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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눈 갤러리 '길동무전'이란 선팅이 되어있는 사진.
 우리들의 눈 갤러리 '길동무전'이란 선팅이 되어있는 사진.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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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슬기의 희망탐방>을 맡고 있는 김슬기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오늘은 한국 화단의 촉망받는 한 중견 화가를 찾아, 그 물음의 해답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시각장애인 예술협회'의 엄정순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아빠와 더불어 전철로 가는 길이 예전과는 다르게 덥고 힘에 겨워 숨이 턱에 차오르네요. 아무래도 이제 제가 일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듯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인천에서 안국역까지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저를 내쫓거나 거절하는 사람이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북촌 길을 걸어, 헐떡이는 가쁜 숨을 가누며 종로구 화동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 도착합니다.

저희가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인지 갤러리 내엔 아무도 없고 굳게 잠긴 출입문만이 완강하게 저희 부녀의 출입을 가로막네요. 카메라 기자로 동반한 아빠를 졸라 갤러리 앞에서 한 컷 사진을 찍어봅니다.

잠시후, 환한 미소의 엄정순 대표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오십니다. 익숙한 미소로 저희를 반겨주시는 친절에 감사하며 함께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세요? 엄정순 대표님… <오마이뉴스>의 등불, 김슬기 기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김슬기 기자님."
"저희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습니다. 갤러리 사진도 좀 찍을겸, 일찍 도착한 것입니다."
"아, 네… 오늘이 저희 갤러리 성인워크숍인 '힘 키우기' 수료식날이라, 다과 준비로 좀 늦었습니다."
"아, 그럼 오늘 맛있는 것도 좀 먹을 수 있겠네요."
"슬기야…"

갑자기 아빠의 불호령 섞인 견줄 칙이 제 가는 목을 휘감고 돕니다.

"아, 알았어요, 알았어. 농담도 못해요? 그저 우리 아빤 먹을 거라면 늘 저렇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니 원…"
"에그 이놈에 가련한 안내견 신세… 툭 하면 이렇게 내 목을 휘어져라 쳐대니, 살 수가 있어야지. 아빠 나도 아빠와 똑같은 인격체란 말이에요. 아, 참 인격체가 아니고 견격체든가? 아무튼 품격을 갖추고 대접해주세요. 더욱이 여긴 취재 현장이잖아요. 저는 취재 기자이고요, 아빠는 단지 저를 보조하는 카메라 기자란 말이에요."

그러나, 얼굴이 붉게 상기 된 아빠의 불호령은 여전합니다.

"그럼 안 돼. 너는 아빠가 주는 사료 외엔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되잖아."
"아빠 저는 왜 아빠가 주시는 사료만 먹어야 해요? 저도 다른 사람들이 주는 많은 맛있는 것들 먹을 수 있자나요. 또 실제로 먹고 싶기도 하고요."
"너는 아빠의 눈으로, 어디고 아빠와 함께 출입해야 하는 거 잘 알지? 그런데 니가 검증되지 않은 다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봐라. 아빠와 함께 취재차 취재원을 만나고 있는데, 그 자리가 방이나 호텔, 아님 카페트 위인데 갑자기 참지 못하고 실례를 해봐라 어떻게 되겠니. 너 전에 다른 안내견이 교통사고로 죽은 얘기 알지?"
"예? 누가 죽었어요?"
"아빠도 안내견학교 선생님께 들은 얘긴데, 어떤 시각장애인 사용자가 안내견을 데리고 매일 시장을 지나 복잡한 거리로 다녔었다는구나."
"그런데요? 빨리 그만 애 태우시고, 나머지 얘기 쭉 다 해주세요."
"매일 시장을 지나다닐 때마다, 어떤 아주머니께서 안내견이 귀엽고 대견해서 사용자 몰래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먹여주었단다. 사용자가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테니 재빨리 한 입 먹여주곤 모르는척, 딴전을 피웠다는거야.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의 시원하고 단맛에 길이 들여진 안내견이 어느날, 대로변을 지나가다가 차로 중앙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봉지를 보았다는구나. 그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 맛이 간절해진 안내견이 무작정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로 뛰어들었다지 뭐냐. 그런데 갑자기 달려가는 안내견을 제지 못하고 딸려간 사용자와 함께 그 안내견은 큰 교통사고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구나. 너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먹거리 자꾸 먹을래?"

갑자기 등골까지 오싹해오는 공포에 저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맙니다.

