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을 생각하면, 제일 뚜렷하게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야근이다. 온라인광고대행사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나는, 매달 터지는 엄청난 양의 일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썩어야 했다.
특히 올해 3~5월은 새벽 퇴근을 밥 먹듯했다. "도대체 이렇게 살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혹은 "난 왜 들어가는 회사마다 야근 많고 월급은 짠 걸까"라고 대뇌이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해서, 올 한 해 뜻깊었던 사건이나 내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꾼 마법같은 이벤트는사실상 없었다고 단정해도 될 듯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후회하지 않는 게 있다. 함께 밤을 새우면서 일을 했던 팀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
지금은 나와 막내 사원을 제외한 팀 전원이 회사를 그만두어 마음 한 구석이 많이 허전하지만, 그래도 종종 팀원들과 메신저와 카카오톡을 통해 소소한 대화도 나누고 장난을 치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아웃사이더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해왔던 나. 그런 나조차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할 만큼 소중한 인연으로 간직하게 된 우리 팀원들에 대해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이들이 없었다면, 올 한 해 내 삶은 무척 심심했을 것이다.
하나하나캐릭터가 분명한 팀원들
일단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을 담당했던 우리 팀 각 구성원의 면면은 이렇다. 출판사와 음반사 등에서 일하다 회사에 입사한, 어딘가 달관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인 여자 A과장님.
또 한 분은 패션잡지에서 일하다 오신 탓인지 입사 초기 뚜렷한 패션관을 뽐내신 여자 B과장님. 이 분은 처음의 커리어우먼 이미지와 달리 잦은 야근으로 많이 망가져서 팀원들의 놀림감이 됐다. 특히 사회생활의 면면이라든지 각종 업무적인 사항들을 고루 가르쳐준 내 직속 사수라 더 기억에 남는다.
다음 두 명은 나와 같은 주임급 직원. 예대 출신으로남 앞에 서면 활달하고 유머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로, 이런 자신의 매력을 남 앞에 드러내기에 급급(!)했던 남자 주임 A. 틈틈히 밴드활동을 하면서 다방면의 오덕 활동에 헌신적이었던 착한 오빠같은 매력의 남자 주임 B. 여기에 손 크고 배려심 깊은 소녀 감성의 막내 여직원까지.
총 6명의 각기 다른 캐릭터가 만나 회사 일을 했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을 한두 명 만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헌데 우리 팀은 웹상의 글이나 영상 기획 및 제작을 담당하다보니, 각자 구성원들의 성격이 매우 뚜렷하면서도 성향이 비슷했다(기본적으로 글이 됐든 그림이 됐든,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성향이 비슷하단 사실을 이때 느꼈다).
나중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어 팀원들끼리 팀을 꾸려가야 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오히려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 허물없이 일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 부족한 부분은 알아서 메워주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성원들끼리 바로 알아채 각자의 일을 명확하게 수행했다.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두서 없이 깔깔거려 다른 팀의 원성 및 부러움을 받기도 했지만,일이 힘든 와중에도 팀원들과의 일상이 즐거워 버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마치 회사가 아닌 동아리에서 일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한창 일이 많을 때 개별로 프로젝트 하던 일을 작성했더니 개수가 9개나 되어 놀란 적이 있다. 그만큼 쏟아지는 일의 홍수 속에서 그들과 장난치고 웃으며 일하지 않았더라면, 진심으로 말하건데 몸도 마음도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넘쳐나는 일은 그만! 팀원들이 모여 땡땡이를 모의하다
특히 우리 팀이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넘쳐나는 일에 반기를 들어 땡땡이를 모의해봤기 때문이다(요때는 애석하게도 나중에 들어온 막내 사원이 없었다). 온라인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프로모션 제안이라는 괴물(!)에 대해 익히 알 것이다.
브랜드에서 제안하는 온라인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짜고 그것을 광고주 쪽에 제안하는 일인데, 이 제안 작업을 하느라 팀원들은 3~5월 동안 새벽 2~3시까지 릴레이 회의를 한 후 퇴근을 하는 게 일상의 다반사가 됐다.
물론 이런 제안단의 업무 말고도 일상적으로 진행되던 실행단의 업무가 늘상 있었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일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어느날 야근 저녁을 먹던 도중 두 여자 과장님들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일 너무 많다. 도망가자." 남은 팀원들도 이에 동의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로 도망갈지, 어떤 차편으로 갈지, 그 모든 것을 단숨에 정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행선지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전주로 정했다. 사실 명확하게 그 당시 팀원들이 들었던 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여튼 우린 정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전주로 도망쳐야 겠다고.
여기에 더 황당한 사실은 두 과장님이 회사 실장님 방으로 들어가 일이 너무 많아서 전주로 도망가겠다는 사실을 당당히 전했다는 거다. 우리 팀은 실장님과 사장님의 파안대소와 함께 도망 비용을 워크숍 비용으로 처리받는 호재를 누렸다는 사실이다(근데 회사 일을 하기 위한 노트북은 팀원 전원이 들고 갔다. 사실 도망의 의미는 별로 없었던 듯). 그래도 나름 도망이랍시고, 회사 차까지 빌려 두근두근한 마음을 안고 전주로 향했다. 회사 다니면서 팀원들과 일이 많아 도망을 모의하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팀원들은 전주 한옥마을에 방을 잡고 일한 다음 업무파일을 보내기 위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에서 급하게 업무처리를 해야 했다. 파일 보내던 도중 와이파이가 약하게 잡혀 메일 보내던 노트북을 높이 들고 방방 뛰어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일을 얼추 마무리한 다음에는 나름 도망왔답시고 맛있는 음식과 술, 아늑한 잠자리로지친 몸을 달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면서 묘한 분위기 속에 돈독함을 뽐낸 우리팀. 이후 회사에서는 우리 팀의 자체 워크숍을 계기로 팀별 워크숍을 가는 제도가 생겼다. 물론 일이 넘치는 회사 사정상 실제로 우리 팀 말고 워크숍을 간 팀은 아직 없지만 말이다.
그들과 함께 한 1년동안 일이 재미있기보다는 너무 힘들었고, 팀원들과의 생활로 내가 버텨왔기에 그들과의 유대관계가 내 회사생활의 유일한 이유인 줄 알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팀원들이 회사 근속 년수 1년을 채워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 후, 난 회사 일에 점차 익숙해지고 조금씩 재미를 붙이게 됐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팀원들과의 관계에 힘들어 할 때도 많지만, 도대체 무슨 동력인지 그럭 저럭 버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팀원들과의 요절복통 1년을 보냈기 때문인가 싶다. 난 업무적으로 내 자신이 능력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일 배우는 과정도 느리고 사람 관계에서 쉽게 상처받는 나를 팀원들이 배려해줬기에,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일을 익숙하게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못하고 사람들과 융화하지 못해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했던 예전 회사생활 기억을 극복하게 해준 이 팀원들과의 추억. 사실 그들과 더 많은 일들이 있었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회사의 모든 사건들이 현재진행형이라 다 말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팀원들과 웃고 떠들던 그때를 떠올리며 힘을 내보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둔 그들과의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그들의 앞날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지금도 여전히 일도 탈도 많은 이 회사에 다니는 나도, 그동안 그들에게 받은 인간관계와 일적인 부분에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낀 다음 떠날 수 있기를 빌어본다.
* 회사에서 야근만 하면 지낸 게 사실 슬펐지만 여러분 덕분에 즐거웠어요. 많이 고맙습니다. 언제 또 깔깔 웃으며 치맥데이 한번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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