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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계 추산으로 약 250만명(정부 기준 2010년 현재 115만명)에 이르지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유령 노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노동관계법의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4대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와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 위한 관련법을 제정토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개념을 특수고용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50만명이 넘는 특수고용자들의 생생한 일상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로서 삶을 들여다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하루에 8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퀵서비스 기사'들이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문 받은 물건을 싣고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퀵서비스 일의 특성상 위험한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하루를 보내고 때론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달린다. 

서울 청계 2가 사거리에 위치한 서울고용센터 앞에 가면 퀵서비스 기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들에게 서울고용센터 앞은 일종의 퀵 주문 대기 장소다. 지난 19일, 퀵서비스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서울고용센터 앞으로 향했다. 오전임에도 오토바이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4년째 퀵서비스 기사를 하고 있는 정아무개(50)씨를 만날 수 있었다.

관련업계에서는 3천∼4천 개 업체에 퀵서비스 기사 17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년 전부터 퀵서비스가 시작됐지만, PDA(휴대 정보 단말기, 퀵서비스 기사들의 주문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깔려있다)가 상용화된 2000년 대 초반부터 종사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퀵회사에 입사해 계약서를 작성하고 전속기사로 일하는 쿽서비스 기사들이 다수였지만, PDA가 일반화되고부터 여러 회사의 일을 하는 비전속기사가 일반화된 형태로 자리잡았다. 현재 한 회사에 소속된 전속기사는 25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선택"

청계 2가 사거리에 위치한 서울고용센터 앞. 주로 퀵 서비스 노동자들이 대기하는 곳이다.
 청계 2가 사거리에 위치한 서울고용센터 앞. 주로 퀵 서비스 노동자들이 대기하는 곳이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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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사업을 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만 두게 됐다. 사업을 그만두고 그가 향했던 곳은 건설현장. 그러나 건설현장에서도 하도급 문제로 임금을 다 못 받는 상황이 왔고, 그래서 그마저도 그만 뒀다. 그 후에 시작한 것이 '퀵서비스 기사'다. 그 역시 다른 퀵서비스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비전속 기사'다.

퀵서비스 기사는 그야말로 '불안정한' 직업이다. 대부분의 퀵서비스 기사들은 3~4곳의 퀵서비스 회사에 소속돼 있는데 회사에서는 기사를 위해 보장해 주는 게 거의 없다. 계약서에 단순히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이행하지 않으면 퇴사시킨다'와 같은 게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정씨가 '퀵서비스 기사'를 택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씨는 평소에 오전 8시에 서울 천호동 집에서 출발한다. 보통은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PDA를 켜서 주문을 확인하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마땅한 곳이 없으면 서울고용센터 앞으로 온다. 대기하면서 PDA를 들여다보며 올라오는 주문들을 확인한다. 예전에 그는 주로 원하는 방향으로 주문을 받아 일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움직인다. 불황으로 주문이 많지 않아 방향을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게는 10시간 정도 퀵서비스 일을 한다. 그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은 점심 시간대. 가끔은 점심조차 못 먹는다. 점심을 먹으면 오후에 일을 못하기 때문이란다.

"점심을 못 먹을 때도 많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죠. 계속 PDA를 들여다보면서 주문을 확인해야 하니까. 맘 놓고 쉴 수가 없죠"

퀵 서비스 노동자들의 오토바이에는 PDA가 2-3대씩 놓여있다. 각 회사에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할 수 있다.
 퀵 서비스 노동자들의 오토바이에는 PDA가 2-3대씩 놓여있다. 각 회사에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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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 서비스 노동자가 PDA를 통해 접수된 주문을 보고 있다.
 퀵 서비스 노동자가 PDA를 통해 접수된 주문을 보고 있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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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더 힘든 것은 열심히 일하는 만큼 수입이 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종 수수료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수수료의 명목도 다양하다. 그가 내는 수수료는 ▲ 회사에 내는 수수료 23% ▲ PDA 프로그램비 4만9500원( 1개당 1만6500원으로 3개 사용) ▲ 소속회사에 매일 내야하는 출근비 1000원 ▲적재물 보험료 1만 원 등이다.

