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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승래다, 그는 광대다

박(朴). 승(承). 래(來). 올 해 쉰 하나. 63년 토끼띠. 고향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 사는 곳 남원시내 소재 휴먼시아 임대아파트. 직업 연극배우.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곳 빼고 남원춘향문화예술회관 대극장 같이 제법 큰 무대에도 여러 번 선 경력을 갖고 있는 진짜 프로페셔널 배우이다. 대표작 정유재란과 관련한 남원의 역사를 소재로 삼은 '1597년'외 다수. 그러나 그가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배우 박승래. 그에게는 어쩐지 광대(廣大)라는 이름이 더 어울려 보인다. 그것도 '또랑광대'말이다. 또랑광대는 말 그대로 도랑(또랑)이 있고 대중이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에고 있을 테니, 박승래 그에게는 그의 활동의 주무대인 어머니 지리산의 넉넉한 이름을 빌려 특별히 '지리산 또랑광대'라 이름 붙여주고 싶다. 그것이 부디 그에게 영예로운 계관(桂冠)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또랑광대
국어사전에는 '판소리를 못 하는 사람'이라 돼 있다. 그러나 '악당이반'이라는 곳에서 만든 CD '또랑광대' 음반설명에는 '또랑광대, 실개천 도랑이 흐르는 작은 마을에서 활동하는 광대로 예전에는 비하의 뜻이 담긴 의미였지만, 요즘은 시대의 흐름을 담아 현장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즉흥성과 순발력, 재치를 갖춘 소리꾼을 지칭한다'라고 국어사전보다는 훨씬 후하게 뜻풀이 해 놓았다. 딱 박승래를 두고 하는 말인 양 말이다.

2012년 춘향제 기간 중 광한루원에서 벌어진 마당극 춘향전에서 박승래씨가 주인공을 맡은 변사또의 생일잔치 장면.
▲ 변사또 분장을 한 배우 박승래씨와 마당극 춘향전의 한 장면 2012년 춘향제 기간 중 광한루원에서 벌어진 마당극 춘향전에서 박승래씨가 주인공을 맡은 변사또의 생일잔치 장면.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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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해 봄, 남원 시내 요천(蓼川)변 광한루 일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전북의 대표 지역축제인 '춘향제'가 매우 성대하게 열리고 춘향제 주요 프로그램으로 마당극 '춘향전'을 빼놓지 않고 공연한다. 단골 레퍼토리인 셈이다. 다소 코믹한 버전의 마당극 춘향전에서 그는 벌써 몇 년째 변사또 역을 역시나 '단골'로 맡아오고 있다. '남원시 공식지정 변사또'라고 불러도 될 성 싶다.

분 바르고 콧수염 달고 갓 쓰고 관복 입고서 조선시대 사또로 분한 그가 마당극 판에서 엣헴, 엣헴 헛기침을 해가며 자기 역할에 몰입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변사또 '노릇'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 그가 연기하는 변사또는 코믹하고 재미있다. 춘향제의 단골메뉴 마당극 춘향전 공연의 맛을 변사또 역 단골인 그가 맡아놓고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원이 고향인 사람답게 구수한 토속 '남원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과장스럽게, 익살스럽게 변사또를 연기해 내는 그는 연기 외에도 다른 가진 재주가 많기도 하다.

지리산 권역 환경운동단체의 초청을 받아 성삼재에서 공연하는 박승래씨.
▲ 성삼재 공연 모습 지리산 권역 환경운동단체의 초청을 받아 성삼재에서 공연하는 박승래씨.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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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한 가지도 없는 재주를 몇 개씩이나 가진 그, 그러나 가난하다

민요와 잡가, 판소리는 물론 북과 기타연주도 수준급이요, 가요도 가수 뺨치게 불러 남원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 때마다 섭외 1순위인 데다, 작곡실력까지 갖췄다. 그가 자기 얘기를 담아 직접 쓴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 '꿈'을 기타반주를 곁들여 부르는 걸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다. '진짜' 잘 부른다. 음반 내도 되겠다 싶다. 음반 낼 실력은 되지만 음반 내주겠다는 이도, 직접 음반을 낼 돈도 없는 그는 대신 자작곡 '꿈'의 음원 파일을 페이스북 같은 SNS 매체를 통해 지인들에게 기회 될 때마다 전달하며 나름대로 '홍보'에 힘쓴다.

