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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습니다. 뭉치는 거실 한구석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뭉치야. 이리 와."

민재가 자기 방에서 뭉치를 불렀습니다. 뭉치는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민재형에게로 갔습니다. 뭉치가 방에 들어오자 민재가 말했습니다.

"뭉치야. 널 위해 보여 줄 선물이 있어."

선물이란 말에 뭉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민재형이 선물이라고 하면 맛있는 껌을 줄 때가 잦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재형은 껌 대신 또또를 보여 주었습니다. 눈앞에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습니다. 녀석의 머리 위에서 늘 반짝이던 그 불빛이었습니다. '뭐야. 저 녀석은.' 뭉치는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또또도 뭉치를 확인하고는 긴장했습니다. 머리  위의 램프가 빨갛게 변했습니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뭉치와 또또는 서로 긴장하며 노려보았습니다.

"뭉치. 너만이 나의 안내견이야.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그러니 아프지 말고 빨리 나아야 해."

민재는 그러면서 뭉치에게 노란 안내견 옷을 입혔습니다. '어? 형. 어디 가려고요? 난 지금 안내를 할 수 없어요. 형이 위험해진다고요.' 뭉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괜찮아. 뭉치야. 너한테 좋은 친구를 붙여 줄께. 또또가 너를 안내 해 줄 거야."

'뭐요? 저 녀석이 나를 안내 한다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민재는 다시 뭉치에게 노란 안내견 옷을 입히려 했습니다. 뭉치는 뒤로 더욱 물러났습니다. 민재가 뭉치를 향해 다가오자 뭉치는 뒷걸음질로 벽까지 밀렸습니다.

"뭉치야. 괜찮다니까."

민재는 결국 뭉치에게 안내견 옷을 입히고야 말았습니다. 하네스도 채웠습니다. 그리곤 뭉치와 또또를 견줄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민재 자신은 뭉치의 하네스를 잡았습니다.

"자. 출발해 볼까? 뭉치. 나의 안내견 부탁한다."

민재와 뭉치 그리고 또또가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민재야. 그게 뭐야? "
"뭉치에게 하네스는 왜 채웠어? 뭉치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

엄마와 아빠가 말했습니다.

"전에 복지관에서 점자 배울 때 말이죠. 점자를 같이 배우는 사람 몇 명이 복지관 근처 편의점에 갔었거든요. 그때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맨 앞에 서고 우리가 뒤에서 줄줄이 함께 따라간 일이 있었어요. 마치 기차놀이 하듯이 말이에요. 오늘 또또와 뭉치랑 기차놀이 하려고요. 나의 안내견은 뭉치고. 뭉치의 안내는 또또가 하는 거죠. "

민재가 말했습니다. 그 소리에 가족들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뭉치는 민재형의 마음을 알고 너무 감격하였습니다. '민재형이 저토록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나도 얼른 나아서 정말 민재형의 든든한 안내견이 되어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뭉치는 흐르는 눈물을 속으로 삼켰습니다. 세 사람 아니 사람과 안내견과 로봇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민재가 말했습니다.

"목적지는 보람 아파트. 동욱이네 집으로 한다. "

그 말에 또또가 머리의 램프를 반짝거리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또또와 연결된 견줄에는 뭉치가 있었습니다. 뭉치는 또또가 이끄는 데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 뭉치의 하네스를 민재가 잡고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습니다. 아파트 공터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이 신기한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또또가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또또는 두 팔을 턱에 올리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어. 맞다. 여기 턱이 있었지. 녀석 잘 아네.' 뭉치는 또또가 보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또또가 두 팔로 가볍게 턱을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뭉치가 턱에 앞발을 올려놓고 민재형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민재가 턱을 확인하고 "뭉치야. 가자!" 라고 말했습니다. 셋은 그렇게 기차놀이를 하면서 동욱이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 준 동욱이는 문 앞에 광경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민재야. 이게 어찌 된 일이야?"
"동욱이 너도 기차놀이 할래?"

동욱이는 민재의 알 수 없는 말에 커다란 눈만 껌뻑거렸습니다. 다음날부터 민재와 뭉치 그리고 또또는 함께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났습니다. 안내견센터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민재네 일행이 안내견센터에 도착하자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어? 민재 그게 뭐야?"

이광훈 선생님도 놀라서 민재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글쎄 민재가 이런 모습으로 그동안 학교를 다녔어요."
"헤헤. 선생님. 나의 안내견 뭉치와 뭉치의 안내로봇 또또. 어때요. 멋지고 환상적 콤비 아닌가요?"

민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광훈 선생님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허허'하고 웃었습니다. 뭉치를 살펴보신 수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 이상하네. 뭉치의 증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각막에 혼탁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전보다 훨씬 좋아졌는걸."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뭉치가 나았다는 건가요?"
"아니. 아직 완전히 나았다고 말하기는 이르고 다만 뭉치에게 그동안 나타났던 여러 가지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거야."
"그럼 뭉치의 시력은 어떤가요? 현재로선 시력의 회복이 있어 보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광훈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네. 아직 시력은 크게 호전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아직 각막이 많이 혼탁해요. 그러나 안구가 건조한 것은 많이 좋아졌어요. 뭉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눈물 양에 이상이 있었거든요. 그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듯합니다.

