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기타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다. '일다'에 머물며 기타강습을 할 정도로 수준급 연주를 하는 여연이다.
 기타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다. '일다'에 머물며 기타강습을 할 정도로 수준급 연주를 하는 여연이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나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곳에 취업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이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만 한다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고 싶지만, 아이는 이런 관심을 거부한다. 그러다보니 나는 아이의 장래가 불안하고 조바심이 나 아이와 부딪히곤 한다. 내가 믿어온 길이 과연 아이에게 행복한 길인가? 학교를 벗어나 대학이 아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가는 20살 청년 여연의 길은 어떨까? 지난해 12월 말과 1월 31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일다'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여연이 당분간 서울에 머물 거란 소식을 듣고 호기심과 반가움이 일었다. 살짝 투박한 커트머리에 여드름이 아직 송송 남아있는 여연은 해맑은 웃음과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했다. 시골에 있던 그녀가 어떻게 서울에 온 걸까?

여연은 누구
여연은 5학년 때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산골에서 엄마, 동생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태주의적인 삶을 살아온 20살 청년이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칼럼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2012년 3월, 엄마, 동생과 함께 그동안의 살아온 나날들을 모아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이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 현 교육 시스템을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마을을 찾아가 집을 빌리고 농지를 개간하고 정착해가며 세상을 거슬러 살아온 용감한 모녀들이다.
"얼마전 '여성주의저널 일다'라는 인터넷 매체에 글을 기고한 것이 인연이 되어 서울에 오게 되었고, '일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어요. 지금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에 대한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20대 때는 도시문화도 접해보고 싶고, 외국에도 나가면서 여러 활동과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고졸 검정고시 이후에 대학진학을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단다. 대학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긍정적인 대답 보다는 부정적인 대답도 많이 듣게 되고, 대학교육이 필요하다와 불필요하다는 두 가지 입장으로 팽팽하게 나뉜다고 했다.

지금은 누구의 말이 맞는지 모르기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우선 남들과 똑같이 스무살에 대학가는 건 일단 보류했다고. 대신 대학 제도 바깥에서 다양한 강좌를 듣고, 직접 기획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기타를 치면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한단다. 그러다 필요하다 느끼면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려는 욕구가 강해보인다.

여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자퇴를 하고, 학교 가는 대신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 읽고 글도 쓰며 성장기를 보냈다. 굳이 어린이 책이 아니라도, 엄마가 보기에 이해할 만하다 싶으면 어려운 책도 한 번 읽어 보라고 툭툭 던져 주었다고 한다. 여연의 집 서재엔 책이 빼곡히 천장까지 쌓여있다. 여연의 어머니는 대학을 나와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런 그녀가 시골에서 아이를 학교도 안 보내고 키운다는 것을 들었을 때 너무 무책임한 엄마가 아닌가, 살짝 화가 나기도 하고 무슨 이유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머리만 쓰거나 몸만 쓰는 사람이 아닌, 균형잡힌 사람으로 키우려고 했어요. 집안일, 농사일을 많이 시켰고, 집에 있는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 했죠."

12살 여자 아이가 엄마가 하란다고 학교도 안다니고 어른도 하기 힘든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 요즘 애들 같지 않다. 착한 건지, 여린 건지, 효심이 넘쳐나는 건지 다양한 이유를 찾던 나에게 그녀는 평범한 아이였다.

"도망갈 데가 없었어요. 엄마 말을 따라야 했죠. 생존의 문제였어요. 사춘기가 되면서 엄마랑 자주 싸우고 맹렬히 싸웠어요.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웃음)"

"엄마는 저를 균형잡힌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했어요"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다. 여연에게 책은 친구와 스승이자 세상을 만나는 통로이다. 이제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려 한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다. 여연에게 책은 친구와 스승이자 세상을 만나는 통로이다. 이제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려 한다.
ⓒ 김영숙

관련사진보기


14살, 그녀의 가을이 시작될 때 내면에선 반항이 시작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고 무슨 일에도 '나는 나잖아'라는 식이었다. 그 해 겨울 집안엔 폭풍 사춘기를 겪는 여연으로 인해 항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함께 책을 읽는 건 엄마와 내가 공감하는 방식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책이 전혀 눈에 안 들어왔어요. 일본 만화책과 인터넷 소설을 몇백 권은 읽었나 봐요. 미친 듯이 봤어요. 과자도 엄청 사먹었어요. 반항의 방식이 책과 음식밖에 없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창피한 일이지만(웃음)."

