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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의 실황공연 모습
 레이디 가가의 실황공연 모습
ⓒ 레이디가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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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았던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이 끝났다. 잠실 경기장 안을 채웠던 환호는 사라지고, 공연장 밖에서 들려오던 우려의 목소리도 사그라졌다. 얼마 후면 열광했던 팬도, 분노했던 반대자도 이 뜨거웠던 사건을 잊을 것이다. 어찌됐든 지난 일, 이제 이 일을 기억 저편으로 흘려 보내도 좋을까?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잊고 만다면 우리는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것도 (비극과 희극으로 두 번만 반복하는 게 아니라) 같은 희극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게 될 터이다.

먼저 교회에 묻고 싶다. 공연 현수막이 찢어진 게 하나님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하나님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믿음이 부족했던 탓일까?

'사탄의 궤계'를 막지 못한 크나큰 책임을 어떻게 질지도 궁금하다. 반대자들은 레이디 가가 공연이 한국사회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거라고 했다. 모든 일이 마귀의 뜻대로 이뤄졌으니, 이제 눈을 질끈 감고 타락과 죽음과 아비규환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누가 더 폭력적인가

공연이 시작되던 순간, 반대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은 안타까움과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비록 생각은 달리 하지만, 나는 이들의 선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는 교회의 입장을 맹목적으로 따른 이도 있겠으나, 스스로 믿는 바를 표현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공연장 주위에서 시위를 벌이고 기도를 하는 교인들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내가 우려했던 부분은 공연 자체를 취소시키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 타인이 공연을 관람할 권리를 빼앗는 행위다.

'그럼 죄악을 내버려 두라는 말이냐'고 흥분할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못 막지 않았는가. 그저 못 막은 정도가 아니라, 관심을 고조시켜 관람객을 늘려놓았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교회가 소통하기 어려운 비이성적 집단이라는 고정관념만 심어주었다. 내버려 둔 것보다도 못한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레이디 가가 공연에 반대하던 목사가 트위터로 공연 내용을 중계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 공연에 반대하던 목사가 트위터로 공연 내용을 중계하고 있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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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레이디 가가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 후 비판적 수용을 권하는 편이 현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 지도부가 채택한 성명서는 왜곡된 정보 투성이었으며, 그들이 가가에 보인 태도는 증오와 음해에 가까웠다. 일부 교인은 '병이 나든지, 사고가 나서 공연을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누가 누굴 저주하고 누가 폭력을 조장하는지 모르겠다.

교회의 앞뒤 안 맞는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레이디 가가 공연을 잠시만 봐도 큰일이 난다면서, 수십 회 공연 중 가장 폭력적인 장면만 편집해서 유포하는 건 뭐란 말인가? 극렬한 반대운동을 벌이던 한 목사는 '모니터링' 한다며 공연장에 앉아 공연 내용을 트위터로 실시간 생중계하기도 했다. 그 해롭다는 공연을 말이다. 우습게도 그의 관전평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다'는 것이었다.

시시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잔인한 장면만 모은 '교회 특별판'을 보며 기대를 키웠을 테니 말이다. 한국에서 특별히 얌전히 군 게 아니라, 레이디 가가의 공연 자체가 그렇다. 그것도 '18금 공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수위를 높인 결과가 그랬다. 별 것도 아닌 걸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는 사실을 교회 스스로 인정한 꼴 아닌가(레이디 가가가 사회문제가 된다면, 그건 교회 일각에서 배포한 '엑기스 폭력판'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교회는 편집본에 이어 직접 공연까지 관람한 목사가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는지 잘 살필 일이다. 교회 편집판을 만든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잔인한 장면만 추려 내느라 얼마나 오랜 시간 '어둠과 죽음의 영' 속을 휘젓고 다녔을 것인가. 교회의 우려대로라면 갑자기 커밍아웃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목이 돌아가거나 녹색 액체를 토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주위에 고양이가 어슬렁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동성애자를 처단한 히틀러

교회의 공연반대를 비판하는 칼럼을 쓴 후 많은 이메일을 받았다. 황우석 연구조작과 심형래 '디워'를 비판했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다. 대다수가 개신교도들이었다.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도 있었으나, 상당수는 항의편지였다. 이 엇비슷한 내용을 담은 메일들은 크게 세 가지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당신은 교인이 아니다.
2) 당신은 사탄이다.
3) 당신은 동성애자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성경 열심히 읽고 기도하라'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들 말대로 내가 1) 교인이 아니고 2) 사탄이라면 성경 읽고 기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3)이라면 자동으로 1)인 동시에 2)가 될 테니 없으니 두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레이디 가가 공연 반대성명에서 '그가 공연했던 국가마다 동성애를 허용하는 법안 통과가 쉽게 이루어지'며, 가가의 2009년 첫 내한공연 이후 '국내 동성애 허용에 대한 요청이 거셌다'고 주장했다. 미안하지만, 한국정부는 동성애를 금하고 있지 않다. 법으로 금지되지도 않았는데 뭘 '허용'하고 '합법화'한단 말인가.

어떤 교인은 내 글에서 '예수라면 고난받는 동성애자를 위로했을 것이다'라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구약에 따르면, 음란죄를 지은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신앙인의 임무라고 믿는다면, 그는 왜 직접 돌을 들어 신의 뜻을 수행하지 않는 걸까.

