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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구. 돈으로 사겠어."

유명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원빈이 극 중에서 여주인공에게 했던 대사다. 이 장면에서 원빈은 여주인공의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의 잘생긴 외모에 넘어가지 않을 여성이 누가 있겠냐마는, 온갖 패러디를 낳았던 이 대사는 단순히 미남의 구애를 넘어서 썩 유쾌하지 못한 구석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우리 세대, 전 세계를 물들여놓은 물질만능주의 말이다.

그의 대사는 돈이면 심지어 여성의 사랑까지 쟁취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그리고 기꺼이 돈으로 마음을 사겠다는 의지가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이면 못 사는 게 없다'는 오만한 발상이다. 가치를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는 그에게, 원빈의 조각같은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릴지언정 눈을 질끈 감고서라도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안 팔아요. 비매품입니다."

왜냐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세상에 어디 있냐고?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돈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을, 누군가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하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씁쓸하게 웃으며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니냐"고 말할 때,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이다.

마이클 샌델, 시장주의가 침투한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보다

지난 6월 1일, 서울 소공동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기자간담회에서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서울 소공동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기자간담회에서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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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연소로 교수에 임명(당시 27세)된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미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국내에 익히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1980년부터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특유의 토론식 강의법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샌델 교수가 '정의' 열풍을 몰고온 지 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바로 2012년 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 사이에도 <왜 도덕인가>, <정의의 한계> 등 샌델 교수의 저서들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 하지만 2012년, 다시 그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 나온 뒤부터인 것 같다. 2년 전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두 책이 모두 제목에서부터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자신에게 물어봤음직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저서들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도 샌델 교수는 특유의 눈썰미로 미국의 일상 곳곳에 침투한 시장주의를 짚어내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쉬운 설명과 재치있는 비유로 풀어낸다.

'먼저 온 사람'을 우선시하던 줄서기 문화를 돈을 더 많이 낸 사람을 우선시하도록 바꿔놓은 '대리 줄서기 사업'이나 '우선탑승제' 이야기, 멸종위기동물 보호차원에서 사육을 장려하기 위해 해당 동물을 사냥하는데 거액의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권장한 일화 등을 통하여 마이클 샌델은 '시장주의'가 우리의 관념을 바꾸어놓는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또한 인센티브(성적이 높은 학생에게 돈을 지급하는 방식)를 통한 아이들의 학습장려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하며, 학교나 경찰차 등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기업의 이름이 삽입되고 광고판이 부착되는 사례를 보여주며 기업의 광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도 지적한다. 그리고 보험, 데스풀,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투자한 채권 등에서는 심지어 삶과 죽음이라는 분야에까지 침투한 자본주의의 우려스러운 단면을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퍼뜨린 '물질만능주의',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표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표지.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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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각자가 일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더 편하고 좋은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아무런 고려없이 어디까지든 적용되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물음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지난 수십 년간, '성장'을 위해 바쁘게 달려온 우리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마이클 샌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곳곳에 만연한 자본주의가 우리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미처 뒤돌아 볼 겨를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이는 단순히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역시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전쟁의 폐허가 된 한반도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만이 각계 각층을 지배해왔다. 이후에도 IMF 등 경제위기가 찾아왔고,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만  앞선 채로 '성장과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은 쉼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미처 인식하거나 짚어볼 여유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물질적 가치'가 최고의 평가를 받는 시대가 도래했고, 우리는 아무런 비판없이 그 안에 흘러들어와 살고 있다. 마치 글의 서두에 있던 드라마 대사처럼, 우리 세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질만능주의 사고방식에 길들여 있지는 않은가.

마이클 샌델은 지적한다. 기존의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분야에 침투한 시장주의는, 물질이나 어떠한 관습의 본질을 바꾸어 버린다고. 줄서기와 선물, 경기장이나 학교의 이름을 짓는 것 같은 문제 이외에도, 한 사람의 생명이나 죽음의 의미까지도 변질시키는 현상에서 우리는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타락의 문제점은 분야와 정도를 가리지 않으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벌어진다는 점이다.

이에 샌델 교수는, 시장이 침투하면 안되는 규범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애매하고도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들을 더 이상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 모두가 토론하며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실이지만, 그것이 물질만능주의가 옳다는 반증은 아니다. 존엄한 인간의 생명, 혹은 인격이 값싸게 저평가되어 판매되는 것을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원빈이 돈으로 사겠다던 '사랑'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누군가 우리의 마음에도 바코드를 붙여버리기 전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씀, 안기순 번역. 와이즈베리, 16,000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2012)


태그:#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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