨라진다.
"저기요, 엄마. 부르는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중간에 틀린 것도 있으니깐 좀 천천히 불러주세요."(식은땀이 나며 무서워지는 아들)"뭐가 빨라? 답만 부르는데… 정신을 어디다 두는 거야!"(이미 짜증난 목소리) 하지만 엄마의 스피드는 줄어들지 않는다.
"엄마… 23번 답 좀 다시 불러줄래요…?""뭐? 뭐하느라 못 들었어? 높이 7.6센티잖아!""아, 화 좀 내지 마세요, 저도 짜증 나 죽겠어요.""뭐?""…."이후 속도가 조금 느려지는 듯 싶더니 틀린 문제가 많아지니 원상복귀다. 아니, 아내는 이미 통제 불능 상황이다.
"28번 답 좀 다시요…""….""엄마, 28번요…""그것도 못 들었니? 1.2배! 소수 둘째자리에서 반올림하면 1.2잖아!""….""도대체 몇 개를 틀린 거야! 내일이 시험인데 똑같은 문제를 몇 번을 풀어야 알아듣겠니? 그걸 그냥 곱하면 어떡해! 약분해야지!"이쯤 되면 불안은 상처이고. 상처는 사랑의 반대말이다.
'아이 잡는 엄마표'... 사교육은 선택일까, 필수일까엄마는 나름대로 열심히 시험패턴을 분석해 예측하지만, 아들에게서 노력만큼의 결과를 기대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성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수십 번이나 혼자서 맹세했지만 때때로 원초적 반응으로 제압해버리는 평범한 엄마가 되어버린다. 아내의 불안 뒤에는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픈 교만의 다른 모습이 도사리고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황이 차츰 반복되니 "사교육 타도"를 외치던 엄마는 결국 '아이 잡는 엄마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른 집 엄마들이 기를 쓰고 학원에 보내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결국 6년 동안 1등을 내리 독차지한 아들은 2학기 기말고사에서는 죽을 쑤고 말았다. 학력위주의 이 살벌한 사회에서 아내는 아들이 학원 한번 안 다녀본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건만…. 더 이상 아들을 통제하는 일, 정말 쉽지 않다. 아내가 감정적으로 대처하게 될 때가 많아지니, 이만한 애물단지도 또 없다.
아들의 학력 신장이 엄마로는 한계가 있다고 서서히 판단한 아내,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선택 항목일것이라고 위안을 얻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원칙적으로 엄마가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엄마표'와 학원 사이. 대한민국 모든 엄마의 고민 아니겠는가. 학원을 보내자니 자기 주도 학습이 안 될 것 같아 불안하고, 안 보내자니 아들이 무섭고…. <공부 잘하고 싶으면 학원부터 그만둬라>라는 베스트셀러 추천도서를 믿었건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지라. 아, 사교육은 선택일까, 필수일까? 아내는 오늘도 '엄마표'와 학원을 사이에 두고 잠 못 이룬다.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소. 혹여 아이의 성적표가 하향 곡선이라도 그릴라치면 여지없이 내가 야속해지고 '애한테 신경 좀 쓰라'며 잔소리가 딸려 나오기 마련일 텐데…. 6년 동안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당신, 고마워요!"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응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