보통 사람은 없는, 꿈을 담은 '자기 노래' 한 곡쯤 가지고 있는 그는 어쩌면 누구보다 부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현실은 무주택 서민. 나이 오십이 넘었음에도 자기 집 한 칸 장만하지 못 한 채, 그가 금쪽 같이 여기는 두 아들과 함께 남원시에서 저소득 계층을 위해 지어 보급한 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극 말고 다른 직업을 갖게 될까 봐 젊을 땐 운전도 배우려 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다. 연극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운전이라도 해서 먹고 살 궁리를 하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인 두아들이 어릴 때 노모가 계신 고향집에 '얹혀'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늦은 밤중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헛소리를 하는 아이를 어렵게 병원 응급실로 이동시켰던 피를 말리는 듯한 경험이 그에게 '열 일 제치고' 운전면허를 따도록 만든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한 달을 낮에는 배우, 저녁엔 대리운전 기사로 이중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몸 담고 있는 공연예술 전문 사회적기업의 재정 상황이 나빠져 월 수입이 줄어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연극배우이지만 자식에 관한 사랑만큼은 '가시고기의 사랑' 못지 않은 그는 두 아들을 음악인으로 키워 가족 음악단이나 작은 공연단을 만들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큰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각각 건반과 기타, 개인지도를 받게 하고 있다.

일 년 넘도록 매 주 이틀 쉬는 날이면 음악 선생님이 있는 대전까지 아들을 태우고 가 공부를 하게 하고 끝나면 다시 남원으로 태우고 오는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해 오고 있는데, '자식 사랑이 유별난 거 아니냐, 다 큰 애들인데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니게 해도 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이유는 없고 '그렇게 하는 게 (교통비가)싸게 멕히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대답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 대리운전을 하려 했던 것도 순전히 자식 교육에 대한 그의 못 말리는 열정에 기인한 바 크겠지만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네 시간이나 사무실에 나가 '대리운전' 의뢰에 '대기'하다가 '손님'의 요청을 받고 대리운전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시간 당 6천 원. 그나마 공치는 날이 많아 그의 호주머니는 여전히 먼지만 풀풀 날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가 소속된 사회적기업에 남원시가 외주를 해와 작년 11월부터 석 달째나 남원시 관내 농촌 마을을 순회하며 '농한기 건강관리 프로그램'(남원시보건소 주관)의 일환으로 경로당에서 노인들에게 '노년의 스트레스 예방을 위한 민요 강습'을 하고 있다.

자동차에 북을 싣고 다니면서 보통은 두 곳, 많을 땐 세 곳씩이나 마을을 찾아다니며 몇 시간씩 민요를 가르치다 보면 끝나고 집에 와서는 목이 다 쉬고 기진맥진하여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을 정도였다는 그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충하기 위해 1, 2월 동안에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었으나, 입살이 부르트고 몸만 피곤할 뿐 수입에 도움이 안 되는 바람에 결국 지난 설 전에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덩 쿵따 쿵따... 세마치 북 장단에 겨울잠에 빠져있던 지리산이 들썩들썩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모노드라마 한 편 써달라, 2년째 은근히 조르는 그를 위해 감히 모노드라마를 써줄 실력은 못 되고, 대신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이 남자가 사는 법' 제목을 붙인 인물기사라도 한 번 써 올려서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을 다해,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그를 세상에 소개하고 격려해 주고 싶었던 게 기자의 진심이다.

경로당 민요강습 스케줄에 맞춰 취재를 위해 그를 따라나선 것은 날이 제법  풀린 지난 14일이었다. 큰 맘 먹고 장수에서 남원까지 가서 그가 모는 낡은 소형 짚, '회사 차'에 동승, 차창 밖 눈덮인 지리산의 풍광을 덤으로 한 드라이브 끝에 도달한 곳은 겨울잠에 빠진 듯 적막함만이 감도는 남원시 산동면에 있는 한 농촌 마을이었다.

