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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저녁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학생들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30일 저녁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학생들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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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을 끓여도 너무 끓이네."

사람들은 한껏 기대한 눈치였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부산대 특강에서 뭔가 한 마디 하겠지, 대선 출마에 대해 확실한 자기 입장을 밝히겠지, 그런데, 웬걸? 안 원장은 이번에도 자신의 대권 플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 현장 기자들 사이에선 한숨이 터졌습니다. 이른바 '곰탕론'도 제기됐습니다. 끓여도 너무 끓인다, 이 말은 곧 안 원장이 자신의 정치행보를 너무 잰다는 기자들의 집단 비판 같은 거겠죠.

솔직히 저희 같은 직군의 사람들이 보기에 안 원장은 참 답답합니다. 대선 출마 선언, 기성 정치인들의 문법대로 하면, 벌써 했어야 옳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만이 터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려면 확 하든가, 아님 말든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주 애매하게 '뭥미'? 안 원장이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게 지난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니까 역산하면 벌써 8개월째입니다. 그의 입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충분히 지칠 만한 시간들이지요.

물론 아주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곰탕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욱 구수한 맛이 나기 때문에 안 원장이 더 뜸을 들인다면 그 맛은 일품일 거라는 진단인 거죠. 긴 고민 끝에 결행되는 안 원장의 정치행보는 기성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며, 그 결단의 위력 또한 대단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안 원장이 모월 모시부터 정치를 시작하겠다, 이렇게 선언해야 비로소 그의 정치 출발을 알리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정치행위를 하고 있고, 그 방법은 가치와 공감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 정치인들과 방법이 다른 것뿐이지요.

복지, 정의, 평화는 안철수 정치철학의 뼈대인가

우선 안 원장이 지난 30일 밝힌 세 가지 핵심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복지와 정의, 평화 담론을 제시한 그는 이 문제를 "우리 세대가 꼭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얼핏 듣기에 복지와 정의, 평화는 그야말로 정치권에서 마르고 닳도록 이용한 담론입니다. 따라서 복지도 어떤 복지냐, 정의는 또 어떤 정의냐, 평화는 또 어떤 평화냐 그 가치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안 원장은 이날 비교적 상세히 자신의 가치철학을 담아 설파했습니다. 이 정도로 정치이념의 뼈대를 발표한 적이 있었나요? 그래서인지 혹자는 안철수 국정철학의 일단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을 좀 더 세밀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복지 문제입니다. 그는 복지는 단순히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와 긴밀히 연관된 선순환 구조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건강과 보육, 일자리, 가계부채 등 구체적인 국민 불안요소를 적시하고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내건 복지는 시혜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그는 박 위원장과도 선을 분명히 그었습니다. 우리나라 복지는 시혜적 복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경제발전과 직결돼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좀더 구체적인 세부안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더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정의를 강조했습니다. 출발선이 공평해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특권 없는 사회로 가도록 국가가 잘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이것은 국가의 의무이며 이걸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정의의 문제를 국가의 역할로 규정지었습니다. 공공영역인 국가가 정의롭지 못한 특권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정의로운 나라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 평화라고 뒷받침했습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필수이며, 궁극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통일이 돼야 하지만 단기간 내 어려운 만큼 지금은 통일을 목표로 평화체제 구축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의와 복지, 평화를 실행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소통과 합의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그는 정치의 본질은 싸움인데, 무엇을 위해 어떤 주제로 왜 싸우나, 그리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 싸움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 세 가지 관점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 그 철학과 가치관을 갖고 합의를 이끈다면 정치의 싸움은 좋은 싸움이나 그게 아니라 권력쟁취를 목적으로 싸우기만 하고 합의를 안 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복지, 정의,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가장 뜨거운 현안인 통합진보당 사태와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주의 철학과 가치노선의 입장에서 분명한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북한이 보편적인 인권이나 평화 문제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유독 이 문제가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지 않느냐"며 "다만, 사상의 자유는 별개의 문제이며 개인의 사상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나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밝히는 게 옳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건강하지 못한 이념 논쟁이 확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박원순 시장 보고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저녁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뒤 경암체육관을 나서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저녁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뒤 경암체육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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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대한민국... 정치가 탈출구 만들까

