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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애먼 곳에 도착한 일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왜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인생 내비게이션은 우리를 애먼 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기자 말>

애니메이션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감동적인 대사와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감동적인 대사와 장면이 많이 나온다.
ⓒ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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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당되는 공통된 경험이 있습니다. 타인의 글에서 심한 감동을 받은 경험이죠. 뒷목에 닭살이 돋는 듯한 그 짜릿함은 중독성이 매우 강합니다. 이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다음과 같은 증상이 발생하죠.

'나도 내 글로 다른 사람의 뒷목에 닭살을 돋게 만들리라.'

이 증상은 매우 강력해서 한 번 발생하면 그 사람의 인생 경로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2011년 12월에 <글쓰기 클리닉> 책을 써 출간한 이후 저는 여러 곳에서 글쓰기 강연을 합니다. 강연을 들으러 오는 분들 중에 적지 않은 분들이 제가 앞서 얘기한 증상이 나타난 분들이죠. 지금부터 제가 실제 강연에서 그 분들에게 들려드리는 얘기를 일부 옮기겠습니다. 어떻게 글로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여러분!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지 않으세요?"
"당연하죠. 그래서 강의 들으러 왔는데요."
"내가 쓴 글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죠.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글로 감동을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쉬웠다면 누구나 작가가 됐겠죠. 감동을 주는 글을 쓰는 방법을 얘기하기 전에 우선 제 경험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내 저는 애니메이션 정보 사이트인 베스트애니메(http://www.bestanime.co.kr)에 접속해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사이트 검색 창에 '그대가 바라는 영원'을 입력합니다.

"<그대가 바라는 영원>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아시는 분 있나요? 역시 없군요.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미연시 게임입니다."
"미연시가 뭐죠?"
"아! 설명을 드려야겠군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미연시라고 부릅니다."
"푸하하하."
"제가 미연시 게임을 직접 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어쨌든 미연시 게임 중에는 스토리가 워낙에 탁월해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게임도 있는데 <그대가 바라는 영원>이 바로 그런 경우죠. 제가 예전에 이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무척 소름 돋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대가 바라는 영원>은 두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흔한 소재죠. 그런데 애니메이션 후반부에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여주인공 미츠키가 남자 주인공 타카유키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데요. 사실 여주인공 미츠키는 남자주인공 타카유키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타카유키와의 관계가 계속 틀어지면서 미츠키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타카유키의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바로 여기서 한마디로 제가 뻑 간 장면이 나옵니다. 다시 강연으로 돌아가 봅시다.

"혼자 침대에서 나와 구석에 쪼그려 앉은 미츠키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부러진 하이힐 굽을 붙이려고 노력하는데요. 접착제를 바른 것도 아니니 하이힐 굽은 계속 떨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미츠키는 쉬지 않고 이 행동을 반복하지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어요."
"왜요?"
"하이힐 굽을 반복해서 붙이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미츠키의 복잡한 감정과 상황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부러진 하이힐 굽은 그녀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뜻하죠. 그녀가 계속 하이힐 굽을 붙이려 하는 것은 이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하이힐 굽은 계속 떨어지고 말죠.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별로 감동적이지 않은데요?"
"하하하. 물론 그렇겠죠. 이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만이 제 느낌을 이해하겠죠. 말로 애니메이션 장면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어쨌든 만약 미츠키의 이런 답답한 상황을 그저 '왜 타카유키는 내 마음을 몰라줄까? 너무 슬프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처리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흠... 그렇겠지요."
"네에. 이제 본론을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 '슬프다'라는 단어는 절대 슬프지 않습니다. 보십쇼. 제가 지금 이 칠판에 '슬프다'라고 아무리 감정을 담아 쓰더라도 여러분은 슬프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슬프다'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슬픈 '디테일한' 상황에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

가끔 TV를 보면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이의 사연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가슴이 아플까요? TV에서 '슬프다' '불쌍하다' '애처롭다'라는 단어를 지속적으로 나열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TV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프다'라는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슬픈 것이고, 입학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해 슬픈 것이고, 연인과 헤어져서 슬픈 것입니다.