눈물이 없거나 적어지면 각막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투명한 색에서 어두운 색으로 변하게 되고 찐득찐득하고 누런 눈곱이 계속해서 분비되게 되거든요. 뭉치가 시력이 떨어진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였는데 눈물샘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각막의 혼탁도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같아선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합니다."

"뭉치가 갑자기 이렇게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호너신드롬 자체가 특별한 원인을 밝힐 수 없는 질환이고 해서 말이죠."

"전에 스트레스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그런 학설이 있어요."

"그럼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나 하면 증상이 좋아질 수 있겠죠?"
"좋아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 생각엔 뭉치가 민재를 만나 다시 안내견 활동을 한 것이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내견들은 사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곤합니다. 자신이 안내해야 할 주인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안내를 하기 위한 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거죠. 그러나 뭉치의 경우 안내 자체를 워낙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서요.

지금까지 많은 안내견을 훈련시켜 보았지만 뭉치 같은 녀석은 처음입니다. 치료를 위해 우리 병원에 머무르는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안내를 오히려 못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번에 민재와 함께 생활하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그래서 좋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광훈 선생님과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민재는 곁에 있는 뭉치를 꼭 안았습니다.
'켁켁. 형. 숨 막힌다고요.' 뭉치는 다시 민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경과를 살펴보면서 안내견센터에서 가끔 방문하여 체크하기로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민재와 뭉치 그리고 또또는 매일매일 기차놀이 안내를 하였습니다.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민재가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교실을 나와 교문으로 향할 때 농구 코트에서 몇몇 친구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뭉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농구 코트를 바라보았습니다. '삐리삐리 뭉치 그리 가면 안 돼.' 또또가 경고음을 내었습니다.

"뭉치. 너 또 공 보고 흥분했구나. 그렇지만 위험해."

민재는 뭉치에게 말했지만 뭉치는 자꾸 공 소리가 나는 쪽만 바라보았습니다. 민재는 뭉치와 또또를 연결한 견줄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하네스도 벗겼습니다.

"뭉치. 그동안 많이 답답했지? 우리 프리런 할까? 그러나 조심해야해. "
"민재야. 괜찮을까?"

동욱이가 물었습니다.

"동욱아. 네가 좀 살펴줘. 뭉치가 위험하지 않도록 말이야. 나도 가끔 달리고 싶은 때가 있는 것처럼 뭉치도 그럴 거야. 자. 뭉치 프리런이다."

민재는 팔을 쭉 뻗어 운동장을 가리켰습니다. 프리런이란 말에 뭉치는 곧장 농구 코트로 달려갔습니다. 농구 코트는 금방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민재야. 뭉치가…. 뭉치가 말야. 정확히 공을 따라 움직이고 있어. 이제 눈이 완전히 보이는 것 같아."

동욱이가 말했습니다.

"정말? 그게 정말이야?"

민재도 놀라며 물었습니다.

"그렇다니까. 지금 정확히 농구공만 따라다니고 있어."
"어디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뭉치 이리 와!"

민재는 뭉치를 불렀습니다. 뭉치는 곧바로 민재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민재는 신발을 벗어 운동장을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뭉치야. 신발 가져 와."

뭉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운동장에 떨어진 신발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곤 입으로 물고 다시 곧장 민재에게로 달려왔습니다.

"무. 뭉치야. 너…. 너…. 이제 다 나았구나."

민재는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뭉치의 목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민재의 눈에서는 주루룩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민재형. 고마워요. 나만이 형의 안내견이라고 했던 말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래요. 평생 형의 안내견이 될께요. 이제 울지 마요.' 뭉치는 흐르는 민재의 눈물을 혀로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특유의 부챗살 꼬리를 만들어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반 민재가 에디슨재단이 주최한 국제 발명 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학교….  "

선생님의 말씀에 민재네 반 전체 학생들이 입을 모아 동시에 말했습니다.

"개교 이래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

그리곤 와하하 하고 웃었습니다. 선생님도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맞아요. 정말 우리 학교 10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

그렇습니다. 민재는 국제 발명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민재가 출품한 작품은 바로 또또였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니 시각장애 안내견을 안내하는 세계 최초의 로봇을 말입니다. 교실 밖 창문으로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삐리삐리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내가 안내 할께.', '안돼. 형의 안내견은 나야. 넌 내 앞에서 날 안내하라고.', '뭉치. 넌 이제 안내 필요 없잖아. 오늘 민재형은 나 때문에 비행기 타는 거라고.'

민재가 커다란 여행 가방에 짐을 정리하는 동안 뭉치와 또또는 티격태격했습니다. 오늘은 발명 대회 수상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날입니다. 아빠가 민재의 커다란 가방을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뭉치와 또또는 공항에 도착해서도 계속 티격태격했습니다. '뭉치. 그쪽이 아냐. 비행기를 타려면 저쪽에 가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어떻게 안내를 할 꺼야?' 또또가 잘난 척을 하며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형은 지금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지금 하네스를 잡고 있는 형에게서 느껴지는 것도 모르니?' 뭉치도 지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뭉치. 화장실 찾아!"

민재가 말했습니다. 뭉치는 또또를 쳐다보며 '거 봐. 내 말이 맞지'하고 혀를 날름 거렸습니다. 잠시 후 민재와 뭉치 그리고 또또를 태운 비행기는 드높은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끝>


태그:#안내견 뭉치, #로봇 또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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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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