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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안녕하세요. 신민아(가명, 45)라고 합니다. 얼마전 여고동창 모임을 나갔습니다. 화제는 친구 Y의 '바람난 남편' 얘기로 모아졌는데요. 그 친구는 우연히 남편의 휴대전화를 보다가 메신저로 여성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 내용을 보게 되었답니다. Y는 남편에겐 못 본 척 하고 일단 상대 여성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만났다는군요.

Y는 그 자리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주겠다"고 꼬드겨서 그 여자가 남편과 부적절한 만남을 가졌다는 말을 이끌어냈고 그걸 몰래 녹음까지 했다는군요. Y는 남편 메일과 비번도 알고 있어서 살짝 봤는데 둘이 주고 받은 메일도 있었답니다. 아직 남편에게 내색은 안했는데 어떡할지 고민 중이랍니다. 친구들은 당장 이혼해라, 고소해라, 난리가 아니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남의 일로 치부할 게 아니더군요. 우리 남편도 퇴근이 늦고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잦습니다. 요즘 들어 외모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고요. 혹시 여자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남편이 자고 있을 때 몰래 통화내역이나 문자를 확인하는데 별 문제가 없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휴대전화 잠금해제 패턴이 바뀌어 확인도 어려워서 더 궁금하네요.

남편에게 넌지시 패턴이나 이메일 주소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남의 사생활까지 엿보려고 하느냐"고 되레 화를 내네요. 부부 사이에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도남님, 제가 이혼하리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배우자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 소송할 때 증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1.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바람기가 의심되는 배우자의 메일이나 문자메시지 정도는 들여다봐도 괜찮지 않나요.
2. 상대방 몰래 대화 녹음을 해서 녹음내용을 재판 증거로 내는 것은 불법인가요.

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 '이도남'입니다. 요즘 <개그콘서트>의 '막말자'(막으려는 자와 말하려는 자)가 인기더군요. 막말자는 개그맨 황현희씨가 여자들에게 남자의 실체를 까발리는 코너인데요, 저도 몇 번 봤는데 남자로서 괜히 찔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처럼 휴대전화 무음에 잠금 패턴이 복잡한 사람은 외도 확률 100%라나요.

더 있습니다. 남친의 전화목록에서 여자의 이름을 찾지 말고 남자친구들과의 문자 메시지 내용을 주시하라고 막말자는 조언합니다. 또 남자친구가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아도 의심할 필요가 있다는데요. "왜 전화를 받지 않느냐"는 추궁에 "지금 받지 않아도 된다, 누군지 말하면 네가 다 아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상황을 모면하고자 한다면 확실한 바람이라고 한 부분이 기억이 남네요.

물론 웃자고 한 소리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남편이나 애인의 전화나 이메일을 궁금해하는 건 사실입니다. 남자라는 동물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옆길로 새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게 남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께 묻습니다. 부부나 연인끼리는 통화내역이나 문자내용, 메일을 서로 마음대로 봐도 되는 걸까요. 아니면 사생활이나 비밀이 지켜져야 할까요. 의견이 갈리겠지요. 그러면 이제 웃음기를 빼고 법대로 답변을 해드릴까 합니다.

부부 간 전화·메일 공개 :  허용해야 vs. 사생활 보호

법으로 따지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메일을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법으로 따지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습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메일을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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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A씨는 남편(B씨)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B씨가 접속하는 포털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낸 A씨는 남편이 출근하자 메일을 열어보았습니다. 메일함엔 B씨가 다른 여성과 서로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이혼을 상의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A씨는 그 여자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내면서 이메일을 출력해 증거자료로 제출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는 비밀이 침해당했다며 A씨를 형사고소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혼법정과 형사법정을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A씨는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메일을 열어봤으니 정당방위에 해당하고, 메일 내용도 배우자의 외도라는 범죄행위에 관한 정보이기 때문에 비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게 이름도 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제48조(정보통신망침해행위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또는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에 침입해서는 아니 된다.
제49조(비밀 등의 보호)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에 의해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거나 타인의 비밀을 침해·도용 또는 누설해서는 안된다.

