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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일요일이었습니다. 민재는 아침부터 외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오늘 동욱이와 함께 국립과학도서관에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민재가 다니는 학교는 정보화 특성고입니다. 모두 미래의 컴퓨터 박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모여든 전국에서도 유명한 학교입니다. 민재는 비록 눈이 안 보이지만 컴퓨터 실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오늘 민재와 동욱이는 전국 학생 발명 아이디어 공모전에 제출할 자료 조사를 위해 도서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화창한 일요일이라 외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뭉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뭉치를 칭찬하는 소리도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뭉치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내내 그런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걸었습니다. 정류장에서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뭉치를 쳐다보았습니다. 뭉치는 어김없이 부챗살 꼬리를 만들어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의 팬들에게 보답했습니다.

저 멀리 민재가 타야 할 버스가 오는 게 보였습니다. 숫자를 읽을 수는 없지만 몇 차례 타 본 버스라 뭉치도 알 수 있습니다.

"학생, 818번 버스 탄다고 했지? 지금 오고 있으니 준비하라고."

민재 옆에 있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뭉치와 민재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민재는 버스가 도착하자 "뭉치야 버스 문 찾아!"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맞춰 뭉치는 걸음을 사뿐히 옮겨 버스 문을 찾았습니다. 정류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멋지게 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뭉치는 버스 문 계단에 앞다리를 올려놓고 그 자리에 섰습니다. 민재형에게 계단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운전사가 '쾅'하고 버스 문을 닫았습니다. 그 바람에 뭉치의 몸이 문에 끼고 말았습니다.

"낑낑. '민재 형 나 좀 꺼내 줘!' 낑낑."

뭉치는 민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놀란 민재가 상황을 알아채고 쾅쾅쾅 버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저씨. 뭉치가 위험해요. 빨리 문 열어줘요."

민재는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도 버스 안의 승객들도 모두 놀라 웅성거렸습니다.

"왜 위험하게 그렇게 문을 닫는 거야!"
"개가 버스 문에 끼었다."
"뭐야? 왜 이 버스 빨리 안 가는 거야?"
"이 시간에 개를 데리고 버스에 타는 사람은 뭐야?"
"어이 기사 양반 빨리 문 열어요. 저러다 저 개 다치겠어."

그제서야 운전사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후유-'하고 뭉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민재는 화가 나서 운전사 아저씨께 따졌습니다.

"아저씨. 우리 뭉치가 위험했잖아요."
"우리 버스에 개는 탈 수 없단다."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라고요.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안내견이란 말이예요."
"안내견이건 뭐건 개는 개야. 다른 사람들이 싫어한단 말이야. 개는 버스에 탈 수 없어."
"안내견은 어디나 갈 수 있고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요. 만약 이를 방해하면 2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고 법에 정해 있단 말이예요."

민재는 안내견센터에서 들은 바를 운전사를 향해 말했습니다.

"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난 개를 태울 수는 없어."

뭉치를 태워주지 않은 버스기사... 인터넷엔 동영상이

운전사는 문을 '쾅' 하고 닫고는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뭉치는 민재를 쳐다보았습니다. 초점 없이 커다란 민재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뭉치는 보았습니다. 그 눈물을 보자 뭉치는 아픈 것도 잊었습니다.

'형. 괜찮아?'

뭉치는 민재를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뭉치야. 괜찮니?"

민재는 얼굴을 하늘로 들며 아무도 모르게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운전사를 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녀석 괜찮니? 어디 다치지는 않았니?"

등산 배낭을 메고 있던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가 뭉치를 살피기 위해 조금 다가오자 뭉치는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갑자기 어른들이 무서워졌습니다.

"학생, 개는 별로 다친 데는 없는 걸. 괜찮은 것 같아."

아저씨는 조금 떨어져서 뭉치를 살펴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버스가 왔지만 뭉치는 버스 타기가 두려웠습니다. 민재도 버스 타기가 싫어졌습니다. 뭉치와 민재는 도서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조그만 소리에도 뭉치는 엄청 긴장을 했습니다. 한참을 걸려서야 겨우 도서관에 도착을 했습니다. 동욱이는 도서관 앞에서 민재와 뭉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재야. 왜 이리 늦은 거야?"
"버스 운전사가 우리 뭉치를 안 태워줘서 조금 늦었어. 미안."
"왜? 안내견은 버스나 지하철 식당 같은 곳은 아무 데나 들어갈 수 있다며?"
"법에는 그렇게 정해져 있는데 그걸 모르거나 알더라도 안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 오늘 아침엔 뭉치가 버스 문에 걸터 있는데도 문을 닫아서 뭉치가 위험할 뻔했어."
"그래? 그런 못된 아저씨가 있나. 그 버스 몇 번인데 그런 못된 운전사는 혼이 나야 해. 우리 인터넷에 올리자."

동욱이는 민재보다 더욱 화가 난 듯 씩씩거렸습니다. 민재와 동욱이는 도서관의 장애인 정보도움실로 들어갔습니다. 시각장애인도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스크린리더(화면을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어 민재도 자주 이용하는 곳입니다. 동욱이가 이곳저곳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그 버스 회사에 대한 정보와 안내견에 관한 관련 법 조문을 뒤졌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사연을 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해당 구청 사이트에 들어가 신고도 했습니다.

이곳저곳 웹서핑을 하던 동욱이가 민재에게 놀라서 말했습니다.

"민재야. 벌써 인터넷에 뭉치 이야기가 나왔어. 동영상도 있는데?"
"그래? 뭐라고 나왔는데?"

동욱이는 재빨리 URL을 민재에게 네트워크로 전송했습니다. 민재와 동욱이의 컴퓨터 화면에 똑같은 동영상이 보였습니다. 화면에는 버스 문에 낀 채로 버둥거리고 있는 뭉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뭉치는 민재 곁에서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자 신기한 듯 눈망울을 굴리며 쳐다보았습니다.