남원시에서 주최한 노인대상 농한기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민요강습을 맡은 강사 박승래씨가 두 번째 방문장소인 '월산경로당'을 찾은 모습
▲ 민요강습을 위해 찾아 간 시골 경로당 남원시에서 주최한 노인대상 농한기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민요강습을 맡은 강사 박승래씨가 두 번째 방문장소인 '월산경로당'을 찾은 모습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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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보건소에 들러 출석보고를 한 뒤, 흰 가운을 입은 보건소장님의 안내를 받아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대상마을 경로당. 할머니 열 분 정도가 넓은 방 안에 모여 앉아 있다가 북을 둘러멘 박승래씨와 기자가 들어서자 친자식이라도 맞는 양, 일어나 매우 반갑게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우리 어머님들 오늘 저랑 같이 소리도 배우고 춤도 추고 신명나게 한 번 놀아보시자구요."

할머니들은 크리스마스에 커다란 선물보따리를 들고 나타난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유치원 아이들처럼 좋아라, 박수를 치며 북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고 앉은 '소리 선생님' 가까이로 모여들었다. 경로당에서 단체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 오후, 창문을 꽁꽁 닫아놓아 반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따뜻한 방 한켠에서 나른함에 겨워 잠깐 누워 눈을 붙이거나 다른 한쪽에 '십원짜리 화투' 판이라도 벌릴 양으로 담요를 깔아야 할 판이었다.

평소 성격은 비교적 말 수도 얼마 안 되고 점잖은 축에 드는 편인 그가 북채라도 하나 잡고 사람들 앞에 서기만 했다 하면 백 팔십도로 달라지곤 하는 걸 수도 없이 목격해 온 터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민요를 가르치려 온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방안에서 작은 마당극을 공연하려 온 것 같았다.

북을 잡은 주인공, 소리선생 역의 박승래씨 보다도 관객1,2,3...의 역할을 맡은 할머니들이 더 열연을 했다. 특히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다. 허옇게 센 머리, 자글자글 주름 가득한 얼굴이 이날 만큼은 활짝 펴졌다. 하나같이 밝고 환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소리를 따라 배우는 학생의 역할에 충실했다.

진도아리랑 장단인 세마치 장단을 배우느라 쭉 뻗은 두다리의 무릎을 쳐가며 구음으로 열심히 '덩 쿵따 쿵따' 따라 하고 있는 할머니들.
▲ 북소리에 맞춰 우리 소리의 장단을 배우는 할머니들 진도아리랑 장단인 세마치 장단을 배우느라 쭉 뻗은 두다리의 무릎을 쳐가며 구음으로 열심히 '덩 쿵따 쿵따' 따라 하고 있는 할머니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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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이 써글 놈아, 어디 갔다 인자사 왔다냐

어느 집단이건 사람 한 열 명 이상 모이게 되면 그 중에 유달리 '튀는'존재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노인들이 있는 경로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대상리 어느 부락에 사시는지, 연세도 성함도 여쭤보진 못 했지만, 백발이 성성 여든은 족히 되신 듯한 할머님 한 분이 십대로 돌아간 듯, 시종 명랑하게 분위기를 압도했다.

추임새를 넣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자, 신명이 극에 달한 이 명랑소녀 할머니는 '얼씨구 절씨구 잘한다 지화자 그렇지' 등 선생이 일러준 추임새를 뛰어 넘어 '아따 이 썩을 놈아 너 어디 갔다 인자사 왔냐, 이 썩을 놈 이놈아' 하고는 앞에 앉은 선생에게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욕하는 얼굴치곤 너무도 밝은 얼굴이어서 욕이라기보다는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추임새로 승화되었다.

앞에 있는 모든 제자(?)들이 한결 같이 즐거워하며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하니 가르치는 선생도 덩달아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깻짓을 해가며 '덩 쿵따 쿵따' 세마치 장단에 걸맞은 '발림', 몸 연기를 해가며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까지 더하자 방 안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어머님들, 니얄부터서는 인자 저 앞이 고샅에 걸어 댕길때도 맨숭맨숭 날로 걷지 말으시고요이 요로코롬 덩 쿵따 쿵따 함서 걸어 댕겨보시요이. 동네사람 만나믄 안녕하시오, 밥 잡쉈능가 하고 묻지 말고 요로코롬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짝 찢어 올리고 어깨를 들썩들썩 함서 아이고 아제 덩 쿵따 쿵따 하셨소이, 덩 쿵따 쿵따 헙시다요이 하고 인사해 부러요."

