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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물량으로 포장된 병장기가 위태로워 보였다. 병사들이 싣고 가는 우마차를 끄는 소의 발걸음이 느린 걸로 보아 병장기의 무게가 꽤나 나가는 듯했다. 무공의 깊이와 공력의 양기가 밝다면 능히 천리쯤은 단걸음에 달리고 영화처럼 대나무 몇 길쯤이야 쉽게 날 텐데, 무에 저렇게 고생하며 불량의 힘으로만 백성들의 혼을 빼려 할까. 민주통합방의 새로운 맹주는 아직도 자신의 무공을 믿지 못하고 물량의 기세로만 주유하려는 최대도방의 질서 없는 쇄신에 눈을 질끈 감았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새로운 도방 맹주 선출기간 동안, 결코 녹록지 않은 도방의 연적들과 시민 무림의 철객들, 그리고 노동 무림의 굵은 팔뚝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기를 여러 번 흡입하면서 정신의 운기를 잃기를 몇 번이었던가? 그러한 사이에도 서초별장대의 쩌렁공자 형조참판인 법률조령 상대기골장대공이 지휘하는 형조조직의 운율에 맞춘, 포도대장의 포박협박과 형조판서와의 혈투도 완전무도의 당찬 기법으로 이겨내었다.

그리한 사이에도 나는 25%가 넘는 80만 백성 참관인단의 절대적 비호를 받으며 무사히 통합된 도방의 새 맹주가 되었다. 맹주 등극 후, 나의 방문을 받은 원칙공주 근혜여랑위는 새로운 정치 무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나의 적극적 방안인 '공천지도권'의 완전한 백성 참여도 약속하였다. 그녀의 약속은 원칙으로 무장된 그녀의 내공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제 비로소 하늘의 문을 열고 우주로 눈을 돌린 우리 겨레의 선조(민족대군 단군천왕자)들이 고안한 천상 무공인 '천룡비결록'도 다시 이 땅에 재림할 것인가? 우리 민족의 현대사의 거목 무인이었던 백범선생이 '백범비결권'에 녹아 넣었던 '천룡비결록'이 공의 타계 이후 지상에서 꼬리를 감춘 지 어언 60년. 백범 선생께서 어이없게 눈을 감으시며 사라졌던 우리 민족 무공 최대의 비기를 찾아야 한다.

이제 이 나라에 진정한 민주 무림의 불씨가 발화하여 세종태왕이 고안한 신기전으로 부활할 때처럼, 대 만주 초원을 천리마로 달리며 중원을 휘어 감던 저 광개토태제의 위협에 벌벌 떨던 당 태종의 몸서리처럼, 한반도의 영적 기운이 천하를 호령하려 한다. 혁명은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은 채 우리 내공의 질서를 규율하고, 무림 강호의 본질을 터득하는 것만으로 혁신을 했고 그 혁신을 바탕으로 통합을 일궈냈다.

그 호령의 위세는 중원은 물론, 누천 년 전 희랍의 젊은 태제가 세계를 손에 넣었듯이, 천여 년 전 유목민의 후예가 천하의 반을 구부러진 검으로 다스리며, 코쟁이 무사들과 쪽바리훈또시들의 오줌을 지리게 하였듯이, 민주의 본질에 다가 선 우리의 '시민무림권'은 빛을 발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과학적인 기법과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볼거리가 만발하는 동서양 고전의 화려한 영화적 카타르시스의 완결을 보게 될 것이다. 장이모우의 영화 '황후화'의 중양절 국화 다발처럼, 웅혼한 메아리가 조선 천하에 울려 퍼질 것이다.

우리 정치 무림의 역사에 마치 대하 서사극의 극적인 효과와 연출처럼 화려하게 발산하는 카타르시스는 정녕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온톤 붉은 빛으로 채색하던 붉은 톤의 색감이 주는 무게처럼, 영화 같은 완성도와 리얼리티에 최근에는 거대한 스케일까지 더해져 점점 그 밀도가 점점 더 강해지는 'IT무권'으로 무장된 젊은 무사들과의 질 높은 교류를 통한 영적 교감으로 아마 가능할 것이다.