어려서 아토피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채식으로 바꾸고 과자도 못 먹게 했을 텐데, 그런 아이가 과자를 엄청 먹는다는 것은 나름 큰 반항이다. 우리 아이도 아토피로 인한 음식조절이 힘들었기에 아이와 엄마의 난감하고 힘든 상황이 이해가 된다. 여연의 엄마는 처음엔 아이와 싸우다가 한동안은 만화를 같이 읽으며 딸과 교감하고자했다. '이건 아니다, 엄마의 교육 방식을 이해하고 따라달라'로 끝났지만, 그 겨울이 지나면서 폭풍같던 사춘기도 잦아들었다.

"그냥 봄이 왔어요. 밭도 개간해야 되고 농사일을 해야 했어요. 기타를 배우게 되었는데 반항하던 에너지가 다 기타로 들어간 것 같아요. 기타 레슨비를 엄마가 지원해줬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부터는 그런 걸 제대로 배울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저한테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어요.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이 생기니까 사이가 좋아졌어요."

도시에 사는 청소년들은 생존에 대해 생각하고 접할 기회가 없다. 사는 건 네가 걱정할 게 아니야. 그런 건 부모가 다 해줄테니 너는 공부나 해라 하다 보니 살고자 하는 욕구,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가 없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 그게 아이를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연은 농사일을 하며 때론 용돈을 벌기 위해 밤도 줍고, 식당 서빙도 해가며 생존을 경험하며 살았다.

그녀는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자신을 느끼고 있다. 또래 친구의 개념이 없고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사귄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연의 글에도, 말에도 19살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어투가 많이 느껴졌다. 또래 문화 없이 엄마가 만들어 놓은 틀에 산 것에 불만은 없을까?

"있죠. 어떻게 이렇게 사회화가 안 된 아이로 날 키웠는지. 학교는 작은 사회인데 일상을 나눌 친구가 없는 게 제일 아쉬워요. 구세대적인 인간이란 생각이 들고 벽 같은 걸 느껴요. 세상의 방향과 너무 다르게 커버려서. 잘 지내면서도 외국인 같은 문화적 차이를 느끼죠. 근데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요. 자기가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려고 했던 게 문제지만요."

서울에 와서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가고 잠깐 집밖에 나가더라도 그 시선에 신경써가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자녀를 키운다면 학교를 안보내고 자신과 같이 키우고 싶다고 한다.

"용기란 만들어진 제도에서 나와 자신의 삶을 사는 것"

여연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여연과 엄마 두 사람은 올바른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용기있는 사람 같이 여겨졌다. 여연에게 용기란 무엇일까?

"요즘은 보통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살아가고 남이 만들어 놓은 제도 안에 들어가 살고 있어요. 그 조직을 바꿔보려고 시도해 보는 것, 아니면 그 조직에서 나와서 온전한 개인으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것,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용기가 아닐까요?"

지금은 젊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앞으로 결혼은 어떻게 할지 그 흔한 보험 하나 안 들었을 텐데 아프면 어떨지, 노후는 어떨지 괜히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불안하지 않을까?

"돌아갈 곳이 있기에 장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아요. 땅이라는 게 있으니까, 언젠가는 농촌으로 돌아갈 거예요. 농촌에는 항상 일손이 필요하고, 농사를 지으면 먹을 게 많아요. 지금도 가고 싶어요.(웃음)"

여연은 우리 아이와 같은 평범한 소녀이다. 그러나 이미 청소년의 단계를 뛰어넘어 부모에게 기대어 살지 않으려는 독립심, 스스로 자신의 생활과 삶을 관리하고 꾸려갈 줄 아는 자립심이 강해 보이는 든든한 모습이다. 외부에서 볼 때는 자신의 삶을 희한해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만족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녀에겐 엄마의 존재가 누구보다 대단한 존재이지만, 뛰어넘어야 할 벽이구나 싶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가, 사회가 짜 놓은 교육과 대학이라는 틀 안에 사느라 힘들어하고 버거워하고 있다. 여연의 엄마는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자녀의 양육을 위해 만든 또 다른 틀 안에서 딸을 키운 것이다. 어떤 방식의 자녀 양육이 옳은지 정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 아이의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나에게 '돌아갈 곳이 있기에 장래에 대해 불안하지 않다'는 여연의 말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바라보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이제 10대를 졸업한 그녀가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좀 더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태그:#고곰세, #여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