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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구가 매년 최고치를 기록중입니다. 2012년 상반기 귀농귀촌인구는 8706가구 1만7745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왜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것일까요? 귀농귀촌인 절반 이상은 4050세대이지만 2030 세대의 귀농귀촌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생태적 삶'을 살고자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영업에 실패하거나 명퇴를 당했거나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귀농귀촌의 리얼스토리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개인의 선택 차원을 떠나 뚜렷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귀농귀촌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적 뒷받침이 이뤄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나는 경상도의 한 농촌지역에 이주하여 살고 있는 6년차 귀농인이다. 4인가족의 가장이며 두딸은 농촌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단감농사를 주로 하고 쌀과 콩, 마늘도 생산한다.

단감 농사를 짓는 나는 아침에 이장댁을 방문했다. 귀가 어두워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이장께 여러번 큰소리로 방송을 부탁했다. 부탁한 방송의 요지는 이랬다. '단감 중에 파지 난 게 좀 있어 마을분들과 나눌까 한다. 그러니 마을회관에 나오셔서 단감 받아 가시라' 뭐 그런 내용이었다.

한 30분쯤 있으니 이장의 방송이 들렸다.

"아, 아. 이장입니다. 새로 들어온 서재호씨가 단감을 나눠준다고 합니다. 마을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언제쯤 내 이름 앞 수식어를 뗄 수 있을까?

이장님이 마이크를 통해 필요한 방송을 하신다.
▲ 마을회관 앞 확성기 이장님이 마이크를 통해 필요한 방송을 하신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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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6년차, 옆 마을에 살다가 지금 사는 마을에서만 1년 6개월을 살았다. 그런데도 아직 내 이름 앞에는 '새로 들어온'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들어온 지가 언젠데.

언제쯤이면 이 '새로 들어온' 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지난 6년간 우리 면에서 내 소속은 이랬다. OO마을 새마을 지도자, 농악단 단원, OO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청년회 회원, 농민회 회원.

이제는 지역의 젊은 사람들을 거의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그래도 어느 자리에 가서 인사를 나눌 때도 나를 소개하는 말은 여전히 이러하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서재호씬데 어쩌고 저쩌고 … "

원주민의 입장에선 아직도 나를 소개할 표현이 마땅치 않다는 거다. 오랫동안 인적인 변화가 없었던 농촌마을에서는 '들어온 돌'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게 구조적으로 어렵다.

농촌마을을 방문했을 때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인들의 시선을. 정자에 둘러앉은 노인들은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몇 년간 살아서 적응될 만한 데도 아내는 아직도 노인들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민망해 한다.

이 쳐다봄은 '뉘신고?'의 의미다. '내 다이어리에 없는 (인명부에 없는) 인사인데 뉘신고?' 또는 '뉘집 아들인고?'의 의미다. 이럴 경우 나는 항상 먼저 인사한다. 인사 받으면 역시 뒤따라오는 눈빛. '그래서 뉘신고?' 귀농 초기엔 나를 장황하게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게 되었다. 다 소용없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이렇게 말하는게 훨씬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게 된다는 걸 알았다.

"OO마을 새마을 지도잡니다."

이리 말하면 십중팔구는 " 아하, 그러신가?" 하고 넘어간다. 그보다 더 확실한 소개는 "OO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인들

땅과 사람과 집, 농촌은 하나로 이어진다
▲ 마을길 땅과 사람과 집, 농촌은 하나로 이어진다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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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땅'과 '집'과 '사람'의 통일적 관계를 통해 하나의 구성원이 된다.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그냥 하나의 사람 -101동 1901호에 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데 반해 농촌에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입체적으로 입력된다.

예를 들어 이렇다. '집' - 마을 왼쪽 끝에 대나무집 아들, '땅'-  윗도랑 배미 물낀 논에 농사짓는 아재,  '가계'- 학교때 사고 무지 쳤으나 지금은 마음잡고 새 장가간 누구의 아들 ….   이처럼 한 사람은 땅과 집과 가계도라는 세가지면에서 상이 떠오르며 입력된다. 한사람에 대해 자판을 치면 이렇게 세가지 이미지가 동시에 화면에 보여지는 것과 같다. 