대상경로당 공식지정 추임새소녀 할머니가 때를 놓칠소냐, 벌떡 일어서더니 덩실 어깨춤을 춰가며 발림과 함께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식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람 동네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하겄제...아, 미친년이라고 해도 좋제. 야 내가 신명나서 즐거워서 그란디, 어쩔래?" 하고 덩 쿵따 쿵따, 덩 쿵따 쿵따 하고 댕기야 쓰겄구먼."

옆에 앉았던 할머니가 자석에 쇠조각 붙듯 따라 일어나 '고샅에서 만난' 동네사람 역을 자처했다.

"덩 쿵따 쿵따, 덩 쿵따 쿵따, 하이고 인월떡(인월댁) 나왔능가, 어데 마실 가능가, 잘 가소이, 덩 쿵따 쿵따..."

두 할머니의 자발적 '덩 쿵따 쿵따' 연기 덕에 경로당 방 안은 이제 즉흥 마당극 공연장 같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의 유전인자 속에 각인되었다는 '신명'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늙어도 신명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가락, 우리 장단의 저절로 흥을 돋우는 탁월한 기능과 함께 말이다.

박승래씨의 북장단에 맞춰 일어나 덩실 춤을 추는 할머님들. 관절이 안 좋은 노인들이 짚고 온 지팡이가 경로당 바깥 담벼락에 기대 세워져 있고, 현관에는 할머니들이 벗어 논 털신, 고무신등이 수북하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단체 양말인 양, 꽃버선을 신고 있는 모습도 시골 경로당다운 재미있는 풍경이다.
▲ 흥에 겨워 일어나 덩실 춤을 추는 할머님들 박승래씨의 북장단에 맞춰 일어나 덩실 춤을 추는 할머님들. 관절이 안 좋은 노인들이 짚고 온 지팡이가 경로당 바깥 담벼락에 기대 세워져 있고, 현관에는 할머니들이 벗어 논 털신, 고무신등이 수북하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단체 양말인 양, 꽃버선을 신고 있는 모습도 시골 경로당다운 재미있는 풍경이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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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그렇지, 하이고 우리 어머님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시는고마이라."

"야, 이놈아 내가 왕년에 전국을 다니면서 배운 가락이다. 어쩔래?"

할머니의 추임새가 지나쳐 선생과 제자의 자리가 전도될 위기를 수 차례 넘기며 그렇게 즐거운 수업이 이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선생 박승래는 당황하거나 불쾌히 여기지 않고 '프로답게' 능란하게 대처하며, 할머님들의 요구와 기분을 잘 맞춰드리며 한 시간 동안 유쾌하게 '잘 놀아' 드렸다. 수업이 끝나자 할머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쉽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살면 십 년씩 젊어지겠다고도 했다. 그리곤 '언제 또 오느냐'고 물었다.

'노년의 스트레스 예방 및 해소를 위한'다는 남원시 당국의 보건 정책, 농한기 경로당 프로젝트는 유능한 강사, 지리산 또랑광대 박승래로 인해 성공을 거둔 듯 보였다. 민요 가르치는 것을 재미있는 연극놀이처럼 진행할 줄 아는 그는 타고난 배우이자, 연출자였던 것이다. '또랑광대'의 국어 사전 뜻풀이는 이제부터 새로 바꿔야 할 것이다. '또랑광대: 전라북도 남원에 사는 박승래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말이다.

북장단에 맞춰 어깻짓을 하며 즐거워 하는 할머님들.
▲ 민요 강습이 마냥 즐거운 할머님들 북장단에 맞춰 어깻짓을 하며 즐거워 하는 할머님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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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강습장이라기보다는 즉흥 마당극 공연장 같았던 마을 경로당

대상리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이웃 마을 월산 경로당에서도 미리 준비해 간 큰 글씨체의 가사가 적힌 A4 용지 악보를 변함 없이 한 장씩 나누어 드리고 민요 '진도아리랑'과 '꽃타령'을 '악보'에 적힌 가사대로 배우고 세마치 장단도 배우고 발림도 배우고 추임새도 배우는 실속있는 '수업'으로 진행했음은 분명한데, 취재를 위해 약간의 '객관적 거리'를 두고 두 군데 경로당의 민요 수업을 끝까지 지켜본 기자의 소감은 역시나 한 편의 잘 짜여진 마당놀이를 본 듯함, 그 자체였다.