나치에 의해 학살된 동성애자를 기리는 추모비. 독일 쾰른에 있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동성애자를 기리는 추모비. 독일 쾰른에 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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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돌을 쓰지는 않았으나, 가까운 방식으로 믿음을 실천한 이가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다. 그는 동성애를 다룬 문서를 불태우고, 수 만 명의 동성애자들을 체포해 가스실로 보냈다. 히틀러는 기독교인이었으며, 무신론자들을 '빨갱이'로 부르며 저주하곤 했다. 

교회는 성경을 남을 재단하는 잣대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교회는 스스로 얼마나 말씀을 실천하고 있을까?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사도행전 4:32-35)

많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기는커녕, 몇 푼 되지도 않는 저소득층 보호정책까지 거품 물며 반대하지 않았던가? 

사탄은 루이비통, 캘빈클라인, 베르사체, 아르마니 등등을 입는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이끄는 미국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2010년 <타임>지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었다. 오른쪽은 사진은 그가 2009년에 선보인 작품이다.
 루이비통과 디올을 이끄는 미국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2010년 <타임>지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었다. 오른쪽은 사진은 그가 2009년에 선보인 작품이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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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비난에 익숙한 사람이라지만, '사탄'이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데 유쾌할 리가 없다. 기분 전환을 위해 음악을 듣기로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 비뚤어져 버릴까' 하며 듣지도 않던 가가 음반을 들여다 보다가, 그러다가는 정말 사탄이 된 기분이 들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한다. 

교회가 반대하지 않을 '건전한 음악' 중에서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6번 '비창'을 고른다. 좋아하는 번스타인 지휘로 듣기로 한다. 한참 듣다가 생각해 보니, 차이코프스키는 역사가들에 의해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번스타인은 확실한 양성애자였다. 음악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로시니의 '성모애가(Stabat Mater)'. 이보다 성스러운 음악이 있을까.

하지만 또 다시 문제가 생긴다. 독일 시인 하이네가 이 음악을 '주제에 맞지 않게 너무 세속적이고, 감각적이고 쾌활하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하이네는 유태인으로 태어났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독실한 신자였다. 하지만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히틀러의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았을지 모를 일이다.

동성애자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면, 그들이 만든 물건을 쓰는 건 어떨까? 예컨대 명품 브랜드 같은 것 말이다. 입 생 로랑, 캘빈 클라인, 지아니 베르사체, 지오르지오 아르마니, 발렌티노 가라바니는 모두 잘 알려진 동성애자다. 현재 디오르와 루이비통을 이끌고 있는 마크 제이콥스도 동성애자고, 돌체앤가바나는 아예 동성커플의 이름(도메니코 돌체, 스테파노 가바나)을 따서 만든 브랜드다.
       
예술 영역 전반을 헤아리면 그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7월에 내한공연을 갖는 아메리칸발레 수석무용수 가운데도 포함돼 있다. 가가 공연 반대자들은 이들 손에 탄생한 물건과 작품을 쓰지도, 입지도, 감상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기 전에, 그들의 감수성과 창의력이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왔는지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마녀사냥은 현실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은폐하는 더 큰 폐단을 낳는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모습
 대중문화에 대한 마녀사냥은 현실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은폐하는 더 큰 폐단을 낳는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모습
ⓒ 레이디가가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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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발 속에서 손톱 때 걱정하기

이번 내한공연에 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참석했다고 한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가가 공연 반대자들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잠실 경기장을 메운 인파를 보며 느꼈을 안타까움은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가? 레이디 가가가 아니어도 3년마다 잠실 경기장 좌석을 모두 채울만큼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에서는 한 해 1만5000명이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하루 평균 42명 이상이 자살하며, 청소년 10 명 가운데 4명이 자살을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

2008년부터 2010년 3년 사이에 자살을 고민하는 고등학생은 2.2배, 중학생은 2.4배가 늘었다. 초등학생은 더 심각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학생들이 무려 2.6배나 증가했다. 레이디 가가가 첫 내한공연을 하기도 전이니, 그녀 탓을 할 수도 없다. 이 모든 책임은 교인을 포함한 모든 기성세대가 져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이후 죽음을 택하는 청소년들이 늘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사탄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권과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위해 비인간적 경쟁교육과 사교육을 부추겨왔고, 그로 인해 청소년들이 불행해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엉뚱하게 게임과 만화탓을 하고, 개신교는 정말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도 엉뚱하게 외국 가수 타령을 한다.

교회는 스스로 사회적 성공과 출세의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현 정부를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도 했다. 대선 당시 어떤 목사는 성도들 앞에서 '이명박 후보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도 했다(자신이 신이라는 말인데, '반성경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한국 교회는 이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 당사자로서 레이디 가가보다 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레이디 가가의 음악에 비판의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현실의 문제를 앞에 둔 채, 엉뚱한 데 거품을 무는 교회와 정부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며 움베르토 에코의 조롱을 떠올린다.

"핵폭발이 일어날 때 근처에 있으면 위험하다. 왜냐고? 버섯구름이 솟아오를 때, '세상에...' 하며 씻지도 않은 손가락을 입에 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의 비판자들은 선정성과 폭력에 촛점을 맞추지만, 그녀의 공연은 돈, 명예, 종교, 국가주의, 상업주의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대중적 문명비판에 가깝다.
 레이디 가가의 비판자들은 선정성과 폭력에 촛점을 맞추지만, 그녀의 공연은 돈, 명예, 종교, 국가주의, 상업주의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대중적 문명비판에 가깝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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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레이디 가가,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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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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