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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고 잘 웃는 그 남자 뒤를 따라가면서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훈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피로감이 싹 사라지면서 기분이 극적으로 반전되는 걸 경험한 적 있는데 뚱뚱한 아저씨를 뒤따라 다니면서 난 이런 식의 다이나믹한 감정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시끄럽게 들리던 사람들의 소음도, 귀찮기만 하던 짐수레도 다 좋게만 여겨졌습니다.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씨와 친절함에 감동받아서 갑자기 뇌가 행복감을 느꼈기에 만사 다 좋게 여겨지는 듯했습니다.

그를 만난 것은 테헤란 바자르에서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선물을 사기 위해 테헤란 바자르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테헤란 바자르는 중동 최대의 시장이라고 할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골목과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진 구조였는데 이런 복잡한 골목에서 길을 잃고 점점 지쳐갔었습니다. 그때 그 아저씨를 만난 것입니다. 아저씨는 정말 많은 땀을 쏟으면서 우리에게 길을 찾아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의 친절이 나를 감동시켰기에 난 테헤란 바자르를 떠올리면 가슴이 푸근해지는 기억을 갖게 됐습니다.

'이란 여자들은 차도르 안에 굉장히 야한 속옷을...'   

차도르 안에 이란 여자들은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잘생긴 가게 주인.
 차도르 안에 이란 여자들은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잘생긴 가게 주인.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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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바자르에 들어섰을 때 처음 본 가게는 여자들 속옷을 파는 가게였습니다. 검은 차도르 안에 이란 여자들은 굉장히 야한 속옷을 입는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속옷이 화려했습니다. 애들은 야하다고 난리였습니다.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런 속옷을 파는 사람이 모두 젊고 잘생긴 남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남녀를 구별해서 태우고, 외간 남자 앞에서는 머리카락도, 심지어 눈만 내놓고 다니는 이란에서 좀 모순된 풍경이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아무리 걸어도 여자 속옷이나 천을 끊어서 파는 가게밖에는 안 나왔습니다. 테헤란 바자르엔 이 두 가지 물건만 파는가, 하고 생각할 때쯤 카펫가게가 나왔습니다. 꼭 카펫을 사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가격을 한번 알아봤는데 만만찮았습니다. 첫 집에서는 1300달러를 달라고 하고, 다음 집에서는 600달러를 불렀습니다. 페르시아 카펫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펫인 건 알았지만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헤란 바자르에선 한 골목에 한 종류의 물건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골목을 지나쳐야 견과류 골목을 발견할지 참 막연했습니다. 숙소에서 나올 때만 해도 팔팔했는데 어느덧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우린 많이 지쳤습니다. 두리번거리면서 많이 걸었고, 많은 사람 속에 섞여 장시간 있다 보니 정말 피곤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있는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로 들어가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는 특이하게 테헤란 바자르 한가운데 있고, 시장의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생활에서 기도를 가장 중요시하는 이란인이다 보니 장 보러 왔다고 예외는 아닌 모양입니다.

좁은 공간에 물건과 사람으로 넘쳐나는 정신없는 테헤란 바자르에서 벗어나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로 들어오자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 됐습니다. 모스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빈자리를 찾아서 앉았습니다. 정오의 나른한 햇빛을 받으면서 잠깐 졸았던 것도 같습니다. 내가 쉬는 동안 아이들은 모스크 광장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만지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을 갖고 나서 간식을 사먹고 다시 테헤란 바자르 투어를 나섰습니다.

여긴 유토피아인가? 완전히 몰입된 표정의 작은 애. 여긴 사탕가게이다. 온갖 모양의 알록달록한 사탕들이 우리 작은 애를 유혹했다.
 여긴 유토피아인가? 완전히 몰입된 표정의 작은 애. 여긴 사탕가게이다. 온갖 모양의 알록달록한 사탕들이 우리 작은 애를 유혹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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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바자르에서 만난 아저씨. 드라마 <주몽>의 열렬한 팬이었다.
 테헤란 바자르에서 만난 아저씨. 드라마 <주몽>의 열렬한 팬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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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한 뚱뚱한 그 남자... '이게 아닌데'

우리가 뚱뚱한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대추야자와 무화과를 사기 위해 골목골목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다가 학용품 거리, 종이 거리를 지나 장신구 거리에 들어섰을 때입니다. 그는 허리띠 가게 주인인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길을 물으면서  아몬드, 호두, 땅콩을 영어로 쓴 종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알겠다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그의 태도에는 자신감이 있었고, 이제 드디어 견과류 가게를 찾는구나, 하고 안심을 하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배가 불룩 나온 뚱뚱한 남자는 우리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이리저리 사람과 수레를 피해가며 잘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계단을 올라 2층 어느 집 앞에서 예의 그 웃음을 보이며 여기가 아니냐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식당이었습니다. 내가 먹는 제스처를 해 보였더니 배고픈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니라고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한 편으로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대추야자와 아몬드 사는 건 포기해야 하는구나, 지금까지 뚱뚱한 이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무수하게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에게 물었지만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기대를 했던 그에게서조차 결과가 이렇게 되자 이미 많이 지쳐있던 나는 기대를 접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우리에게 자기 가게까지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사실 따라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희망을 완전히 버렸기에 공연히 헛수고만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우리를 위해 땀을 흘리면 애쓰는 모습이 고마워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가게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와서 대신 가게를 봐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뚱뚱한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해서 좀 전에 우리가 써준 영어를 읽었습니다.

"아몬드, 월넛, 피넛, 스토아."

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제야 정말 알겠다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의 뒤를 인파를 헤치며 또 수레를 피하며 따라갔습니다. 그의 넓은 등과 가늠하기 어려운 굵은 허리를 바라보면서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몹시 지쳐 있었는데 그런 지친 기분은 모두 달아나고 훈훈한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한 시간이 헤맨 끝에 드디어... 오래도록 남을 그의 친절 

테헤란바자르에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견과류. 오른쪽 대추처럼 생긴 게 대추야자인데 정말 달고 맛있었다.
 테헤란바자르에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견과류. 오른쪽 대추처럼 생긴 게 대추야자인데 정말 달고 맛있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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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에 견과류 가게가 없어도 상관없었습니다. 행복한 기분을 경험했기에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갔습니다. 아마도 그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내 머릿속에서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했는지 난 행복했습니다. 지친 마음은 어디 갔는지 몸도 마음도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내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난 완전히 반해버린 것입니다.

낯선 여행자를 위해서 자기 일도 내팽개치고, 그리고 그 뚱뚱한 몸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려면 굉장히 힘들 것인데, 그렇게 우리에게 견과류 가게를 찾아주기 위해 근 1시간은 애쓰는 그의 태도가 타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이고, 친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에게 넘쳐나는 걸 좀 나눠주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난 이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감동받았습니다. 아직까지 내가 못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우리는 견과류를 파는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는 그에게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마침 밧데리가 다 돼서 찍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넉넉하고 따뜻한 미소를 가졌던 아저씨의 모습은 이란의 모습으로 아마도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금까지 이란 여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행기를 쓰면서 한 번 더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란 여행기에서 너무 이란 사람들을 좋게만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란을 다녀오면 자신도 모르게 이란 홍보대사가 돼버리는 것 같습니다.



태그:#테헤란 바자르, #이란, #대추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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