뭉치가 버둥거리는 동영상과 함께 '안내견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란 제목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버스 문에 낀 뭉치의 이야기가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디카나 핸폰으로 찍은 것 같았습니다. 동영상에는 버스 번호도 운전사의 얼굴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뭉치는 버스에 낀 자신의 모습을 보자 새삼 몸이 아픈 것 같았습니다.

"민재야. 우리가 수고할 필요가 없네. 누군가 벌써 인터넷에 올려 놓았어."
"그러게. 그걸 찍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네."
"이미 SNS를 통해서 엄청나게 번지고 있는걸."

민재와 동욱이는 버스 사건을 인터넷에 올리려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벌써 민재의 트위터에도 여러 글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둘은 원래 도서관에 온 목적대로 자료를 찾느라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어 밖으로 나왔습니다. 뭉치는 그동안 도서관 의자 밑에 쭈구려 있던터라 앞발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폈습니다.

인터넷 스타(?) '버스견'이 된 뭉치

"뭉치, 심심했지. 우리 조금 움직여볼까?"

민재가 뭉치의 마음을 아는지 뭉치에게 말했습니다. 뭉치는 '역시 민재형이야' 하고 생각하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동욱아. 우리 도서관 주위 한 바퀴만 뛰고 점심 먹자."

민재의 말에 동욱이도 "좋지" 하고 대답했습니다. 민재와 뭉치, 동욱이는 도서관 주위의 산책길을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와- '버스견'이다."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주위의 많은 사람이 뭉치네 일행을 쳐다보았습니다.

"어! 맞다. 틀림없이 버스견이다."
"실제로 보니 아주 잘 생겼네."
"안내견이네. 저런 안내견을 버스에 안 태우다니…."

사람들은 제각기 한마디씩 했습니다.

"버스견? 그게 누구야?"

민재가 동욱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뭉치를 쳐다보면서 말들을 하는데? 아마 인터넷에 있는 동영상을 보고 그러는 것 같아."

동욱이가 대답을 하는 사이 사람들이 셋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꺼내 뭉치를 사진 찍기도 했습니다. 

"이 개가 아침에 버스에 먹힌 그 개 맞죠?"
"안 다쳤나요?"
"잘생겼다. 이 개 이름이 뭐예요?"
"너무 착하게 생겼네."
"근데 앞머리가 짱구네. 조금 장난꾸러기 같지 않아?"
"안내견이면 아주 똑똑하지요?"

사람들은 제각기 민재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민재는 그런 사람들에게 안내견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뭉치는 민재형 곁에서 꼬리를 살살 흔들며 폼을 잡았습니다.

"우와. 정말 인터넷 빠르다. 벌써 뭉치가 유명해졌네."

사람들 곁을 벗어나면서 동욱이가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엄마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그런 아빠 곁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아빠가 놀라서 말했습니다.

"어! 저거 뭉치 아냐? 여보, 민재야! 이리와 봐."

그 말에 주방에 계시던 엄마도 거실로 오셨습니다. 민재도 장난을 그만두고 아빠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이 화면은 시청자께서 제공하신 화면입니다. 버스 문에 안내견 한 마리가 위험하게 끼어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임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텔레비전에는 낮에 도서관에서 보았던 인터넷 동영상이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버스 문에 끼어서 버둥거리는 뭉치와 버스 문을 주먹으로 두들기는 민재의 안타까운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기자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안내견을 비롯한 장애인보조견들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행동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법 제36조에는 누구든지 장애인보조견 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이를 어길 때에는, 200만 원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법 규정에 앞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버스 문에 낀 안내견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그나마 힘든 장애인을 더욱 어렵게 하지 않는가 하고 반성해 봅니다."

화면은 다른 뉴스로 넘어갔습니다.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민재야. 어디 다치지는 않았니? 왜 엄마에겐 말을 안 한 거야?"
"괜찮아요. 뭉치도 괜찮고."
"오늘 뭉치와 민재가 큰 경험을 했구나. 앞으로도 더욱 조심해라. 뭉치도 조심하고."

아빠는 뭉치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뭉치는 다시 낮에 일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옆구리가 아파오는 것같았습니다.

[뭉치가 들려주는 안내견 이야기] 안내견 출입을 막으면 안 돼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많이 놀라셨죠? 저도 많이 놀랐어요. 겁도 많이 났고요. 우리 안내견이 제일 힘든게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때예요. 무턱대고 안내견의 출입을 막는 일이 벌어지죠. 이런 일은 법으로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요. 지하철에서 안내견 데리고 탄다고 막 욕하는 사람도 있고(관련기사 : <무개념 아줌마 '개소리' 좀 들어보실래요?>), 안내견 등 장애인보조견의 출입을 법으로 보장하도록 규정한 국회가 오히려 출입을 막아서는 일도 있습니다(관련기사 : <안내견인데...신성한 국회라 동물은 안 된다고?>).

장애인복지법 제36조에는 누구든지 장애인보조견의 출입을 정당한 이유없이 막아서는 안되며 만약 이를 어길시는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있어요. 그렇지만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적도 거의 없고 이런 규정이 있어도 막무가내로 안내견 출입을 막는 일은 많지요. 무개념녀 사건처럼 잠시 인터넷만 뜨거워지다가 같은일이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예요. 좀더 규정이 강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우리 안내견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걸으면서 엄청 스트레스 받거든요. 안전하게 주인을 안내해야하는 부담감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더욱 더 긴장하고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가요. 앞으론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제발 부탁해요.


태그:#장애인보조견, #장애인복지법, #안내견,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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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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