"참 이상하죠. 일을 많이 해서 매출은 느는데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아요. 버는 만큼 각종 수수료를 내야하고 식비, 기름값, 통신비도 무시할 수 없죠. 엔진오일도 자주 갈아야 하고. 진짜 일을 많이 해도 손해고, 적게 해도 손해예요"

그가 부담하는 것은 각종 수수료뿐만이 아니었다. 식비, 기름값, 통신비 등 모든 지출이 퀵서비스 기사 자비 부담이다. 정씨의 경우 기름값으로 하루 평균 1~2만 원, 통신비로 한 달에 17~18만 원 정도 지출한다. 정씨는 하루 13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한 건에 퀵배달료가 1만 원 정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13건 정도를 성사시켜야 올릴 수 있는 매출이다. 수수료를 떼고 8만 원 정도가 수입으로 잡힌다. 한 달에 20일 정도 일하는 것을 감안하면 수입은 15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정씨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부담하는 지출 명목이 많다 보니 기사들이 주문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번에 한 개의 물건을 배송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신속한데, 그렇게 하면 기본 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기사들은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배송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거리의 무법자'라는 평가도 듣는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사고로 다치는 건 흔히 있는 일이고,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로만 1년에 3-4명의 동료가 목숨을 잃는다.

"사고가 나도 회사의 도움은 전혀 받지를 못해요. 그것도 개인이 감당해야 해요. 이런 부분이 가장 힘들어요. 일 자체가 위험 부담이 큰일인데 보험 처리가 되는 게 아니고 개인이 모두 부담해야 하니까."

"병원비 두려워 진통제만 맞는다"

퀵 서비스 노동자의 모습
 퀵 서비스 노동자의 모습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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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의 동료기사 중에는 사고가 나서 뼈가 골절·파열됐지만 병원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던 기사도 있었다. 사고 당시 병원에 가서 "넘어져서 아프니 진통제를 놔 달라"하고 진통제만 맞았단다. 기사들이 사고가 나면 당장 일은 해야 하니까 오토바이 수리는 해도, 병원은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다.

"퀵서비스 기사들한테 산재보험이 정말 필요한데, 해당사항이 없어요. 전속기사에 한해서 비용을 기사와 회사가 5:5의 부담을 하는데, 지금 전속기사라는 개념이 거의 없거든요. 기사들 대부분이 여러 회사에 속해있기 때문에... 또 회사에서도 손해를 보기 싫으니까, 애초에 산재보험을 가입하지 않겠다는 '각서'도 받아요. 아마 퀵서비스 기사들 중에 산재보험 가입한 사람은 2%도 안 될 거예요."

지난 2012년 5월부터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된 퀵서비스 기사에 대해 산업재해 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정씨는 이것을 두고 '허울'이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보험은 퀵서비스 기사들이 한 업체에만 소속돼 일할 경우 사업주와 기사가 산업재해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는 특례방식으로 가입하고, 여러 업체의 주문을 받을 경우 기사가 전액을 부담하는 사업주방식(임의가입)으로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정씨에 따르면, 택배 기사 대부분이 여러 회사에 등록되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직접 가입할 경우 월 수입 15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3만 원 정도의 산재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는 산재보험을 가입해도 실제로 얼마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퀵서비스 노조 관계자는 "본인이 100%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는 것도 문제지만, 보험료를 냈을 때 얼마나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불명확한 것이 퀵서비스 기사들이 산재보험 가입을 꺼리는 이유"라면서 "산재승인 받기도 까다롭고, 작업중에 다친 것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고용노동부 역시 퀵서비스 기사들의 산업재해 보험이 현실 적용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고용노동부 산재보험과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비전속기사들에게 산재보험을 가입할 수 있도록 홍보도 하고 있고, 지원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 12월 현재 전속기사 2500명 중 61%가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고, 비전속기사 가운데 약 300명 정도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만원에 목숨 건 퀵서비스 기사는 '허울' 뿐인 산재보험 때문에 서럽다.
 1만원에 목숨 건 퀵서비스 기사는 '허울' 뿐인 산재보험 때문에 서럽다.

정씨는 퀵서비스 기사들이 위험부담을 안고 일을 하는 만큼, 산재보험이 모든 기사에게 적용돼야 하고, 일을 하다가 다쳤을 경우에는 확실하게 산재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재해 보험 가입도 힘들고... 퀵서비스가 아직도 직업으로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 참 힘들죠. 우리를 진짜 '노동자'라고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직업적으로 체계가 잡힌다면 위험 부담 빼고는 적성에 맞거든요."

오늘도 위험부담 속에서 어떤 보장도 기대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만' 믿고 달릴 정씨. 하루빨리 그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태그:#퀵서비스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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