행여 '극적인' 장면을 놓칠 세라, 들고 있던 '똑딱이'(디지털 카메라) 셔터를 연신 부지런히 눌러대면서도 마음 같아서는 흥겨운 '판'에 끼어들어 할머님들과 더불어 신명나게 한 번 놀아보고 싶다는 기분을 간신히 억눌러야만 했다. 이럴 때 막걸리가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막걸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실은  두 번째 수업 장소인 월산 경로당에 갔을 때 할머님들이 모여 계신 방 말고 다른 방 안에는 한 창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후 세 시를 넘긴 시각이었는 데, 할아버님 서 너 분과 할머님 몇 분은 언제부터 막걸리와 소주를 드셨는지 이미 얼굴이 불콰해져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대상리에서도 그랬지만 월산리에서도 할아버지들은 이 탁월한 소리선생과 민요강습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듯했다는 것이다.

옆방의 민요수업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둑 대국에 열중하는 할아버지들. 시골 경로당에서는 여전히 칠십세, 팔십세가 되도록 남녀 부동석인가 보다. 언제나 할아버지들 따로, 할머니들 따로 노신다.
▲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옆방의 민요수업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바둑 대국에 열중하는 할아버지들. 시골 경로당에서는 여전히 칠십세, 팔십세가 되도록 남녀 부동석인가 보다. 언제나 할아버지들 따로, 할머니들 따로 노신다.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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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거나 약주를 드시는 할아버지들을 두고 할머니들도 의례히 그러려니 수업에 들어오라 부르지도 않았으려니와, 할아버지들도 아예 할머니들과 섞여 앉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사실이라 믿는 듯, 어디까지나 '따로' 놀았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 칠십, 팔십이 되도록 지켜지고 있는 듯...

아무튼 기분좋게 적당히 취한 '여학생'들이 술기운에 힘입은 나머지 명랑이 극에 달하여 소리선생 박승래씨를 요란하게도 맞이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님들 발씨 막걸리 한 사발 씩이나 잡쉈능갑만요. 막걸리 어따 감추셨소?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조까 줘야제...쩌그 대상리에서 막 떠들고 소리하고 왔더니 목이 탕만."

소리선생의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 간에 뜨거운 논란이 일어났다. 막걸리를 지금 가져다 주라커니, 수업시간이라 안 되니 끝나고 줘야 한다커니, 선상님이 농담으로 한 말인데 아모렴 그걸 고지 듣냐커니, 농담은 무슨 농담, 을매나 목이 말랐으면 저런 소릴 다 하겠냐커니, 의견이 분분하였다.

오늘 수업 되겠나 싶은 기자의 짧은 생각도 잠시, 역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능란하게 대처하는 박승래씨가 북을 잡고 판소리 '심청가'의 눈대목인 '심봉사 눈 뜨는 장면'을 맛뵈기로 들려주는 것으로 얼른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아, 우리 판소리의 그 우수함이라니... '여학생'들은 소리선생이 분위기 제압용으로 구성지게 뽑아대는 심청전의 한 대목에 금세 도취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탁월한 그의 소리연기가 펼쳐 놓은 장면은 궁궐 맹인잔치에 초대된 심봉사가 눈을 뜨고는 왕비가 된 딸 청이의 모습을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다는 극적인 장면이었음에랴!

