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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폭탄의 흔적이 남은 제주공항
▲ 눈 폭탄을 뚫고 라오스로 눈 폭탄의 흔적이 남은 제주공항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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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방콕 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고,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제주여행 이후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반가움을 수다로 털어냈고, 몇몇은 카메라를 장난감 삼아 서로의 설렘을 복사하고 있었다. 또 몇몇은 통 유리창을 통해 며칠 전 내려 폭설의 흔적이 남은 활주로를 내다보기도 했다.

세계 어느 도시로부터 막 도착했을 비행기와 또 다른 어느 도시로 다시 떠나기 위해 여행자들을 싣고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비행기들이 그 활주로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저들 비행기 중의 하나를 타고 태국 방콕으로 향할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치앙마이를 거쳐 라오스 북부의 훼이싸이로 입국할 계획이었다. 그곳에서 메콩강을 따라 라오스의 여러 도시들과 마을들을 여행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날로부터 28박 29일. 길 위에서 지내기에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손에 쥐어질 낯선 세계에서의 한 달.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한 명씩 카메라를 들이대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어제 잠을 못 잤어요, 설레서요."

"그래, 설레는구나. 그런데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 그냥 말해도 돼요?"

"그럼!"
"노는 거요. 그냥, 잘 놀았으면 좋겠어요."

잘 노는 거라, 나름 의미심장한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련만, 그냥 잘 놀았으면 한단다. 다른 아이에게 다시 물어본다. 

"여행 기간 동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살 빼는 거요."

"살이야 한 달 후면 자동적으로 빠질 걸? 그것 말고 또 있다면?"
"음… 저도 실컷 놀았으면 좋겠어요."

또 '노는 것' 타령이다. 내친 김에 이제는 무작위로 물어본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거요."
"우리나라하고 다른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어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어요."
"두려움을 없애는 거요."

아이들의 다양한 바람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라오스의 문화를 체험하고 자신의 경험 세계를 넓히고 싶다거나 여행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발견하고 싶다는, 어쩌면 내가 기대했던 대답들도 더러 있지만, 그래도 다수의 대답은 이른 바 '노는 것'이다. 잘 노는 것, 실컷 노는 것, 재미있게 노는 것, 또 그것도 아니면 그냥 노는 것.

이 시점에서,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이 아이들이 안쓰러워진다. 놀아야 할 시기에 놀지 못한 아이들의 그 마음이 카메라의 렌즈를 뚫고 날것이 되어 내게 날아와 박히는 것 같다.

흔히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대학에 가서 또는 좋은 직장을 구하고서 놀아도 늦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실상 '그날의 노는 것'은 그처럼 우리를 친절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노는 것이라고 표현되는 초등학생 때에 하고 싶은 그 무엇과 고등학생 때의 그것과 대학생이 되어서의 그것 사이에는 심연의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지나간 과거일 뿐 다시 현재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혼자 다짐해본다.

'그래, 실컷 놀아보자. 이 한 달의 시간이 과거의 놀지 못한 날들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미래의 힘든 어느 날에 우연히 기억해내고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홍콩 공항에서
▲ 바닥에 눌러앉아 카드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 홍콩 공항에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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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인천공항에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공항에서 상훈이 미아 만들기'다. 상훈이는 제주교대 1학년생이다. 나랑은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대학 동기생'이고, 이번 여행에 동행한 두 명의 대학생 중의 한 명이다. 덩치는 내 두 배쯤 되고, 어깨가 떡 벌어졌으며, 배짱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배낭여행은 처음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비행기 탑승권 발권을 하느라고 아이들의 여권을 모두 거둬갔던 아내가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돌아왔다. 그리고는 대뜸 한 말이, 이랬다.

"상훈이를 두고 가야겠는 걸."

무슨 소리? 나는 얼른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때 아이들은 공항 로비에서 재잘거리며 여행을 앞둔 들뜬 마음을 맘껏 피워내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의 배낭 중에서 무거워 보이는 놈들을 골라잡고 그 원인을 탐색하던 중이었다.

이를테면 청바지 세 벌을 포함해서 바지만을 5~6벌이나 가져온 도솔이(중3)를 설득해 바지 두 벌과 반팔 티셔츠 몇 벌을 배낭에서 빼내고, 왕사탕 큰 봉지를 통째로 가져온 서희(중1)로 하여금 친구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게 하는 등 전체 여행 기간 중에서 가장 비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이른바 '배낭 검열 작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훈이가 왜? 탑승 1시간을 앞둔 지금, 무슨 이유로 그를 다음 비행 편으로 남겨놓고 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아내의 덧붙이는 설명은 더욱 경악스럽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 비행 편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될 수도 있단다.

알고 보니 문제의 원인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방학 전 <음악실기> 수업 시간이었던가, 상훈이가 "삼촌, 제 여권이름 잘못 알려줬어요"라며 쪽지를 건넸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걸 여행준비를 도맡아 하던 아내에게 전달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권에 있는 영문 이름의 스펠링(Hun)과 항공권 예약 명단의 그것(Hoon)이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탑승시간 전에 예약자 명단을 변경해야 한다. 그런데 항공권 예약을 대행했던 여행사의 담당자가 연락이 닿지 않는단다.

