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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7월부터 12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흰옷을 차려입고 손님을 맨먼저 반기는 대말 방죽숲의 터줏대감 백로들
흰옷을 차려입고 손님을 맨먼저 반기는 대말 방죽숲의 터줏대감 백로들 ⓒ 김종성

숲과 나무는 인간 문명과 그 역사를 함께 했다. 국내외에서 목재를 약탈해 쓰다가 결국 자원 부족으로 멸망한 로마 제국은 숲의 중요성을 후손들에게 일깨워주기도 했다.

후손들에게 남겨진 선물 같은 숲

전북 임실군 오수면 대정리에 있는 '대말방죽숲'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민들 생계를 위해 생겨난 숲이기 때문이다.  동네 이장님 설명에 따르면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 (추정시기의 근거는 4,5백년 된 방죽숲 나무들의 수명) 마을 논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고 논과의 경계에 물을 오가게 하는 제방격인 방죽을 쌓게 되었다.

 방죽둑을 만들때 심은 왕버들, 뿌리가 질기고 길게 자라서 둑이 무너지지 않게 해준단다.
방죽둑을 만들때 심은 왕버들, 뿌리가 질기고 길게 자라서 둑이 무너지지 않게 해준단다. ⓒ 김종성

이때 동네 사람들이 일일이 지게를 지고 진흙을 가져다 붓고 다지며 방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이 나무는 뿌리가 질기고 촘촘하고 길게 자라나 방죽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해 주었다. 거기다 소나무까지 심게 되었고, 후일 후손들에게 선물 같은 숲을 남겨주게 된 것.

2011년 아름다운 숲 공존상을 받은 대말 방죽숲은 전라선 기차역 '오수역'에서 가깝다. 오수면은 알고 보니 어릴 적 선생님에게 많이 들었던 주인을 살린 그 유명한 개가 나오는 동네.

음료수를 사러 들어간 가게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그 '전설'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동네에 이 의로운 개를 기념하는 '의견공원'이 다 있으니 이곳 사람들에겐 그 개가 전설만은 아닌 듯하다.

 대정리에서 4대째 살고 계시다는 전직 이장 할아버지께서 숲과 저수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다.
대정리에서 4대째 살고 계시다는 전직 이장 할아버지께서 숲과 저수지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다. ⓒ 김종성

대말 방죽숲의 '대말'은 제일 큰 마을이란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개명한 '대정리'의 순수 우리말 이름이다. 방죽숲이 있는 대정 저수지는 경남 창녕의 우포늪과 홍성의 역재 저수지에 분포하는 가시연꽃 군락지와 비교해도 규모나 경관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저수지 들머리에 들어서면 이 동네가 오래된 집성촌임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이 서 있고 그 뒤로 흰옷을 차려입은 저수지의 터줏대감 백로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초록의 논과 흰 백로를 뒤로 구불구불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사진가들 사이에서 멋진 출사지로 입소문이 난 곳이라더니 정말 그럴만했다.

저수지의 서쪽과 남쪽 둑에는 300년 이상 버티고 선 왕버들 20여 그루와 소나무 1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동쪽가의 나무들 사이엔 관란정이라는 정자까지 있어 딱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1500여 평의 저수지에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는 가시연꽃까지 대군락을 이루고 있어 숲의 아름다움에 귀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대말방죽숲의 명물 '가시연꽃'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꽃이 필때면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데 그 이유도 이때문이다.
대말방죽숲의 명물 '가시연꽃'은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꽃이 필때면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오는 데 그 이유도 이때문이다. ⓒ 김종성

숲에서 만난 주민 중 4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전직 이장 할아버지는 저 허리 굽은 노송과 그 위에서 노니는 백로들, 희귀한 가시연꽃을 촬영하러 국내는 물론 멀리 유럽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새벽에도 쉴새 없는 촬영이 이어진다고.

그런데 요즘 부쩍 그런 사람들이 잘 안 보여 아쉽단다. 그 이유는 바로 가시연꽃이 잘 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고 했다. 8년 전 대정리 마을과 방죽숲 사이에 국도가 났는데 당시 공사를 하던 한국도로공사에서 저수지에 모래가 유입돼 쌓인다는 이유로 인근 산과 계곡에서 들어오는 수로를 틀어 다른 곳으로 흐르게 만들어 버렸다.

그나마 저수지 옆의 논에서 나오는 농업용수가 흘러들어오지만, 수량이 절대 부족한 상태인지라 물이 고이고 썩는다고. 저수지에 살던 붕어들이 둥둥 떠올라 떼죽음을 당한 모습을 보면 무척 속이 상했다고 하신다.

 방죽숲을 걷다가 만난 정자 관란정, 남원에서 단체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예약까지 했다는데 그럴만하다.
방죽숲을 걷다가 만난 정자 관란정, 남원에서 단체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예약까지 했다는데 그럴만하다. ⓒ 김종성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각종 물고기들과 생명체로 (이장님은 황소 개구리를 잡아먹는 수달도 보았다고) 풍성하던 저수지와 저수지 위를 수 놓던 생명력 강한 가시연꽃을 볼 수 없다며 아쉬워하신다. 이 때문에 전현직 이장들이 모여 매년 한국도로공사와 임실군에 진정을 넣고 있단다.