이 정도면 안철수 원장은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정견을 발표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게 아닐까요? 다만 그는 왜 유독 5월말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는 별로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이 담론을 들고 강연 정치로 다시 나타났을까요? 또 하나의 이야기 토막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 원장은 "우리 모두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는 게 통계수치가 두 가지 있다"며 "자살률과 출산율"을 꼽았습니다. 그는 "우리는 불행하게도 자살율이 OECD 전체 국가 중 1위로 가장 높다"며 "거의 매일 40명의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고 1년에 1만55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안 원장은 "우리가 낳은 아이가 미래에 얼마나 잘 살 수 있나 알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출산율인데 불행하게도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며 "냉정하게 보자면 대한민국은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안 원장은 "양극화, 계층 간 이동불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안 나는 현상, 청년실업, 비정규직, 가계부채, 대학입시와 대학등록금, 사교육비, 전세값, 불안한 노후, 건강 등등의 사회문제들은 특정세대의 문제만이 아니"라며 "모두 절망하고 있는 게 우리의 상황이고 모두가 그 반대의 상황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게 모두의 바람인데, 과연 그것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안 원장 스스로에게도 묻고 대중들에게도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로 가야 하는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가, 그걸 함께 만들 수 있을까, 모두 함께 고민해보자고 화두를 던진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굉장히 낯선 방식입니다. 유권자들이 보기에도 낯선 방법이지요. 그러나 그는 꾸준히 화두를 던집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진보의 위기를 한꺼번에 겪고 있는 이 마당에 그는 매우 민주주의적 상식과 질서에 맞는 게 무엇이냐,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냐, 이걸 만들기 위해 국가와 정치집단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화두를 던지고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합니다.

기성 정치인이 이런 화두를 걸었다면 이미 그는 출마선언과 함께 나는 이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라고 이미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도배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정치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각에선 그가 기성 정치인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할 줄 몰라서 그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안 원장이 할 줄 몰라서 기성의 문법대로 정치하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그 생각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안 원장은 줄곧 '구체제'와 '낡은 정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 구체제에는 우리가 그동안 나름 '진보'라고 믿었던 정당정치 안에서 빚어지는 일들까지 모두 포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도 모두 낡은 정치 영역에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최근 빚어진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폭력사태, 비민주주의, 민주통합당의 이해찬-박지원 담합 등등도 모두 해당되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안 원장이 규정한 '구체제' 안에는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안에도 존재하는 권위주의적인 문화, 비민주주의, 관료주의 등도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구체제를 우리 사회가 모두 연대해서 함께 뛰어넘어야 백낙청 교수가 말하는 소위 '2013년 체제'도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게 아닐까요?

안철수의 4가지 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저녁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30일 저녁 부산대 경암체육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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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그가 정치에 나서려면 적어도 '4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새누리당에 입당해 '반박(근혜)연대'를 구축하는 방안, 둘째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경선에 뛰어드는 방안, 셋째 박원순 서울시장 식의 야권단일후보 방안, 넷째 제3정당 창당의 길.

이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박원순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당에 속해 있지 않았지만 야권의 정당 후보들과 함께 경쟁해서 야권단일후보가 됐고 비정치인이었지만 시민이 밀어준 덕에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안 원장도 꼭 정당에 배속되지는 않더라도 시민의 마음이 모아진다면 얼마든지 '안철수식 시민정치'는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일반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카페에서 회의하며, 만나는 사람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사인을 해주면서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도 그 일환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적인 활동을 통한 공감대가 형성돼 이때다 싶을 때 그는 칼을 빼들겠지요. 그때가 언제일지 그건 안 원장만 알 것입니다. 결국 그 칼을 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썩은 무라도 썰지 않는다면 그가 굉장히 민망한 처지에 놓이지 않을까 하는 게 대개의 평입니다.

그러니 안 원장도 더 이상은 계속 '묻고 답하는 문답정치'에만 머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곰탕을 더 끓이다가는 물이 졸아 결국 솥단지까지 다 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안 원장이 언제쯤 곰탕을 올려놓은 가스불을 끄고 식탁 위에 내놓을까요, 여러분은 그 시점이 언제라고 예측하십니까?


태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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