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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가 끝나고 텅 비어버린 진료실
▲ 빈 진료실 진료가 끝나고 텅 비어버린 진료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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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4번 왔고, 겨울이 3번 왔다. 뻘겋게 달구어진 쇠를 담금질하듯이 춥고 뜨거웠던 계절의 풍상들. 2009년 4월부터 만 3년 동안 지켜왔던 고흥군의 보건지소를 떠나게 되었다.

첫 2년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나로도. '나로우주센터'로 더 유명한 이곳에서 우주센터 준공식과 두 번의 로켓 발사를 지켜보았다. 두 번의 상승과 하강. 기대와 실망. 외부인들은 시끌벅적 왔다가 부리나케 나갔다. 섬을 나가자 사람들은 금세 잊었다. 섬 주민들은 일상의 힘으로 염량세태(炎凉世態 )를 이겨냈다.

강인한 마을 어르신들과 2년을 아버님 어머님 부르며 지냈다. 아침 7시마다 마을버스를 타고 보건지소로 출근 도장을 찍던 외초리, 예내리 마을 어른들. 섬 옆의 섬 사양에서 철선을 타고 나오던 사양, 봉오 마을 분들. 마실 나온김에 들르던 인근 축정마을 주민들.

마지막 1년은 벌교와 고흥읍 사이에 위치한 남양면이었다. 마을을 따숩게 뒤에서 안아주는 천방산이 묘하게 마음을 설레게 하던 곳. 사람이 드물고 그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였다. 느릿한 분위기가 무색하게 국방부 시계는 돌고 돌아 3년 1개월간의(훈련소 1개월, 공중보건의 3년) 복무가 끝났다.

마지막 진료일 아침, 첫 진료한 환자는 평생 남는다는데...

마지막 진료일 아침. 초심을 잃지 않으려 오전 9시 정각에 출근하려 했지만 양치를 하다 보니 3분이 늦어버렸다. 6개의 베드에 나란히 앉아 계신 어르신들을 보며 첫 진료 생각이 난다. 첫 진료한 환자는 평생 남는다는데 기억이 안 난다. 처음이다 마지막이다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표현인가? 아니면 내가 그만큼 머리가 안 좋은 건가? 과거는 모르겠고 유종의 미를 함께 거두실 분들이라도 기억하려 눈을 두리번거린다.

인지상정이라 평소 단골이 더 눈에 띈다. 예전에 손녀와 애틋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김금업 할머니가 계신다.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이 마지막 진료에요."
"하이고. 어쩐데. 아숩구만. 안 가면 좋겄네."

속으로 주문처럼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을 중얼거렸다. 이야기 도중 저번에 먹었던 환혼탕이 효과가 좋았노라 하신다. 환혼탕은 마황, 행인, 감초가 들어간 처방인데, 갑작스런 졸도에 정신을 깨우는 약이다. 평상시 건망증이나 치매 초기에도 효과가 있을 듯해 동네 어르신 몇 분께 무료로 드린 것이다. 할머니는 평소 찔금 나오던 소변이 시원하게 나온다며 예상치 못한 효과에 기꺼워하셨다.

법정 스님이 난처럼 말이 없던 친구에게 화분을 줬던 마음으로 남은 환혼탕을 몽땅 드렸다. 받아든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낸다. 꼬깃꼬깃 접혀진 만원짜리 한장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약값이 아니라 내가 그냥 주는 거여."
"음, 이건 안 받아요. 제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밥이나 한끼 사주세요."
"그래. 그럼 지금 가자. 할매가 밥 사주께."
"아뇨. 오늘은 안 되구요. 다음에요."
"다음에 언제? 안 올 거잖아."

갖은 실랑이 끝에 할머니는 진료실 책상에 만원을 부려놓듯이 놓고 갔다. 내가 다가가자 더 빠른 총총걸음으로 지소 정문을 나섰다. 한 발짝 다가가면 한 발짝 물러나는 상황.

"알았어요. 돈 잘 받을게요. 마지막으로 어머님이랑 포옹 한번 하고 싶어요."

마지막이라는 말에 그녀는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 주었다. 그 순간 시선을 피해 4륜 오토바이 앞 바구니에 돈을 살짝 던져 넣었다. 것도 모르고 애마에 몸을 실은 할머니는 이 말을 뱉으며 멀어져 간다. 그 돈으로 맛난 거 사 먹으라고.

단골 중의 단골 조점심 할머니는 온몸으로 서운함을 표해주셨다.

"아따. 아쉽고 아쉽구만."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내 얼굴을 부여잡고 뽀뽀를 했다. 총각의 순결이 뺏기는 순간이다.

"언제 또 올건가?"

할머니에게 미국에서 사는 딸이 있다. 12월이던가. 교수로 일하는 딸이 교환교수로 한국에 오는 날이라 했다. 그때 서울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그날이 오면 질긴 인연의 힘을 새삼 느낄 것이다.

핸드폰을 이용한 조촐한 의식... 영혼을 계속 간직하고 싶다

몇몇 분들과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을 이용한 조촐한 의식이다. 손순례 할머니는 찍는 순간마다 눈을 감아버려 여러 번을 찍어야 했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 믿었던 인디언들. 그들 말대로라면 난 정들었던 분들의 영혼을 계속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버린 손순례 할머니
▲ 손순례 할머니 눈을 감아버린 손순례 할머니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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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손순례 할머니
▲ 손순례 할머니 눈을 뜬 손순례 할머니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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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가정방문을 다녔던 집도 인사를 드렸다. 신야방 할머니 김종태 할아버지 부부에게 이번이 마지막 진료임을 알렸다. 안 갈 줄 알았드만 갑자기 가는 게 어딨냐. 더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오겠다고 약속 드렸다. 철장에 갇힌 개에게도 안녕 손짓을 했다. 반가움의 표시인지 못 잡아먹어 아쉽다는 건지 격렬한 반응을 항상 보여왔던 견공들. 원래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만 짖었다. 친구를 두고 다른 곳으로 팔려갔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 개도 떠나고 사람도 떠난다.

여기 살면서 뚫어놓았던 과역면과 벌교읍의 꼬막집. 매번 만원 같은 조개를 오천 원에 주셨다. 월수금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식료품을 팔던 소망상회 트럭도 이제는 안녕이다. 매주 화요일 출장진료 간 김에 들렀던 동강면 도서관. 대출명부에 내 이름 석자가 보이지 않을 게외다. 대곡마을, 하와마을, 중와마을 어른들께도 외친다. '제가 근처로 운동삼아 달리던 젊은 친구입니다.' 이젠 오후의 정적을 깨뜨리던 달리기 소리도 없어지겠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인간만이 불연속적으로 끊어서 규정한다. 모월 모일부터 나는 근무를 했고 모월 모일에 복무를 마친다. 공보의라는 신분은 촌각의 물결 속에 지워졌지만 이때껏 얻은 개똥철학 하나는 쭈욱 갔으면 한다. 환자는 스승이라고.

진료를 마치고 찍은 어르신들 사진
▲ 마지막 사진 진료를 마치고 찍은 어르신들 사진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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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중보건의, #한의사, #제대, #남양보건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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