이렇듯 천지조화로 심봉사가 눈을 뜨고 나니 만좌 맹인이 모다 개평으로 눈을 뜨는디

'아니리'로 상황 설명에 이어 빠르게 자진모리 장단으로 몰아가며 그의소리는 계속되었다.  
만자 맹인이 눈을 뜬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갈무 띠는 소리라 그저 짝짝 허드니 모다 눈을 떠 버리난디 석 달 안에 큰 잔티에 먼저 와서 참예하고 내려간 봉사들은 저의 집에서 눈을 뜨고 미처 당도못한 맹인 중로에서 눈을 뜨고 천하 맹인이 눈을 뜨는디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앉아 뜨고 서서 뜨고 어쩐가 보느라고 뜨고 천하 맹인이 눈을 뜨고 지어비금 주수라도 한 날 한시에 눈을 떠서 광명천지가 되었구나

그토록 많은 가사를 어찌 다 외워 부르는지, 입에다 모터라도 달았는지, 그 빠른 장단을 어찌 또박또박 발음해 부르는지, 그의 소리는 그가 지금 부르고 있는 심청가 가사처럼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앉아 뜨고 서서 뜨고 어쩐가 보느라고 뜨고 천하맹인이 눈을 뜨고'도 남게 할 것만 같았다.

어찌나 구성지게, 또 실감나게 소리를, 연기를, 잘 하는지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에 이르러 여학생들은 일제히 '와아'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개중에는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님도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 제압에 성공한 박선생은 올 겨울 들어 남원시 관내 경로당 100여 곳 가까이 순회하며 축적한 자신만의 노하우로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 또랑광대 박승래는 어느 대목에선 똑 부러지게 민요를 전수하기도 했으며 또 어느 필요한 대목에서는 북채를 놓고 일어나 백발의 제자 관객들 앞에서 온 몸을 던진 혼신의 연기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12월부터 시작해서 일주일에 닷새, 하루에 경로당 두, 세 군데씩을 돌았다고 하니 프로그램이 끝나는 시점인 2월 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현 시점에서 계산해 보자면 그간 그가 방문한 경로당 숫자만 해도 족히 100여 곳은 된다는 계산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모두 몇 군데나 돌았냐'는 질문에 '세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그였지만 말이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을 돌며 석 달 가까이나 같은 매뉴얼로 소리강습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경로당을 찾아가 매일 같이 만나는 일은 매 순간이 새롭고 행복했다고 한다. 실제로 자신의 어머니 연배이신 경로당의 어르신들을 만나는 덕에 몸은 힘들었지만 오하려 자기가 더 즐거울 때도 많았노라고 고백한다. 그런 그에게 어떤 눈치 빠른 학생은 '우리가 놀아주니까 좋지?' 하고 묻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솔직하게 '예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답하곤 했다고 한다.

비록 현재는 제 아무리 '남원시 공식지정 변사또'인 그도 목구멍이 포도청인 지라, 사회적기업에 소속되어 매달 최저임금 이하의 월급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노래 제목처럼 박승래만이 할 수 있는 모노드라마로 멋진 무대에서 소리선생이 아닌 배우로서, 광대로서 관객과 만날 '꿈'을 꾸고 있다.

그의 타고난 끼, 꼭꼭 눌러둔 광대의 끼가 녹슬지 않도록 한 겨울 내내 시골마을 경로당을 돌며 원 없이 끼를 발산할 수 있었을 테니 그의 겨우살이는 춥고 배고팠을지라도 그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천성이 낙천적이라 어떤 어려운 형편에 처해도 함부로 비관하지 않으며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도 한 때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심각한 상태였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사진 속 그가  쓴 두건에 숨은 비밀을 살짝 밝히자면, 그는 머리칼을 하나도 남김없이 밀어버린 민머리이다. 자꾸만 줄어드는 머리칼을 아예 죄 밀어버리고 온 날은 거울을 보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절에 들어가 중노릇이나 할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난하고 이름 없는 연극배우. 점점 자기보다 더 키가 커버릴 듯 자라는 두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그에게 현실이란 늘 척박하게만 다가왔을 것이라 짐작한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가 아주 어려울 땐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양심 바르고 진실한 그이니 만큼 음으로 양으로 그를 돕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에겐 '하느님'이라고 했다. 경로당에서 겨우내 만난 수 백명의 노인들을 포함하여.

그의 우울증이 언제 어떻게 떨어져 나갔는지는 물을 기회가 없었다. 현재의 그를 보면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사람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어서'이다.

