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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13일 양일간 친구들이랑 '백두대간 탐방열차'를 타고 강원도 강릉시의 정동진, 경북 봉화군의 승부역, 영주시의 부석사, 소수서원, 풍기인삼시장을 둘러보고 왔다. 오랜 만에 기차를 탔고 무박이일의 일정이라 피곤은 했지만, 다양한 볼거리를 기차여행으로 즐기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종이 등불
▲ 강릉 정동진 종이 등불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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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11시 40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강릉시 강동면에 위치한 '정동진(正東津)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나는 기차를 타면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버스 안에는 승객의 이동도 없고 소등을 하는 관계로 잠을 청할 수 있지만, 기차는 사람들이 이동을 계속하고 등을 밝히는 관계로 수면안대를 하고서도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백두대간 탐방열차
▲ 봉화 승부역 백두대간 탐방열차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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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당도할 무렵인 오전 5시가 다 되어 정말 잠깐 잠들었는데, "곧 정동진역에 도착합니다"라는 안내 방송에 다시 눈을 뜬다. 5시 30분 무렵 정동진역에 도착하여 역전 우측에 있는 '초당순두부'집으로 가서 아침을 했다.

초당순두부
▲ 강릉 정동진 초당순두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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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인 초당순두부는 정말 맛있는데, 오로지 정동진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만을 위한 역전 식당이라 그런지 반찬도 부실하고 맛도 별로 없었지만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한술 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찬바람을 맞으며 방황하는 것이 싫어 책을 한 시간 정도 읽다가 세수를 하고 7시 무렵에 역으로 갔다. 정동진역은 강릉시내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약 18㎞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작은 역이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 광화문에서 정동(正東)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라시대부터 임금이 직접 사해의 용왕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지난 2000년 국가지정행사로 밀레니엄 해돋이축전을 성대하게 치른 전국 제일의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강릉 정동진역
▲ 강릉 정동진 강릉 정동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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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돋이와 함께 이곳의 다른 볼거리는 정월 대보름과 오월 단오에 동제(洞祭)를 겸한 풍어제다. 아울러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기도 하다. 동해안의 작은 정동진역이 세상에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연유는 지난 1994년 대박을 낸 TV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알려지고부터다.

모래시계 소나무(고현정 소나무)
▲ 강릉 정동진 모래시계 소나무(고현정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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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대히트로 철도청은 이곳을 경유하는 해돋이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홈런을 날렸다. 여기에 힘입어 인근에 있는 경포대, 오죽헌, 천곡동굴, 추암촛대바위, 환선굴 등도 방문객이 많이 늘어났다.

우리 일행이 7시가 되어 해변으로 나갔더니 이미 수백 명의 인파가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종이로 만든 등에 불을 넣어 하늘로 날리는 사람도 있고, 폭죽을 터트리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거리만 본 해돋이
▲ 강릉 정동진 불거리만 본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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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9분에 해가 뜬다고 했지만, 주변이 차차 밝아지고 있어도 좀처럼 해는 뜨지 않았다. 이윽고 해가 오르는 듯 하더니만, 이내 구름에 가려 해는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불거리 만을 보았다. 

'아쉽다. 역시 죄 많은 사람은 해돋이도 보기 힘들군'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서니 속이 다시 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린 속은 오랜 만에 새벽 바다의 싱그러운 공기를 마음껏 마신 행복감으로 이내 회복이 되었다.

이어 8시 20분 다시 열차에 올라 경상도 봉화군 소천면에 위치한 '승부역(承富驛)'으로 이동했다. 피곤한 몸으로 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추위에 떨었더니 몸이 힘들었던지 승부역까지 이동하는 두 시간은 토막잠에 빠졌다.

영암선 개통기념비
▲ 봉화 승부역 영암선 개통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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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56년 1월 영주와 태백의 철암을 오가는 영암선이 개통됨에 따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승부역은 지난 1998년부터 '눈꽃열차'가 성황을 이루면서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오지임을 알리는 승부역 표지석
▲ 봉화 승부역 오지임을 알리는 승부역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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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으로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이라는 작은 표지 석과 함께 깊은 계곡 등이 있어 철도여행과 트레킹을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사랑의 자물쇠
▲ 봉화 승부역 사랑의 자물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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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뒤편 언덕에는 한국전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리 기술로 영암선이 완공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1955년에 만든 '영암선 개통기념비'가 있고, 2008년 봉화군이 설치한 '빨간 우체통'과 2009년 공공미술작품으로 기획한 설치미술가 김초희 작가의 작품인 '사랑의 자물쇠'가 있다.

붉은 우체통
▲ 봉화 승부역 붉은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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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눈을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이곳을 찾아, 대합실이나 역전 등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들이 무척 많은 곳이다. 나는 역 주변을 살펴본 다음 우측 현수교를 건너 음식과 술, 특산품을 파는 천막촌을 둘러보았다.

각종 음식과 구이, 술, 농산물을 파는 승부역, 나는 술과 양미리구이를 조금
▲ 봉화 승부역 각종 음식과 구이, 술, 농산물을 파는 승부역, 나는 술과 양미리구이를 조금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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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봉화의 찰옥수수 엿술과 양미리 구이를 발견하고는 조금 먹었다. 오랜 만에 먹어보는 양미리 구이는 정말 별미였다. 동해안의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설경을 보면서 찬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술도 일품이었다.

봉화군의 술
▲ 봉화 승부역 봉화군의 술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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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승부역에 오면 늘 두 사람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1990년 초임발령을 받아 승부분교장으로 근무했던 정근식 선배다. 산골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냇가에서 목욕도 하면서 행복한 시골학교 선생을 했던 정 선배는 요즘 어디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지?

첩첩산중에 흐리는 시냇물
▲ 봉화 승부역 첩첩산중에 흐리는 시냇물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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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주에서 소설을 쓰고 계시는 김범선 선생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영동선 봉성역에는 교행하는 두 개의 비둘기호 열차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영주 청년과 철암 아가씨가 밤 열차를 타고 몰래 와서 열차가 교행하는 시간, 그 1분 동안에 만났다가 헤어지던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 <환상선 눈꽃열차>를 출간했던 순박한 얼굴을 가진 멋진 분이시다. 건강은 하신지 모르겠다.

연인들이 와서 사랑하기 좋은 곳
▲ 봉화 승부역 연인들이 와서 사랑하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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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연인들이 열차를 타고와 눈과 산천을 즐기고 가는 승부역에서 나는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선배와 향토 이야기를 주로 소설로 쓰고 계시는 희수(稀壽)가 다 되신 김범선 선생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나에게 승부역은 사랑보다는 그리움이 넘쳐나게 하는 공간인가 보다.


태그:#봉화군 승부역, #강릉시 정동진역 , #백두대간 탐방열차 , #영주시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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