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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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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진보는 크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들은 강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체념하기엔 미련이 너무 많다.

'설마, 그래도, 잘 되겠지' 했던 막연한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또 다시 5년. 권력을 사유화한 이들에게 저당 잡힌 앞으로의 5년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죄여 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기엔 여전히 마음 속 깊은 곳 먹먹함을 달랠 길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사상 첫 여성대통령, 사상 첫 과반 대통령이라는 환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까?

야권 패배요인 분석 틀렸다

야권의 패배요인에 대해 이런 저런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야권과 야권 지지자에게서보다는 '승리자'의 입에서 나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들어보면 대략 이렇다. "안철수 후보가 등장해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의 1대1 구도를 만들지 못했다", "이정희 후보의 남쪽정부 발언이 보수층의 결집을 이뤄냈다."

웃기는 이야기이자 치사한 분석이다. 이런 진단은 결과론일 뿐더러 대선 이후 야권의 분열을 가속화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배어있다. 안철수가 없었다면 부동층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이정희가 강하게 박근혜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숨죽인 듯 고요하게 흘러가던 대선판이 요동이라도 쳐볼 수 있었을까?

또 한편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이 오히려 손실이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포지티브 전략의 효과는 네거티브 전략의 효과를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들은 긍정적 신호보다 부정적 신호에 더 쉽게 반응한다. 문재인 후보가 75.8%의 투표율에 48%의 득표라도 올릴 수 있었던 데에는 문재인 후보의 강점보다 '대통령 감이 절대 될 수 없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닐까?

게다가 박근혜 당선자 역시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언론을 장식한 몇 마디 말만이 아니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무서울 정도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파급되는 가공할 네거티브는 보수층을 움직여온 실질적인 힘이다. 그들은 별 것 아닌 몇 마디 말도 신천지를 뒤흔들 공격으로 프레이밍 한다. 2004년 '노인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요'라는 말을, 대통령을 별 이유 없이 탄핵시킨 행동과 등치시킨 그 네거티브의 힘을 기억해 보라.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십알단'과 '국정원 댓글조작 의혹' 등의 여론조작과 뿌리 깊은 지역감정을 원인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변수라기보다 상수다.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넘어서야 할 요인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총선에서 확인된 단일화의 한계, 과연 넘어 섰나?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선거전략이다. 야권단일화에 매몰된 선거전략. 이것은 분명 문제였다. 지난 4.11총선의 교훈은 단지 반MB 야권단일화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줬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단일화에만 너무 목을 맸다. 물론 단일화를 중시한 것이 잘못은 아니다. 48%의 효과는 단일화 효과다. 단일화 없는 민주당만의 힘으로는 결코 이 정도의 성과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메시지는 모호했다. 묻지마 단일화를 넘어설 새로운 정치, 단일화 이후를 꾸려갈 합의된 청사진은 제대로 제시되지 못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식당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가진 회동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약속한 뒤 문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오늘이 대선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열망을 담아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달개비식당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가진 회동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약속한 뒤 문 후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 전 후보는 "오늘이 대선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열망을 담아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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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결과의 배경에는 새로운 체제 성립을 위한 논쟁적 자극을 던져 줄 진보정당이 내분 상태에 빠져 역할을 못한 것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역할은 이후 안철수 후보에게 넘어 갔으나 의제의 폭은 생각보다 좁았고, 소통의 과정도 미흡했다. 민주당 역시 스스로 그런 구도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단일화를 넘어설 메시지의 모호함은 TV토론회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초반에는 이정희 후보의 공세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고, 마지막 3차 토론회에서나마 박근혜후보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반MB와 반박근혜로 단일후보가 되었음에도 상생과 소통, 싸우지 않는 정치를 슬로건화 했으며, 안철수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난하다가 단일화 이후 어정쩡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2008년 촛불시위부터 출발한 정권심판의 의지와 유신독재의 부활에 대한 거부감은 야권으로 결집했다. 단일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 정당은 출마와 완주를 접었다. 민주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조차 자기 일처럼 나서 투표독려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패배했다.

낡은 대립구도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박근혜의 당선이 야권의 실책 때문인지, 아니면 여권의 생각보다 강한 힘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이토록 허망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그 '불구하고' 때문이다. 야권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설령 민주당과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지를 보내 준 가장 근본적 이유. 설령 좀 못난 후보라 할지라도,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아니라 할지라도 발 벗고 나서 한 표 던져 준 가장 중요한 이유. 바로 그 이유가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진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사모'회원들이 모여 박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뤄진 19일 오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당선이 확정적인 가운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사모'회원들이 모여 박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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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야권에 대한 지지가 '불구하고'가 아니라 '때문에'였다면, 지금의 실망감은 훨씬 덜했을 지도 모른다. 어제 패배했어도 새로운 내일을 선뜻 기약하며 힘을 추슬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허망함은 수많은 '불구하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바람과 욕심을 조금씩 넣어 두고서라도 지켜야할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음에도, 그 믿음이 좌절된 극심한 상실감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패배의 원인인지, 이 정도의 성과라도 낳은 동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낡은 정당과 낡은 정치, 낡은 대립구도의 복원만으로는 낡음에 익숙하고 정통한 이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대선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이나 후보를 탓할 마음은 없다. 모두 애썼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다면, 낡음에 안주한다면 더 이상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의 새로움을 요구했던 2008년 촛불의 함성은 사실상 외면되었다. 2013년체제의 새로움을 요구했지만, 사실 우리는 87년체제의 쳇바퀴에서 열심히 맴돌았을 뿐이다. 그 쳇바퀴에 편승하는 것만이 최악을 막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오늘의 패배와 조롱, 직시하자

따라서 지금 진보가 할 일은 5년 뒤, 새로운 대결을 기대하며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5년 내에, 지난 5년 동안 해 내지 못했던 새로움을 어떻게 만들어 낼지, 고심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바꿀 생각으로 성찰해야 한다. 상대의 낡은 틀을 비난하기 전에, 내부의 낡은 틀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체제는 선거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거를 통해 대중의 동의를 획득하기 전에,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움의 현실 가능성을 먼저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낡은 정치공학은 집어 던지자.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던지면 좀 더 유리한지, 누가 침묵하고 누가 발언하면 정치적 득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낡은 방식으로 낡음에 정통한 이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 뼈저리게 기억하자.

분명한 패배다. 당연히 괴로워야할 일이다. 그들의 환호성과 냉소, 조롱을 직시하며 가슴 쓰려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또한 잊지 말아야할 일이다.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환호성과 우리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학만으로는 공작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이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5년 뒤를 벼르지 말고,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을 찾자. 알코올 없이 잠들 수 없었던 밤이 지나고, 어쨌든 해는 떠올랐다.


태그:#18대 대선, #선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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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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