땅만 해도 그러하다. "그 땅은 원래 논이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밭으로 만들었고 그게 누구한테 처음 팔렸다가 누가 다시 사서 이리로 되돌아와서 누구 명의로 잠시 뒀다가 문중에서 말이 많아서 지금은 누구 명의로 해놓았다"는 등등의 이야기로 히스토리가 쫘~악 나온다.사람에 내한 내력도 기본 3대 스토리가 줄줄줄 나온다. 도시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의 경우 이런 면에서 상이 잘 잡히지 않는 거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다.

그걸 몰랐던 귀농 초기, 불필요할 정도로 장황하게 나를 설명했었다. 어느 도시에 살았고 무슨 직업을 가졌으며 왜 이곳으로 왔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다.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을 분들에게 이런 설명과 묘사는 기억이 저장되기 어려운 코드들이다.

나의 상세하고 긴설명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진지하게 듣고 약간의 고민 끝에 나를 정의한다. 그 정의 결과는 이렇게 된다.

"새로 들어온 사람."

물론 "부산양반", "젊은 양반"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더 간단하면서 공감하기 쉬운 강력한 표현은 당연히 "새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 얼마나 명쾌한가.

진정한 마을사람 되기는 가능할까?
▲ 귀농 진정한 마을사람 되기는 가능할까?
ⓒ 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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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 자리를 향한 꿈

그럼, 언제쯤 이 '새로 들어온 사람' 이란 수식어 없이 온전한 '마을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런일이 있었다. 내 후배중에 경남 합천에 귀농한 사람이 있다. 합천 OO면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온 후 뜻한 바 있어 합천으로 다시 들어갔다.

고향에 돌아가 폐교를 빌려 자연생태 교육을 펼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적당한 폐교를 물색하였으나 나고 자란 OO면에서는 임대 폐교를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OO면의 이웃에 접한 △△면의 폐교를 구해 들어갔다. 10년 전의 일이고 경남에선 꽤 자리잡아 유명한 생태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지역에선 '외지 것'이다. 같은 합천 출신임에도 OO면 출신이 아닌 게 이유다.

더한 경우도 있다. 나와 같이 농민회 활동을 하는 Y형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나처럼 도시에서 들어온 사람이 아니다. 위의 합천 후배 경우처럼 면이 다른 경우도 아니다. 단지 마을이 다르다. 원래 살던 평지마을에서는 염소를 키울 수 없어 산을 끼고 있는 윗마을로 이사를 했다. 이사한 지 20년쯤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마을 안에서 여전히 '들어온 사람' 이다. 벌써 마을 이장을 했어야 할 사람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장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요즘 '새로 들어온 사람'인 내가 꼼지락 꼼지락 궁리를 하는 게 있다. 마을의 차기 대권을 꿈꾸는 거다. 마을 이장자리는 연봉 3백만원에 플러스 알파가 있는 노른자위 자리다. 2년에 한번씩 선거가 치러지지만 형식적이다.

현 이장이 건강을 잃어서 거동할 수 없거나, 이제 절대 안 한다고 강짜를 부리지 않는 한 임기는 계속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밑바닥 민심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연세가 많고 (77세) 귀가 어두운 이장에 대한 교체의지는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감지된다.

내게 출마를 권유하는 할머니 팬도 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도 이장 한 번 해야지?"

이렇게 여러차례 권유를 받으니 조용하던 마음에 권력의지가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차기는 아니더라도 차차기는 노려볼까 흑심을 품기 시작한 것. 이래서 다들 여의도를 기웃거리나 보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나설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시간은 내 편이니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혹시 아는가. 대권 도전에 성공해 이장이 될지. 그리하여 귀농(귀촌)자에게 불가능하다는 '들어온 돌'의  딱지를 떼고 진짜 '마을사람'이 될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현 이장님이 '귀' 말고는 너무 정정하시다는 거다.


태그:#귀농, #귀촌, #이장, #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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