"맞아요. 세상 음식맛을 알기 전엔 식탐도 별로 없었는데, 길을 가다, 또는 교회 식당 등지에서 아빠 몰래 주시는 음식들을 하나 둘, 먹다보니 저도 몰래 그 맛에 길이 들어 사실 많이 괴로워요."
"그리고 네가 먹는 사료는 너같은 고급 견종이 먹기 위해, 특별히 수입한 사료로 영양가와 열량 등을 다 안내견학교 수의사선생님들이 계산해서 결정하신 아주 고급 사료야. 그것만 먹으면 너는 아무런 영양 손상이나, 건강에 문제 없어. 너 요새 자꾸 사람들이 먹는 것에 관심을 두곤하는데, 그게 결코 네 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 왜 모르니 모르길. 아빠도 가능만 하다면, 네게 많은 좋은 거 먹여주고 싶어, 그러나 네가 과식하게 되면 비만해지고 또 그렇게 되면 관절이 약한 네가 관절염에 걸려 현업에서 바로 은퇴해야하잖아."
"네, 알았어요. 아빠 아무튼 오늘 인터뷰나 얼른 계속 하지요. 바쁘신 엄 대표님이 우리 때문에 너무 많이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왜 시각장애인들은 미술할 수 없을까' 의문에 교육 시작

이영배 선생님이 슬기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사진.
 이영배 선생님이 슬기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사진.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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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점에 감사를 드립니다."
"뭘요.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작은 빛이나마 희망의 불빛을 안겨드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디 있겠어요."
"엄 대표님은 한국 화단의 촉망 받는 중견 화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예 저는 어려서부터 부친이 운영하시던 병원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많이 접하며 자랐습니다. 충북 충주라는 그리 크지않은 소도시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시던 아버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못 받던 시각장애인들을 거의 무료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 연고로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을 자주 접해왔었는데, 제가 건국대학교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무렵, 한 성당건축 사업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시 시각장애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제 가슴에선 '본다'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슬그머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미술을 시각장애인들은 할 수 없을까 하는 의문도 생겨, 고민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충주 성모학교 교장 수녀님의 배려로 시각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을 처음으로 시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동료 예술가들과 같은 고민을 공유하면서 오늘의 '한국 시각장애인 예술협회'를 출범시키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럼 이 갤러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이지요?"
"우선 저기 전시된 작품들부터 한 번 살펴보실까요. 저것들은 한빛맹학교 학생들과 재동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길, 길동무전'이라는 주제로 그린 북촌지도 드로잉 전시작품들입니다. 우리 갤러리는 Another way of seeing 이라는 모토로 시각장애인의 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창의아트프로그램인 거지요. 저희는 '본다'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시각장애'를 또 다른 창의적 가능성으로 바라보며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미술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1996년 충주성모학교 미술워크숍으로 시작되어 지난 16년 동안 맹학교에서 정규과정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창의의 주체자로서 미술활동을 할 수 있는 지속적인 환경을 마련하는 데 노력해왔습니다.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들의 자신감 부여와 사회참여에 도움을 주고자 2003년 삼청동에 시각장애인 전용 갤러리를 오픈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앉아 있는 지금 이 자리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리고 일반교사가 하기 어려운 미술전문성을 예술가들과의 수준있는 예술체험으로 진행하는 수업입니다. 티칭아티스트와의 1:1 로 각 학생의 장애정도와 관심사를 배려하여 수업을 지도합니다. 또한 전문적 미술재료를 사용하여 표현력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커리큘럼으로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요. 수업은 회화, 조소, 사진, 미각수업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으며 일상의 경험들을 오감으로 표현하는 창의적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빛맹학교, 국립서울맹학교의 미술수업과 경복교회의 방과 후 미술교실을 매주 진행하고 있으며, 더불어 인천 혜광학교, 대전맹학교, 청주맹학교, 충주 성모학교 등과 특별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수업은 현장예술가들과의 협업 작업이며 본 협회의 미술전공 회원들이 Teaching Artist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눈에서 시작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은 시각장애학생들에게 동등한 미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각 지역 맹학교의 문화적, 교육적 체험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취지이자 목적이기도합니다. '우리들의 눈' '장님 코끼리 만지기'프로그램은 '사전교육, 체험교육, 창의미술수업, 대형코끼리 제작, 전시' 총 다섯 단계로 진행되는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창의 아트교육 프로그램입니다. 2009년 인천 혜광학교에서 처음 시작한 장님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은 2012년 7월 현재 태국 치앙마이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제 국내를 넘어 '국제교류 시각장애인 창의 미술 프로그램'으로서 한 걸음 도약하였습니다.  따라서 향후 전세계 시각장애미술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지요."