친정이 그리운 딸과 부모가 만나던 곳

요즘에야 많이 쓰지 않는 말이지만 예전에 어른들이 결혼한 딸들을 향해 '출가외인'이란 말을 사용하곤 했다. 가부장시대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동네 이장님이 또다른 뜻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옛날에는 시집가면 출가외인이라 하여 친정에 갈 수가 없었지. 밥 한술 먹기 힘들어서. 그래서 딸 가진 부모들과 친정 못가는 딸들이 장월(음렬 8월) 보름 후에 모이는 거지. 근동에서 제일 넓은 곳이 대말 방죽 제뚝이었어. 모다들 먹을 것을 싸들고 거그 가면 서로 만날 수 있었어. 나는 구경삼아 해마다 제뚝에 나가 봤지. 사람들이 어-허떻게 많이 뫼었는지 아마 이천 명은 넘을 거여. 사람들이 많이 꾀다 본 게 일제 때는 장사꾼들이 생긴 거여, 국밥장사도 오고 엿 장시도 오고 말여. 거그서 놀기도 허고 경치가 워녕 좋았응게"

예전엔 극소수의 부자가 아닌 담에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늘 배를 곯고 살아서 시집간 딸이 친정집에 온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밥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출가외인'은 한마디로 가난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여하튼  대말 방죽숲은 시집가면 친정에 갈 수가 없었던 딸과 딸을 가진 부모들이 그리움을 안고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곳이었다. 이를 '반보기 풍습'이라고 하는데 8월 추석이후 농한기에 여성들이 일가친척이나 친정집 가족들과 양쪽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푸는 풍속이다. 여인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조상들의 또 다른 지혜인 셈이다.

 8년전 국도가 나면서 대정리 마을에서 분리되고 작아진 대말방죽숲, 도로 왼쪽편에 대정리 마을이 있다.
8년전 국도가 나면서 대정리 마을에서 분리되고 작아진 대말방죽숲, 도로 왼쪽편에 대정리 마을이 있다. ⓒ 김종성

 허리가 굽다못해 고사해 버린 노송, 과거는 물론 현재도 이어지는 숲의 수난을 증언이라도 하는 듯 하다.
허리가 굽다못해 고사해 버린 노송, 과거는 물론 현재도 이어지는 숲의 수난을 증언이라도 하는 듯 하다. ⓒ 김종성

아픈 역사를 견디어내며 살아왔건만...

딸과 부모가 만나고 장사꾼과 엿장수로 시끌벅적했던 대말 방죽숲은 일제강점기를 맞으며 수난이 시작된다. 지금의 노송들은 그 당시 어려서 용케 살아 남았다. 말하자면 비극적인 역사의 생존자들인 셈.

이곳을 찾는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허리가 굽다 못해 고사해버린 노송 한 그루가 저무는 햇빛 속에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숲 입구에 2011년 아름다운 숲 공존상 기념 팻말에 '대말 방죽숲은 눈에 보이는 현상의 아름다움보다 아픈 역사를 견디어내며 지켜온 서러운 기개가 더 아름다운 숲이다'라고 써있나 보다.

그러나 숲은 여전히 수난을 당하고 있다. 도로를 만든다며 방죽숲을 마을에서 분리하고 축소시키더니 물이 유입되는 수로마저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당시 옮겨 심은 왕버들은 저수지 물위로 점점 기울어져 치렁치렁한 가지가 곧 물에 잠길 것 같이 아슬아슬하다.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불쌍한 동물들 때문에 생긴 말 '로드킬 (Road Kill)'은 대말 방죽숲에도 해당된다. '공존'의 배려가 아쉽고 안타깝다.  

 아담하고 인심좋은 대정리 마을, 먹을거리를 건네는 할머니들은 물론 동네개들도 꼬리를 흔들면 반긴다.
아담하고 인심좋은 대정리 마을, 먹을거리를 건네는 할머니들은 물론 동네개들도 꼬리를 흔들면 반긴다. ⓒ 김종성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저수지요 숲이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짠해진다. 동네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 국도 밑 토끼굴을 지나 가까운 대정리 마을을 찾아갔다. 씁쓸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라도 하듯 여행자를 반기는 동네 할머니들은 강냉이 먹고 가라며 까만 알이 탱글탱글한 갓 익은 옥수수를 건네주신다. '사우(사위)' 생각난다며 후식으로 주시는 복숭아까지 잘 먹었다.

할머니들은 대정제(대정 저수지)가 터가 좋아 예전엔 무당들이 굿을 했고, 정월보름날 밤에는 저수지에 가 '물맞이'를 했다고 말씀해 주신다.

마을 앞산의 빽빽한 노송은 6백여 년 동안 이 마을을 지키며 바람을 막고 서 있고 그 사이에 놓인 동네 쉼터 격인 정자 또한 소나무들과 어울려 멋을 뽐낸다.

마을과 방죽숲을 가르는 도로가 없었을 땐 정말 멋진 풍경이었겠구나 싶다. 재미있게도 정자 안에 선풍기, 냉장고가 다 갖추어져 있다. 해뜰녘, 해질녘의 풍경이 기막히다는 말에 대말 방죽숲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대말방죽숲#아름다운숲#오수면 대정리#가시연꽃#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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