"자! 이제 어떻게 글로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알려드립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 읽어보세요."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네에. 잘 읽으셨어요. 중요한 내용이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네에.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 저녁에 UFO 봤습니다. 믿으세요?"
"에이. 거짓말이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 볼까요? 어제저녁 일곱 시쯤 부인이 쌀 떨어졌다고 쌀 사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갑 챙겨들고 나와 집 근처 홈마트에 갔습니다.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이 없어서 카드 결제로 쌀 10킬로그램을 사서 들고 낑낑대며 오르막길을 오르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앞 선 너머로 이상한 물체가 번쩍이더라고. 비행접시 모양의 물체가 멈춰 서서 섬광을 발하더니 순식간에 관악산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어떤가요? 그래도 안 믿어지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하하"
"하지만 더 귀가 솔깃해집니다. 왜죠? '디테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소설가 김연수씨가 쓴 글을 함께 읽어봅시다. 이 글은 감동이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어서 소개합니다. 심호흡 하고 찬찬히 읽어보세요."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 드리죠. '봄'에 대해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지 말고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세요. '사랑'에 대해 쓰지 말고 사랑할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 쓰세요. 감정은 절대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전달되는 건 오직 우리가 형식적이라고 부를 만한 것뿐이에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앞으로는 봄에 시간을 내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애인과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그 맛이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는 어땠는지를 기억하려 애쓰세요. 강의 끝.
-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마음산책, 2010)

강연이 이 정도 진행되면 사람들이 어느 정도 감을 잡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때 구체적인 예를 통해 감동을 일으키는 '디테일'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한 번 자기소개서 쓰기에 적용해 볼까요?"
"소설이 아니고 자기소개서요?"
"네에.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자기소개서 쓰기도 완전 달라집니다."
"안 그래도 내일 자기소개서 써야 하는데 잘 됐네요. 어떻게 달라지죠? 궁금하네요."
"잘 들어보세요. 자기소개서는 본질적으로 '나 잘났으니 뽑아 주쇼'라고 호소하는 수단입니다. 면접관 앞에 수북이 쌓인 수백, 수천 장의 자기소개서는 하나같이 나 잘났으니 뽑아 달라는 아우성뿐이죠. 다들 성격도 끝내 준다고 하고 더없이 성실하다고 자신을 추켜세웁니다."
"맞아요. 정말 그렇지요."
"학점이 좋으면 좋다고 자랑질이고 학점이 좀 모자라면 다른 스펙을 내세우며 자랑질입니다. 더구나 어디서 자기소개서 샘플을 모방했는지 한결같이 비슷한 구성에 비슷한 내용뿐이죠. 이런 상황에서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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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듣는 친구들 중에 특히 젊은 친구들의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기소개서 쓰기가 사활이 걸린 문제니까요.

"바로 여기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디테일'입니다. 디테일을 있으면 면접관은 그 많은 자기소개서 중에서 내 것을 들고 '이 친구는 정말로 성실한 것 같군'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면접관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죠. 자! 다음의 두 가지 자기소개서를 보죠. 둘 다 자기가 성실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A: 저는 그동안 철저한 자기관리와 시간관리를 통해 제가 맡은 일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으며……
B: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써온 일기 덕분에 언제나 메모하는 습관을 얻게 되었고, 더불어 추억이라는 소중한 재산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인상에 남고 설득력이 있을까요? 당연히 A가 아니라 B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무턱대고 '나는 성실하다'는 말을 들이대면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면접관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은 성실하다고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B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고 얘기합니다. 단순히 나는 성실하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냐면 자신이 성실했던 상황을 그려낸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지요."
"정말 그렇군요. UFO의 예와 같은 맥락이군요. 저뿐만 아니라 제 친구들도 대부분 그냥 나는 이런 저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열하기만 했는데, 디테일이 있어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렇죠. 뿐만 아니라 디테일을 잘 활용하면 사랑까지 쟁취할 수 있습니다."
"정말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는 디테일을 잘 살린 명대사가 나온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는 디테일을 잘 살린 명대사가 나온다.
ⓒ M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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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20대 시절 무척이나 인상적으로 봤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샐리: 미안하지만 해리, 송년의 밤이고 외롭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샐리: 몰라.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이런 건 어때? 더운 날씨에도 감기에 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널 사랑해. 날 바보 취급하며 쳐다볼 때 콧등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네 모습과 너와 헤어져서 돌아올 때 내 옷에 배인 네 향수 냄새를 사랑해.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너이기에 널 사랑해. 지금이 송년이고 내가 외로워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냐. 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가능한 빨리 시작하란 말을 해주고 싶어.
샐리: 이것 봐, 넌 항상 이런 식이야 해리! 도저히 널 미워할 수 없게끔 말하잖아. 그래서 난 네가 미워, 해리. 네가 밉다고.

대학시절 궁상맞게 혼자 비디오방에서 보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해리가 샐리에게 건네는 대사는 그것이 도저히 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덕분에 샐리의 마음은 완전히 연두부가 되고 말죠. 사랑도 쟁취하는 대단한 '디테일'의 위력!


태그:#자기소개서, #글쓰기,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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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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