사람들의 도움 덕으로 살아왔다고 믿는 그는 늘 받기만 하는 쪽이었다가 최근 수 년 전부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삶에 길들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가진 재능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해부터 자기가 사는 휴먼시아 아파트 관리 사무실 소장님의 전폭 지지에 힘 입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저소득층 이웃들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시간을 쪼개 기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돈 한 푼 안 받고서 말이다. 받은 것이라곤 지난 설, 아파트 관리소장님으로부터 설 선물로 받은 사과 한 상자가 전부라고 한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이면서 그는 형편껏 남을 돕는 일에도 열심이다. 젊었을 때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를 수 십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시골로 귀농해 살기 위해 건강이 안 좋은 부인을 데리고 남원에 온 그 부부가 살 집을 알아보려 쉬는 날마다 빌린 차에 동료를 태우고는 온 시골 동네마다 '빈집'을 수배해 종일토록 함께 찾아다니기도 하고, 밤 중에 느닷없이 '이삿짐을 날라야겠다'며 연락해 온 한 지인을 위해 급하게 화물차를 빌려 영문도 모른 채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가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이사를 도와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광대치례', 광대들이 지녀야 할 4가지 자질

지리산 또랑광대 박승래씨의 비장의 레퍼토리이기도 하면서 조선
후기 신재효(申在孝: 1812~84)가 지은 단편가사로 '광대가'라는 노래가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실린 광대가에 대한 설명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광대가
                  <앞부분 생략>
둘째 부분에서는 이 광대들이 지녀야 할 4가지 자질, 즉 '광대치례'를 들고 있다. 그것은 광대의 외모·기품과 같은 천생(天生)의 '인물치례'와 함께, 문학적 요소인 '사설치례', 음악적 요소인 창곡 통달의 '득음'(得音), 그리고 연기능력인 '너름새'(발림)이다. 이는 판소리가 단순하게 '들려주는 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판소리가 사설과 창곡뿐 아니라 창자의 인물됨과 연기능력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예술임에 주목하여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하 생략>
그가 언제부터인가 광대가를 즐겨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어느 새 새로운 레퍼토리가 하나 늘었거니, 하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광대가는 배우로서, 소리꾼으로서 소망과 다짐을 하도록 만들어주는 그에게는 길고 긴 잠언과도  같은 노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기자가 아는 한, 박승래 그는 신재효 선생이 광대가 사설을 통해 이 세상 광대들을 향해 일침을 날리신 바대로 '광대치례'를 거의 갖춘 진짜 광대임이 분명하다. 이번 '노년의 스트레스 예방 및 해소를 위한 경로당 민요강습'에 동행해 취재한 뒤 그러한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국보급 인간문화재 명창은 아닐지 몰라도 전라북도 지방문화재급 정도는 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그가 이 기사를 본다면 아마 부끄럽다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할지 모르겠다. 결코 자기를 드러내려 애쓰거나 추호도 남 앞에서 잘 난 체 해 보이지 않는 그의  평상 시 인품으로 비춰봐서 틀림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 기사가 그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기사 들머리에서 밝혔듯, 어디까지나 그를 '띄워주기' 위해서, 즉 '미화'시키기 위해서 이 기사를 썼음을 다시 한 번 솔직하게 고백한다.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그를 위한 불후의 모노드라마를 써주진 못할 망정,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려 이렇게라도 그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고 싶었다. 힘을 내라고, 조금만 더 힘을 내보라고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을 거라'고. 수 십년 무명 설움, 생활고를 탈탈 털고 세상 사람에게 인정받는 진정한 광대로 거듭날 때가 가까워오고 있노라고.

긍정을 예언하는 착한 점쟁이처럼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무당의 기분좋은 '공수'처럼 그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이 부족한 글솜씨를 가지고서 말이다. 선의를 품은 다소의 과장은 있었을 지언정 경로당에서 보고 들은 사실에 대해 추호도 거짓과 왜곡은 없었음을 밝힌다.

사진으로 전하는 에필로그 1.

ⓒ 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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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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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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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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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사로 채택되지 않는다 해도 남원시청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또랑광대, #박승래, #춘향제, #변사또, #남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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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 우리 시대의 삶에 공감하며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문화, 예술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고 미디어 컨텐츠의 창작에도 많은 관심 가지고 있다. 몇 군데 사회단체에서 우리 사는 세상이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조금씩 힘을 보태며 어울리며 나누며 살려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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