예쁜 하영이의 일기장
▲ 여행 첫날, 공항투어의 날 예쁜 하영이의 일기장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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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배낭 검열 작업에서 빼낸 옷가지들과 다들 입고 온 겨울 잠바 등을 택배로 보내고, 의리 없는 녀석들은 상훈이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항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지막 군것질을 해대는 동안에도, 여행사로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다. 설마 하는 표정이었던 상훈이의 얼굴도 점점 심각해져 갔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택배로 부쳤던 짐을 다시 찾아서 그의 모바일을 끄집어냈다. 여행사의 전화번호와 방콕에서 그가 혼자 찾아와야 할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 이야기를 해주었다. 영화를 관람한 이라면 알다시피 영화는 갑작스런 전쟁의 발발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국으로의 입국도 거부당한 주인공이 뉴욕공항 대합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언어를 배우고 일을 찾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끝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상훈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상훈아, 공항에서의 24시간을 즐겨봐. 이건, 흔치 않은 기회야."

이 글을 쓰고 있는 며칠 전에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어깨를 두드려주던 그 순간의 기분을 그에게 물어보았다.

"1년 전 그날 있잖아, 혼자 다음 비행기 타야 한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니?"
"내 여행은 이것으로 끝났다 싶었죠. 삼촌은 공항에서 잠자라고,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잘 거라고 그랬지만, 저는 제주도로 돌아가야지, 이런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그랬었어?"
"삼촌, 그런데 그거 별 거 아니었어요, 여행해보니까."

"그렇지? 다음날 비행기 타면 되고, 택시타고 '카오산 로드' 찾아오면 되는데."
"그래서 삼촌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건데, 그땐 몰랐죠."

생각해 보면 세상일이 다 그렇다. 스스로 겪어보지 않은 일은 누구나 두렵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좋은 학교임에 틀림이 없다. 매일 매순간 겪어보지 못했던 낯선 세계와 조우하면서 두려움을 설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또한 여행이니까.

그때 아내가 뛰어왔다. 표정으로 보아 해결이 된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아쉬웠다. 상훈에게는 오랫동안 기억될 이야기 하나가 생길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서다. 여행이란 보고 듣고 느끼고 때로는 만져보는 것이지만, 한 편으로는 이야기로 남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
▲ 첫 여행의 설렘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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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방콕 행 비행기에 올랐다. 흔히들 그렇듯이 2011년 1월 5일, 우리의 여행 첫날은 '공항과 공항 사이를 여행한 날'이었다. 그러니까 제주/울산-김포-인천-홍콩-방콕의 공항과 공항, 그리고 그 사이를 꼬물꼬물 우리들의 이야기로 이어본 날이다.

<라오스 여행학교>의 친구들은 모두 네 개의 지역에서 왔는데, 고양에서 둘, 대전에서 둘, 울산에서 셋, 그리고 제주에서 여섯이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아이들은 적게는 세 군데 많게는 다섯 군데의 공항을 여행하고서야 첫 여행지 방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주나 울산의 경우 김포공항까지 1시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1시간, 인천공항에서 대기시간 3시간, 경유도시 홍콩까지 4시간, 홍콩공항에서 경유시간 4시간, 방콕까지 3시간, 마지막으로 방콕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카오산'의 게스트하우스까지 다시 1시간. 아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보낸 날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너무 피곤하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서 비행기를 이렇게 오래 타고 공항에 이렇게 많이 있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양나운(중2)

아이들은 처음 보는 기내식에 신기해하다가도 그 국적불명의 맛에 실망하기도 하고, 홍콩공항을 경유할 때는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홍콩달러를 환전해서 홍콩음식에 도전하여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어린이 놀이 공간에 퍼질러 앉아 카드놀이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어색하고 서툴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방콕에 도착한 다음 날, 와트아룬에서
▲ 방콕의 하늘 드디어 방콕에 도착한 다음 날, 와트아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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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공항투어의 날, 마지막 공항인 방콕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그 늦은 시간임에도 공항을 나서자 열대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대한민국에서 연일 퍼붓던 폭설과 갑작스레 만난 열대의 폭염. 그 극적인 대비가 우리를 들뜨게 하였다. 다시 택시를 타고 '카오산'으로 향하는 길, 늦은 밤 길을 배회하는 뜨겁고 습한 대기는 마치 우리들을 기다려준 것처럼 여행자의 감성을 풀어놓고 있었다.

첫 번째 일기 (글. 남서희(중1))
나는 오늘부터 라오스여행 일기를 쓰게 됐다. 솔직히 지금은 1월 6일 AM 4시 25분이다. 정신없이 비행기를 타고 달리느라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다. 지금 잠 와서 죽을 것 같다. 하지만 놀아야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1월 겨울이겠지만 라오스 가기전에 들른 나라 태국의 방콕은… 매우 덥다. 나중에 몸빼 바지 같은 것을 사 입기로 했다. 긴 바지밖에 없어서 말이다.

아!! 그리고 나는 대학생 하영이 언니, 중2 나운이 언니, 고1 유진이 언니랑 같은 조가 됐다. 유진이 언니는 제주도 때부터 여행을 같이 다녀봐서 잘 알지만 나운이 언니랑 하영이 언니는 New face여서 잘은 몰랐다.

그러나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친해져서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영이 언니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고, 활발하고 착하셨다. 나운이 언니는 말이 많이 없으셨다. 그리고 유진이 언니는 무척 웃기셨고, 귀여우셨다. 오늘은 살짝 지치지만 내일이 기대된다.  (2011.1.5)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김향미 & 양학용 부부 여행작가가 2011년 1월에 13명의 청소년과 함께 한 달 동안 라오스를 여행한 이야기들이다. 이들은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의 책을 썼다.



태그:#라오스여행학교, #공항투어, #홍콩공항, #방콕,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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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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