슬기의 등에 손을 얹고 앉아있는 홍소영 강사.
 슬기의 등에 손을 얹고 앉아있는 홍소영 강사.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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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세요? 참 대단한 일들을 하시네요. 저도 아빠를 따라 2주에 한 번 힘 키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봤었는데요.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성인 아트 워크숍은 성인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아트프로그램입니다. 사회에 나온 이후에 시각장애학생과 비시각장애 성인에 비하여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경험을 향유하기 어려운 성인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 접목 시킬 수 있는 아트 워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요. 2012년도에 기획된 성인 워크숍의 주제는 '힘!프로그램'입니다. '손 힘 키우기'라는 주제로 흙으로 조형물 만들기, '입 맛 키우기'라는 주제로 한식 전문가에게 요리를 배우는 등의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많은 일을 추진하시려면, 그에 걸맞는 많은 경비가 필요하실텐데 어떻게 조달하고 계시나요?"
"참 가슴 아픈 질문이십니다. 비영리 단체를 16년여간 이끌어가다보니, 속도 많이 타고, 애도 많이 닳았습니다. 후원회원님들의 정성 어린 후원금과 그 외의 모자라는 것들은 몇몇 이사님들이나 제가 조달해가고있는 편이지요."
"아, 네… 어려움이 참 많으시겠군요. 그럼 오늘의 '힘 프로그램' 수료식은 아까 말씀하신 성인워크숍의 종료식인 셈이네요."
"예 매번 참여하시며 보셨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오늘은 힘 키우기 프로그램의 상반기 수업 종강 파티이며 수료증도 수여하는 날입니다."
"상반기라 하심은 하반기에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 진행되는 건가요?"
"예 가을학기에 또 다시 좀 더 보강된 내용으로 힘 키우기 프로그램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오늘 인터뷰 정말 감사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김 기자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 참여해 예술잔치 됐으면..."

수료식에 차려진 음식들
 수료식에 차려진 음식들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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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우리들의 눈' 서포터즈들의 안내를 받으며 시각장애인 참여자들이 속속 갤러리로 도착합니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각 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담당 선생님들도 함께 도착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잠시 술렁거리더니, 갤러리 사무실 한 켠에 차려진 뷔페식 음식들이 참여자들의 식욕을 북돋습니다. 그럼 식사하시는 동안, 몇 분의 선생님들과 참여자들의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예 저는 '손의 힘 키우기'를 담당했던 도예가 이영배입니다."
"시각장애인들과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떤 느낌이셨어요?"
"예 저는 솔찍히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도 있었지만, 그 못지않게 시각장애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전엔 시각장애인하면 수동적이면서 어두운 면이 많은 침울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만나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그게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의 열정과 관심이라면, 어떤 것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욱 친밀히 유대 관계도 갖고 잘 가르쳐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네…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힘 키우기'의 참여자 박규민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특별히 느낀점이 있으시다면?"
"예 제가 안타깝게도 두 강좌를 못 들었는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어디서고 쉽게 수강할 수 없는 고급강좌라… 저는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그것이 불가능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더욱이 미디어 관계 사회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각장애는 단지 그렇지 않은 비장애인에 비해, 어렵다는 것 뿐이지, 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이런 고급 강좌가 많이 생겨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의 예술과 문화의 갈증을 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이번엔 아리따운 여자분을 만나보겠습니다. 자기 소개 좀 부탁 드릴까요?"
"예 저는 '향기의 힘 키우기'를 맡아 진행했던 꽃꽂이 전문강사 홍소영입니다."
"이전에도 시각장애인을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냥 스쳐가는 사람으론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함께 수업해본 건 처음입니다. 저도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처음 친구를 통해 이 제의를 받았을 때,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더욱 열심히 해보자며 자신을 부축여 재료를 준비하고 이곳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수강생들의 태도에 참 감명도 많이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저 자신을 많이 반성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강의를 맡아 하실 생각이세요?"
"물론이지요. 지난번에 꽃을 하나씩 나누어드리며 개개의 꽃이름을 가르쳐드리고 만져보게했었는데, 어떤 분이 꽃말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셔서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에 제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욱 철저한 준비와 넉넉한 마음 가짐으로 시각장애 수강생들을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와 참여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시각장애인 참여생 박현정이라고합니다. 강좌중, '마음의 힘 키우기'란 주제로 준비되었던 최대환 교수님의 강좌가 갑작스런 우천으로 취소되었습니다. 애초 그 강좌를 가장 고대하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못들어, 많이 서운했습니다. 자기자신과의 대화, 자기 자신의 아픔을 치료해보는 시간이라는 얘기를 듣고 참 많이 기대했었는데… 그러나 아무튼 이번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많은 모르던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고 만족했습니다."
"끝으로 이 강좌를 모르는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어디서고 쉽게 접해볼 수 없는 고급 강좌를 들으며 제 삶이 한 뼘씩 성장해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이런 고급 강좌를 소수의 시각장애인만이 수강해 강사진들과 운영팀들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좀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하여, 더욱 풍성한 우리들의 예술잔치가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들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기쁨 하나로 행복해진 수료식장을 바라보며, 저 또한 그 일익을 담당해내고 있다는 뿌둣한 성취감으로 취재를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noulpoet.kr 제 홈피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내견, #시각장애인, #예술, #엄정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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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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