법원은 법에서 말하는 '타인의 비밀'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로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이익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B씨의 메일도 사적인 내용이 담긴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외도가 의심되어 메일을 열어봤더라도 "이혼 소송중인 배우자의 이메일을 열람한 후 출력하고 나아가 소송에 증거로 제출하기까지 한 행위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A씨가 초범이고 나쁜 목적이 있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여 벌금 30만 원을 선고유예한다고 판결했습니다(선고유예란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2년이 지나면 없던 것으로 보는 제도입니다.) A씨가 불복,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2심과 3심 결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남편이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는 외도를 의심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메일을 열어봤습니다. 메일에는 수상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상대 여성의 직장 홈페이지에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라고 비방글까지 올렸습니다. 법원은 허락없이 메일을 열람한 부분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홈페이지에 비방글을 올린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인정하여 아내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법으로 따지면,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다는 뜻입니다.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메일을 함부로 열어봐서는 안됩니다. 이건 연인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친이 이별을 통보하자 홧김에 애인의 메일함에 접속하여 메일을 열어보고 삭제·전송한 여성도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자기 집 거실에 몰카를 설치해서 아내를 감시했다면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아내 몰래 거실에 설치한 몰카, 유죄인가 무죄인가

[사례] 출장이 잦은 C씨,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내 D씨의 반응이 예전같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외박도 하는 아내를 보니 딴 남자가 생겼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는 D씨 몰래 집안 거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출장을 갔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촬영된 내용을 살펴보니 아내가 다른 남자 E씨와 잠자리를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습니다. C씨는 녹화테이프를 증거삼아 두 사람을 형사고소했습니다. 그러자 D씨도 맞고소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C씨의 소송으로 부부는 이혼을 합니다. 게다가 D씨와 E씨는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간통했다는 증거가 있으니 현행법상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C씨도 유죄가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판결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내의 간통의 의심이 드는 상황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사이라도 사적인 공간은 보호되어야 마땅하고 집안의 거실은 시간 또는 상황에 따라서는 충분히 은밀한 사적영역이 될 수도 있다. 이곳에 24시간 촬영되는 몰카를 설치한 것은 정당행위로 보기 어렵다."(의정부지법 2012. 1. 13. 판결)

C씨에게는 성폭력특별법(카메라등 이용촬영)위반죄가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상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본 법원은 그에게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형을 내렸습니다. D씨는 이혼 후 C씨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도 제기합니다. 법원은 5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몰래 신체를 촬영한 행위는 불법이므로 C씨는 D씨의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니 첫 번째 질문에 답이 되었지요. 다음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개인 간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일은 합법일까요, 불법일까요.

제3자가 몰래 녹음하는 경우와 당사자가 자기가 포함된 대화내용을 녹음하는 경우 2가지를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다른 사람 몰래 차량이나 사무실에 녹음기를 설치해 도청했다면 불법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 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이걸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라는 처벌을 받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판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몰래 도청이나 녹음을 한다고 말합니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증거로 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법 4조는 "불법검열에 의해 취득한 우편물이나 그 내용 및 불법감청에 의해 지득 또는 채록된 전기통신의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불법감청으로 범죄가 될 수 있고, 재판 증거로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화를 녹음했을 때는 상황이 다릅니다. 법원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통화내용을 증거로 제출한 사례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볼 수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즉, 당사자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은 불법이 아니고 재판 증거로 사용될 수도 있다. 다만 법원에 증거로 낼 때는 문서의 형태(녹취록)로 함께 제출해야 하고 녹음이 편집되거나 조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제3자 간 통화를 몰래 녹음하거나 사무실이나 차량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은 범죄에 해당하지만, 당사자끼리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은 불법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증거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남편과 바람난 여성과 전화나 대화를 하면서 아내가 녹음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랑한다면 비밀을 지켜줄 필요도 있다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열어본 메일. 처벌 받을까요?
 남편의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열어본 메일. 처벌 받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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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문자메시지, 통화내역은 배우자의 외도를 잡아내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라도 허락없이 열어봤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법은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비밀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혼을 결심했더라도 섣부른 행동을 했다가는 역공을 당할 우려가 있으니 신중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비밀이 어딨느냐고, 사랑한다면, 떳떳하다면 왜 못 보여주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배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을 일이지 강요할 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외도가 아니더라도 부부 사이에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설사 누군가에게 의심스런 배우자를 감시할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들, 이미 멀어져버린 마음까지 붙들어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끊임없는 감시와 미행으로 애정이 돌아올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면 때로는 서로 비밀을 지켜줄 필요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1.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2. 기사에서 언급한 상담내용은 개인의 신상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명을 사용했으며, 사연과 판결 등을 바탕으로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태그:#이도남, #이혼, #메일,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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