과거의 나는 고요히 세상을 관조하며 평화로운 미소로 강호의 바람을 재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중원을 압도해가는 나만의 카리스마에는 형조와의 기나긴 혈투와 경술사가 이끄는 청와궁의 백작들과의 암투가 빚어낸 의금부와의 전쟁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어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그 혈투는 형조 스스로가 지리멸렬하며 나의 완승으로 끝났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요히 터득한 '정경부인권'과 '암자고요권'이 조화된 무예의 힘이었다고 진술하겠지만, 세상을 평화롭게 지키려던 나의 소망을 강호는 가만두지 않았다.

혹자는 내가 연출한 이 영화의 제목을 '친노의 부활'이라고 부른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폐족에게 날개를 단 것이 아니라, 태왕을 배출하고도 절세 무공이 부족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결사적으로 임했던 지난 시간동안의 공력의 결과물이다. 나는 강호에 도열한 사범들과 백성들에게 모래바람을 던지며 이렇게 외쳤다.

"친노는 없다. 분열의 레토릭(수사학)을 극복하고 새로운 민주세력의 통합을 이뤄 4월의 총권 무림과 12월의 대권 무림의 진정한 최후 승자가 되자. 나는 이제 정경부인 마님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의 세력으로 구성되고 통합된 새 도방의 맹주이다.

새로이 만들어진 민주공방, 시민 무림, 그리고 노동 무림의 절대 과제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화학적인 결합을 이뤄내는 절대 안정이다. 여기에 세력은 없다. 전략가도, 검술사도 통하지 않는다. 언론 무림이 지어내는 수렴청정도 검도를 모르는 무뢰배들의 술수일 뿐이다.

나는 항상 어렵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식들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무도인의 길을 걸어왔다. 나의 무공에는 내 자신과 같은 어머니의 자궁 같은 평화가 깃들어 있으며, 안정 속에서 무도인의 본길을 걸어가는 묵묵한 무사들을 보듬는 손이 있다. 나의 이 현명한 손은 총권 무림의 승자가 되고 대권 무림의 패자를 길러낼 것이다. 나와 기꺼이 마지막 일전을 같이 할 자 나를 따르라."

볼거리에만 치중한 화려한 부부 싸움이라 폄훼하지만 잘 곱씹어보면 할리우드 영화처럼 재미있는 것이 없다. 이것은 각 방면의 많은 작가들이 공동으로 각색하고 엄청난 자금과 물량공세를 들여 거대한 스케일과 그 특유의 색조에 의한 화려한 볼거리를 확대 재생산해내는 그들의 산업이다. 아메리카양키공화국에서 영화는 제 3 의 산업이므로 지금 이 나라에서 싹이 자라고 있는 한류 무림의 그것과는 아직 차이가 많다.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로 중양절 축제의 웅장한 풍경을 보여줬던 짱꿔라님민무국의 영화 '황후화'의 클라이맥스인, 금빛 갑옷의 반란군과 은빛 갑옷의 황실 군대가 인해전술을 방불케 할 정도의 규모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문득 떠오르는 것은, 올 한 해에 내재해 있는 상징성이 결코 과거 궁중의 암투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이다. 조선조 사랑하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게 했던 비정의 아버지인 '영조'의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

권력의 정점인 태황위의 자리는 '황후화'의 내용처럼 아내와 아들 셋을 차례로 죽이며 피를 토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긴 머리를 휘날리며 태연히 음식물을 입에 넣는 황제를 만든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일단 잡은 권력은 보존해야 하는 것이고, 보존을 위해서는 어떠한 행위도 용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비록 도방의 성립 목적이 권력을 향한 것이고, 모든 도방의 도반들이 그 정점을 향한다 하여도 이제는 역사가 증언하는 이상, 백성들과의 교감이 없이는 민주주의도 권력의 비정함도 없다고. 민주통합도방의 새로운 맹주는 비슷한 내홍을 겪으며 성숙한 무공을 연마해가는, 최대도방 한나라공방의 새로운 비상맹주인 원칙공주 근혜여랑위의 손을 잡고 나오는 길에 자신의 주위를 에워 싼 무림언론의 기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며 일갈했다.

"이제 궁중의 암투로 인해, 잘못된 공력을 터득한 태왕들의 혈전으로 인해 궁중에서 황후가 암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은 부끄러운 피의 역사를 부르게 했다. 이제 개혁을 볼모로 한 칼끝은 사라져야 한다. 나와 몇 사람의 피해로 칼끝이 무디어질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 칼날을 받을 것이다. 이제 역사는 바른 길을 가야한다."

덧붙이는 글 | *검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펜의 위력을 당하지는 못한다.



태그:#한명숙, #노무현, #이해찬, #박근혜,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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